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임현옥 展

 

영원한 약속_Mixed media _34x34cm_2009

 

 

갤러리 소호

 

2009. 8. 28(금) ▶ 2009. 9. 10(목)

대전광역시 서구 둔산3동 2051-0번지 | T.042-482-3355

 

 

희희_Mixed media _60x60cm_2007

 

임현옥의 테마는 여성이다. 인고의 삶을 살아온 것으로 일반화되는 전세대의 여성들이건 올림픽에서 역기를 들어 올리는 당당한 신체의 장미란이건 일제 치하 종군위안부의 삶을 살았던 여성들이건 성형중독으로 엉망이 되어버린 얼굴을 가진 선풍기 아줌마이건, 멀고 가까움을 떠나 줄곧 그는 여성의 문제를 주제로 삼아 왔다. 아마도 그의 시선은 어머니나 할머니와 같은 가까운 이들의 삶을 바라보는 것으로 시작되었던 것 같다.

 

 

사랑_Mixed media _60x100cm_2009

 

 

맷돌로 콩을 가는 행위를 통해 여성들의 시간을 표현하려 했던 것(<一生/日生>, 1996)이나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같은 포즈로 생각에 침잠해 있는 ‘부엌데기’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들어낸 것(<생각하는 부엌데기>, 1996)은 일종의 전형적인 여인상을 전제로 하고 있으면서 그들의 삶에 깊은 공감을 드러내고 있다. (‘생각하는 부엌데기’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에 대한 일종의 패러디로 보일 정도이지만, 패러디가 가지는 일순간의 헛, 하는 웃음이 나오지는 않는다. 임현옥의 부엌데기는 로댕의 그것만큼이나 무겁다) 재미난 것은, 이때부터 작가는 화면에 무엇인가를 자꾸 붙여서 울퉁불퉁하게 만든다. 마띠에르에 대한 집착은 임현옥의 화업의 초기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물감을 두텁게 발라올려 이미지에 힘을 싣다가 레디메이드 오브제를 붙이는 방법도 사용했다가, 종국에는 특정 질감을 가진 섬유를 화면에 찍어내는 방식을 발견하고 그 방법을 지속하고 있다. 과거의 여인들의 삶을 테마로 하여 그것에 조금 더 서정성이 부여된 작품들이 2002년의 개인전에서 보이는데, 이때 화면에 석고를 개어 바르고 삼베천이나 뜨개질 조각, 붕대천이나 옷가지들을 찍어낸 후 그 위에 채색을 하는 기법을 본격적으로 선보인다. 이때의 작품 <가랑비에 옷 젖는다>(2002)나 <바람은 그물에 걸리지 않는다>(2002)는 섬유를 찍어내는 방식과 그것이 드러내고자 하는 정서, 그리고 색채와 이미지를 포함한 화면의 전체가 지극히 조화롭다. 이 작품들에서 찍혀진 직조물들은, 일상적인 오브제들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응고된 기억들의 화석(化石)같아서, 보는 이들을 직조물이 내포한 기억 속으로 천천히 침잠시키는 효과를 발휘한다.

 

 

호호_Mixed media _50x50cm_2009

 

 

 어느 순간 임현옥의 시선은 집안을 비롯한 주변을 벗어나 사회로 향한다. 따스하면서도 답답한 엄마를 사랑하면서도 싸울 수밖에 없는 딸과도 같은 정서의 배회를 지나서, 그는 매스미디어에 드러나는 다양한 여성 이미지들에 관심을 가진다. 여성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여자 역도선수의 신체, 꺾인 장미로 표상되는 종군위안부의 문제, 뚱뚱하지만 가창력있는 가수인 버블 시스터스 등, 사회가 요구하는 전형적 여성미를 따르지 않는 역설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깊은 관심을 드러낸다. 이때도 앞서 발견한 섬유를 찍어 화면의 마티에르를 구현하는 방식을 사용하는데, 진한 정서로서보다는 자유로운 조형요소로 활용되는 측면이 더 두드러진다. 물론 여성의 신체 내지는 삶을 표현하기 위한 상징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화면을 분할하거나 평평한 색채면과의 대비효과를 두드러지게 하는 등 화면 내의 질서의 한 요소로서 기능하는 바가 더 크다.이제 그의 시선은 다시 집안으로 향하고 있다. 최근 그의 작업 속에서 나타나는 그의 가시거리는 매우 짧다. 사회 저 끝으로 갔던 시선을 거두어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들, 직접 하고 있는, 해야 하는 일들, 요리, 빨래 등이 대상이 되고 있는데, 일상의 소소함이 묻어나는 소재들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십여년간 그가 견지해왔던 여성에 대한 태도는 일견 조금 변화된 것이 아닐까, 하고 보는 이들은 생각하게 된다. 작가는 결혼과 출산, 육아 등의 과정을 거치고 있는 중이다. 작품을 말하면서 작가의 상황을 굳이 거론하는 것은, 그가 살아나가고 있는 삶의 구체성이 화면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돌배기 아기를 기르고 집안일을 돌보면서 작은 방 한켠에 화실을 만들어 그림을 그렸고, 그 결과가 오늘 보여지는 작품들이다. 작품의 색채가 비교적 밝고 화면 속에 배치된 기물들의 형태가 그 어느 때보다 명확하고 경쾌해 보인다.

