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배·박선영 조각 展

 

“하늘을 담다”

 

 

박선영_하늘을담다_45x30x20_대리석,크리스탈,거울_2010

 

 

장은선 갤러리

 

2010. 6. 30(수) ▶ 2010. 7. 10(토)

reception : 2010. 6. 30(수) pm4:00~6:00

서울 종로구 경운동 66-11 | T. 02-730-3533

 

www.galleryjang.com

 

 

김근배_토끼의하루_60x20x65_스텐,동,대리석_2009

 

 

부부 조각가 김근배, 박선영 선생은 돌에다가 생명력을 불어넣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브론즈나 대리석 같은 고전적인 조각의 재료를 활용하여 주물이나 조각의 방식으로 가공한다. 작품 속에는 해학과 유머 그리고 일상의 여유와 따스함이 느껴진다.

 

조각가 김근배 선생의 조각은 단일한 기념비성 보다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을 드러내는 작은 무대들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문학적이고 회화적 특성이 있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주인공들과 무대장치는 다양한 재료들이 사용된 복잡한 형태들이 조립된 형식이다. 공간적 예술인 조각에 서사라는 시간성을 표현하기 위한 작가의 방식은 선조성을 가지는 길과 이동이라는 개념과 이미지의 도입이다.

 

조각가 박선영 선생의 조각은 모나지 않고, 아기자기하며 따뜻한 느낌을 준다. 자연적 요소의 조합에서 출발하여 일상과 환상의 세계로 뻗어나가는 방식에서 조각적인 무거움보다 화화적인 날렵함을 가진다. 최근 근작에서 장식적 모티브는 식물이나 곤충 같은 자연적 요소로 이루어진다. 여기에 화병이나 거울, 구두와 같은 일상적 소재가 어우러진다.

 

이번 전시에서는 일상과 자연의 조화가 어우러져 동화 같은 상상력를 재미있게 풀어낸 신작 20여 점이 선보인다.

 

김근배. 박선영 선생은 서울시립대학교 및 이탈리아 카라라 국립미술 아카데미를 졸업 후, 20여 회의 개인전과 그룹전 및 국제 교류전 100여 회 참가하였다. 현재 김근배 선생은 서울 시립대학교 성신여자대학교에 출강중이며, 박선영 선생은 유럽과 한국에서 작가로 활동 중이다.

 

 

김근배_양철로봇의하루_45x40x60_대리석,동_2010

 

 

서사와 매체의 동행

 

이선영(미술평론가)

 

 김근배의 조각은 단일한 기념비성 보다는 서사narrative의 과정을 드러내는 작은 무대들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문학적이고 회화적 특성이 있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주인공들과 무대장치는 다양한 재료들이 사용된 복잡한 형태들이 조립된 형식이다. 그러나 무대 세트는 오브제나 기성품으로 채워지기 보다는, 브론즈나 대리석 같은 고전적인 조각의 재료를 활용하여 주물이나 조각의 방식으로 가공된다. 그의 작품에서 청동 같은 금속은 주로 길이나 레일, 이동수단 같이 무대장치의 골조를 이루는 기계적인 사물을 재현하는데 활용되고, 대리석 같은 돌은 인물이나 동물 등 무대 장치 안에 배치된 주인공들을 재현하는데 활용되곤 한다. 재료와 대상은 적절하게 짝지어지지만, 재료가 내용을 위한 투명한 매개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금속으로 이루어진 차들은 주물의 흔적이나 고색창연한 표면이 두드러지며, 대리석 조각들에도 색이 입혀져 있는 등, 재료의 불투명성opacity이 존재한다.

내용적으로 김근배의 작품은 모종의 이야기를 지향하고 있지만, 조형예술이 가지는 정지라는 속성이 야기하는 애매함이 남아있다. 그의 작품에서 서사는 매체와 팽팽한 긴장관계를 이루고 있다. 공간적 예술인 조각에 서사라는 시간성을 표현하기 위한 작가의 방식은 선조성을 가지는 길과 이동이라는 개념과 이미지의 도입이다. 그의 작품에는 토끼가 여러 교통수단을 타고 이동하는 장면들이 많이 나타난다. 최근의 작품에는 토끼 대신 말이 등장하기도 한다. 마법의 빗자루부터 똥차, 달구지부터 트럭, 돛단배부터 전철에 이르는 여러 교통수단에 실린 토끼는 웅크린 채 이리저리 실려 다니는 수동적인 자연적 대상부터, 양복을 입은 문명인의 은유까지 다양한 면모를 가진다. 이러한 이동은 누추한 살림살이가 드러나는 초라한 광경부터, 미지로의 여행이라는 부푼 꿈에 충전된 감정의 편차를 내포한다.

