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하 展

 

‘멸치의 꿈’

 

 

멸치의 꿈 1_135x90cm_잉크젯프린트_2010

 

 

갤러리 나우

 

2010. 11. 3(수) ▶ 2010. 11. 9(화)

Opening : 2010. 11. 3(수) PM 5:00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92-13 3F | 02-725-2930

 

www.gallery-now.com

 

 

멸치의 꿈 2_94x62.5cm_잉크젯프린트_2010

 

 

멸치의 꿈

분주히 부엌을 오가다가 조리대 위에 꺼내 놓은 멸치가 눈에 들어온다.

넓은 바다에서 유영하던 모습과 달리 건조되어진 작은 모습에 연민의 정이 느껴진다.

마치 자신의 존재감과 감성을 잃어버린 채 점차 박제화 되어가고 있는 듯한

나 자신을 보는 것 같다.

그래 멸치에게 또 다른 생명력을 불어넣어 보자.

또 다른 자아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해 보자.

한지에다 바다를 연상하며 칠한 먹이 번지면서 만들어 내는 형상들이 이채롭다. 예기치 못했던 신비로운 풍경들은 마치 마음 한 켠에서 번지는 파문과도 같은 울림으로 전해 오는 것 같다.

감성의 파문 속에 교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생각한다.

밀려드는 감성의 회오리 속에 작은 멸치를 올려 놓고 한 참을 바라다 본다.

 

 

멸치의 꿈 3_94x62.5cm_잉크젯프린트_2010

 

 

마음속에 꿈꾸고 그려왔던 모습, 즐겁고 행복하게, 열정적으로, 때론 그리움과 외로움을 느끼며 좌절도 하지만 자유스럽고 여유롭게 유영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어느덧 멸치와 하나가 되어있는 자신을 돌아보며

살아 헤엄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굳어 버린 줄 알았던 심장의 박동이 다시 느껴진다.

지루했던 일상들이 설레임으로 다가와 무심히 지나치던 주변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이번 작업을 통해 나는 자아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

자유로운 나를 들여다 볼 것이다.

 

 

멸치의 꿈 4_94x62.5cm_잉크젯프린트_2010

 

 

내 안으로의 여행

이윤하 작가의 사진 속에서 마른 멸치 한 마리가 유영한다. 물기란 물기는 다 빠져버려 작아질 대로 작아진 몸이지만 제 몸에 남아 있는 비릿한 기억을 좇아 마른 멸치 한 마리가 바다로 바다로 향한다. 바다를 꿈꾸는 한, 아직 그의 생(生)은 끝나지 않았음이다.

그물에 걸려 바다 밖으로 건져 올려진 순간, 그의 자유는 제 몸과 함께 말라버렸지만 비록 작은 멸치 한 마리라도 한때는 망망대해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던 추억이 있다. 늘 부엌에서 종종걸음을 쳐야 하는 주부인 작가가 어느 날 무심코 멸치를 바라본 순간 지금은 건조해진자신의 꿈을 기억해낸 것으로부터 이 작업은 시작되었다.

작가는 먼저 자신이 떠나온 바다를 떠올렸을 것이다. 언제였던가, 소녀시절 풍선처럼 부풀었던 소망들, 자유롭게 날개 짓 했던 그 꿈들은 잃어버린 멸치의 꿈처럼 다만 아득할 뿐인가. 작가가 멸치에게 바다를 돌려주고자 한 것은 결국 자신의 바다를 찾고 싶은 욕망의 표현이다. 작가는 마치 성스러운 제의를 치르듯이 한지에 먹을 입혀 멸치가 자유롭게 유영할 바다를 만들었다. 한지에 먹이 스며드는 동안 마른 멸치의 몸에 바닷물이 스며들고 작가의 건조한 내면에도 촉촉한 감성이 스며들었으리라. 먹을 머금은 한지처럼 물을 머금은 멸치는 비로소 퇴화된 지느러미를 움직여 바다로 회귀하는 꿈같은 여행을 시작한다.

