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재 展

 

"노르웨이 풍경화전"

 

 

노르웨이 풍경_41x24.5cm_Oil on canvas_2008

 

 

선 갤러리 1,2,3F

 

2010. 11. 4(목) ▶ 2010. 11. 20(토)

Opening : 2010. 11. 4(목) PM 5:00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184 | 02-734-0458

 

www.sungallery.co.kr

 

 

노르웨이 풍경-예이랑에르 피오르_41x53cm_Oil on canvas_2008

 

 

선화랑에서는 2010년 11월 4일부터 20일까지 푸른 산을 그리는 작가로 잘 알려진 김영재화백의 노르웨이 풍경화전이 열립니다.

 김영재화백은 70년대부터 국내의 명산은 물론 세계 유수의 산인 히말라야, 킬리만자로, 안나푸르나, 하롱베이, 피오르 등을 직접 답사하며 산과 그 주변대기와 어우러진 경건한 산(山)풍경을 화폭에 담아왔습니다. 특히 바다와 섬이 절경을 이루는 하룽베이는 베트남의 정크선 그리고 하늘과 가장 가까이 맞다있는 히말라야의 산맥은 경비행기와 헬기를 단독으로 대절하여 포토스케치를 하는 등 노년에 나이가된 지금도 끊임없는 열정으로 작업해오고 있습니다. 2005년에 쓴 미술평론가 이구열씨의 평문에서 “김영재는 우리 양화계에서 ‘산 그림’에 전념한 대표적인 작가로서 그 명성이 뚜렷하다. 1970년대 중반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명산들은 물론, 세계의 명산과 거산을 거의 다 찾아가 오르고, 그 감동의 시각 체험을 마음껏 그린 작가인 것이다.”라고 볼 수 있듯이 김영재화백의 작품에는 현장에서 보이는 순수하고 맑은 대자연의 모습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번전시는 2009년에 주한 노르웨이 대사 디드릭 톤셋씨의 초청에 의해 12일간 노르웨이를 함께 여행한 끝에 제작된 작품들이 출품되며, 100만년동안 얼음으로 덮여있는 노르웨이 산악지대의 오랜 퇴적으로 이루어진 U자 골자기 피오르지형과 설산이 연출하는 웅장하고 수려한 모습의 노르웨이 설경을 담아낸 작품들이 전시됩니다. 또한, 배와 비행기를 타고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바라본 산의 모습이 아닌 영하20도의 요툰하이멘 산군을 스노우 스쿠터로 직접 올라서서 본 작가의 생생한 감동이 그려진 작품이 선보이게 되며, 한국의 명산을 주제로 그려진 70~90년대 작품들이 함께 출품하여 김영재선생님의 산 작품을 총망라해 볼 수 있는 전시가 될 것입니다.

 

 

노르웨이 풍경-예이랑에르 피오르_40x72.7cm_Oil on canvas_2009

 

 

산 그림, 경건한 대자연계의 찬미

이구열 | 한국근대미술연구소 소장

 

 김영재는 우리 양화계에서 ‘산 그림’에 전념한 대표적인 작가로서 그 명성이 뚜렷하다. 1970년대 중반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명산들은 물론, 세계의 명산과 거산을 거의 다 찾아가 오르고, 그 감동의 시각 체험을 마음껏 그린 작가인 것이다. 그 작품들은 장엄한 산악과 산령(山嶺)이 비쳐내는 무한한 미의 실체에 집중되었으나, 그 현실감은 계절과 날씨, 내지는 시간대의 산용(山容)이 스스로 창출하는 생명감의 색상으로 강조되었다. 그 표현 형상은 또 창의적인 단순화와 평면적이고 장식적인 기법의 색상으로 작품성을 특이하게 부각시켰다. 1980년대 이후에는 그러한 표현 형태가 더욱 분명하게 김영재 회화 양식의 전형화를 나타냈다. 그 화면 구성은 작가의 깊은 자연 사랑과 외경(畏敬)의 심사를 반영하면서 아울러 독실한 기독교 신앙인 화가로서의 경건한 자연관도 엿볼 수 있게 전개되곤 했다. 산악 존재와 한없는 생명감은 푸른 색조의 변주로 깊이깊이 찬미되었다.

