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재순 展

 

소리_162.2x97cm_Oil on Canvas_2008

 

 

선 갤러리

 

2009. 7. 8(수) ▶ 2009. 7. 18(토)

Opening : 2009. 7. 8(수) Pm 5:00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184 | T.02-734-0458

 

www.sungallery.co.kr

 

 

소리_90.5x49.5cm_Oil on Canvas_2008

 

 

 노재순, 소리가 ‘달리는’ 풍경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연실 출렁거린다. 그간 어디에 있다 왔는지 속속들이 알 수는 없지만 오랜 타관살이를 끝내고 귀착지에 겨우 도착해선 ‘철썩’ 소리를 한번 내지르곤 훌쩍 잠적해버린다. 먼 여행을 마친 뒤 지치고 맥이 탁 풀렸는지 긴 수면에 들어갔나 보다.

노재순의 근작은 파도에 시선이 꽂혀 있다. 파도가 암석에 부딪혀 힘차게 하얀 포말을 내뿜는 것도 있고, 육중한 몸을 싣고 모래사장으로 꾸역꾸역 밀려드는 것, 뒷꿈치를 살짝 들고 조심스레 걷는 것처럼 조용히 안착하는 것, 그런가 하면 바다속에 떠있는 외로운 거룻배 한척이 눈에 들어온다.

그의 풍경에는 ‘싱싱한 물빛’이 반짝거린다. 아무 데도 오염되지 않은 원시적 청초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거니와 에메랄드와 코발트 블루가 뿜어내는 빛깔은 사람들을 유혹하며 두근거리게 만든다.

해변을 어찌나 실감나게 그렸는지 정신을 파는 사이 어느 한적한 바다로 ‘공간이동’을 한 것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사진가가 순간의 동작을 뷰파인더로 담아내듯이 노재순은 민첩하게 움직이는 파도를 낚아챘다. 파도의 생동감을 살리기 위해 작가는 물감이 채 마르기전에 말랑말랑한 상태에서 그림을 완성시킨다. 그래야만 색깔을 화면의 밑바닥까지 스며들게 할 수 있고 작품의 피부에 해당하는 붓 터치 효과도 잘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시간이 멈추어져 있는 듯하고 딴 세상에 온 것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음악이 사람의 마음을 진정시키는 특효가 있다면, 그림은 분주한 사람들에게 쉼과 휴식을 주는 특효를 지닌 것같다.

 

 

 

 

흥미로운 것은 그의 작품이 ‘소리’라는 타이틀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풍경화속에 소리를 담았다.  지구상의 모든 것들은 각각의 ‘소리’가 있다. “소리는 삶에 대한 이해를 두텁게 하고 세계와 소통하고 자신을 표현한다.”(Diane Ackerman) 작가는 밀려오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누군가를 기다리며 몸부림치는 로맨티스트이다. 철썩이는 소리를 단지 소음으로 흘려보내지 않고 거기서 사람들과 소통할 이유를 발견하는 것이다. 엄마가 자장가를 부르며 아이가 잠에 들 수 있도록 ‘노래의 요람’을 깔아주듯이, 작가는 고달픈 사람들에게 파도소리를 들려줌으로써 ‘정화(淨化)의 선율’을 깔아주는 것이다.

각 그림은 각기 독특한 표정을 담고 있다. 가령 강풍이 몰아치는 제주도 애월리, 해무가 자욱한 백령도, 비오는 날의 낭만적인 경포대와 양평, 압록강, 그리고 갈대숲의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좋은 신두리 등. 개인 날의 풍경보다는 거의가 바람과 해무가 낀 흐린 표정 혹은 순풍에 떠는 숲의 표정을 담았다. 사실 이런 표정들은 작가의 심리를 빗대어 표현한 것들이다. 그저 물좋고 풍광좋은 풍경만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거기에 인간의 내밀한 심리를 실어내고자 했다. 푸른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통해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충동을, 하얀 포말이 폭죽처럼 터지는 파도를 통해 내면의 정서적 동요를 각각 실어냈다. 그런가 하면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허물어진 해무 낀 풍경을 통해서는 침묵만 흐르는 막막한 기다림을 나타내고 있다.

