이민선 展

 

2011 갤러리 라메르 신진작가 창작지원전시 -

 

 

병아리 상자_혼합재료_2010

 

 

갤러리 라메르 제2전시실

 

2011. 2. 16(수) ▶ 2011. 2. 22(화)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194 홍익빌딩 3층 | 02-730-5454

 

www.galleryLAMER.com

 

 

구토하는 로션_60x120x120cm_단채널영상, 가변설치_2010

 

 

하찮음과 이완의 정치(政治)

강 정 호

 

뛰어난 예술가는 자기가 살아가는 시대의 감성적인 정황을 누구보다 예민하게 포착해 낸다. 그런 까닭에 그가 설사 당대의 사상과 정치에 무지하더라도 그가 만들어내는 작품은 사상가나 정치가 보다 앞서서 도래하는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행동을 예견하고 촉발할 수 있다. 즉, 뛰어난 예술가는 본인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당대의 지배적인 감성에 나타나는 균열을 찾아내고, 지금은 은폐되어 있지만 가까운 미래에 세계의 바탕이 될 새로운 감성을 자신의 작품 속에 담아내는 것이다.

나는 작가 이민선을 대할 때마다 이와 같은 뛰어난 예술가의 자질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된다. 그 자신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민선의 작품은 고도성장 신화에 아직도 사로잡혀 무엇이든 ‘열심히’, ‘잘’하는 것을 자랑으로 삼는 한국 사회의 강박적인 감성에 외면하기 힘든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일상의 사물을 다양한 방식으로 변용하여 가볍고 소소한 웃음을 자아내는 그의 작품은 스쳐지나가듯이 관객의 감성에 미묘한 흠집을 남긴다. 그것은 보일 듯 말듯 관객의 의식 속에 잠복해 있다가 그 사람이 한국 사회의 일상에 발맞춰 ‘열심히’, ‘잘’하려고 온 몸에 힘 꽉 주고 발버둥치는 순간 무심코 질문을 던진다. ‘도대체 왜 그래야만 하는 건데?’

이민선의 작품은 이처럼 자기 잠재력의 한계치를 넘어서서 두 배, 세 배로 과잉되게 존재하려는 한국 사회의 사물과 사람들에게 2분의 1, 3분의 1의 삶도 충분히 가능한 것이라는 이완의 감성을 은근슬쩍 심어준다. 마치 ‘하찮음’을 하나의 미학으로 정립시키는 의도를 가진 것처럼, 이민선은 가치의 위계질서 속에서 잔뜩 몸을 부풀리고 죽기 살기로 경쟁하고 있는 존재들의 혈(穴)을 살짝 건드려 풍선이 갑자기 쪼그라든 것 같은 하찮음의 평등상태에 이르게 한다. <다육식물관찰일기>, <Object Murder>와 같은 그의 연작에 나타난 사물들은 쓸모를 상실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가볍고 편안한 뉘앙스를 지니고 있다. 그들은 작가의 손길에 의해 한국적 일상의 강박적인 위계사슬에서 이탈한 사물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선풍기에 끼인>이라는 작품 속에 나풀거리며 공회전하는 휴지조각들처럼 하찮고 덧없는 존재로 하락하였으면서도 왠지 여유롭게 보이는 묘한 자유를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단지 쓸모를 상실하고 하찮음의 상태에 이르렀다고 해서 모든 존재들이 그처럼 가볍고 편안한 자유를 얻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민선은 이어지는 <새> 연작에서 휴지조각처럼 감소한 삶에서도 여전히 잔존하는 강박과 공포를 나타내고자 했다. 이 작품에 나타나는 사물들은 앞선 작품들 속에서와는 반대로 가볍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 보는 이를 왠지 모르게 찜찜하게 만드는 옥죄인 불안감을 보일 듯 말 듯 자아내고 있다. 마치 한국 사회의 사람들이 온전히 휴식을 취할 때조차 ‘열심히’와 ‘잘’의 가치관은 깊숙한 지층에서 변함없이 작동하는 것처럼, 작가 자신이 애써 만들어 놓은 이완의 공간 속에서도 불길한 씨앗처럼 싹을 틔우는 일상적 감성의 마비되고 경직된 양태를 이민선은 최근의 <새> 연작을 통해 실감나게 드러낸다.