 

 

김근배_토끼의여정_40x25x25_대리석,동_2009

 

 

이동에 대한 또 다른 이미지는 가방이다. 작품 [가방 속의 여행](2006)처럼, 가방이 열리면서 펼쳐지는 풍경 안에 사물이나 동물, 인물 등이 배치된다. 가방 안에는 레일로 형상화된 길도 담겨있다. 가방은 이동에 대한 이미지가 공시적으로 집약된 일종의 축소모델인 것이다. 인물이나 동물 대신에 환경이 이동하기도 한다. 흰 대리석 구름이 박혀 있는 금속 통과 거기에 매달린 날개달린 양복쟁이, 또는 동물은 관객이 통을 돌림과 동시에 하늘을 나는 환영을 창출한다. 최근 몇 년 동안 제작된 작품 제목에 많이 붙은 [대장정], [여정]이라는 단어는 그의 작품에서 차지하는 길의 위상을 예시한다. 길은 보통 금속 레일의 형태로 가시화되면서 개곡선에서 폐곡선에 이르는 다양한 도형을 연출한다. 지하철 노선처럼 추상적으로 배치된 길부터 불규칙한 도형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길 사이사이에는 자동차, 집, 빌딩, 사람, 코끼리, 나무, 잎 등, 그의 다른 작품에서도 많이 등장하는 모티브들이 박혀있다.

길 위에 놓인 사물과 생물이 그 순서와 조합의 방식에 따라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길이 펼쳐지는 양상에 따라 작가가 할 이야기와 관객이 해석할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다. 가령 꼬인 길은 재미있게 보이기도 하고 골치 아프게 보이기도 한다. 쭉 뻗은 길은 시원해보이기도 하고 권태로워 보이기도 한다. 길은 나무 같은 기념비적 형태 위에 얹혀있는가 하면 타원부터 별모양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접혀있다. 길은 [회전도시](2007), [여정](2008)처럼 회전그네나 롤러코스터 형태로 변주되며, 작품 [5번째 생일](2006)처럼 나선형으로 상승되는 레일이자 화려한 샹들리에로 변화하기도 한다. 길과 길 위에 놓인 것들은 거대한 토끼가 가지고 노는 털 뭉치, 또는 포크나 젓가락에 들린 면발이나 양념으로 변화하기도 한다. 대장정이나 여정은 운명을 결정짓는 무심한 주사위 놀이나 먹고사는 문제가 그렇듯이 가볍기도 하고 무겁기도 한 문제로, 인생에 대한 또 다른 은유를 낳는다.

 

 

김근배_아빠의하루1_60x50x10_대리석,알루미늄_2010

 

 

김근배의 작품에서 정착의 이미지는 도시와 자연 풍경에서 두드러진다. 작품 [달콤한 도시](2007)는 바구니 위에 얹힌 뭉치 사이사이에 사물과 사람이 박혀있다. 여기서 문명은 질서보다는 뒤죽박죽된 양상이다. 원통형 대리석으로 빌딩 숲이나 스카이라인 연출한 작품 [도시]는 각 빌딩 위에 계단, 집, 새, 의자 같은 형상을 배치하여 도시 풍경에 온기를 부여한다. 마천루 사이를 종횡으로 활보하는 인간은 매우 익명적이다. 그들은 모두 양복을 입고 얼굴은 동일한 무늬로 환원되어 표정을 읽을 수 없다. 공중에서 그들은 날개로 날고 있거나 낙하선을 타고 내려오는 중이다. 지상에서는 홀로 버스를 기다리거나 집단으로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가기도 한다. 기하학으로 환원된 도시 풍경 속에서 익명의 인간은 체스판 위에 던져진 신세이다. 한편 김근배의 작품에서 자연은 대리석으로 만든 거대한 풀잎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코끼리나, 양복쟁이들을 충분히 감싸 안을 정도로 넉넉하다.

