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재 展

 

이야기1. 타인의 도시 [chapter1. the Other's city]

 

 

붕괴_135x205cm_Oil on Canvas_2010

 

 

교하아트센터

 

2010. 7. 1(목) ▶ 2010. 7. 10(토)

파주시 교하읍 동패리1692 교하도서관3층 | 031-940-5179

관람시간 : AM10:00 - PM5:00

 

https://blog.naver.com/mamile

 

 

Somekind of Monster_97x162cm_Oil on Canvas_2009

 

 

 현실은 고통이고, 삶은 고(苦)의 연속이다.

 

 일찍이 불교에서는 이를 인식하고 삶에서의 해탈을 주장해 왔으며,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세계의 허무를 넘어서기 위한 ‘초인(Übermensch)’의 중요성을 이야기 해 왔다. 허무한 이 현실세계에서 인간의 삶이란 또한 무의미한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삶에 그저 순응하고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무책임한 행위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개개인의 초극의지, 곧 초인이 되기 위한 의지는 중요하다. 이 의지의 바탕에는 인간의 본능적인 ‘꿈’에 대한 자유의지가 있다. 인간의 꿈, 자신의 꿈이 그를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이고, ‘초인’이 될 수 있게 만드는 힘이다.

 

 

 

Inner Turbulence_162x112cm_Oil on Canvas_2010

 

 

 타인과 사회에 의해 세뇌된 세계의 가치판단은 자신의 것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교육받은(은연중에, 그리고 꾸준히 세뇌당한) 물질적 가치에 대한 무한한 욕망은 ‘인간’이 진정으로 원하던 꿈이 아니다. 당신의 어린시절 꿈은 ‘돈‘이었는가? 아니면 ‘부동산’이었는가?

 삶에 있어서 대부분의 고통은 물질적인 욕심이 그 원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 간단하지 않은가? 욕심을 버리자. 그리고 꿈을 찾자. 허황된 꿈은 망상이다. 진정한 꿈이란, 내가 태어난 이유에 대한, 그리고 삶에서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어떤 목표, 바로 그것이다.

 최근의 한 뉴스에 따르면, 신입 직장인들 사이에서 사춘기 이후의 소위 ‘오춘기’가 유행한다고 한다. 입시위주, 취업위주의 교육 속에서 개인의 자질과 본성을 깨워주지 못한 이유로, 그동안 목표로 해왔던 취업이 이루어진 후의 허무함, 그리고 그 이후의 희망에 답을 찾지 못한 젊은이들이 자신의 존재에 대한 자각을 함에 따라 또다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都市行旅圖_206x103cm_Oil on Canvas_2010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공간은 현실이다. 스쳐가는 공기, 소리, 움직임, 그리고 모든 풍경들은 모두 현실 속에서 도시의 굴레로서 우리를 감싸고 있다. 삶의 꿈, 목표, 희망, 이 모든 것들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아침 일찍 일어나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일터로 향한다. 그러나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과연 이런 것들이 자신의 행복을 위한 것인지, 또는 꿈을 위해 걸어가고 있는 길이 맞는지. 그리고 우리를 감싸고 있던 풍경은 점점 흐릿해지기 시작한다. 고통을 인정하고, 고통을 줄이기 위한 최후의 방법은, 욕심을 버리는 것, 결국 해탈이다. 그리고 자신의 꿈,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 나서야 한다. 각자가 모두 다른 개성을 갖고 태어난 세계에서 왜 모두가 똑같은 것을 위해 무한경쟁하고 있는가? 물질의 허황된 욕심보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일, 자신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에 대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꿈을 찾는 것이 진정 행복에 더 가까이 가는 것이 아닐까.

 

 

Cityscape_130x190cm_Ink on Paper_2010

 

 

욕망의 집합체로서의 도시-도시를 헤메다

 

 이미지에 보이는 풍경은 이 모든 고통의 본질에 대한 회의이다. 현실 속에서 고통의 원인이란, 결국 물질에 대한 욕심이다. 잘 먹고 잘살고, 돈을 많이 벌기 위한. 인간 욕망의 집합체인 도시, 그 도시의 본질을 가장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도시를 방랑하는 것이다. 발터 벤야민은 근대적 도시의 진정한 완성자를 배회자로 보았다. 배회자란 도시의 양면을 모두 관조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도시의 풍경은 왜곡되어 있다. 덩어리는 아지랑이처럼 희미하고, 흔적으로서의 선(線)만이 남아 물질은 영원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다. 허(虛)의 공간이다. 화면의 베이스가 되는 바탕에 아무런 흔적이 없이 비워버린 그 여백의 공간은 또 다른 공간(空間)으로서의 공(空), 해탈의 공간이다.

 

 이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the Babylon_133.5x112cm_Oil on Canvas_2010

 

 

 

 

 

vol.20100701-김춘재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