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아트플랫폼 개관기념 국제사진

 

다시개항

참여작가 : 국내_김대수, 김보섭, 김영수, 김장섭, 김중만, 박진호, 박홍순, 방병상, 오상택, 정주하, 최남룡, 최광호, 최영돈, 최영진, 국외_다니엘리, 미아오 샤오춘, 젠첸류(이상 중국), 아사코 나라하시, 유키오, 노데라, 토시오 시바타(이상 일본), 장자오탕(타이완), 다니엘 부에티(스위스), 디오니시오 곤잘레스(스페인), 리나 킴(브라질), 마시모 비탈리(이탈리아), 마이클 웨슬리(독일), 브라이언 맥키(미국)

 

최영돈_나의 젊은 날의 초상-2007_90x180cm_digital-C print__2008

 

 

인천아트플랫폼

 

2009. 9. 25(금) ▶ 2009. 11. 30(월)

인천시 중구 해안동 1가 | T.032-760-1005

 

 

마이클 웨슬리_통일 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_180x240cm_digital-C print_2005

 

 

도시

리노베이션이라는 용어는 단박에 도시의 이미지를 상기시킨다. 변화하는 도시야말로 작가들을 끊임없이 매혹하는 주제가 아니던가.

토시오 시바타의 작품은 낯설다. 인간이 만들어낸 구조물을 포착했지만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아 황량하다. 자연과 인공물들은 조화하는 듯 대치한다.이번 전시에서 유일한 영상작품인 젠첸류의 ‘언더 컨스트럭션’은 화려한 마천루의 도시 상하이의 이면을 보여준다. 2차원의 사진과 3차원의 다큐멘터리 영상을 결합하여 제작한 이 작품은 도시개발의 부작용을 심미적으로 표현했다. 슈팅게임의 동선을 연상시키는 카메라의 움직임은 파괴되고 있는 상하이 동네들을 훑으며 역설적이게도 디스토피아적 상황을 아름답게 담아낸다. ‘폐허의 미학’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작품이다.리나 킴의 사진 역시 ‘폐허의 미학’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정적이고 아름답다. 구동독 베를린의 병사는 기능을 상실한 채 폐허로 남았다. 허름한 실내와 달리 바깥 풍경은 무심할 정도로 아름답고 고요하다. 마치 폭풍우가 바깥이 아니라 안에서 불어 닥친 것처럼.방병상은 여러 점의 사진을 이용한 설치작품을 선보인다. 유휴부지 이용과 관련하여 논란이 되고 있는 당인리발전소의 모습이다. 발전소에서 쏟아져 나오는 수증기는 구름에 섞여 자못 아이러니컬한 광경을 연출한다. 발전소의 폐혜(수증기)를 은폐하는 자연(구름) 앞에서 어떤 판단을 내려야할지 쉽지가 않다.브라이언 맥키의 작품은 ‘어바누스(Urbanus)’라는 제목에서 엿볼 수 있는 것처럼 도시를 전면에 내세운다. 하지만 그의 이미지는 전광판과 자동차로 북적이는 도시가 아니다. 옛날에는 번성했으나 지금은 쇠락한 고대도시의 모습, 특히 건축물 내부를 보여준다. 옛것의 잔해를 통해 역사를 돌아보고 시간에 대해 고찰하며 오늘날을 반성한다.조남룡이 인천차이나타운을 앵글에 담은 지 벌써 10년이다.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는 지금의 차이나타운, 인천아트플랫폼의 인근이 10년 세월동안 어떻게 변했는지 그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다.

