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의 미학 _ 선과 색 展

 

2011 인터알리아 신년기획

 

 

강민수_백자달항아리_54x54cm_백토_2010

 

 

인터알리아 아트스페이스

 

2011. 1. 17(월) ▶ 2011. 1. 31(월)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147-17 레베쌍트 빌딩 | 02-3479-0114

 

www.interalia.co.kr

 

 

김홍주_Untitled_216.5x148.5cm_acrylic on canvas with objects_1993

 

 

아름다움 속으로 떠나는 미학적 여행

"사람에게는 아름다움에 반응하고 그것을 소유하고 싶어하는 타고난 경향이 있다. ... 그리고 아름다움을 제대로 소유하는 방법은 그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스스로 아름다움의 원인이 되는 요인들(심리적이고 시각적인)을 의식하는 것이다."

                                                      - 존 러스킨 Jahon Ruskin -

 

2011년 인터알리아 신년기획으로 선보이는 『美의 미학 _ 선과 색』 전은 미술 감상의 즐거움은 대체로 어디서 오는가?라는 매우 일차적인 질문에서 시작한다. “선과 색”의 조화는 두말할 필요 없이 그런 미적 즐거움의 가장 큰 원동력의 하나다. 게다가 이는 단순히 양식적 스타일을 넘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것을 포함하고 있는 한 지역이나 문화의 정체성까지도 대변한다. 나아가 우리 고유의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는 요소들을 찾아보는 것은, 앞서 인용한 러스킨의 맥락에서 감상의 즐거움을 키우고 이로써 그 미학적 요인을 보다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회화와 도예로 구성된 8명의 작가들은 어떤 측면에서 한국적이라고 할 수 있는 특징적인 미의식(예를 들면 화려함과 단아함, 웅장함과 단출함, 섬세한 장식과 무기교의 단순함 등이 공존하는)의 조화를 다채롭게 선보이고 있다. 이는 전통양식의 직접적 수용 혹은 차용을 통한 재해석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자연적 혹은 우주적 사유를 담아내는 것과 같은 우회적인 차원에서 드러나기도 한다. 이렇듯 각각이 고유하게 빚어낸 선과 색의 조화를 따라가다 보면 저마다 다른 조형적 신념과 전략을 자연스레 엿보게 된다.

 

 

여경란_좌상_40x25x75cm_조합토,화장토 채색, 코일링 기법_2005

 

 

한국적 전통미가 살아 있는 선과 색

도자기는 우리로 하여금 화려한 기교는 없으나 예스럽고 소박한 멋이 있는 이른바 ‘고졸미’를 먼저 떠올리게 한다. 또한 오늘날에도 여전히 도자기는 한국 고유의 전통적인 미의식을 대변하는 상징처럼 받아들여진다. 강민수와 전성근 작가는 백자를, 그리고 이동하 작가는 청자를 통해 그런 특유의 미감을 수동적 전승이 아닌 창의적 계승의 차원에서 잘 살려내고 있는 도예가들이다.

다른 한 편으로 한국적인 미학의 한 축을 문인화, 청자, 백자 등의 절제된 단아함이 담당하고 있다면, 다른 한 부분은 고려 불화, 민화, 단청, 한복의 화려한 복색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화려함과 섬세함의 어우러짐이라고 할 수 있다. 여경란, 정종미, 홍지연 등의 작가는 각각의 작업 안에서 그런 선과 색채의 조화를 실현해낸다.

 

 

이동하_삼족향로_30x12cm_물레성형,청자기법_2010

 

 

강민수는 오로지 백자 달 항아리만을 빚는 달 항아리 작가다. 대학 졸업 후 15년 이상 달항아리만을 빚고 있다. 아무런 멋과 꾸밈 없이도 둥근 몸체에서 담긴 백자 특유의 온유한 매력 때문이다. 도예가 중 한 가지 기물(器物)만을 작업하는 이는 손에 꼽을 정도로 많지 않다. 달항아리에서는 권대섭, 박영숙 등이 대표적인 작가로 거론된다. 이제 갓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강민수 작가의 연배에서는 이렇듯 한 가지에만 매진하는 작가를 찾기가 더 어렵다는 점에서 그 작업여정 자체가 갖는 의미가 크다. 그것은 온 몸으로 역사를 빚어 가는 과정이다. 무엇보다 작가는 전통적인 달항아리의 아름다움을 그만의 고유한 미감으로 되살려내고자 한다. 그것은 어쩌면 ‘무기교의 기교’라는 경지로 ‘고졸한 미’를 이끌어내는 일이다. 기교를 닦고 완벽하게 드러내는 것도 힘들지만, 그것을 극복하여 절제의 미덕에 닿기는 한층 더 어렵다는 차원에서 그는 결코 쉽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이를 위해 작가는 다른 가마보다 오히려 실패율도 높고, 번거롭기까지 한 장작가마를 고집한다. 나아가 양구, 사동, 산청 등을 답사하면서 지금도 흙 연구를 쉬지 않고 있다.

