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iRux 展

 

전시작가 : 박광수, 이주주, 오주현, 최우진

 

 

 

 

갤러리 이룸

 

2010. 12. 10(금) ▶ 2010. 12. 16(목)

서울시 중구 충무로 2가 51-13 2F | 02-2263-0405

 

www.galleryillum.co.kr

 

 

 

 

여기 네 사람의 사진이 있다.

 

유명한 사진가들, 사진으로 한 세계를 구축한 사진가들의 인터뷰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내용이 있다. 사진가는 ‘시각’을 배울 수 없다는 말이다. 사진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이 같은 장소에서 사진을 찍다 보면 저다마다 다른 사진을 찍게 된다. 하지만 사진을 찍어갈수록, 사진에 대해 배운다고 할수록 비슷한 사진을 찍게 된다. 좋은 사진이 갖고 있는 요소들을 자신의 사진에 담아내고 싶은 욕구가 강해질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사진은 점점 비슷해진다. 이러한 상황을 겪다보면 대가들의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시각이란 원래 갖고 태어나는구나! 나에게는 그러한 시선이 원래 없었구나! 체념해 버리는 자신을 보며 대가들의 능력을 인정하게 된다. 뛰어난 작가와 평범한 작가는 태어날 때부터 나뉘어져 있다고 자책하면서, 자신의 사진을 한심하게 바라보게 된다.

그러나 ‘시각’을 배울 수 없다는 말을 조금만 달리 생각하면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좋은 사진에 대한 욕구, 인정받기 위한 욕구에서 벗어나 내가 보는 세상에 집중할 때 시각은 예리해진다. 세바스티앙 살가도는 다른 사진가들과는 구별되는 그만의 훌륭한 ‘시각’을 갖고 있었다. 경제학자에서 사진가가 된 살가도가 보았던 세상은 우리와 다를 것이다. 단지 자신이 무엇을 보고 싶었는지, 자신이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 끊임없이 바라보고,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갔을 것이다.

 

 

 

 

사람이 모두 다르듯이, 사람들은 각자의 고유한 시각을 갖고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살아가는 태도에 의해서 형성된 자신의 시각은 다른 이와 같을 수가 없다. 시각은 삶의 태도에서 만들어진다. 한 인터뷰에서 세바스티앙 살가도는 자신이 처음 찍었던 사진들이 결국 자신이 원했던 사진이라고 말했다. 결국 서툴게 담겨 있던 자신만의 시각이 좀 더 세련되고 예리해졌을 뿐이다.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자신이 바라보는 세계가 남들과 어떻게 다른지를 끝까지 고집하는 길이 결국 자신만의 예리한 시각을 완성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러나 그 길이 쉽지는 않다. 살아가면서 쉽게 지치고 낙담하듯이, 사진도 힘들고 지칠 때가 있다. 이런 면에서 사진은 끊임없는 자기극복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누구에게도 없는 나의 것을 찾아가는 과정은 스스로 해나가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재촉하지 않기 때문이다. 힘들어 주저앉아도, 생활의 안락함에 빠져 가던 길을 잊더라도, 생존의 고통에 몸부림치더라도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길을 계속 걸을 수 있는 결단은 고스란히 자신만의 몫이다.

여기 네 사람의 사진이 있다. 모두 자신의 시각을 찾기 위해 결단을 내린 사람들이다. 언제 다시 멈추고, 주저앉고, 일어설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 길을 걷고 있다. 사진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도 없고, 일상의 무기력함과 일상의 달콤함을 모두 알기에 쉽게 멈출 수 있는 가능성도 있지만 각자만의 시각을 찾아내고 싶어 사진을 계속한다.

 

 

 

 

CaiRux는 이런 의미에서 만들었다. 그리스어에는 두 가지 의미의 시간이 있다. Chronos와 Kairos다. Chronos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배경으로서의 시간이다. 물리적인 시간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주어진다. 하지만 Kairos는 의미로서의 시간이다. 60분은 모두에게 똑같은 Chronos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Kairos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순간이다. ‘의미가 있는 빛’ 바로 Kairos와 Lux의 합성어다.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이고, 빛은 대상을 상관없이 내려앉지만 자신만의 시각으로 바라본 그 순간은 특별해진다. 그 특별한 빛을 표현하는 수단이 바로 사진이다. 내가 바라본 것. 흔히 사진은 보이는 것을 있는 그대로 재현한다고들 하지만 사진가는 보는 순간 자신을 표현하게 된다. 전시회를 함께 한 형이 말했다. 신이 만든 세상에서 딱 이 만큼만 잘라내 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겠다. 바위를 보면서 바위만 볼 수 있고, 바위를 보면서 신과 세계를 볼 수도 있다.

 

 

 

 

덧붙이자면 의도와 의미는 구별하고 싶다. 들뢰즈는 무의미도 어떤 면에서는 의미가 있다고 했다. 살아가는 과정은 무의미한 경험일지라도 과정 속에서 의미를 갖게 된다. 길거리에 떨어진 모자는 발에 차이며 돌아다니는 무의미한 쓰레기일 뿐이지만, 빛과 함께 만난 모자는 사물의 신비로움을 보여줄 수도 있다.

성취와 성공은 다르다. 성공은 성취한 사람에게도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도 찾아온다. 하지만 성취는 노력한 사람에게만 찾아온다. 그런 면에서 이번 전시회는 성취하기 위한 전시회다. 물론 모든 것을 다 쏟아 붓지 못해서 안타깝고, 아쉬운 부분도 많다. 단지 다음 전시회에서도 이런 아쉬움을 느끼고 싶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이 정도 사진이면 됐다는 자기만족에 머물지 않기 위해서 첫발을 내딛는 전시회다. 많은 비평이 필요하다. 자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비평은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단지 현대 사진의 관점에 다른 사진들과 단순 비교를 해주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단지 사진을 보면서 무엇을 보려고 했는지 조금만 생각해 준다면 너무나 감사할 뿐이다. 한 발짝 뗀 지금이 어디로 향할지는 모르지만, 포기하지 않고 걸을 수 있다면 정말로 좋겠다. 지금으로서는 이것이 최선인 듯싶다.

 

 

 

 

 

 

 

vol.20101210-CaiRu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