 김영재의 광대하고 경건한 산 그림들은 19세기 영국의 미술 및 사회비평가이며, '근대화가론'의 저자인 존러스킨이 “지구상의 산들은 천연의 대사원(大寺院)이다”라고 한 말을 떠올리게 한다. 동양회화사의 산수화 전통에서 신선이 선계(仙界)의 상상과도 상통하는 말이다. 또한 서양의 어떤 시인은 “알프스 산맥은 자연의 여신(女神)의 궁전이다”는 말로 그 산악미의 신비와 비경을 찬미하기도 했다. 그러한 표현은 우리의 금강산과 백두산에도 적용될 수 있는 말이다. 김영재의 명산과 거산 그림 앞에 서 보면 누구나 앞의 명언(名言)그대로의 초자연적 경개의 장엄미가 그려지고 있는 데에 먼저 감명을 받게 된다. 작가는 태고의 정적으로 살아있는 천혜의 산악을 원근감의 심청, 담청, 자회색 등으로 분별하여 그 존재의 생명감과 엄숙함을 부각시킨다. ‘영원한 산령(山靈)’의 느낌도 받게 된다. 완전 고요의 산악 모습 그 자체만이 작가의 주된 작품 의도일 따름이다. 그렇더라도 이런저런 수목이나 야생화 등이 제한되게 도입된 그림이 더러 그려지긴 했다. 그런 화면에서도 작가의 성격이 반영된 깔끔함과 결벽증의 요소가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다.

 김영재는 1970년 이후 십 수회의 개인전을 거듭했다. 미술대학 교수직에도 성실하게 재직하면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해 낸 것이다. 그만큼 그는 무척 부지런하고 건강하게 회화 창작의 정열을 발휘했다. 그의 개인전들은 매번 새로운 여행지 작품을 포함하여 전시 효과를 높이곤 했다. 육안으로 직접 보고 느낀 자연 경개의 감동과 감흥을 사실적으로 그리려고 한 모든 화가의 일반적 작의(作意)는 특정의 명산 풍경에서부터 향토적인 야산의 풍치에 이르기까지 대상의 자연적 정취가 초점이 된다. 그러나 김영재만큼 산 그림에 집중한 화필 작업을 두드러지게 보여준 화가는 내가 알기에 별로 없다. 그는 어느 화가보다도 산을 한없이 좋아하고, 그 반응으로써의 회화 창작을 충분히 할 수 있었던 만족, 그러면서 천지간 산세의 미적 자극이 무한했기 때문이다.

 이미 언급했듯이 나는 수십 년 전부터 이작가의 ‘산 주제’작품에 남다른 창작성을 눈여겨본 입장에 있다. 그의 개인전 서문도 몇 번 쓴 적이 있다. 1993년의 선화랑 개인전 카탈로그에 쓴 서문에서 나는 김영재의 산 그림을 ‘대자연의 본색미와 외경미(畏敬美)의 표현’ 이라고 썼다. 산들의 형태적 본색과 색상이 모두 간명하게 전개되면서 대자연의 엄숙한 분위기와 현실미의 깊이를 강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표현은 1979년부터 그가 세계의 여러 명산과 고원의 현지로 스케치 여행을 떠나기 시작하면서 창의적으로 확립한 양식이었다. 그는 가슴으로 크게 감동한 산을 복잡하게 그릴 이유가 없었다. 구도의 명쾌함과 색상의 내면적 이미지 내지 시적(詩的)요소가 중요했다.

