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희

 

- 트라이앵글 로드전 -

 

대가야의 잠Ⅱ_91x73cm_Acrylic on canvas_2009

 

 

갤러리 이즈

 

2009. 12. 23(수) ▶ 2009. 12. 29(화)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00-5 | 02-736-6669

 

www.galleryis.com

 

 

경주Ⅰ_45x65cm_Acrylic on canvas_2009

 

 

오정희 - '트라이앵글 로드'를 가다

 

박영택 (경기대학교교수, 미술평론)

  오정희는 한국 고대사의 문화적 기억을 더듬는 작업을 선보인다. 특정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이자 개인적인 작업이 겹쳐 있는 일이다.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는 일이자 죽은 이들을 환생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동시에 결국 부재를 현존시키고 결코 기억될 수 없는 지난 시간의 망실을 안타깝게 추억하고 상상시키는 일이다. 여기서 그림은 기억과 부재를 동시에 안겨준다. 모든 이미지는 이미 사라지고 만 것들에 대한 애도다. 그것은 기억이거나 재현이 될 수 없다. 그러나 그 이미지는 현재의 시공간에서 소멸된 지난 시공간을 추억시키고 그저 상상하게 한다. 지금 우리가 본 것들은 분명 옛것이지만 그것이 당시의 본모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까마득한 시간 속에서 자연이나 사물은 닳고 닳아서 과거의 것인 동시에 현재의 시간 속에서 심한 부침을 겪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남겨진 편린들을 통해서나마 우리는 지난 시간으로 이동하고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 겨우 살아남은 흔적 같은 사물 / 유물이 없었다면 과거도 부재하다. 과거는 그렇게 시간 속에서 생존한 몇 가지 소박하고 남루한 유물을 통해서 숨 쉰다. 따라서 그것들을 보는 일은 슬픈 일이다. 옛 왕국의 수도들은 관광지로 전락했고 소홀하고 거친 후손들에 의해 기이하게 형해화 되어 변질되었다. 작가는 그 공간에 들어가서 그 시대에 만들어진 유품들을 접한 소회를 그림으로, 무척이나 서정적인 뉘앙스로 그려냈다. 현재가 감각을 통해 인식될 수 있는 것과는 달리 과거는 오직 기억에 의해서만 인식될 수 있다. 시간의 불가역성에 항거하는 것이 기억이다. 기억은 인간을 자신의 일방적인 흐름 속에 가두어놓는 시간의 질서에 거역함으로써, 세월의 무상함을 넘어서는 인간적인 정체성의 토대가 된다. 그래서 전통이란 '기억 속의 심상'을 토대로 한 것이며, 새롭게 창조되는 오늘의 '심상의 전생'이다. 살아있는 전통이란 그렇게 기억 속의 심상이 지금 이 순간에 새롭게 되살아난 것이다.

 

 

경주Ⅱ_53x72cm_Acrylic on canvas_2009

 

 

  작가가 그린 장소는 자신의 고향과 인접한 고령, 안동, 경주 지역이다. 왕조의 영광과 명예가 광휘로 번쩍였던 곳이자 이내 재가 되고 썩어 자취를 감춘 곳이기도 하다. 천 몇 백 년 혹은 몇 백 년 시간의 입김이 핥아댄 상처가 남겨진 유물의 피부에 선연하다. 얼추 남아 시간에 저항하는 유물들만이 그 당시의 상황을 어렵게 유추하게 한다. 모든 남겨진 유물은 추상들이다. 본래의 굳건하고 정확했던 사실적 재현물 들은 조금씩 흘러내리고 마모되어 본래의 물질로 맹렬히 돌아가는 중이다. 작가는 그 흔적, 상처들 사이로 거닐었다.    