 

 

하하하_Mixed media _73x91cm_2009

 

 

  어느 때부터 그는 직접 뜨개질을 해서 그 결과물을 화면에 찍어내기 시작했다. 식탁 매트 혹은 어떤 종류의 깔개로 쓸 수 있을 것 같은 것들이 문자를 담고 화면에 찍혀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이 직조물들이 강한 메시지의 문자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하하하’ 웃는 것, ‘smile’하고 미소짓는 것, ‘mother’하고 부르는 것, ‘꿈깨’라고 일갈하는 것, 이러한 각종 다양한 의미의 문자들이 작가가 직접 뜨개질한 직조물 안에 담겨져 있고, 그것들이 화면에 고스란히 찍혀져 있다. 그의 이전 작품들에서도 문자가 등장하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완곡한 방식이었고, 지금의 작품들처럼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었다. 화면 속에 고추장 상표명이 찍힌 플라스틱 빨간 상자가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는 것처럼, 유리구두가 반짝거리도록 그려져 있는 것처럼, 매듭을 지은 두 자물쇠가 명쾌하게 알아볼 수 있는 사물로 그려져 있는 것처럼, 언어적인 메시지도 당혹스러울만큼 강렬하게 화면에 위치하고 있다. 예컨대 ‘하하하’는 크게 웃는 소리로, 임현옥은 다소 거친 고딕체로 직조물 안에 활자화하여 이를 삽입하였고, 이것을 다시 화면에 찍어냈다. 이전 작품들의 섬유 찍어내기는 양감이 있는 스티치의 반대면, 즉 네가티브 이미지가 주는 정서가 더 두드러지는 것이었다면, 이번 작품들에서는 마치 판화에서 네가티브-포지티브의 계산을 해서 화면을 구성하는 것 같은 태도로, 찍혀 있는 이미지들이지만 포지티브의 양상을 띤다. 같은 기법을 사용하면서도 확연히 달라진 이러한 태도는 화면의 분위기를 일신한다. 그리고 활자를 담은 직조물은 마치 만화의 말풍선같은 형태로 화면 속에 그려진 사물들과 관계를 맺는다. 명확한 언어로 전달되는 명확한 메시지는 그러나, 이 지점에서 아이러닉한 반전을 이룬다. ‘하하하’ 하는 웃음은 굳은 마띠에르를 가지고 찍혀 짐으로써 웃음의 가벼움을 잃고 박제화된 것처럼 보인다.

 

 

우울할땐 빨래를 하십시오_Mixed media _60x60cm_2009

 

 

웃어야 하는 웃음처럼, 일동 기립해서 쳐야 하는 박수처럼, 당위적인 메시지가 강하다. 작가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심적 거리를 가지고 보는 이의 입장에서 그 메시지와 이미지들은 작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인정케 하기 위한 자기 확인, 혹은 자기 치유의 산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여기서 주목해 보고 싶은 것은, 임현옥이 그간 줄기차게 시도했던 섬유 찍어내기 기법으로 여성성의 물성을 캐치하고 싶은 욕망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실현된 것이 아닐까 하는 점이다. 직조는 여성의 유전자에 심어져 있는 여성적인 행위로, 그 질감을 통해 그는 여성의 총체를 물화하고 싶어 했던 것인데, 의외의 지점에서 그 눌리고 무거운 상징성이 솔직하고 밝게 전환되어 다른 국면을 예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작은 창문을 연 것처럼 보이는 그 새로운 국면은 그의 작은 화실에 겹겹이 쌓여있는 작품들, 진행 중인 작품들의 에너지로 차후의 작품들에서 현실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 윤 희(대전시립미술관 학예실장)

 

 

집에서 쿡해_Mixed media _60x60cm_2009

 

 

뭐해_Mixed media_50x50cm_2009

 

 

신데렐라_Mixed media _60x60cm_2009

 
 

 

 
 

vol. 임현옥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