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순업 展

 

- MANIF 14! 09 SEOUL -

 

빛과 시간의 이야기(인간의 굴레에서)_162x130.3cm_mixed media on canvas_2009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A8

 

2009. 10. 14 (수) ▶ 2009. 10. 25(일)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700 | T. 02-514-9292

 

www.sac.or.kr

 

 

빛과시간의이야기_162.2x130.3cm_Mixed Media on Canvas_2009

 

 

장순업, ‘자연의 코러스’

                                              서성록(안동대 미술학과 교수)

 

장순업의 작업실은 광주 곤지암에서 가까운 평화스런 도척면 산기슭에 자리를 잡았다. 겨울 끝자락의 추위 때문에 찬 공기가 그대로 고여 있었으나 작업실에 들어서니 장순업의 열정 때문인지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문 하나를 두고서 온기와 냉기가 갈리고 있던 셈이다.

작업실 뒤쪽으로 통유리로 된 대형 창문이 나 있는데 큰 광주리처럼 산의 모습을 그 널찍한 품으로 담아내고 있었다. 속절없이 바뀌는 계절의 변화를 창문을 통해 바라볼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다. 자연과의 밀회를 즐기려는 심미안의 소유자 장순업다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작업실 곁으로는 시냇물이 흐르고 그 곁으로 조촐한 원두막을 세웠다. 그림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한남대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시간을 제외하곤 작업실에서 전지도 하고 잔디도 다듬고 예고 없이 집 근처로 찾아드는 두루미나 나비 등과 가까이 하면서  전원생활을 해간다고 한다. 곤지암에 들어온 지 20년이 지났으니 사실상 시골사람이요 이곳 주민이나 다름이 없다.

 

살아있는 것에 주목

장순업은 자신의 회화를 ‘자연의 코러스’라고 소개한다. 바깥으로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 그래서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숨은그림찾기’로 부른다 ― 자세히 살펴보면 여러 동식물이 서식한다. 그림의 모티브로 등장하는 것은 두루미, 학, 나비, 물오리 떼, 벌, 잠자리 등이다. 새와 곤충들이 그림에다 둥지를 틀고 있는 셈이다. 식물들도 떼거지로 모여 있다. 진달래, 목련, 수련, 개나리, 해바라기, 코스모스가 활짝 피어있다. 식물원에 와 있는지 아니면 동물원에 와 있는지 착각을 일으킨다. 그처럼 동식물의 이미지들이 그의 작품에 ‘착석’해 있다. 각종 생물들의 이미지들은 회색 빌딩숲과 뿌연 스모그 속에서 고통 받는 도시인들을 기쁘게 맞아준다.

또한 자연에서 일어나는 세세한 표정을 포착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온갖 군영(群英)의 꽃들은 자연의 미를 노래하는 교향악 같고, 지나가는 새들의 날개 짓에 파란 하늘이 술렁이며, 웅크린 숲은 햇살의 선명한 들이침으로 금빛의 환희로 바뀌며, 한적한 오솔길을 따라 드러누운 낙엽은 발밑에서 바스락거리며 속삭인다. 작가는 시골 생활 가운데서 습득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노래하고 있었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민감했던 어거스틴은 자연과 별과 언덕과 바다의 아름다움에 대한 생생한 느낌을 피력했다. “하늘과 땅, 바다에 있는 무수한 아름다움, 빛의 풍요로움과 그 신비한 사랑스러움, 숲의 어두운 그림자, 꽃의 색깔과 향기, 수없이 많은 새들과 그 노래 소리와 멋진 깃털……. 또한 장엄한 바다의 전경이 있다.”(??신국론??,21권 4장)

우리는 자연물을 볼 때마다 순종의 아름다움을 본다. 나무는 생명의 흐름에 순종하는 가운데 어제의 흔적과 오늘의 업적에 집착하지 않는다. 봄에 꽃이 그토록 아름다웠건만 나무는 꽃을 간직하기 위해 추태를 보이지 않는다. 꽃을 포기하면서 생명에 순종하여, 나무는 더 풍성한 열매를 준비해간다. 나무는 더 풍성한 열매를 맺고 모든 나무는 생명의 흐름을 믿을 뿐 아니라 기쁨으로 순종한다. 이렇듯 자연은 소망으로 가득하다.