 

 

노르웨이풍경-론다네의 새벽_50x91cm_Oil on canvas_2009

 

 

그러나 산 주제의 집착이 시작되기 이전에 그는 조용히 흐르는 강물과 그 원근 주변의 향토적 풍치를 시정(詩情)의 시각으로 연작한 시기가 있었다. 그러다가 산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던 것인데, 그 전환이 혹시<논어(論語)>의 ‘지자(知者)는 물을 좋아하고, 인자(仁者)는 산을 좋아한다. 지자는 움직이고 인자는 조용하다’는 공자의 잠언(箴言)과 관련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산에 이끌리기 시작한 뒤에 그 잠언에서 깊은 깨달음을 얻었을 수도 있다. 내가 알기에 그는 지극히 조용한 성격이면서 다분히 문학적인 감성의 화가이다. 그의 그림들이 모두 아주 조용한 풍경으로 이우러지는 것은 그가 조용한 심성을 지닌 때문이 아니겠는가. 내가 김영재의 산 그림을 처음 주목하게 된 1977년 개인전(현대화랑)에서의 작품들은 서울 인근의 도봉산, 불암산, 수락산으로부터 멀리 계룡산에 걸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전시에는 한강을 낀 풍경과 금강의 정지된 듯한 흐름을 그린 풍경화들도 함께 나왔었다. 1988년의 제10회(서울갤러리)에서도 그런 강물 주제와 산 그림이 병행되어 있었다. 그러면서 그 무렵부터 산의 표현 방법이 명백한 김영재의 창작성을 나타냈다.

 그 때의 산 그림은 한국의 명산인 설악산, 태백산, 팔공산 등의 웅장한 산용(山容) 외에 그 사이 여행한 세계의 명산 현지 스케치(카메라도 사용)에 기초한 히말라야산의 <마나슬루>와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의 새벽>등 이었다. 처음으로 개인전에 발표된 김영재의 그 세계 명산들은 그야말로 신이 빚은 비경들이었다. 어떤 작품은 구도나 묘사가 산진에 가까울 정도로 직접적 시각에 충실했으나, 대다수의 작품은 그런 기본적 묘사에 회화적 색채 표현이 조화되며 김영재의 독특한 산 그림을 이루어나갔다.

 그는 1979년에 처음 유럽각지를 여행했다. 그 때 당연히 알프스에도 올라 태고의 만년설 비경을 직접 체험하였고, 그 신의 창조 세계를 여러 각도로 스케치해서 돌아와 유화작업으로 생생하게 옮긴<몰블랑>등 대작 여러 점을 개인전에서 발표했다. 김영재의 세계의 명산 그림 의욕은 갈수록 더해져 1983년부터는 히말라야에 몇 번 씩이나 다시 가서 그 주변인 네팔의 안나푸르나, 시킴과 부탄의 히말라야 지맥, 그 북쪽인 티베트 고원 등의 산악 절경을 거의 모조리 그려나갔다. 그 열정은 1995년 네팔에서 2천 달러나 주고 7인승 경비행기를 단독으로 빌려 히말라야 상공에 올라가서 밑의 히말라야 정상 일대를 내려다보며 스케치를 했을 정도였다.

 그 뒤에도 그는 네 시간에 3천5백 달러를 지불한 헬리콥터로 하늘에 올라가 억겁의 시간을 침묵으로 품고 있는 성스러운 히말라야 산맥일대를 스케치한 적이 있었다. 막대한 비용을 무릅쓰며 그렇게까지 산 그림에 미친 화가는 아마 달리 없을 것 같다. 1986년에 그는 두 번째로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산에 가서 새로운 감동의 스케치를 했다. 1990년에는 남미에 가서 안데스산맥과 아르헨티나의 아콩카과산을 스케치했고, 이어서 남태평양의 타히티섬까지도 가서 해발 2천 미터가 넘는 오로헤나산을 그렸다. 김영재의 산 욕심은 그렇게 계속 이어졌다. 이미 말한 대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그가 구약성서의 ‘출애굽기’에 나오는 성산(聖山)인 시나이반도의 시내산을 찾아가 성령의 산기(山氣)를 체험한 바를 작품화한 것은 1997년의 일이었다.

 

 

노르웨이 설경-론다네_53x30cm_Oil on canvas_2010

 

 

 물론 그는 설악산·지리산·태백산·팔공산·무등산 등의 명산과 고산준령도 끊임없이 거듭 그렸다. 그는 그 대상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강조하여 자신의 자연 찬미의 궁극적 표의(表意)를 다하려고 했다. 그것은 예술론에서 말하는 ‘이미지즘’ 곧 마음에 반영하는 상(象)이나 느낌을 무엇보다도 명확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취한 것이다. 김영재의 ‘자연의 이미지’ 추구는 강물과 산 그림에 열중하기 시작한 초기인 1997년 개인 카탈로그에 스스로 써넣은 말에 이미 분명히 표명돼 있다.