대리석 덩어리 위에 코끼리 세 마리가 돋아나는 작품 [여정](2006)은 자연의 판이 가지는 다산성을 표현함과 동시에, 서사의 또 다른 측면을 드러낸다. 여기에서 서사는 묘사 보다는 작업과정의 흔적들에서 발생한다. 김근배의 작품에서 시각성과 서사성은 긴밀히 작용한다. 굳이 서사적인 작품이 아니어도 시각적인 것에는 의미가, 의미에는 이미지가 잠재되어 있기 마련이다. 볼프강 켐프는 논문 [서사]에서 서사의 원칙으로 변환, 욕망, 결여의 개념을 든다. 이를 통해 서사는 단순한 삶이 아니라, 고양되고 집중된 일생을 다룬다는 것이다. 이 원칙을 김근배의 작품에 적용시켜보자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일어나는 변환transformation인 서사는 길 위에서 진행되는 연속적인 기술방식으로 나타난다. 또한 서사는 하나의 목표, 다시 말해서 주인공들이 얻을 수 있거나 그렇지 못하는 가치의 대상을 성취하려는 주인공에 관한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끝없이 여행 중인 주인공들은 그들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추구해야만 하는 과정을 은유한다.

 

 

김근배_아빠의하루2_60x50x10_대리석,알루미늄_2010

 

 

욕망은 정지해 있는 체계의 균형을 깨고 의미를 발생시키는 원동력이다. 마지막으로 결여란 가치를 얻기 위한 동기를 부여한다. 하나의 결여가 충족되면 또 다른 결여가 발생하며, 이는 다음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한 필연적인 이유가 된다. 김근배의 작품에 나타나는 서사성은 미술과 문학의 관계에 대한 오랜 논점을 다시금 불러일으킨다. 레싱은 [라오쿤 또는 회화와 시 사이의 경계에 대하여](1766)에서 조각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조각이란 실체들을 공간 속에 배열하는 예술이라고 주장하였다. 조각은 공간적 예술이기에 시처럼 시간을 매체로 하는 예술형식과는 구별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시각 예술작품은 동시적인 구성을 통해서 행위의 한 순간만을 재현할 수 있으므로, 가장 함축적인 순간, 즉 전후의 상황을 가장 잘 암시해주는 한 순간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근배는 길이나 이동이라는 주제를 통해 한 작품에 여러 시점을 공존하게 한다.

레싱이 언급했듯이 단일한 순간은 어느 정도는 확장 된다. 순간은 기억과 기대 사이에 놓인 문맥에 의해 보충되는 것이다. 동시성은 항상 연속성을 포함한다. 서사적 구성은 관람자를 위해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식이다. 김근배의 작품에서 이동하는 이미지들은 시간의 추이에 의해 성립되는 관계를 보여준다. 길 위, 또는 그 사이사이에 흩어져 있는 오브제 형태의 조각들은 일종의 기호sign이다. 그러나 그 기호들은 시공간상의 통일성이나 논리적 서술의 요건들을 충족시키지는 않는다. 선들은 끊기고 꼬이며, 오브제 조각들이 출현하는 순서나 빈도도 임의적이다. 이러한 불연속성과 분열성으로 이야기는 논리적 연쇄를 가지기 보다는 곧잘 시적 함축성을 가지게 된다. 기호들은 여러 작품에서 다시 등장하지만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든다. 작품 속 주인공의 익명성 역시 비슷한 위상을 가진다. 그의 작품 속 서사의 주인공들은 얼굴이 패턴화 되어 있거나 동물 가면을 쓴 것처럼 보인다.