숲을 지나고 동굴을 지나고 산을 넘고 바람을 뚫고 구름을 헤치는 멸치의 머나먼 여정은 작가가 자신의 내면으로 향하는 긴 여정이다. 어머니의 몸 속, 모태(母胎)의 바다에서 떨어져 나온 이후 작가가 걸어온 그 길을 되짚어가면서 자신이 놓쳐버린 것이 무엇이었는지, 까맣게 잊고 있었던 소중한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찬찬히 뒤돌아보는 여정은 작가에게는 내면의 상처에 대한 치유의 과정이며 동시에 건조하게 말라버린 자아를 더 큰 바다로 놓아주는 방생의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그러나 이 땅에서 여성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리 녹록치 않은 일임을 우리는 안다. 작가의 20년 직장 경력으로 보아 아내로 어머니로 교사로 바삐 살아오는 동안 이윤하라는 그녀의 이름을 돌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더 늦기 전에 그녀의 이름 찾기는 ‘사진’을 통해서 조심스럽게 시도되었고 마침내 우연히 부딪친 멸치와의 교감으로 본격적인 내 안으로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멸치의 꿈 5_94x62.5cm_잉크젯프린트_2010

 

 

작품 중에서 멸치와 눈동자를 한 프레임에 넣은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멸치를 바라보는 작가의 마음과 닿을 수 있었다. 공자님의 “흐르는 물이 저러하구나”라는 말처럼 작가는 멸치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네가 여기에 이르러 있구나.”라고. 네가 여기에 이르러 있듯이 나도 지금 여기까지 이르러 있다는 자각이 작가로 하여금 멸치와 자신을 동일시하게 만들었고 말라비틀어진 멸치지만 바다로 떠나는 꿈길을 열어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멸치의 꿈”은 자신의 삶을 다 내어주고 껍데기로 남은 여성의 삶을 생각하게 한다. 바다로 돌아가기에는 이미 너무 멀지만 바다의 꿈조차 꿀 수 없는 것은 아님을 작가는 말하고 있다.

한낱 말라비틀어진 멸치 한 마리에서 내러티브를 이끌어낸 작가의 역량에 주목한다. 이렇게 능숙한 스토리 텔링을 할 수 있다면 작가의 잠재력은 기대를 가져도 좋을 것이다. 이제 겨우 작가는 이야기 하나를 풀어놓았을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엄마들이 하시던 말씀이 기억난다. 내 이야기를 소설로 쓰면 몇 권은 될 거라고 말씀하시곤 했었다. 그렇다면 글로 쓰니 소설이지 사진으로 쓰면 몇 권의 사진집이 되고도 남지 않겠는가. 살아온 세월이 많은 만큼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을 것이고 이미 작가는 이야기꾼으로서의 능력을 야무지게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멸치의 꿈”으로 출발한 작가의 자아 찾기가 다음에는 어떤 형태로 전개될지 그 속편이 궁금하다. 솔직하고 진실한 이야기가 어떤 달콤하고 그럴듯한 이야기보다 훨씬 강하게 가슴에 와 닿음을 실감하면서 “멸치의 꿈”이 작가의 꿈을 이루어주는 단초가 될 것으로 예감한다.

윤세영/ 월간 사진예술 편집장

 

 

 

 

■ 이 윤 하 (LEE YOONHA 李 玧 河)

 

1957  출생 | 1980  경북대학교 학사 졸업

 

현재  | YPHOTO 사진연구소

 

개인전  | 2010  이윤하 사진전(멸치의 꿈), 갤러리나우, 서울

 

단체전  | 2010  THE WONDER, 경인미술관, 서울 | 2009  THE LIGHT OF MIND, 경인미술관, 서울 | 2007  제2회 포토리그 회원전, 코엑스, 서울 | 2006  제1회 포토리그 회원전, 경인미술관, 서울

 

저서  | 이윤하 사진집(멸치의 꿈), 사진예술사, 2010

 

 

 

vol.20101103-이윤하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