나는 이민선의 작품이 관객에게 제공하는 중요한 논점이 상술한 바와 같은 내용적인 측면에서만 나타나는 것뿐만 아니라, ‘스쳐지나가듯, 무심코, 은근슬쩍, 어딘지 모르게, 왠지 모르게, 보일 듯 말 듯’ 등과 같은 비슷한 계열의 형용어구들을 형성하게끔 만드는 작품의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예민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의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오늘날의 미술에서 그렇게 희소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희소하게 만드는 것은 그러한 내용에 배반하지 않는 형식을 찾으려고 애쓰는 이민선의 섬세한 노력이고, 그와 같은 과정에서 구축되는 ‘무심하고, 스쳐지나가는’ 듯한 작품의 독특한 스타일이다.

나는 가끔씩 이민선의 작품에서 이제껏 체험해보지 못했던 성격의 어떠한 정치성을 느낄 때가 있다. 그것은 무심코 행해지는 정치성이고, 스쳐지나가듯이 영향을 끼치는 정치성이다. 그것은 심지어 정치를 행하는 본인조차 자각하지 못하는 성격을 지닌다. 나는 이민선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형식상의 예민함이 작품의 내용과 심층적으로 맞아 들어가면서 이와 같은 묘한 정치성을 확보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 이러한 정치성의 정체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지만, 오늘날의 한국과 같이 기존의 모든 인본주의적인 정치성이 ‘열심히’와 ‘잘’의 가치관 속에 사장되어 버리는 생활 현실 속에 무척이나 실질적인 효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민선의 작품이 나에게 은근슬쩍 남겨 놓는 하찮음과 이완의 흠집이 쉽게 가시지 않고 계속해서 세상에 대해 이러저러한 사유를 이끌어내는 것도 그의 작품이 확보하고 있는 정치성의 독특한 효력이 아닐까 싶다. 겉으로 봤을 때 힘들인 것 없이 가볍고 소소하게만 느껴지는 이민선의 작품에 보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들이고 싶은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이다.

 

작가노트

나는 내가 작업을 한다는 것이 소설 쓰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새 공포증에 관한 작업을 시작한 것은 나에게 새 공포증이 있기 때문인데, 작업을 진행시키면서는 새 공포증을 가지고 있는 나보다 더 심각한 강박에 사로잡혀 있는 어떤 인물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앞섰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내 작업은 꼭 작가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새 공포증에 시달리는 누군가’ 라는 인물의 이 이야기로 변화한다.

내가 (작가가) 아닌 새 공포증을 가진 그(작가가 만들어낸 인물)는, 어떤 사물들을 보고 새를 발견하거나 새에서 자신이 접했던 사물의 속성을 찾아낸다. 어떠한 대상을 무서워한다는 것은 어떠한 대상 그 자체에 예민한 것이기 때문에, 남들보다 그 대상이 잘 보이고 그 때문에 어떤 것에서나 그 대상을 발견하기 쉽다.

로션의 펌핑을 보고 새가 구토하는 행위를 연상하거나 나무박스를 보고 거기에 갇힌 새를 발견한다거나 하는 이 작업들은, 새 공포증에 사로잡힌 어떤 사람의 생활을 충실히 반영한다. 또한 이 인물의 생활은 남들이 보기에는 비정상적이고 모자라 보이므로 웃음을 유발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유머러스함은 당사자에게는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쉽게 넘어갈 수 없는 웃음이며, 어느 정도의 이기심과 잔인함을 내포한 웃음이라 말할 수 있다.

 

 

 

 

■ 이민선 (Lee Min-sun)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졸업 및 동 대학원 재학 중

 

단체전  | 2010  <촉지도-가벼운, 깨지기 쉬운, 유연한>, 서울대학교 미술관 MoA | 2010  인사미술제 <미래작가전>, 공아트스페이스 | 2010  <After human’s gone>, abandoned space | 2010  <그곳의 그것들>, 서울대학교 우석홀 | 2010  <끼리끼리>, 갤러리 몽스트르 | 2009  <Answer Drawing>, 서울대학교 우석홀 | 2009  <Q&A>, 대안공간 Door

 

 

 

vol.20110216-이민선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