 

 

김근배_악어와콩나무_45x40x50_대리석,동_2010

 

 

자세도 몇 가지로 단순화되어 있고, 그들이 입고 있는 양복은 마치 유니폼처럼 개체로서의 속성을 지워버린다. 뻣뻣하게 서있거나 웅크리고 있으면서, 무슨 꿍꿍이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몸짓은 심신의 일치를 꾀하는 고전적 조각의 구조적 투명성과 거리가 있다. 또한 작가는 다양한 색채의 구사를 통해 작품의 표면을 강조한다. 구조에서 표면으로의 이동은 명확한 메시지보다는 물성의 표면에서 매순간 발생하는 새로운 의미에 주목하게 한다. 그것은 주제가 아닌 매체의 문제이다. 따라서 김근배의 작품에서 서사의 측면만을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이야기를 전개하기에 더 손쉬울 수도 있는 오브제나 기성품을 사용하지 않고 조각의 문법에 충실하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그는 보여주는 기술로서의 미술의 힘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 위해서 매체적 특성에 대한 숙지와 활용은 필요조건이 된다. 매체를 간과하고 주제에만 치중할 때 조각은 문학이나 회화의 아류에 머물기 때문이다.

김근배의 작품에서 매체는 모방과 환영을 위한 투명한 수단이 아니다. 가령 브론즈로 된 트럭이 자동차의 흉내 이상의 매력적인 사물이 되는 것은 조각가의 솜씨가 드러난 표면의 풍부한 물성 때문이다. 조각가로서 오랫동안 훈련해 왔던 돌과 금속에 대한 특정한 기교는 작품이 단순히 일화적 요소로 축소될 수 없도록 하는 요인이다. 현대의 비평가 중에서 미술의 매체적 특성을 누구보다 강조한 그린버그는, 마찬가지로 레싱의 논의로부터 시작되는 [더 새로운 라오쿤을 향하여](1940)에서, 독립적인 직업과 원리, 기술로서의 예술, 단순히 의사소통을 위한 수단이 아닌 절대적으로 자율적인 예술의 개념을 피력했다. 여기에서 작품의 주제는 매체 뒷전으로 밀린다. 그린버그가 미술을 무엇보다도 매체의 문제로 보는 것은, 모든 예술은 보편적으로 이념이나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없는 경험의 요소들을 더 직접적인 감각으로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매체의 표현능력을 확대시키는 것은 곧 물질적인 것과 감각적인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문학 대신에 음악은 순수주의를 위한 더 훌륭한 모델이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김근배의 길(레일)들은 선율처럼 흘러가고, 사이사이의 사물들은 음표처럼 배치되어 있는 듯하다. 그의 작품은 음악적, 즉 추상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조형예술은 문학에 비해 매체를 고립시키는 것이 더 쉬우므로, 결과적으로 현대미술은 문학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순수성을 얻었다는 것이 그린버그의 평가이다. 순수주의의 관점에서 조형예술은 연결 지어 생각해 볼 것은 아무것도 없고 단지 느껴야 할 것들이 있을 뿐이다.  예술작품의 순수하게 조형적인 혹은 추상적인 성질, 즉 매체적 특징의 강조는 소통을 위한 효용성 보다는 시각예술의 순수하게 조형적인 가치가 전면에 나타나게 한다. 김근배의 작품에서 조각의 물질성은 때때로 단선적으로 흐르는 서사를 단절시키고, 결정된 의미나 주제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은 단순히 메시지 전달을 넘어서 관객에게 시적 울림을 주기 위함이다. 물론 김근배는 매체적 순수성에만 사로잡혀 형식주의로 매몰되지는 않는다. 그의 작품은 매체의 물성과 서사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며 균형을 잡으려는 지점에서 개성을 발한다.

 

 

박선영_꿈꾸는나비_30x30x25_대리석,크리스탈_2010

 

 

장식과 조형의 이분법을 넘어서

 

이선영(미술평론가)

 

