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재  민  展

 

 

balance_55x55x15cm_Mixed Media_2010

 

 

인사 갤러리

 

2010. 2. 17(수) ▶ 2010. 2. 23(화)

Opening : 2010. 2. 17  PM 5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29-23 | 02-735-2652

 

www.insagallery.net

 

 

Cultural heritage III_44x44x15cm_Mixed Media_2010

 

 

- 현실의 너머에 있는 존재를 찾아서 -

                                                                                                장준석(미술평론가. Space inno 관장)

 

 이재민의 최근 작품들은 외관상 육중하고 고풍스럽다. 특히 이번 전시 작품들은 단순히 높은 테크닉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기보다는 적잖은 작업량을 토대로 이루어진 회화와 조각을 아우르는 듯하며, 질료로부터 기인된, 보다 근원적인 것들을 우리에게 환기시켜 준다. 고대로부터 인식돼 온 이 질료가 본래는, 지금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히 어떤 물체를 이루는 재료적인 것만을 의미하진 않았다. 희랍시대부터 질료라는 것은 모든 우주 생성의 비밀을 담고 있는 근본 원인자이자 근원이었던 것이다. 이재민의 작품에서는 이처럼 근원적인 깊이감과 스케일 및 현실적인 질료가 확인되고 있어서 흥미롭다. 이는 비단 작가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며,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질료적인 의미가 농밀한 표면의 축약으로부터 시공을 초월하여 실재하는 듯 드러나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그의 작품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철의 부식 상태 혹은 오랜 시간을 견뎌온 돌 등이 마치 물 자체처럼 그대로 느껴지며, 여기에서 드러나는 압축된 밀도가 그의 작업세계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오래된 대상처럼 형성된 거칠면서도 단단한 표면에는 세월의 흔적과 더불어 많은 생각과 이야기가 집약돼 있다. 그러기에 이재민의 작품에서 질료와 함께 드러나는 형식은 단순히 형식의 차원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 내용을 위한 형식이라 여겨진다. 의미 있는 내용을 간직하면서도 시각적인 재미나 형식에서 비롯된 유희가 공존하는 동시에 철학성을 담아 독특한 화두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작가의, 질료적 가치를 지닌 상징적 구성 요소는 생각의 장을 여는 장치이자 대화를 위한 장치라 하겠다. 작가는 보는 이들에게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화두를 제공하기 위해 실재하는 듯한 오래된 철이나 돌 등을 과감하게 하나의 작품 공간에 압축시키며 보란 듯이 그 원인자를 강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이때 부각되는 이미지는 단순한 외적 형태라기보다는 내적이며 정신적인 존재를 강하게 환기시켜 준다.

 

 

pebble2010-2_86x86cm_Mixed Media_2009

 

 

그러기에 이재민의 작업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타나는 일련의 현상들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이들이 지닌 원형을 그대로 투영시켜서 알 수 없는 내면에 있는 우주 만물의 원인자이자 절대적 존재를 형상화하는 것이다. 작가는 고철(古鐵)과 돌 등을 바탕으로 하여 다양한 이미지들을 구축한다. 세월의 흔적 속에서 드러나는 이미지와 절대적 진리라 할 수 있는 존재를 담아 조형화시키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의 작품은 마치 유물을 발굴할 때 유적지의 오래된 퇴적물 속에서 압축된 시간들이 세상에 나오며 빛을 보듯 함축적이면서도 투박하고 깊이가 있다. 시공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인간 삶의 흔적과 우주와 자연으로부터 비롯된 진리와 세월의 흔적 등이 오롯이 작품으로 승화돼 있는 것이다. 이처럼 세월의 흔적들을 함축한 여러 유물들은 이재민의 독특한 감각과 개성으로부터 비롯된 그만의 예술세계로서 우주 본연의 실체 및 향수를 느끼게 해준다.

 

 

pebble2010-1_86x86cm_Mixed Media_2009

 

 