바다

인천을 이야기 할 때 항구도시라는 지리적 특성을 간과할 수 없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 아름다운 풍광을 찍은 바다사진이 많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풍광’은 단순하지 않다. 바다를 바라보는 눈들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김보섭은 산업화의 폭풍이 휘몰고 간 공업도시 인천과 인천사람의 우울한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포착했다.김영수는 바다의 이미지 자체에 천착하여 작가의 존재가 무화하는 지점에까지 이른다. 그는 단지 관조적 시선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시선 자체를 지우려고 한다.정주하는 끊임없이 바다로 회귀한다. 사진을 대하면서 바다를 마주하는 낮은 시선, 절묘한 빛의 조정, 정밀한 프린트 등 형식적인 것에 대한 감탄에만 머물러서는 곤란하다.최영진은 검은 갯벌에서 생명의 흐름을 본다. 마티에르가 살아있는 그의 갯벌 사진은 인간의 근육과 혈관을 연상시킨다. 조수의 흐름이 남기고 간 흔적들은 나날이 새로운 모습의 갯벌을 탄생시킨다.아사코 나라하시의 바다 이미지에서는 불안감이 엿보인다. 생명과 포용, 정화의 바다가 아니라 두려움의 바다다. 물과 공기의 접촉면, 이곳과 저곳의 경계에 선 작가는 과연 물 위로 떠오르는 중일까 아래로 가라앉는 중일까?

매체

사진매체의 탄생은 광학과 화학의 발전에 힘입었다. 최근에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전환을 겪었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합성이미지들도 과연 사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진의 본질에 의문을 제기하는 작품들을 만나보자.다니엘 리는 동물의 형상에 인간의 얼굴을 삽입하는 합성작업 ‘매니멀(Manimal)’로 유명하다. 에버렛 밀레이의 ‘오필리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마그리트 등의 작품구성과 내용을 차용했다. 동물과 인간의 경계가 모호한 것처럼 빛의 흔적을 잡아내는 전통적 피사체 사진과 피사체 없이 컴퓨터 기술을 통해 만들어지는 합성이미지가 사진이라는 이름으로 그 경계를 허물고 있다.

디오니시오 곤잘레스 역시 합성 이미지를 이용한다. 빈민도시 파벨라의 철거촌에 세련된 현대건축물이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서 있다. 언뜻 실제로 존재하는 마을 이미지인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작가의 유머러스한 상상력이 절박한 현실세계에 위트와 낭만을 가미한 것이다.

미아오 샤오춘의 사진은 순간의 포착을 특징으로 하는 여타의 사진과는 달리 60~70여개의 디지털 이미지를 합성하여 제작된다. 하나의 작품을 끝내는 데 몇 개월이 소요된다. 2미터가 넘는 사진들은 한눈에 관람하기가 힘들고 디테일들을 자세히 살피려면 ‘시선의 유영’이 필요하다.피사체 없는 사진이 가능한 것처럼 필름 없는 사진도 가능하다. 최광호의 포토그램 작업이 그렇다. 눈 위에 찍힌 발자국처럼 인화지(감광지)에 직접 사물이나 신체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사물의 물성이나 신체의 존재감이 직접적으로 찍혀 나온다. 이곳에서 판화와 사진의 구분은 모호해진다.

마이클 웨슬리는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지 않고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한다. 하지만 그 결과와 효과는 디지털 못지않다. 풍경을 추상화하는 그만의 기법은 렌즈의 조작을 통해 이뤄진다. 그가 직접 수정을 가한 렌즈를 통해 빛이 흡수되면 우리가 인식하는 풍경과는 다른 상이 필름에 저장되는 것이다.박홍순의 작품은 렌즈 없이 만들어지는 사진이다. 카메라의 시원이라 할 수 있는 핀홀 카메라 즉, 바늘구멍 사진기를 이용한다. 바늘구멍을 통해 들어온 빛이 인화지에 쌓이고 쌓여 현대건축물에 나른하고도 몽환적인 인상을 부여해 주었다.

다니엘 부에티는 패션사진의 문법을 보여준다. 흔하게 접하는 광고 이미지에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넣었다. 질문들은 라이트 박스 위에서 반짝반짝 빛난다. 가볍게 보이는 이미지에 난해한 아포리즘이 겹쳐진다.박진호의 작품들은 자화상이다. 사진이 빛의 예술이라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빛의 사용에 따라 작가 자신의 얼굴이 다르게 보인다. 빛을 통해, 사진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돌아본다. 인화 전의 필름은 잠재적 이미지일 뿐이다. 묵혀둔 필름을 오랜 후에야 인화한 이 사진들은 사진의 시간성을 되돌아보게 한다.