 색종이를 길게 잘라 속을 만들고, 이것을 반투명 종이로 감싸 바느질로 고정시켜 만든 단위들이 모여 복합적인 형태를 이루는 박선영의 근작들은 이태리 카라라 출신의 조각가가 구사할 법한 전형적인 조각의 문법과는 거리가 있다. 투명, 또는 반투명 소재와 인공적, 자연적 빛과 결합하는 작품들은 가변적인 설치물로 3차원 공간을 점유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회화적이다. 벽이나 캔버스, 아크릴 등 평면에 고안된 형태를 고정시키는 부조적인 방식과 색색의 종이들이 외곽선 안쪽을 채우는 선 같은 효과를 준다는 점이 그렇다. 반투명 종이 사이의 파스텔 톤으로 빛나는 화려한 색채감은 전통적 조각이 배제하던 것이다. 자연적 요소의 조합에서 출발하여 일상과 환상의 세계로 뻗어나가는 방식에서 조각적인 무거움보다는 회화적인 날렵함을 가진다. 그러나 재료를 다루는 방식에 주목한다면, 돌 작업과 종이작업은 연속성이 있다. 작품 소재에 맞는 붉은색, 검은색 돌을 사용하거나 선적인 문양, 크리스탈 상감 기법 등으로 돌 표면을 장식적으로 처리한 점, 친근한 소재를 작은 단위로 나누어 조합하는 방식은 종이 작업에서도 변형되어 반복된다.

가령 붉은 장미처럼 돌로 조각했던 소재가 종이작업으로 그대로 번안된 것이 있는가 하면, 돌 표면에 새겨진 자잘한 꽃무늬가 잘리고 접혀진 종이를 통해 입체로 되살아난 경우도 있다. 중력을 거부하기라도 하듯 수직으로 층층이 연결되거나, 한 사물의 표면에서 돌발적으로 돋아나는 또 다른 사물이 얹히며 나아가는 접합적 연결 방식은 돌조각 특유의 묵직함 보다는 발랄함이 특징이다. 특히 2000년대 초기 작의 주제어인 ‘마법’은 3차원 괴체가 주는 물질적 속박을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있는 듯하다. 2000년대 중반에 열린 ‘꽃이 있는 정물’전은 사계절의 산 풍경을 검은 벨기에 석과 크리스탈을 이용하여 파노라마 형식의 부조로 보여준다. 종이작업은 2000년대 중반에 선보인 대형 설치 작품 이래, 요즘까지 지속하고 있다. 작품 [마법의 정원](2005)이나 [꿈꾸는 숲, 겨울, 봄, 여름, 가을](2006)같은 가변적 스케일의 설치작품들은 라이트 박스로 만들어진 의자 등의 소품과 결합하여 더욱 화려해진 양상이다.

 

 

박선영_마법,magic_46x24x31_대리석,mable_2007

 

 

돌조각과 종이작업을 같이 전시한 2007년의 개인전에는 마법 대신에 꿈이라는 주제어가 나온다. 작품 [꿈꾸는 행복]은 돌 위에 장미를, [꿈]은 나무 위에 얹힌 구두를 보여주는데, 이러한 작품들은 일상과 자연의 조화를 꾀하고 있다. 돌 작품인 [행복한 생일]이나 종이 작품인 [꽃]은 행복함과 풍요로움이 폭죽이나 꽃망울처럼 터져 나오는 형태이다. 2007년의 작가 노트에는 ‘나는 꿈꾸는 정원에 살고 있다. 그곳에 내가 사랑하는 아이와 남편과 집과 내가 꿈꾸는 것들이 있다. 그곳은 내 꿈의 세계이자 내가 살고 있는 이 공간이다...’라고 적혀있는데, 순탄치는 않았겠지만 꾸준히 작업하고 생활해 온 여성 작가의 긍정적인 정서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돌조각이든 종이작업이든 박선영의 작품은 모나지 않고, 아기자기하며 따뜻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성격은 보통 ‘여성적feminine’이라고 말해진다. 그러나 그러한 성질은 칭송되는 중에서도 가부장적 상징계의 주변부로 간주되어 왔다. 작가는 주변성을 억압하지 않고 상징계의 간극과 틈새를 벌려 여성적 공간을 확대한다. 박선영의 작품에 존재하는 상상적 질서의 중심에는 여성성이 놓여있다. 이것은 마법과 꿈이라는 원초적인 내용으로, 그리고 여러 단위의 느슨한 조합을 즐겨하는 형식언어로 나타난다.

