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4th 동덕여자대학교, 중앙대학교 한국화 교류展

 

090106

 

 

동덕아트갤러리

 

2009. 6. 17(수) ▶ 2009. 6. 23(화)

오프닝 17일(수) P.M 6:00 동덕아트갤러리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51-8번지 | 02 732 6458

 

www.gallerydongduk.com

 

주최: 동덕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 회화학과, 중앙대학교 일반대학원 회화학과

후원: 동덕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 중앙대학교 일반대학원

 

 

메아리

 

 

현대를 사는 젊은이의 초상

 

우리는 고래로부터 많은 양의 독서와 여행(讀萬卷書, 行萬里)’이 없이는 훌륭한 작가와 학자가 되기 어렵다고 들어왔다. 이는 직·간접적인 경험에 의한 사색이 한 대상, 또는 어떤 전체에 대한 다각적인 시각과 해석을 다양하게 해주며, 폭과 넓이를 가져옴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찍이 당(唐)의 장언원(張彦遠)은 “그림이란 육경(六經)과 공(功)을 같이 한다(畵者……與六籍同功)고 말한 바 있다.

서양에서 존 듀이(John Dewey, 1859 -1952)는 ‘경험은 유기체와 환경간의 상호작용으로 파악’하고, 이를 ‘행함과 겪음 doing and undergoing’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했습니다. 과연 우리는 사회를 떠나 살 수 없고, 예술은 사회에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듀이는 예술은 정제되고 강화된 경험형태로 ‘자연의 완성적 정점’이면서(『경험으로서의 예술』), 경험은 완전성, 내적 추진력, 연속성, 뚜렷한 분절, 하나의 지배적인 성질이 있다고 파악하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러한 동서양의 경험이라는 입장에서 젊은 작가들이 이 시대, 사회라는 환경을 어떻게 이해하고 반응하는가? 어떻게 ‘겪으면서 행하는가’를 중심으로 그들의 그림에 나타난 작가의 시각을 알아보고, 듀이가 “재료가 다른 재료들과 함께 어떤 질서에 따라 사용되고, 그래서 하나의 포괄적인 전체의 부분이 될 때 그 재료는 매체가 된다”고 한 그 매체나 그 표현방법이 과연 현대 동양화에서 학생들에게서 어떻게 수용되고, 변모되고 있는가를 알아봄으로써, 젊은 작가들의 한국화의 인식의 현주소를 알아보기로 한다.

 

 

제목없음.

 

 

기법: 우선 이번 전시에 나타난 두 학교 학생들의 대 사회적인 이해나 반응을 작품을 통해 그들의 메시지를 들어보기로 한다. 동양화 내지 한국화는 종이의 마술이다. 중앙대 대학원생들이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완성했다면, 동덕여대 대학원생들은 그리는 행위와 꼴라주(박정림), 그린 후에 spangle을 붙이고(박미리), 전사 후에 그리는 가하면(이선명), 먹지로 속도있게 그린 후 칠을 하는(박채희)등 그리는 행위와 완성을 향한 다양한 기법상의 차용의 노력이  눈에 띤다.

 

 

Roman Dream-12

 

 

소재의 운용: 이번 작품들은 소재의 운용상 전통적인 입장과 현대적인 입장에서의 의식의 전환이라는 입장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동양의 산수화에서는 산수나 산은 큰 존재이므로( “山水大也. 山大也”, 宋, 郭熙,『林泉高致』) 큰 산은 그 전체를 그리는 전도(全圖)양식이었고, 그 경우 인간은 큰 산에 비해 인물은 마치 점경(點景)인 듯 조그마한 인간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그 전통적인 방법을, 예를 들어, 오세철의 <로만 드림>(오세철)은 마치 중세회화를 보는 듯한 청색맑은 고딕의 기하학적 거대한 건물과 왜소한 인물로, 이선명은 <Concrete Playing>에서 거대한 사회에 대해 더 작아지게 느껴지는 현대인의 모습을 고층아파트로 둘러싸인 물속으로 번지 점프를 하는 극히 왜소한 인간으로, 그것도 부감법에 의해 그림으로써 왜소성을 더 극화하고 있다.

