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세스 미학

 

참여작가 : 조은정, 김권명, 김은화, 김승정, 김옥희, 이영수,

서수희, 민경란, 박순자, 최영주, 조수영, 정영선, 박선경

 

김권명_Enigma I_60.6x72.7cm_oil on canvas_2009

 

 

노암 갤러리

 

2010. 3. 31(수) ▶ 2010. 4. 6(화) PM 2:00 까지

Opening : 2010. 3. 31(수) PM 6:00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133 | 02-720-2235

www.noamgallery.com

 

 

김은화_Aura I_53x45.5cm_oil on canvas_2009

 

 

Processus 의 어원은 라틴어 pro(앞으로, 앞을 향하여), cessus(가다, 걷다)이다. 따라서 프로세스는 앞을 향해서 나가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어떤 결과에 도달한다는 뜻은 내포하고 있지 않다. 더 깊게 들어가 보면 프로세스는 어떤 목표에 달성하기위해 전략적으로 방법을 바꾸는 뜻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이 전시에서 ‘프로세스 미학’은 상징성을 가질 뿐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미학을 향해 앞으로 나가는.. 은유적 표현인 셈이다. 예술적 가능성이 있는 사람, 감각적인 사람, 진심으로 예술적 행위를 즐기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각자 진행하던 모든 작업의 절차와 현상들을 하나의 프로세스로 보고, 그 과정 중에 생산되는 시각적 결과물들을 통틀어 하나의 미학으로 보고자했다. 플라톤의 “나는 무엇을 바라는가?” 라는 물음은 미학에서는 아주 중요한 말이면서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에게 해당되는 말이기도 하다. 단지 “그림을 그리고 있는 나는 무엇을 바라는가?” 라는 질문으로 그 의미를 달리 해석했을 뿐이다.

 

 

박선경_Wing beat I II III_25.8x53.7cm_oil on canvas_2009

 

 

이런 질문들을 화두로 전시의 방향이 그려졌다. 갑자기 아메리칸 아이돌이라는 프로그램이 생각난다. 프로그램 진행자들이 전 미국대륙을 순회하며 오디션을 하고 정말 노래에 재능이 있는 사람을 선정하여 가수로 데뷔를 시키는 그런 프로그램이다. 이를 위해서 4명의 심사위원이 존재하는데 이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가수가 되고 싶어 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짧은 노래만을 듣고도 그들이 가진 음악성과 가능성을 발견해내는가 하면 동시에 그들의 존재를 대중에게 각인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참가자는 보통 중, 고등학생, 노동자, 주부, 연세든 어른들, 신체장애자, 교육자, 의사, 아마추어 음악가 등 각양각색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다. 어쨌든 짧은 기간이지만 이 심사위원들의 조언은 프로그램의 횟수를 거듭할수록 참가자들의 가능성을 한 단계, 두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다. 그렇지만 그  과정 속에서 그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가장 잘 소화할 수 있는 곡의 선택과 곡의 가사들을 자신들의 삶처럼 그려내는 감정의 표현이었다. 상업적 성격을 가진 하나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전국에서 모인 수만 명의 사람들로부터 시작되는 아메리칸 아이돌, 매 해 반복되는 수많은 사람들의 도전과 희노애락(喜怒哀樂)이 하나의 예술적 사회현상이자 미적요소로 느껴졌다.

 

 

서수희_행복한 정물 II_53x45.5cm_oil on canvas_2009

 

 