또한 작품에 산재된 다양한 중심, 이동성, 가변성은 장식성과 연관된다. 박선영의 작품은 조형성에 비해 부차적인 것으로 격하되어온 장식을 미술 안에 복귀시킨다. 특히 올해 3월 예술의 전당에 전시된 최근 작품은 그동안 활용된 형태적 요소들이 집약된 화려함이 특징적이다. 박선영의 근작에서 장식적 모티브는 식물이나 곤충 같은 자연적 요소로 이루어진다. 여기에 화병이나 의자 같은 일상적 소재가 어우러진다. 항상성을 유지하는 요소들은 꽉 짜여진 질서로 배열되기 보다는 첨가적이며, 집합적이다. 그것은 추상적 이성보다는 구체적인 생활세계와 가깝다. 하나 더 넣어도 되고 빼도 되는 유동성과 가변성은 장식이 무엇보다도 잉여 및 여분의 것이라는 것을 일깨운다. 단순한 기능과 필요를 넘어서 있는 과잉은 실재보다는 가상에 근접한다. 모더니즘 시기에 장식은 구시대의 유물로 금기시되었다. 장식은 질병이나 퇴행, 죄악 등과 곧잘 연관되었고, 장식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진보요 미적 순수성을 추구하는 것이요, 정신의 진보로 간주되었다.

 

 

박선영_마법,magic_50x21x41_대리석,mable_2007

 

 

장식에 대한 유혹을 극복하고 기호의 투명성과 객관성을 추구함에 있어, 그 완벽한 모델은 기계가 되었고, 여기에 경제성, 생산성, 남성성 등의 은유가 중첩되었다. 장식은 남성적 절제에 반하는 여성적 낭비와 과도함으로 매도되었다. 표면을 덮어가면서 형태를 이루는 박선영의 종이작업들은 자연과 일상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리얼리즘적인 깊이가 아니라, 마법이나 꿈같은 가상의 유혹과 유희에 경도되어 있다. 표면들을 뒤덮고 넘쳐흐르는 장식적 요소들은 명확한 이야기나 현실의 재현 대신에, 불확실한 시적 은유에 잠겨 있다. 작업에 있어서의 장식성은 이론적인 관심사와도 연결된다. 작가의 졸업 논문은 [앙리 마티스와 종이작업]인데, 색종이와 가위를 이용하는 박선영의 작업과 종이를 오려 추상적으로 배치했던 마티스의 말기 작품의 공통된 코드는 장식성이다. 여기서 장식은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자연과 일상에서 길어온 요소들로 채워진다. 이러한 패턴은 실재와의 연관성을 가지면서도 사실주의의 답답한 공간을 해체한다. 특히 구성요소들을 평면에 붙여가며 완성하는 꼴라주 방식은 현실과 가상의 구분을 모호하게 한다.

마티스가‘구성이란 화가가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요소들을 장식적인 방법으로 임의로 배열하는 기술’이라고 말하면서,‘기분 좋은 팔걸이 의자’같은 예술을 추구했듯이, 박선영의 종이 작품 역시 조형과 자연, 그리고 일상의 화해를 꾀한다. 미술사가들은 마티스의 작품에 나타나는 장식성을 ‘단순한 장식이 아닌, 의미 깊은 추상’으로 승화시켰다고 평가하면서 장식을 배제했던 모더니즘의 주류에 다시 위치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모더니즘은 대중문화와의 관계와도 그랬듯이, 초창기부터 장식과 뗄 수 없는 관계를 이루고 있었다. 분리할 수 없는 것은 분리하고, 나머지 한쪽에만 정당성을 부여하는 배제적 과정은 교조적 이데올로기의 특징이다. 미술의 시원과 종말에 순수 조형성을 놓고자 하는 것은 그렇게 말하고 싶은 주체의 의지일 뿐, 사실이 아니다. 미술사가 노르마 부르드에 의하면 20세기 미술이 점차 추상화되어감에 따라, 예술가와 비평가는 추상과 ‘다만 장식적인 것’과의 명확한 구분에 몰두하였다. 그것은 고급예술로서의 추상예술이란 위치를 명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박선영_행복한외출_40x25x40_대리석,크리스탈_2010

 

 