 

 

Concrete Playing 1

 

 

그에 비하면, 박미리의 <Futurism, Cushion>이나 <<Futurism T Shirts & Shoulder Bag>, 이정의 <참을 수 없는 조재의 가벼움>은 이 시대인의 외모 또는 외부치장 지상주의에 대한 말없는 고발, 또는 아이러니요 박정림의 서재나 장독, 길거리의 일상은 무심코 넘겨버리는 자그마한 것에 대한 주목으로, 일상적인 그들 대상들도 시각을 달리해 보면, 당당한 어떤 다른 면모를 지녔다고 외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여주경의 밤풍경속의 고독하고 소외된 인간이나, 환상 또는 만화적인 발상에서 잎을 흑백으로 온 화면을 채우고 잎을 흑백으로 분절한다든가(박준호), 인간이 츄파춥스 사탕으로 변하는가하면(전지원), 우리를 이동시켜주는 고마운 존재이지만 무심코 넘겨버리는 발가락을 크로즈업시킨다든지( 홍혜경의 <꼼지락>), 고무 오리가 다니는 물속에 얼굴을 반쯤 담근채 천연스레 웃고 있는 인간이나 비닐로 덮힌 인간을 보는 듯한 <박소연의 <몽(夢)>은 현대인의 고독과 소외, 인간의 존엄성에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그림(홍혜경)이다. 그들은 일상과 다른 시각이 그 존재의 전혀 다른 면모를 주어 우리 존재의 다양한 면모에 대한 생각을 통해  우리 인식의 완전함을 유도한다고 보여진다.

그런가 하면, 시각적 측면에서 미시(微視)시각부터 거시(巨視)시각까지 다양한 시점으로 대상을 보는가하면, 적록(赤綠)양 화면을 대비시켜 극히 생략적인 자연으로 자신의 정서를 표현하기도 한다(김경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작품속 다른 세상: 인간과 인간간의 의사소통을 촉진시킬 수 있는 그 능력 때문에 예술은 인간을 교화하는 중요한 힘들중 하나이다. 과연 듀이가 말한 대로 “모든 표현 속에는 정서가 있지만, 재료가 변형됨에 따라 정서도 변형된다... 따라서 마지막 정서는 처음의 정서가 아니다.” 박미리의 옷, 방석은 spangle을 통해 가까이에 있는 옷이나 방석의 일상이나 정겨움이 사라지고, 박정림의 수묵 농담의 종이붙이기는 대상을 다른 차원으로 옮겨 놓는다. 그 대상성을 떠났다. 그녀가 하고 싶은 것, 그러나 잘 할 수 없는 것- 책은 읽어야한다. 그림은 그려야 한다, 음식은 신토불이가 좋다는 강박관념-으로 읽혀지기도 합니다. 한 조각 한 조각 종이를 붙여가면서 우리에게 그렇지 못한 나에게, 더 나아가 우리가 무엇을해야할지를 경고하고 있는 것 같다.  전지원의 츄파춥스 사탕도 처음에는 전지원의 얼굴이 츄파춥스 사탕의 표면에, 나타나다가, 수많은 얼굴이 츄파춥스를 장식하고 있고, 그것이 하늘로 산과 들을 날아다니면서 인간은 인간을 떠나며 희화화되면서도 다시 인간을 생각하게 한다. 듀우이가 말하듯, 과연 "미적경험은 한 문명의 삶의 표명과 기록과 기념이요… 또한 한 문명의 질에 대한 최종적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를 사는 젊은이들의 생각, 정서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이제 우리는 이들 젊은 작가들의 이 시대에 대한 다양한 이해와 외침에 귀기울여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2009년 6월

金 基珠(동덕여대 회화과 교수, 철학박사)

 

 

Futurism 'cushion'

 

 

허허! 이것 참

 
 

 

[동덕여자대학교, 중앙대학교 한국화 교류전 연혁]

2006 제1회 한국화 교류전-중앙문화예술회관(아트센터) 2006.9.11~9.17

2007 제2회 한국화 교류전-동덕아트갤러리 2007.6.27~7.3

2008 제3회 한국화 교류전-중앙문화예술회관(아트센터) 2008.9.3~9.8

 
 

vol. 200906017-2009 4th 동덕여자대학교, 중앙대학교 한국화 교류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