 

전성근은 백자 투각 작가다. 전통 고려청자나 백자에서 투각기법을 사용한 자기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작가는 전통적 투각과는 분명 대별된다. 애초에 목조각으로 예술가의 길에 들어섰다가 백자 투각으로 진로를 바꾼 것은 바로 그런 색다름의 가장 큰 이유다. 그는 전통의 기법을 그대로 수용하려 하지 않고 목조각이라는 스스로의 독특한 배경을 백자에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투각용 칼도 보통의 것이 아니라 그의 몸에 맞춰 별도로 제작한 칼을 쓴다. 이런 이유로 그의 작품들에서는 전통적인 투각 청자나 백자의 다소 무거운 느낌과는 다른 세련된 섬세함이 묻어난다. 결국 일반적으로 백자가 은은하고도 차분한 색채와 단순하고도 포용적인 선이 만나 고졸한 맛을 끌어낸다면, 전성근 작가는 그런 색의 장점을 유지하면서도 날렵하고도 유려한 선을 잘 조화시켜 백자를 현대적으로 재탄생 시키고 있다.

 

 

전성근_백자 연꽃용문이중투각_40x38cm_백자토, 물레성형투조각, 1280도 소성_2008

 

 

이동하는 청자를 빚는다. 여러 기물 중에서도 합(盒), 향로 등 일정 기물만을 작업한다. 최근 강진 등 역사적으로 고려 청자 출현의 시발점이었던 곳에서 전통 청자의 색채, 이른바 청자의 비취색 색감을 전승적 차원에서 재현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다각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통 청자 고유의 미감을 오롯이 재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작가는 청자 중에서도 합과 향로에 주목하면서 그 비취 빛 색과 섬세한 선(절제와 세밀함을 동시에 품은 청자의 선과 색은 전통 미술 전반에 걸쳐 있으며, 일본, 중국 등 아시아의 다른 지역과 분명 구분되는 한국의 특징적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다)을 동시대적인 미감으로 이끌어 낸다.

 

홍지연은 회화의 문맥 안에서 민화적 색채와 도상들을 화면 안으로 적극 끌어들이고 특유의 조형적 실험을 꾀한다. 그리고 이런 전략이 곧 그의 작품이 갖는 선과 색의 익숙한 듯 색다른 미학적 리듬의 원동력이 된다. 그는 민화의 화려한 색을 장수, 건강, 다산, 재물 등과 같은 전통적으로 대중들의 소박한 기원을 담아온 서민의 색이면서, 현재에 일상화된 색으로 파악한다. 그런 인식에 근거해 별도의 색을 만드는 조색(調色)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물감 그대로의 색을 쓴다. 다만 색을 결정함에 있어 간판, 광고 전단, 패션 잡지 등과 같은 일반적 매체에서 가장 흔히 쓰이는 색을 선택한다. 그렇지만 작가적 관심은 보다 개념적인 차원에 자리한다. 기본적으로 민화의 특징적인 요소들을 차용하면서 이를 하나의 무대로 삼아 그 위에서 전혀 이질적인 요소들을 충돌시킨다. 그리고 이는 동시대 사물, 혹은 개념들에 얽혀 있는 상대적 관념들의 다분히 의도적이면서도 재기 넘치는 반전이자 충돌이다.

 

 

정종미_보자기부인_96.5x66.5cm_한지,천,안료,염료_2007

 

 

여경란은 조형도자 작가다. 이런 점에서 작가는 도예가 갖고 있는 일차적으로 일상적인 쓰임을 목적으로 한다는 공예적 특성에서 벗어나 보다 조형적인 차원에서 도예에 접근한다. 그러면서 도예의 재료적 차별성을 유지하면서 조형적 실험을 지속하는 데 주로 황토색의 투박한 질감을 살린 인물이나 기물의 표면 위에 민화적인 색채와 도상들을 조화 시킨다. 민화의 화려하면서도 정제된 색채와 선을 수용하고, 나아가 민화가 담고 있는 서민적 기복(祈福)의 의미를 새롭게 담아낸다. 최근 꼭두인형(주로 상여의 부속 인형으로 쓰임)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 중인 도자 인형들 역시 그런 맥락에서 삶의 사사로운 희로애락(喜怒哀樂)을 함께하는 동반자로 상정된다.