그러나 장식예술이나 장식적 충동은 20세기 초기의 주요한 모더니스트 양식을 형성하거나, 그 출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피터 웨렌이 강조하듯, 모더니스트가 강조하는 조형성과 장식성의 대립은 다음과 같은 유사한 일련의 대립 쌍 중의 하나이다. 엔지니어/ 유한계급, 현실원칙/ 쾌락원칙, 생산/ 소비, 능동적/ 수동적, 남성적/ 여성적, 기계/ 신체, 서구/ 동방 등. 이런 대립 쌍 들은 정확히 동격인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계열을 이루면서 서로가 서로를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껍데기 동일성에 갇힌 모더니즘의 교조적 특성이 밝혀지고, 타자들이 회귀하고 있다. 실재보다는 가상에, 기능보다는 기호에 방점이 찍히는 포스트모던 문화에서 해체는 부정적인 것으로 여겨진 것들로부터 시작되는데, 여기에서 장식성과 여성성은 복귀된 타자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여성작가 박선영의 작품에서 장식성은 조형성으로 승화되어야 하는 이전 단계가 아니다. 조각과 회화 장르 사이의 교차성, 여러 가지 소재를 끌어오는 혼성성, 바느질이라는 공예적 측면이 두드러지는 작품들은 장식이냐 조형이냐 하는 이전 시대의 위계적 이분법을 벗어나고자 한다.

 

 

박선영_행복한눈물_45x40x20_대리석_2001

 

 

 
 

■ 김근배(金根培)

 

1969  평택생 | 1995  서울 시립대학교 환경조각과 졸업 | 1999  이탈리아 까라라 국립 아카데미아 졸업

 

개인전  | 1997  제1회 개인전 (이탈리아, 피에트라산타, 갤러리 페트아르테 에디치오니 아틀리에) | 1998  제2회 개인전 (이탈리아 피에트라산타, 빌라 베르실리아나) | 1999  제3회 초대 개인전 (서울 갤러리 조) | 1999  제4회 초대 개인전 (아틀리에 데 아펠하벤, 네덜란드 호른) | 2001  제5회 이탈리아 카마이오레시 초대 개인전 (이탈리아 카마이오레 시립미술관) | 2002년  제6회 초대 개인전 (아틀리에르 데 알펠하벤,네델란드 호른) | 2002  제7회 초대개인전 ‘3인 3색전’(서울 성곡 미술관) | 2003  제8회 미국이민 100주년 기념 초대전 (미국,L.A) | 2004  제9회 KCAF 초대 개인전  (예술의전당,한가람미술관) | 2005  제10회 초대 개인전 ‘대장정’ (서울사간,갤러리 조선) | 2006  제11회 KCAF 초대 개인전  (예술의전당,한가람미술관) | 2007  제12회 KCAF 초대 개인전  (예술의전당,한가람미술관) | 2008  제13회 KCAF 초대 개인전  (예술의전당,한가람미술관) | 2008  제14회 초대 개인전 (서울,장은선 갤러리) | 2008  제15회 초대 개인전 갤러리 모니카 백 (독일,홈브로코) | 2009  제16회 KCAF 초대 개인전  (예술의전당,한가람미술관) | 2010  제17회 KCAF 초대 개인전  (예술의전당,한가람미술관)

 

2인전  | 2000  김근배,박선영 피에트라 산타시 초대2인전 (이탈리아 피에트라 산타 시립미술관) | 2000  김근배,박선영 갤러리 아르토마토 초대2인전 (이탈리아 피에트라 산타 갤러리 아르토마트) | 2004  김근배,박선영 초대2인 조각전 (가나 인사아트센타) | 2009  김근배,박선영 초대2인“꿈꾸는가을전”(여원미디어,파주출판단지)

 

수상경력  | 2002  제3회 청년작가 야외조각 공모전 | 2001  제11회 이탈리아 국제조각심포지움 “난토 피에트라 2001” 1등상 (이탈리아 난토) | 2001  단원미술대전 특선 | 2001  무등미술대전 특선 | 2000  토리노 공모전 (이탈리아 토리노) | 1999  제2회 국제 미술조각대전 “에르만노 카솔리” 입상 (이탈리아 세라 산퀴리코) | 1999  제3회 미술대전 “스쿨투라 다비베레” (이탈리아 쿠네오) | 1997  이탈리아 세라베자 국제조각 심포지움 (이탈리아 세라베자) | 1994  제9회 서울 현대 미술대전 입선 (서울 프레스 센타) | 1993  제24회 전국 대학미술대전 동상 (서울 예술의전당) | 1992  제10회 청년 미술대전 입선 (서울 예술의전당)