작가는 이전까지만 해도 토기, 장승, 오리, 하루방,당초문 등 민속적 이미지들을 특유의 퇴색하고 그을린 표면을 등장시켜왔다. 시점을 과거에 두다보니 발랄한 색보다는 어두운 색이 주류를 이루었다. 90년대와 2000년대에 발표한 작품과 견주어 보아도 큰 차이를 드러낸다. 이 무렵의 작품에서는 구체물이 사라지는 대신 물성과 수묵이 들어서면서 공간에 긴 침묵이 흘렀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수묵을 절제하여 사용하는 것과 같은 맑은 정신성, 물성의 깊이가 가져다주는 존재 및 존재 이면의 추구와 같은 주지주의적인 측면이 더 강했다.

그러나 근작은 사정이 좀 다르다. 생명 있는 것들에 주목한 뒤로는 암갈색, 흑갈색 등을 주조 색으로 하던 데서 파랑, 빨강 등 밝은 색으로 술렁이기 시작했고, 조연 구실밖에 하지 못하던 이미지도 이제는 이미지가 당당한 주역으로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 틈을 타서 인물(자화상, 아리따운 여인, 가족, 자화상, 사과를 가운데 두고 갈등하는 아담과 이브)도 왕왕 등장한다.

물론 지금도 흑색을 자주 사용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 흑색은 흑색 자체의 위엄을 나타내거나 질료적 성질을 강화하기보다는 화면의 장식성을 보태주는 요인으로 기용되고 있는 것 같다. 즉 흑색을 사용할 경우 대부분 맑은 고딕색으로 이용하는데 그 위에 새나 사람, 그리고 꽃을 보탬으로써 밑칠의 색 대조를 통하여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구실을 하는 것이다. 태고의 시간성과 아득한 풍상을 간직하고 있는 듯 한 예전 작품과는 큰 차이를 나타낸다.

 

공간과 조형

그는 말랑말랑한 감각에다 화면을 능숙하게 다루는 조형 구사력까지 겸비한 화가이다. 붓놀림, 색깔배합, 화면구성에서 그의 뛰어남을 확인할 수 있다. 막힘없이 이어지는 선의 흐름, 색채는 마치 자동차가 고속도로 위를 미끄러지듯 캔버스 위를 쏜살같이 달린다. 특히 무형의 캔버스에서 유형의 이미지를 뽑아내는 솜씨는 보는 재미를 더한다. 마치 어린이가 크레파스를 들어 도화지위에 쓱쓱 문질러 뜻하지 않은 형태를 얻어내듯이 작가는 붓을 잡으면 온갖 표정을 얻어내는 것이다. 머릿속에 스케치북을 짊어지고 다니는지 붓만 잡으면 이미지를 쏙쏙 잘도 뽑아낸다.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타고난 솜씨를 자랑한다. 음악으로 치면 한 작품을 가지고 다듬고 숙고하는 베토벤 스타일이라기보다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악상을 그대로 받아 적는 모차르트 스타일에 가깝다.

그림 자체가 속성상 ‘직관’에 크게 의존하므로 그의 경우는 ‘순간적인 판단’과 ‘감수성’이 유난히 강조된다. 아마 한동안 추상작업을 한 것이 큰 도움을 주지 않았나 짐작된다. 왜냐하면 그의 그림에서는 일반적인 구상 회화에서 발견되지 않는 점들이 찾아지기 때문이다. 특히 질료의 민감성 부분에서 그렇다. 화면을 마치 밭고랑 일구듯이 파내고, 씨를 뿌린 다음 덮고, 양분을 주고, 물을 먹이듯 소정의 결과에 이르기 위해서 무수한 작업공정 및 수법의 실험을 거치고 있다. 구체적으로 화면 질감을 내려고 모델링 컴파운드나 돌가루를 부착하고, 더 질박한 효과를 얻기 위해  황토를 바르거나 두꺼운 한지를 서 너 겹씩 발라올린 다음에 작업을 착수한다. 수법도 굉장히 다채롭다. 단순한 그리기를 넘어서 스프레이로 물감을 뿌리고 담벼락을 청소하듯이 나이프로 긁고 떼어내거나 서양화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과감하게 먹으로 발묵효과까지 시도한다. 서양화지만 수묵화 같은 느낌을 주는 것도 발목과 관련이 있다. 어떤 작품은 판목을 이용해 캔버스에다 ‘탁본’ 수법을 이용해 찍어낸 작품도 있다.  작가는 마치 ‘수법의 백과사전’인 것처럼 온갖 수법을 불러들여 화면을 다채롭게 꾸며간다.

