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에 월백하고 - 2010 梨苑展

 

김순호, 박용자, 신인순, 오숙환, 이신호, 이은영, 이정혜, 이화자, 함순옥, 홍순주

 

 

김순호_그리움-양지_54x73cm

 

 

물파공간 ( MULAP SPACE )

 

2010. 6. 9(수) ▶ 2010. 6. 15(화)

서울 종로구 견지동 가야빌딩 1층 | T.02-739-1997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 입장료/관람료 없음

 

후원/협찬/주최/기획 : MULPA SPACE 기획

 

 

박용자_Variation from the nature_60호_캔버스에 먹,아크릴,콘테_2009

 

 

梨苑展_이화에 월백하고

 

- 이원그룹초대전에 부쳐

 

梨花에 月白하고 銀漢이 三更인제/一枝春心을 子規야 알랴마는/多情도 病인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금년 겨울과 봄은 유난히 춥고 쌀쌀했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우박에 눈까지 내려 4월은 어느 때보다 정말 ‘잔인한 달’이었다. 남쪽 과수원은 “배꽃 다 얼어 죽어-폭삭 망했다”는 기사가 연일 보도되었다. 천안호 젊은이들은 또 눈꽃이라 불러도 좋을 배꽃처럼 환한 미소를 제대로 피우지도 못한 채 차가운 물결에 휩쓸려 떠나갔다. 산화한 그들을 보며 한반도만 아직 냉전의 언 땅임을 실감한다. 봄 같지도 않은(春來不似春) 이 봄밤에 “이화에 월백하고…” 옛 풍류의 가락을 읊을 수도 없다. 다만 "한 가닥 봄날 밤의 애달픈 마음을 소쩍새야 알겠는가”하고 저 말 못하는 두견을 탓할 수는 더더욱 불가한 노릇이다. '다정가'라고도 부르는 이 노래는, 남녀 간의 애틋한 사랑을 비유하여 왕에 대한 충심을 은유적으로 나타낸 이조년(1260-1343)의 시조로 정서적면에서 고려시가 중 문학성이 가장 뛰어나다고 정평이 나있다. 이원전을 준비하는 가운데 이 시조가 상기되었던 것도 우연만은 아닌 듯하여 여기 옮겨 보았다. 그리고 전시제목을 ‘이화에 월백하고’ 한 것도 이 시조가 담고 있는 의미가 오늘날 소위 동양화/한국화가 안고 있는 문제점과 유사하다는 데 있다.

 

 

신인순_5005 Synergy V-Body & Soul

 

 

80년대 수묵화운동 이후 명맥만 겨우 이어가고 있는 한국의 환국화단이 애상적이고 창백하다 못해 이젠 병색이 점점 짙어가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이화출신 필묵예술가들 또한 예외일순 없을 것이다. 이원전은 글자 그대로 이화동산에서 그림을 함께 배우고 연마한 인연으로 맺어진 모임이다. 즉 30여년 전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동양화 출신들이 뜻을 모아 출범한 이 나라 대표적 한국화그룹 중 하나였다. 그 동안 꾸준히 국내/외에서 많은 전시를 개최하면서 극동의 필묵예술의 재해석과 그 전통의 고유한 정서를 담아내는 독창성으로 다양한 인종의 감상자뿐만 아니라 같은 길을 가는 후배 미술학도들에게도 자랑스런 귀감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세월의 연륜과 함께 작품 경향의 변화는 물론 회원의 출입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당시의 대학원 연구생들의 구성원이 말해주듯 연령차이도 적지 않아 지금은 불혹과 지천명을 한참 지나 이순에 이르고 다시 고희를 바라보는 회원도 없지 않다. 강산이 세 번 변했다면 급변하는 세기말 미술사조의 흐름처럼 작가의 작품 또한 어떻게 변해왔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변하지 않으면 예술이 아니다”라는 말이 실감날 만큼 획기적으로 바뀐 작가도 있지만 전성기와는 달리 현상유지나 거기에 미치지 못한 작가도 더러 있어 보인다. 단체도 하나의 생명체로 숨쉬며 생장수장(生長收藏)의 자연이치 따라 생로병사(生老病死)를 겪기 마련인가. 어느새 노쇠의 피로감이 찾아온 것은 아닌지, 정상인도 정기적 종합검사를 받아야 하듯 좀더 냉정한 객관적 검증이 필요 되는 시점으로 혹여 말기적 암에 걸린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한다. 비록 한갓 기우에 지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이 대로는 ‘신인류’ 출현의 21세기 시대정신에 뒤떨어지거나 마침내 아무도 원하지 않는 해체의 수순을 밟는 우려마저 없지 않아 보인다.

 

 

오숙환_봄의 소리_63X44cm_한지에 수묵_2010

 

 

승조미학(僧肇美學 Sengchao Aesthetics)에 따르면 옛날이 현재로 옮겨올 수 없듯 오늘 역시 옛날로 돌아갈 순 없다. 예술도 찰나생멸(刹那生滅)이다. 하지만 그 때의 왕성한 작가정신과 빛나는 사명감은 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이원(梨苑)’의 아름다운 꿈과 ‘배꽃언덕’에서 다짐했던 자신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2008년 봄에 이어 두 번째 이원그룹 초대전을 기획하면서 필자가 느낀 점은 이쯤에서 그룹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충심의 제언이다. 작품세계도 각기 독자적 개성을 지니되 공통된 필묵정신의 기맥은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어떤 규범이나 양식이 아니라 기운생동의 생명을 우선으로 하는 극동 고유의 천인(天人)과 정경(情景)의 합일적 미학사상, 그것이 필묵예술세계의 핵심정신이자 이원그룹이 건강하게 장생할 수 있는 관건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이번 전시에 초대된 작가는 모두 10명으로 그룹멤버도 정예화된 감이 없질 않다. 역설적으로 어쩌면 다행일지 모르겠다. 나머지 길을 힘차게 함께 갈 이들은 이원동인이자 한편으로는 경쟁자적 동지이기 때문이다. 동인 각자 독자적 프로젝트로 하나의 여류로서가 아닌 양성평등의 당당한 작가로서 우뚝 서길 기대하면서 필자도 ‘다정의 병’인양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생각이다.

 

2010庚寅 불탄절 견지동 물파공간에서

物波空間館長/孫炳哲/羅石

 

 

이신호_바람의 꽃 2010_74.5X72cm_한지,먹,채색,아크릴

 

 

이은영_휴(休)_78X58cm

 

 

이정혜_봄여름가을겨울_15X25X4cm

 

 

이화자_이원전 2010_41x60cm

 

 

함순옥_지공(紙空)_50X70cm

 

 

홍순주_결_100x80cm_한지,먹,석채_2010

 

 

 

 

 

vol.20100609-이화에 월백하고-2010 梨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