작가가 다닌 공간들은 특정 문화권을 형성한 고대왕국의 흔적들을 희박하게, 혹은 강렬하게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이른바 경북 3대 문화권역에 아직 남아있는 풍경, 사찰과 서원, 그리고 능과 석탑과 불상, 금관과 암각화 등 해당 국가의 대표적인 문화유물과 유적지를 둘러보고 이를 조형화하는 작업이다. 가야와 신라, 그리고 조선 왕조 선비문화의 결정들이, 그 전통이 핵심적으로 서식했던 곳이자 당대의 지배이념과 사유체계, 종교와 신화, 삶과 죽음의 모든 코드들이 촘촘히 직조된 오브제들이 남아있는 장소들이다. 작가는 그곳을 '트라이앵글 로드'라 이름 지었다. 그 이름이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사실 그 공간은 이미 지워지고 사라진 공간이자 여전히 현재의 공간위로 불쑥불쑥 환생해 어느 한 순간과 조우시키는 곳이기도 하다. 과거와 오늘이 기이하게 접속되는 곳이며 죽은 이와 산 자가 동거동락 하는 땅이다. 죽은 이가 내뱉었던 한 숨들이 지금 산 자들의 한 호흡 속에 얹혀 떠돈다. 그 땅 어딘가에  죽은 이가 살았고 죽어갔던 풍경이 있고 그 공간 안에서 그들이 살면서 바랐던 간절한 소망과 희구와 염원이 나무와 돌과 철이란 물질로 응고되어 저장되어 있다. 작가는 그 사이 어딘가를 걸었고 보았고 느꼈다. 작은 종이에 속사로 스케치를 해 얻은 자료를 가지고 와 작업실에서 그 순간의 감흥과 기억과 상처를 불러들였다. 간추린 인상적 장면이 몽롱하고 아련하다.  

 

 

경주Ⅲ_53x72cm_Acrylic on canvas_2009

 

 

이번에 전시된 작품들은 한국 고대문화의 찬란함이 숨 쉬고 선인들의 삶의 자취와 호흡이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곳들을 자신의 몸으로 밟아가는 여정 속에서 건져 올린 것들이다. 작가 개인의 몸과 마음이 공간에 가닿아 파생된 감정의 잉여물이자 안스러운 기억과 상상이 빚어낸 자취다. 그것은 이른바 문화유산답사를 그림으로 남기는 일이자 그곳에서 느낀 자신의 정서적 반응물을 침전시키는 일이다. 작가는 그곳을 답사하고 여행하면서 보고 느낀 풍경을 그림으로 가득 올려놓은 것이다. 흔들리고 떨리는 붓질과 파스텔 톤으로 물든 색채는 명료한 형상이 아니라 아련하고 걷잡을 수 없는 흔적들의 겹침으로 빚어낸다.

그 그림들은 단지 그 특정 지역에 산포한 아득한, 가물가물한 시간의 잔해들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차원에서 머물지 않는다. 그녀는 그 공간들을 찾아다니며 아련한 시간, 과거의 그 흔적, 숨결들과 나눈 대화를 그리고자 했다. 지난 시간과 죽음과 대화를 나누는 일이자 선인들이 삶을 헤아려 보기도 하는 일이다. 그래서 그림은 몇 가지 층위로 자욱하다. 그림위에 또 다른 그림이 얹혀져있기도 하고 그려지다 지워지기도 했다. 어렴풋이 형상이 떠오르다가 이내 단색의 물감 층으로 돌변하기도 하고 느리고 빠른 이미지가 동시에 흔들리고 그려진 부분과 거의 그리지 않고 놓아둔 면이 동시에 등장한다. 그것은 시간의 차이와 과거, 현재가 동시에 오버랩 되는 형국을 연출하는 듯하다. 스치듯 지나가면서 바라본 풍경처럼 대상은 흔들리고 비현실적인 색채가 얹혀지면서 구체적인 공간을 직접적인 대면의 형식으로 만나게 하기 보다는 마음과 상상력을 동원해, 이른바 시간이동으로 접촉하게 한다.

 

 

안동가는길Ⅰ_53x73cm_Acrylic on canvas_2009

 

 

갈필과 빠른 속도로 그려진, 정처 없이 떠도는 붓질이미지로 우려낸 잔잔하게 떨어대는 풀과 나무 사이로  햇살이 비치고 그 사이 어딘가에 능이나 탑, 석불이 비친다. 항구적인 생을 이어오는 자연 속에 인간이 세운 것들이 겨우 살아남은 풍경은 쓸쓸하다. 그래서인지 그림 역시 스산하고 아련하다. 그러한 정서, 내면의 색이 담겨있는, 물든 그림이 오정희의 그림이다. 특히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답게 마음과 정신을 담아 실어내는 필력의 탄력이 만만치 않다. 캔버스에 아크릴로 그려도 수묵의 느낌이 강한 이유다. 기운생동 하는 자연과 마음의 산란함이 포착한 어느 풍경, 장면이 그렇게 그려지고 있다.