다음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화면 구성이다. 화면 구성은 공간을 얼마나 잘 운영하는가에 판가름된다. 보나르의 말이 이를 입증한다. “창작력은 구성요소들의 배치와 그 비율감각에서 더 많이 발견된다. 구성이 예술의 모든 것이다. 모든 것의 열쇠다”(보나르) 구성은 스테이지 위에 올려진 드라마와 같아서 주연과 조연이 있으며 무게가 모이는 중심이 있고 바깥으로 흘러나가는 주변부로 나뉘어져 있다. 이 둘의 관계를 맛깔스럽게 버무릴 줄 알 때만 훌륭한 작품이 나온다.

흥미롭게도 장순업의 작업은 이 점을 잘 알고 있는 듯 구성에서 빼어남을 과시한다. 주연과 조연이 갈라지고 무거움과 가벼움, 채움과 비움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비율과 크기, 공간운영의 측면에서 그는 ‘달변가’ 혹은 ‘노련한 문장가’를 방불케 한다. 게다가 작가는 매 작품마다 구성을 다르게 연출한다. 그의 머릿속에는 어떤 스테레오 타입이라는 것은 없고 순번에 따라 호출만을 기다리는 ‘변화무쌍한 구성적 창의력’이 대기하고 있는 것 같다.

 

 

빛과시간의이야기(가족)_53x45.5cm_Mixed Media on Canvas_2009

 

 

선의 놀림

그의 작업은 색과 선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다루기 힘든 세선(細線)을 거뜬히 소화해내고 있다. 이런 선이 서예에서 유래되었는지 드로잉에서 유래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의 선 놀림이 유려할 뿐 아니라 율동적이라는 것이다. 사물형세를 포착하는 것도 있고 어떤 것은 화면에 율동감을 더하기 위한 것도 있다. 추상회화처럼 선이 독자적인 의미를 갖지는 않지만 선은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조형인자로서 자리한다.

대표적인 작품이 폭이 500호가 되는 춤사위를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좌우에 각 인물들이 장구를 두드리며 흥겹게 춤을 추는 동작을 옮긴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의 주제는 ‘춤꾼의 이미지’에 있기보다는 ‘유희’나 ‘율동’에 더 가깝다. 그만큼 붓의 놀림이 강조되어 있다. 물론 화면에서 보이는 것은 색의 흐름이지 선은 아니다. 그러나 조금 멀리서 보면 색의 흐름이 아니라 하나의 선으로 틀지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큰 평붓으로 단번에 내리그은 작품이다. 선의 흐름만으로 작품을 완성시킨 호쾌한 작품이다.

그런가 하면 역시 500호 남짓 되는 연못을 소재로 한 작품은 순전히 먹물을 뿌려서 만든 작품이다. 오리 떼가 유유히 물 위에 노니는 장면을 담았다. 이때 역시 선적인 흐름이 화면 전체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화면 우측의 희미한 나무줄기나 좌측 상단의 수풀도 간략한 선으로 암시되어 있다.

그의 작품은 선이 강조되는 편이지만 선 자체로 작품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선 곁에는 색이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고 색과 어울려서 한 점의 환상적인 그림이 탄생된다. 그의 선이 지닌 속성을 ‘무위한 자연성’(신항섭)으로 요약한 바 있다. 선을 대상을 묶어두는 용도로 묶어두기보다 자유롭게 풀어두고 미완성의 상태로 내버려둠으로서 선을 화면의 굴레에서 해방시켰다는 얘기다.