 

정종미는 다른 작가들이 민화의 의미에 주목하는 대체적인 관점과 동일한 맥락에서 전통 한지, 염료, 보자기 등에 주목한다. 그간 작가가 일궈온 작업세계는 자연인, 현대산수, 종이부인, Sublime, 오색산수, 어부사시사, 역사 속 종이부인 등 개인전의 흐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국적인 미의 본질을 탐구하는 여정이었다고 해도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그는 93년부터 3년간 미국에 머무는 동안 그곳 공방을 드나들고 이런저런 종이를 접하면서 한지의 독특한 매력을 새삼 주목하게 됐다. 오색 산수, 어부사시사 등 여러 현대적인 산수 시리즈를 거치며 차츰 구체화된다. 무엇보다 그가 한지에서 발견한 것은 한국의 여성성 혹은 모성이다. 한지의 특성에서 한국적인 여인의 기질을 발견한 것이다. 그 기질이란 아마도 한국 여인의 여린 듯 강인한 성품이며, 작가는 이를 종이부인 시리즈와 같이 가녀린 선과 화려한 색채의 조화로써 시각화한다. 특히 그런 일련의 작업여정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작가가 염료 등 전통 안료와 종이, 천 등 재료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와 분석을 지속하면서 그 같은 한국적 미의 원형적 요소에 대해 오랫동안 천착해왔다는 것이다.

 

 

하상림_Untitled-BL1101_130x130cm_acrylic on canvas_2011

 

 

조형적 전략 속에 자연적, 우주적 사유를 담은 선과 색

전통적인 미의 요소를 의도적으로 담고 있지 않다고 해도 그 지역적 특징과 문화는 어떤 방식으로든 작품 속에 녹아 들기 마련이다. 그것은 세대를 거듭하며 생을 살아내고 있는 삶의 공간에서 재발견된 대상 혹은 전통 양식과 같은 일정의 형식적 유사성일 수도 있고, 자연적 내지 우주적 사유와 같은 관념적 특징일 수도 있다. 물론 그것을 단언적으로 규정할 수는 없으나, 그렇다고 완전히 부정할 수도 없다. 김홍주와 하상림 작가는 후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김홍주는 세밀한 선과 깊고도 은은한 색채의 조화로 이른바 자연에 근거한 우주적 사유를 담아낸다. 198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 주로 논, 산, 지도, 문자, 잎, 꽃 등을 주요 소재로 작업하고 있다. 추상에서 극사실 그리고 80년대를 전후한 세밀한 풍경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관심은 회화의 본질을 탐구하는 데 머물러 있다. 초기의 작업들이 사물과 그림의 관계에 대한 것이었다면, 세밀한 풍경에 와서는 그리는 행위 자체에 중심을 두고 있다. 아주 얇은 붓으로 오랜 시간 동안에 걸쳐 조금씩 채워지는 화면은 있는 그대로 지리하기까지 한 몸의 시간을 담고 있다고 해도 넘치는 말이 아니다. 대상 혹은 사물(논, 산, 지도, 문자, 꽃 등)은 바라보는 이의 주관적인 감정과 관점 등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내포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라는 프로타고라스의 말은 오늘에도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의 작품에 제목이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나아가 그의 작업이 구상적이면서도 추상성을 강하게 품고 있는 것도 이런 특징에 기인한다. 이번 전시에는 90년대에 작업된 일명 똥 그림과 문자, 꽃 그림이 선보인다. 똥, 문자, 지도 등은 밭이랑, 물 위에 떠있는 흙 등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의 작품들은 결국 대상에 근거하되 대상성을 넘어서 존재한다.

 

하상림은 가늘면서도 역동적인 선과 두드러지지는 않으면서도 다채로운 색채의 조화를 꾀한다. 그리고 이는 과거 ‘꽃’에서부터 최근 열렸던 개인전에서 선보이기 시작한 ‘풀’ 등의 이미지로 표출되면서 자연스레 생명성을 드러낸다. 그의 새로운 소재인 ‘풀’은 전혀 특별하지 않은 이름 없는 풀들이며 붓 자국이 결여된 채 아주 매끄러운 화면에 채워진다. 그렇지만 색채가 매우 임의적으로 선택됨으로써 작가가 대상의 사실적 재현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작가의 일관된 관심사가 선과 색의 조화라는 조형적 관심을 밀고 나가는 데 있음을 가늠하게 하는 부분이다. 한편 그의 화면 역시 완성을 위해서는 섬세한 작업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결코 만만치 않은 시간의 더께를 쌓아야만 한다. 이런 이유로 그의 회화에는 많은 이름 없는 풀들이 일견 별다른 존재감이 없어 보이다가도 조금만 관심을 갖고 눈 여겨 보면 그 안에 무한한 생명의 에너지를 품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과 같은 역동적인 의지와 힘이 담겨 있다.

 

 

홍지연_moving heart_72.7x90.9cm_acrylic on canvas_2009

 

 

 

 

■ 참여 작가 : 강민수(백자 달항아리), 김홍주(회화), 여경란(도조), 이동하(청자 합), 전성근(백자 투각), 정종미(회화), 하상림(회화), 홍지연(회화)

 

 

 

vol.20110117-美의 미학 _ 선과 색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