 “인간과 기계(산업)의 극성으로 자연은 이제 생기(生氣)를 잃어가고 있다. 나의 회화 창작의 중요한 소재인 자연이 말이다. 그러나 회화는 창작이어야 하기에, 포크레인이 파헤치고 폐수가 흐르는 강가에 앉아서도 나는 마음속의 그림을 그린다. 영원히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우리의 산과 들과 강을......”

 앞에 언급된 ‘마음속의 그림’은 곧 이미지로서 ‘자연의 내면적 본색을 그리는 그림’인 것이다. 그 본색을 해치고 파괴하는 현대 기계산업의 폭력에 그는 일찍이 그림으로 항거한 적이 있었다. 1971년 신기회전에 발표한<강변 25>가 그 작품이다. 그 작품이 발언한 메시지는 건강을 상실한 듯 한 수목들과 그 뒤의 강과 산이 배경을 이루는 강변의 모래밭 한복판에 나와 있는 거대한 무한궤도 포크레인의 실체를 사실적으로 그려 자연 파괴의 괴물로 상징시키려고 한 것이었다. 자연환경의 보호 문제가 매스컴에서도 심각한 이슈로 강조되기 시작하던 때여서, 글 작품은 동아일보사의 월간「신동아」8월호의 ‘이 달의 전시회-원색 작품 화보’에 픽업되기도 했다.

 팔순을 내다보는 노경에 이르고 있는 김영재 화백의 평생 자연 사랑과 찬미의 회화작업은 시인 같은 감정으로 대자연계의 원초적 피안을 그리려고 한 세계로 나는 파악한다. 그의 산 그림 앞에서 나는 그 아득한 피안의 세계로 한없이 시선이 이끌려 가는 숭고한 느낌을 맛본다. 김영재 화백이 수년전에는 베트남의 세계적 비경인 환상적 하롱베이 섬들도 찾아가 스케치하고 와서 대작 유화로 연작하고 있다. 그에 앞서 그는 1992년에는 뉴질랜드의 밀포드 사운드, 그리고 2000년에는 또 노르웨이의 송네 피요르드에 가서 산과 물을 그린 일도 있었다. 산에서 다시 물 쪽으로 가본 것이다. 거기에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을 리는 없다. 그는 산으로 또 갈 것이고, 그런 자유로운 마음과 정신의 행로 그 자체가 그의 예술정신과 제작 의욕의 건강하고 끊임없는 ‘샘’인 것이다.

 

 

 

 

■ 이영재

 

1963 홍익대학교 대학원 회화과 미술석사 | 1969-1994  영남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교수(정년퇴임) | 1995  영남대학교 미술대학 명예교수

 

개인전.그룹전  | 1970-2005  개인전 18회 (1976 진화랑, 1977 현대화랑, 1993, 2000 선화랑 등) | 1968  문화공보부 현역작가 작품전, 경복궁 미술관 | 1979  국제조형 예술협회(I.A.A)총회 대표단원으로 참석, 슈틋트가르트 | 1983-1992  현대미술 초대전, 국립현대미술관 | 1991  제2회 TOKYO ART EXPO 참가 | 2003  Salon d'automme 100주년기념전, 파리 | 2005-2010  구상대제전, 한가람미술관, 예술의 전당 | 2006  Comparaisons Grandpalais (Paris) | 2008  서울 미술대전, 한국 구상회화의 흐름, 서울시립미술관 | 2009  마니프15, 한가람미술관, 예술의 전당

 

경력  | 1986-1987  한국기독교 미술인 협회회장, 현재 고문 | 1994-1997  신 미술회 회장, 현재 고문 | 1995  한국미술협회 고문 | 1986  제5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문예진흥원 주최 | 1996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심사위원

 

수상  | 1995  대한민국 기돌교 미술상 수상 | 2007  구상대제전 초대작가상 | 2009  대한민국 미술인의 날 "오늘의 미술상(서양화 구상 부문) 수상"

 

 

 

vol.20101104-김영재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