미란 무엇이며, 미학이란 무엇인가?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모든 작가들은 감각적이며, 가능성을 가진 사람들이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색들을 찾아내는가 하면, 똑같이 그려내지는 못하지만 각각의 사물이 가진 특성을 기가 막히게 잡아내는 신기있는 작가들도 있다. 김권명, 박순자의 경우가 그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과일들, 꽃들이 이들의 손을 거치면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색이 되어 그 형상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맛깔스럽고 감칠맛난다. 조은정의 경우는 어떠한가? 모든 사물을 수 천 개의 수직선으로 그려내는데 수많은 선들이 반복되면서 이 세상의 크고 작은 풍경들이 작가만의 것으로 탈바꿈한다. 또한 최영주는 어떤 공간에서든 가장 필요한 형상만을 캡처해내는 능력이 있다. 다소 어설픈 느낌이 드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잘잘한 붓 터치들이 사물들을 빛의 한가운데로 이끌어준다. 아마 인상주의 작가들이 그랬던가! 물론 이모든 과정이 단 한 번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이 무엇인가? 바로 독창성이며 그들만이 인식하고 있는 예술적 감각인 것이다. 원래 미학은 그리스어로 ‘감각적 인식’ 또는 ‘감정의 학문’에서 유래하며 철학의 분과 학문으로서 18세기에 바움가르텐에 의해 정립되었는데 그것은 다양한 방식의 감각적 인식의 논리와 그 인식의 완전성의 가능성을 탐구하고 그러한 가능성 아래에서 아름다운 것, 숭고한 것, 경이적인 것에 대한 인식 및 자유로운 예술을 탐구하는 것이었다.

 

 

조수영_New family_33.4x21.2cm_oil on canvas_2009

 

 

예술적 창조의 영역, 즉 생산 미학은 원래부터 수용자 영역(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 의해 구속되어 있다. 그것을 넘어서 미학을 미적 지각 또는 미적 경험의 학으로서 규정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명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즉 미와 예술작품에 대해서는 오로지 주체의 참여에 토대를 두고 있는 것만이 진술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명제에 반대하여 이미 독일 관념론(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중엽까지 독일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관념론적 사상운동)에서는 매우 집단적인 비판이 표명되었다. 그 비판이란 극도의 선입견에 의해 부과된 이 학문 명칭은 일반적으로 ‘예술 철학’이란 명칭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제안은 작품영역에 대한 생산으로부터 철학적 연구의 경험과 판단에 이르기까지 예술의 전체 영역을 열어놓긴 했지만, 다음과 같은 두 개의 다른 제한과 결부되었다. 첫째, 철학자의 관심은 일차적으로 더 이상 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작품 속에 표현되어 있는 진리에 있다는 것이다. 둘째, 미는 또한 예술미에 접합되는데, 그러한 예술미는 자연 속에, 인간의 행위와 인륜성속에, 테크닉 속에, 정신적 과정 속에, 더욱이 중세의 사상가들이 주장했던 것처럼 신의 본질 속에도 표명되어져 있다는 것이다.

 

 

조은정_흐르는 감각_72.7x60.6cm_oil on canvas_2009

 

 

미학을 예술 철학으로 제한하는 것에 반대하여 이미 셸링과 헤겔 이후의 세대부터 미학은 미의 철학으로 정의되었다. 이러한 정의는 당시에 그리고 20세기에 이르러서는 강화되는데 예술은 모두 미의 범주로 규정될 수 없다는 것, 또한 풍자적인, 희극적인, 숭고한, 비극적인 예술이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물론 일반적으로 예술가에게는 우선 아름다운 감정의 환기가 문제가 아니라 사회나 세계에 대한 인간의 관계의 변화가 문제라는 것 등의 고려와 맞닥뜨리게 된다. 이러한 비판은 부분적으로는 숭고한 것, 비극적인 것 등으로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변양들 속에서의 미의 차별화를 통해 제기되었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미를 더 많은 미적 범주로 연역할 것을 요구했고, 따라서 미학은 더 이상 미의 철학이 아니라 모든 미적인 현상 형식 속에서의 미적인 것의 철학으로 정의되었다.

“모든 미적인 현상 형식 속에서의 미적인 것의 철학”, 아메리칸 아이돌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매우 희망적인 프로그램이며 사회미학의 한 예이다. 음악이든, 미술이든, 무용이든, 그 외의 어떤 것이 든 간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재능이 발견됨으로서 살아가는 이유와 목적이 생기고 그들의 삶에 생기가 돌고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는 단 한 번도 행복한 사람이 사회악이 되는 일을 본 적이 없다.  ■ 최 정 미

 
 

 

 
 

vol.20100331-프로세스 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