이를 위해 이재민은 초감각적인 시공을 새롭게 인식하고 관조할 수 있는 시간들을 가져왔다. 그리고 무한의 상상을 위한 마음의 상태를 견지하고자 많은 노력을 해오면서 그동안 관심을 가져온 과거의 시공으로부터의 실체와 엑기스를 담고자 하였다. 보다 맑고 순수한 마음가짐으로 시공의 차이를 극복하고 질료의 실체를 작품으로 표출해보고자 한 것이다. 그는 이럴 때 더 깊은 물성의 깊이를 느껴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예를 들자면, 돌이나 철이 오랜 세월을 통해 부식된 것처럼 느껴지는 그의 최근의 작품들은 코스모스(cosmos)와 삶의 흔적 혹은 세월의 흔적들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일정한 틀 안에서 드러나는 녹슬고 파괴된 철의 흔적들은 하나의 화면으로 끝나지 않고 작품 너머에 실재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처럼 실재하는 듯한 형태 사이로 추상적인 패턴이 공유되는 가운데, 마음속으론 이미 끝없이 펼쳐지는 코스모스(cosmos) 속에서 드러나는 무한한 존재의 신비로움을 담고자 한다. 이 존재의 신비로움은 곧 물성의 깊이를 가늠하는 것이 될 것이며 질료 자체와의 소통이자 물 자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Relic_50x50x16cm_Mixed Media_2009

 

 

이처럼 단순해 보이면서도 상상력이 풍부한 작품에 등장하는 돌이나 오래된 철은 코스모스(cosmos)의 측면에서 대단히 큰 의미를 차지한다. 그의 오브제적인 작품들은 실재하는 녹슨 철을 재료로 하여 제작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면으로부터 충만한 우주의 신비와 자연의 비밀을 간직한 다양한 각도의 생명성을 담아낸 실험성이 다분한 이미지로부터 비롯된다. 그러기에 돌의 형태와 철의 이미지는 하나의 고유한 통로를 통해 또 하나의 절대적 존재로 나아가는 표현의 수단이자 또 다른 세계와 연결되는 고리라 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돌과 녹슨 철을 매개체로 하면서도 이를 통해 더 많은 관조적인 상상과 가능성을 보여줌과 동시에 다양한 관점에서 다양한 예술세계로 통할 수 있는 연결고리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재민이 표현하고자 하는 철과 돌들은 그 자체로서의 조형적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돌과 철을 조형적으로 극복한 가운데 이루어진, 현실에서 벗어난 상상과 자유함의 실체인 것이다. 현실을 벗어난 자유함 속에서 비롯된 조형세계인 만큼, 드러나는 표현 역시 자유스럽다. 작품 제작에 푹 빠져야만 나올 수 있을 듯한 조형들이다. 미적 감흥과 상상력이 무의식적으로 발현되어 하나의 무한한 상상력을 담은 생명력을 얻으면 족한 것이다. 고고학적으로 흥미를 느끼게 할 정도로 오래된 이미지를 드러내고 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진짜 고고학적인 느낌을 표현하려고 했는지 궁금할 정도이다. 고고학적인 이미지를 통해 시공을 초월하는, 세상 저 너머에 있는 실체와 하나가 되고자 하는 게 작가의 의도라 하겠다. 이처럼 이재민의 조형 작업은 자신의 삶 너머에 있어 보이지 않는 실재를 찾아 나서는 작업이다. 현실에서의 내가 아닌, 현실 너머의 진실이 그의 작품 속에 배어있을 뿐이다.

 

 

Space and order I_60x72.5cm_Mixed Media_2009

 

 

그동안 그는 원시 토기나 돌칼, 청동 검으로부터 하늘 공간, 우주 등의 주제들을 매우 강렬하게 표현하면서도 기존의 방법을 뛰어넘어 자유로운 온갖 상상력으로 무장하였다. 하지만 어떤 경우는 작품 자체의 완성도나 작품 속에서 존재하는 대상들의 필연성이나 개연성, 혹은 상상력이나 추진력 등의 결여로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작가는 이를 스스로 잘 파악하며, 표현하고자 하는 고고학적인 진실과 실체를 표출시키는 예술성을 작품 속에 함축시키는 작업을 꾸준하게 펼쳐왔다. 세상 너머에 있는 존재의 실체를 끊임없이 응시해 왔던 것이다.

시점은 과거에 있지만, 과거를 통해 보이지 않는 진실과 대화하는 셈이다. 그 때문인지 그는 발랄한 색보다는 과거를 함축하고 있는 듯한 어두운 색을 주로 사용해 왔다. 이재민은 1990년대와 2000년대에 다양한 오브제와 마티에르를 활용한 물질성을 강조한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지만, 그 후로 십여 년 동안 포스트 모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의 예술방식에 푹 빠지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은 기존의 표현 방법을 뛰어넘어 시공을 초월할 수 있는 고고학적인 예술의 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는 이를 위해 온갖 상상력의 동원을 주저하지 않는다. 표현된 녹슨 철이나 돌의 이면에는 인간과 현실의 세계를 넘어 또 다른 세계를 유영(遊泳)하게 해주는 미적 능력이 공존한다. 그러기에 이재민의 작품은 현실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현실에서 볼 수 없고 우주처럼 큰 공간에서만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실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최근의 작품은 대단히 학구적이고 실험적이며 터프한 면이 있다. 일단의 소재에 철을 녹인 것과 금가루를 녹인 것 등의 재료를 사용해 시각적으로 실재하는 듯한 이미지에 접근하여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그런가하면 실재하는 돌들을 사용하기도 하고 똑같은 크기의 원구를 여러 개 확보하여 그 원구 바탕에 직선과 같은 전혀 다른 이미지를 그려 넣기도 한다. 거칠면서도 세월이 흘러야만 형성될 수 있는 표면의 시각 효과 역시 리얼하면서도 성공적이다. 견고하면서도 오랜 시간의 흔적들로 이루어진 터프한 표면 밀도는 심층으로의 침투를 거부할 만큼 육중하고 둔중하다. 마치 실재의 사물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의 시각적인 효과가 흥미롭다.