장순업의 작업실을 빠져나오며 필자는 송충이가 솔잎을 먹고 자라듯이 화가는 그림을 그리며 사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일었다. 수장고에 차곡차곡 쌓아놓은 미발표 작들과, 작가의 체온이 채 가지지 않은 작업실의 작품들을 보면서 화가는 ‘말’이나 ‘머리’로써가 아니라 ‘손’으로, 우직한 장인정신을 품고 예술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림을 통해 작가의 감정을 드러내며 그의 미적 경험이 고스란히 흘러나오며 심상을 전달한다. 그러니까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사람의 생기(生氣)’가 담겨있는 그림과는 비길 수 없다는 뜻이다.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심오한 감정은 신비감”(Lincoln Barnett)이란 말이 있다. 장순업에게 자연이란 단적으로 그런 신비감을 극대화시키는 곳이 아닌가 싶다. 익숙하지만 늘 새롭고, 매일 접하지만 감탄을 연발하게 되는 곳, 그곳은 ‘경이의 주단’이 깔린 마당이나 다름없다.

장순업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저 버리지 않고 뚜벅뚜벅 자신의 회화세계를 걸어가고 있다.

 

 

 
 

장순업

충남 서산출생 |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 및 동대학원 졸업

 

개인전 | 2005  제 41회 개인전 일본 미술세계 (동경전자) | 2003  제 39회 유아트스페이스 초대 개인전 | 2000  제 38회 개인전 (예술의 전당) | 1998  제 20회 개인전 (조선일보 미술관) | 1995  제 16회 개인전 (예술의 전당, 서림화랑, 서울) | 1994  제 15회 스와송 시립미술관 초대개인전 (파리, 프랑스) | 1982  제 10회 초대개인전 (광채갤러리, 동경) | 1975-79  제 7~8회 신세계 미술관 초대전 | 제 1~3회 문예진흥원 미술회관 개인전 | 신세계 미술관 초대개인전 | 제 1~3회 문예진흥원 미술회관 개인전

 

단체전 | 2008  북경비엔날레-올림픽 기념 (북경) | 2005  베이징 비엔날레 | 2004  뉴욕 아트페어전 초대 | 2003  독일 현대미술 초대전 | 2002  일본 문화원 초대 개인전 | 2001  긴자 센타포드 갤러리 초대전 (일본) | 한국현대미술전, 21세기로 가는 한국미술 (예술의 전당) | 2000  동북아 평화미술제 (독일), 독일 현대미술전 (독일) | 1999  한. 중 교류전 (중국 전강성 박물관, 캐나다 퀘백미술관) | 1998  월드 아트뉴욕전 (CAST IronGallery) | 뉴델리 현대 국립미술관 (소피아), 버나시립미술관, 알버트 보스체트등 전시  전시 | 1997  La Art 페스티발(ARTcore Center BREWERY ANNEX the ARTBANK) | 한. 베트남 교류전 (베트남 하노이 전시실) | 1996  한국누드미술80년전 (예술의 전당) | 그랑에죤 (그랑출품), 프랑스 (거창초대출품) | 뉴델리 아트페스티발 (New Delhi Lalit Kala Academy) | 96”항주 비엔날레 (중국) | 1994  그랑에죤 (에펠팔레미술, 파리) | 1993  오늘의 한국 회화전 (주에노스아이레스, 시보리, 시립조현미술제) | 흑색과 노랑을 주제로 전시 | (파리 전지역 미술관 순회 Pemod사 주최) | 서울국제현대서예전 초대출품 (예술의 전당)1989  프랑스 혁명 200주년 기념초대전 (파리, 프랑스) | 프라팔레 한국 구상작가 초대전 (파리, 프랑스) | 1988-1994  88 한.일 현대초대전(일본 긴자스타홀, 야오야미 갤러리, 동경) | 1988  올림픽미술제 초대출품 (국립현대미술관) | 1985  Salon de Mai 초대출품 (국립현대미술관) | 1984-1994 대한민국 미술대전 초대출품 (국립현대미술관)

 

수상 | 국전 특선 4회, 제28회 국전 문화공보부 장관상(국전 추천, 초대작가) | 제3회 한국미술대상전 특별상 | MANIF 98 서울국제아트페어 대상수상

5.16 문화상 | 대한민국미술대전, MBC 미술대전 심사위원 운영위원 역임 | 단원미술제, 안견 미술대전 운영위원 및 심사위원

 

현재 | 한남대학교 미술교육과 교수 | 주소: 경기도 광주시 도척면 상림리 64-3 | T. 02-446-6034/010-3731-5316.

 
 

vol. 20091014-장순업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