노재순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양한 인체 포즈로 내면정황을 전달한다. 근작에서는 바다풍경과 함께 여인이 등장한다. 바다를 뒷배경으로 한 것, 바다와 짝을 이루는 것, 바다와 잇대어진 것 등으로 나누어지는데 이때 여인은 자신의 내면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이용된다. 가령 보디빌딩을 하듯 두 팔을 잡고 어깨를 비틀고 있는 여인은 무언가 일이 꼬여 답답해하는 모습을, 구름을 배경으로 바닥에 엎드린 여인은 훨훨 날고 싶은 심정을 그린 것이다.(구름이 마치 천사의 날개처럼 묘사되었다.) 물론 이런 주제의식은 그에게 있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는 이미 1990년대에는 현실의 울타리에 갇힌 인간, 그리고 그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를 갈망하는 인간 시리즈를 발표해왔다. 그후 일련의 바다 작품을 통해 평화스럽고 경이로 가득찬 자연에 주목하더니 근래에 다시 인간정황을 대입시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시각과 소리라는 공감각의 세계를 지니고 있다. 보고 들으며 느끼는 복합적인 감각의 토양에 기초해있다.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청각적인 회화’에 속한다. 이러한 발상은 물론 소리가 시각보다 더 직접적인 전달효과를 지닌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경쾌한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가뿐하고 흥겹듯이 때로는 고독한 순간에 내뱉는 ‘아’하는 외마디 절규가 사람의 심리를 더 잘 나타내줄 수 있다. 노재순은 내면에서 시시각각 뿜어내는 인간의 감정을 풍경에 흘려 내보내고 있다. 그리고 이때 풍경은 작가의 ‘대역’을 맡게 되고 풍경에 내장된 소리가 바로 그의 감정의 실체가 되는 셈이다.

그의 작품이 종국적으로 귀결되는 장소는 인간의 실존문제일 것이다. 감정이란 삶의 경험과 결코 떼어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만나고 보고 이야기하고 기억하고 그리워하며 사랑하는 한 우리는 감정을 제어할 수 없다. 감정은 삶의 필수요소이며 감정이 없는 삶이란 생각할 수조차 없다. 그러나 감정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감정과 의지의 구분이 혼동될 때 자제력이 흔들리고 감정에 마구 끌려가다 보면 깨어지기 쉬운 존재로 침륜할 수도 있다. 돌이켜 보면, 감정은 인간에게 전폭적인 지배력을 행사해왔다. 내면생활의 지배적 감정을 사랑과 기쁨으로 채우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가치임에 틀림없다. 작가는 거스를 수도, 피할 수도, 돌이킬 수도 없는 살아있는 감정들을 소중히 여기며, 때로는 공전하는 듯 막막하게만 여겨지는 순간들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며 그것을 화면에 ‘식재’(植栽)하고 있는지 모른다.

                                                                                             서성록(안동대 미술학과 교수)

 

 

 

 

 

 
 

■ 노재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졸업

개인전 20회 (SEOUL, TOKYO, CHIBA, BEIJING)

東京展-대한민국 금일의 미술전 (東京都 미술관) | FIGURATION CRITIQUE (그랑팔레, 파리) | 소피아 트리엔나레 (소피아, 불가리아) | 서울 국제 현대 미술제 (국립현대미술관) | 한국의 누드미학 2003 (세종문화회관)MANIF (한가람미술관 2004) | 화랑 미술제 (한가람미술관 2004) | 현대미술의 환원과 확산 (한가람미술관) | 한국 구상 대제전 (한가람미술관 2005, 2006) | KIAF (COEX 2005, 2007) | 국민일보 현대미술 150인 초대전 (세종문화회관 2007) | 한국대표 100인 시와 그림전 (세종문화회관 2007) | Arbazaar 개관 초대전 (아르바자르-부산 2007) | 2007 한국 대표구상작가전 (엔토코 갤러리, 헤이리) | ART STAR 100인 축전 (COEX 2007) | 한, 중 대표작가 교류전 (세지단, 북경 2007) | 상암 DMC 갤러리 Art Asset 개관전 | 한, 중 현대미술 교류전 (한국문화원, 북경 2008) | 골든아이 아트페어 (COEX 2008) | Beijing 2008 Olympic Art (북경 2008)

현재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vol.20090708-노재순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