 

 

Space III_46X46cm_Mixed Media_2010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시각적인 효과나 흥미를 유발하는 차원만을 의미하지는 않고, 작가 스스로가 표현하고자 하는 이야기꺼리가 많음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그만의 예술적 감각에 의해 창안된 상징적인 조형 언어들이 하나로 조합되어 있다. 조합으로 드러나는 함축의 의미는 실재함 그 자체를 그대로 나타내고 떠낸 것 같으면서도 그렇지 않음을 보여준다. 오랜 세월의 흔적인 쇠의 부식 그리고 제한된 원형 형태 속에 담겨있는 조각난 돌들의 이미지와 표현 등이 이를 잘 말해준다. 원이나 정사각형 혹은 변형된 사각 형태의 패턴들이 시공의 속성을 냉철하게 가르고 정리하여 작품 너머의 보이지 않는 그 무엇과 함께하며 연속하여 연결하는 듯하다. 특히 구멍 뚫린 몇 개의 정형화된 원은 시각적으로 볼 때 광활한 우주의 블랙홀이나 혹은 단순한 빈 구멍이나 시각적으로 압축된 침묵 등을 의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곧 질료적 의미의 실재가 될 수도 있으며 상상도 상징도 아닌 어떤 것이 될 수도 있다. 실재는 시각적 혹은 인식적 차원을 벗어난 장소에 있기도 하며 포착되거나 규정될 수 없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철리를 근간으로 형성된 이재민의 작품은 시공 속에 있으면서도 시공을 초월한 이미지를 담고 있다. 둔중하고 두터운 마티에르를 주는 진한 색감은 사실적인 것 같으면서도 추상적인 패턴을 시간과 공간 속에서 통시적 압축시켜 독특한 조형성을 확보하고 있다. 용접이나 절단, 조립 등의 힘든 공정을 거치지는 않았지만 마치 이러한 과정을 거쳤을 것 같은 질감과 형태들은 시간과 공간의 단축과 압축에서 비롯된 또 다른 세계를 의미한다. 형식적.내용적으로 시공을 초월하여 이루어진 물 자체의 세계는 이재민의 작품이 성공적임을 보여주는 하나의 반증이라 하겠다. 존재와 사고의 상징으로 드러나는 쇠의 부식과 돌의 속성은 다양한 패턴들의 온갖 것들을 벗어나 독자적으로 형성된 것이며 암흑 같은 미궁 속에서 드러나는 진리의 실체가 될 것이다. 이재민의 작품은 존재하는 곳을 생각하는 것 같지만 존재하지 않는 곳을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일상에서의 여러 가지 고착화된 관념들을 깨며 고착화된 의미의 사슬을 끊으려는 강한 의지를 함축하고 있다.

 

 

Stone-compostion I_58x58cm_Mixed Media_2009

 

 

 
 

■ 이 재 민(LEE, JAI MIN / 李 宰珉)

1978-86  동국대학교 미술학과, 동 대학원 석사 | 2005  단국대학교 대학원 조형예술학과 박사

개인전-  2010. 02  제9회 개인전(인사 갤러리. 서울) | 2008. 07  제8회 개인전(무궁화 갤러리. 말레이시아) | 2008. 02  제7회 개인전(갤러리 진. ) | 2004. 03  제6회 개인전(동경 주일한국대사관 문화원) | 2004. 01  제5회 개인전(웰콤 갤러리. 서울) | 1994. 12  제4회 개인전(단성 갤러리. 서울) | 1988. 12  제3회 개인전(미국 LA) | 1988. 01  제2회 개인전(가든 미술관. 광주) | 1987. 12  제1회 개인전(그림마당 민. 서울)

 
 

vol.20100217-이재민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