  사실 안동과 고령, 경주지역의 무수한 유물이미지와 공간을 답사해서 그 지역문화를 인상적으로 떠올려주는 그림이란 자칫하면 소박한 일러스트레이션이 되거나 사실적인 풍경화로 그치거나 기록적 치원의 묘사로 머물 수 있을 텐데 오정희의 작업은 일단 그로부터 벗어나 있다. 3개 지역의 특성을 증거 하는 이미지를 끌어들이되 이를 자신의 주관적인 작품세계 안으로 불러들여 녹여낸다. 그래서 그것은 특정 지역의 유물이미지이자 동시에 그로부터 도약해 작가의 심성으로 재해석된 어떤 공간에 대한 향수와 기억, 추억의 이미지가 되었다.

 

 

도산서당_91x72cm_Acrylic on canvas_2009

 

 

트라이앵글 로드 - 노송정  100×80cm, Mixed Media, 2009

 

 

트라이앵글 로드- 금호강에서  73×91cm, Mixed Media, 2009

 

 

 
 

오정희

영남대학교 조형대학 및 동대학원 졸업

개인전

2009  7회 개인전 지역문화예술 특성화 사업 - 트라이앵글 로드전 (호텔 인터불고 쁘라도갤러리-대구, 이즈 갤러리-서울) | 2007  6회 개인전 (렉서스갤러리 초대전, 대구) | 2003  5회 개인전 (Space 129, 대구) | 1999  4회 개인전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구) | 1997  3회 개인전 (수성동아갤러리, 대구) | 1992  2회 개인전 (삼덕갤러리 기획전, 대구) | 1990  1회 개인전 (청남미술관, 서울)

단체전

2009  명품 55인전 (대구 경북 디자인센터) / 마니프 서울 국제 아트페어 참가 (예술의 전당) | 2008  새해맞이 작은 그림전 (우봉 미술관) / 세계미술거장전 전시 기획 (대구 경북 디자인센터) | 2007  현송 정치환 교수 정년기념 사제전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구) / Project for Installing Studios - 작업실 들여다보기전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구) / 경상북도 미술협회전 (경주엑스포 처용의집, 경주) / 옛길이 보이는 풍경 - 영남대로를 따라서전 (봉산문화회관, 대구) | 2006  대구현대미술의 상황전 (대구시민회관, 대구) / Navigate 2006전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구) / 삼성현미술대전 초대작가전 (경산시민회관, 경산) | 2005  FROM DAEGU-30YEARS MESSAGE-전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구) | 2004  대안공간 Space 129 작가 발굴전 (한기숙갤러리, 대구) / 동시대 미술의 섬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구) | 2003  New / Frontier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구) / Work on paper 전 (Space 129, 대구) | 2001  경산미협전 (경산시민회관, 경산) / 영.호미술작가 2001년전 (김천문화예술회관, 김천) | 2000  영남대학교 동양화과 동문전 (한성갤러리, 대구) | 1999  영남한국화회전 (대구박물관, 대구) / 시와 그림의 만남전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구) / 경상북도-하남성 미술전 (하남성 문화회관, 중국 | 1997  매일신문사 미술대전 특선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구) / 영남한국화회전 (봉성갤러리, 대구) | 1996  영남한국화회전 (봉성갤러리, 대구) | 1995  인체드로잉의 방법전 (관훈미술관, 서울) / 영남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동문전 (예송갤러리, 서울) | 1993  한국청년미술제-서울에서의 만남전 (공평아트센타, 서울) / 미술세계 문인화전 입선(경인미술관, 서울) | 1992  제6회 동아미술제 입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 어제로부터 오늘 그리고 내일전 (문예진흥원 미술회관, 서울) / 신세대의 발언 그 현장전 (삼풍갤러리 기획, 서울) / 의식의 확산전 (후인갤러리 기획, 서울) / 공간의식-지역언어전 (미도파갤러리, 서울) / 제13회 국제임팩트전 (교토미술관, 일본) | 1991  제10회 대한민국미술대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 한국화 자유의지전 (인데코 화랑, 서울) | 1990  90년대의 한국화 전망전 (문예진흥원 미술회관, 서울) | 1989  졸업작품우수작 (예술마당 금강, 서울) / 대구 한국화 신예작가전 (예맥화랑, 대구) / 수용과 변용전 (예맥화랑, 대구) / 제8회 대한민국미술대전 입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 1988  제19회 전국대학미전 금상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 1987  제29회 목우회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 2000-2003  영남대, 계명대 강사 역임

현재  한국미협, 대구현대미술가협회 회원

 
 

vol.20091217-오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