 

국제아트페어  | 독일 쾰른아트페어 | 네덜란드 아트페어3회 | KIAF(한국국제아트페어) | 서울화랑미술제4회참가

 

공공기관 소장  | 이탈리아 피에트라산타시 모형미술관 | 이탈리아 난토 시청 | 이탈리아 카마이오레시립미술관 | 수원 월드컵경기장 | 부산 천마산 조각공원 | 천안 병천 문화의거리(유관순기념관) | 여수 무슬포 조각공원 | 당진 김창희미술관 | (주)삼성 테스코 | I-PARK 현대산업개발 | 4.19 50주년기념탑(광화문,열린마당)

 

역임  | 서울시립대학교 | 강원대학교 | 충남대학교 | 경기대학교 | 성신여자대학교 | 서울미술장식품 심의위원

 

현재  | 안미협 | 시립조각회 | 한국미술협회회원 | 서울시립대학교, 성신여자대학교출강

 

 

■ 박선영(朴宣映)

 

1970  서울생 | 1994  서울 시립대학교 졸업 | 1999  탈리아 카라라 국립미술아카데미 졸업 | 논문 앙리 마티스와 종이작업

 

개인전  | 1994  제1회 개인전 “가족” (서울 갤러리 나무) | 1997  제2회 초대개인전 “천국” (이탈리아 피에트라산타 갤러리 아르토마트) | 1998  제3회 개인전 “꿈” (이탈리아 피에트라산타 빌라 베르실리아나) | 1999  제4회 초대개인전 (네덜란드 호른 갤러리 아틀리에르 데 알펠하벤) | 2000  제5회 초대 개인전 “마법” (서울 갤러리 조) | 2001  제6회 초대 개인전 “마법에 걸린” (이탈리아 까마이오레 시립 미술관) | 2001  제7회 초대 개인전 (네데란드 호른 갤러리 아틀리에르 데 아펠하벤) | 2002  제8회  카프 초대 개인전 (서울 예술의 전당) | 2003  제9회 미국 이민100주년 기념초대 개인전 (L.A이민역사 기념관) | 2004  제10회 카프초대 개인전 (서울 예술의 전당) | 2005  제11회 초대개인전 (장은선갤러리) | 2006  제12회  카프 초대 개인전 (서울 예술의 전당) | 2007  제13회 코아스 초대 개인전(서울인사아트센타) | 2008  제14회 카프 초대 개인전 (서울 예술의전당)

 

2인전  | 2000  김근배,박선영 피에트라산타시 초대 2인전 (이탈리아 피에트라산타 시립 미술관) | 2000  김근배,박선영 갤러리 아르토마트 초대 2인전 (이탈리아 피에트라산타 갤러리 르토마트) | 2002  변재희,박선영 “달콤한 꿈으로의 초대” 2인전 (서울 갤러리 조) | 2004  김근배,박선영 초대2인 조각전 (인사아트센타) | 2009  김근배,박선영 초대2인전 (여원 미디어,파주)

 

수상  | 1999  이탈리아 쿠네오시 공모전'스쿨투라 다 비베레' (이탈리아 쿠네오) | 2000  이탈리아 토리노 공모전 (프레미오 토리노 인콘트라 아르테) (이탈리아토리노) | 2001  모란 조각 대상전 “특선” (모란 미술관) | 2001  단원 미술제 “입선”(안산) | 2001  개천 미술대전 “대상” 문화 관광부 장관상(진주 예술 문화회관)

 

소장  | 이탈리아 피에트라산타시 모형미술관 | 이탈리아 까마이오레 시립미술관 | 진주시청 | 천안 태조산 조각공원 | I-Park현대산업개발 | 대우 푸르지오

 

현재  | 유럽과 한국에서 활동중

 

 
 

vol.20100630-김근배·박선영 조각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