 

 

리나 킴_방, 비리츠_127×185cm_digital-C print_2006

 

 

시간

비평가 진동선이 말한 것처럼 최영돈의 사진은 ‘시간의 존재론’을 보여준다. 모든 사진이 시간성에 기반하고 있지만 이 문제에 특별히 천착한 작가들이 있다. 인천아트플랫폼이 지역의 역사와 그 시간을 모두 지워버리고 새로 지은 것이 아니듯 시간을 증명하는 작가와 작품들은 우리에게 각별하다.반세기에 걸친 장자오탕의 흑백사진은 사진예술의 특징인 순간의 극대화와 함께 ‘실상’의 이야기를 다의적으로 함축하고 있다. ‘결정적 순간’을 위해 시간을 감내한 그의 노력이 작품에서 오롯이 드러난다. 그가 타이완의 반세기 역사를 인간적인 사진 언어로 증언할 수있었던 것은 기다림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장섭의 사진들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감지된다. 그 시간은 필름의 번호로 수치화 된다. 그가 한 컷 뒤의 다른 한 컷을 찍기까지 얼마의 시간을 보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연속된 컷에 담긴 풍경은 같은 모습이지만 확연히 다르다. 누적된 시간이 다르기 때문이다. 연속 컷을 프레임화함으로써 리듬감이 생긴다. 리듬은 음악의 요소이며 음악은 시간을 빼고 생각할 수 없다.여러 사진을 몽타주하는 최영돈의 작품에서는 시간의 선조성이 조형적으로 드러난다. 어떤 날을 기념하거나 기억하기 위해 찍는 단체사진은 기억의 매개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흐려지게 마련인 기억들은 한 장의 사진을 통해 일순간 환기된다. 과거의 사진을 통해 시간여행을 하는 셈이다. 최영돈은 그런 사진들을 모아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시간과 기억의 중첩을 시도한다. 오랜 기간을 두고 촬영한 이미지들을 모아서 또 다른 하나의 사진을 만들어내는 최영돈의 작업은 사진이 곧 순간의 포착이라는 등식을 무력화한다.

행동

리노베이션 개념을 더욱 확장시켜 현대인의 행동과 사고의 변화를 살펴보자. 김대수는 한국인의 인간상과 지향점을 대나무에 비유했다. 매난국죽이라는 화제(畵題)의 현대적 해석이다. ‘문명의 발전 과정에서 잃어버린 삶의 어지러운 풍상 속에서의 한국인의 참 인간상, 문인의 정신적 격(格)’을 말한다.마시모 비탈리는 해변, 스키장, 디스코텍과 같은 휴양지의 인간군상을 촬영한다. 원거리에서 촬영했지만 인간 행동의 디테일 하나하나가 살아있다. 휴양지의 모습이 그저 즐거워 보이지만은 않은 것은 인간 행동에 대치된 도시풍경과 독특한 컬러 사용에 있다.

오상택은 현대 도시인의 전형인 회사원을 등장시킨다. 크고 미니멀한 공간 안에서 인간은 작고 힘겨워 보인다. 물질적 가치와 인간이 속한 시스템의 규모가 비대해 질수록 인간은 소외되고 상실감은 왜 더욱 커져만 갈 수 밖에 없는지, 현대인이 꿈꾸는 자유와 이상은 어떤 것인지를 묻고 있다.유키 오노데라의 유쾌한 사진들은 분명 사람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사진에서 인물을 직접 확인하기는 어렵다. ‘헌옷의 초상’에서는 옷이 허공에 둥둥 떠 있다. 몸의 존재를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열한 번째 손가락’은 아예 사람의 얼굴을 흰색 천으로 가려버렸다. 부재를 통해 존재를 확인하는 그녀의 작업은 상상력을 동원하게 한다.

김중만은 아프리카 사람들을 찍었다. 북반구의 부유한 나라들과 달리 아프리카 사람들은 아직도 가난과 에이즈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그의 아프리카 사람들은 처연한 표정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고 건강해 보인다.

문화와 예술의 항구 인천아트플랫폼에 도착한 10개국 27인의 사진작가와 그들의 작품들을 통해 다양한 리노베이션 과정이 드러나고, 사진매체의 가능성과 사진담론의 풍부함을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가 사는 곳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또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그리고 예술을 ‘보고’ ‘인식하는’ 방식이 오늘날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사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vol.20090925-인천아트플랫폼 개관기념 국제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