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대 展

 

박영대 청보리  146 x 99cm 1995

 

 

가나아트스페이스

 

2009 . 4.28(화) ▶ 2009. 5. 6(수)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19 | 02-734-1333

 

 

박영대 生命  193 x 100cm  2008

 

 

보리, 그 리듬과 자유의 명상

 

최병식 | 경희대 교수, 미술평론가

 

1970년대 박영대는 보리밭으로부터 출발한다. 청원출생인 그가 1969년 대성고교 미술교사로 근무하기까지 줄곧  시골에서 생활했던 그의 성장배경과도 연결되지만 이 시절 박생광, 조복순에게 대학원에서 사사한 채색화의 기법을 이용한 작업들은 당시의 보리 그림에 핵심적인 기법이 된다. 그러나 이후 1980년대와 90년대를 넘어 현재까지 그의 보리는 여전히 가장 가까운 소재이자 상징물과도 같은 존재로 이어지고 있다.이 시절 그의 보리밭은 '맥파麥波', '심향心鄕'  등의 제목으로 청맥들과 나비 등을 소재로 바람결에 흔들리는 정취나 수확된 보리들을 그리고 있으며, 보리이삭과 맷방석 등이 1970년대 후반에 다루어지고 있다.'보리의 물결과 고향' 이라고 볼 수 있는 이 시기의 작품들을 지나서 1980년대를 넘어서면 대상의 해체가 시도된다. 1985년 그는 이미 청주에서 서울로 생활공간을 이동하였고 현대미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확보하게 되는데 그 계기는 1981년 뉴욕 한국화랑초대전에 직접 참가하였다가 유럽을 돌아보면서 다양한 경향을 섭취하면서부터이다. 이후 나타나는 경향은 대상의 해체와 함께 문인화적인 필치가 혼합적으로 반영된다. 출발시기에 시골의 향취에 몰입했던 그의 관심들은 여전히 나무라는 단순한 주제를 상대로 새로운 구성과 실험을 계속한다.

 

 

박영대 生命  65 x 69cm 2009

 

 

먹과 설색을 번갈아 사용하면서 다소 구성주의적인 경향의 경향을 구사하게 되고, 강렬한 채색으로부터 수묵화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다양성을 모색하는 것이 80년대의 변화였다.1990년부터 2000년 즈음 그의 작품은 많은 변화를 보이게 된다. 즉 이전의 채색화 대신 완전한 수묵담채의 형식으로 재료를 전환함과 동시에 문인화의 새로운 경지를 탐닉하면서 추상과 구상의 경지를 넘나들게 된다. 강렬한 모필의 유희를 동반하면서 구사했던 이 시기의 대담한 산수화의 세계는 역시 단순한 논밭과 산야로 관심을 집중한다.색채의 화려함 대신 심상적인 필치가 유희되는 이 시기의 박영대는 보리를 소재로 하는 일련의 시리즈들과 혼합되어 70년대에 보여주었던 구상적 형태와는 완연히 다르게 나타나는 보리에 대한 심상적 해석을 시도한다.즉 1차적으로 풍경의 소재로 인식되었던 보리와 산야에 대한 시각적인 해석에서 그 자신의 정신적 소산으로 이어지는 소재의식으로 녹아있었다. 이러한 작업들은 2000년 작 '태소太素' 라는 작업에서 볼 수 있듯 형상의 이미지는 보리나 고향의 향취가 잠재된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형식은 완전한 추상의 상태로 진입하는 실험으로 이어진다.

 

 

박영대 生命  65 x 91cm 2008

 

 

자신이 걸어온 비망록으로서 조형적인 백서를 연주하는 것과 같은 대형작품들의 '태소太素' 시리즈는 이후 그의 또 다른 변화를 넘어서는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박영대의 작품은 어쩌면  '태소太素' 를 기점으로 하여 비로소 완전한 자신의 세계를 유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잇달아 나타나는 '율-생명' 시리즈들과 '생명' 류의 작업들은 보리에 대한 끈질긴 소재의식에서 변화하지 않으면서도 구상과 심상, 유희와 기하학적인 변형을 비롯하여 문자형태까지도 이어지는 다양한 반영으로 연결된다. '생명의 씨앗' 이라는 제목으로 나타나는 박영대의 이와같은 '보리심취' 는 '맷방석' 과 함께 어우러지는 최근의 조형언어로 이어진다.박영대의 이같은 실험은 수십년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보리와 산야 등 소재의 다양한 해석으로 일관된 작업과정을 유지하고 있다. 그가 부여한 보리에 대한 시각은 수차례의 변화를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언어를 체득하면서 기호화하고 있다. 다만 변화하지 않는 키워드는 여전히 고향에 대한 상징적인 의미를 유지해왔다는 점이다. 좀저럼 대하기 힘든 그의 끈질긴 '보리사랑' 은 이제 리듬을 구가하면서 형상적인 틀과 한계로부터 일갈된 자유를 향하고 있다. 보리는 이제 그의 우주이며, 시학이라고 할만큼 일종의 문학적이고 종교적인 차원으로까지 진전되어 있다.

 

 

박영대 生命  70 x 140cm 2008

 

 

적어도 평생을 같이 해온 신념의 징표인 것이다.박영대의 작업을 궤적하는 이러한 점은 근래 우리 화단에서는 드물게 대하는 긴 여정의 드라마와 같다. 그의 작업은 새로운 이념을 리더하고 엽기적이기까지 한 최근의 트랜드들과는 일단의 거리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의 작업에서 읽어내는 줄거리는 50년이라는 장구한 기간동안 내면적 변신을 거듭해온 대하드라마를 읽고 있는 듯한 순수함과 일관된 관심으로부터 반복되는 침잠과 명상이다.어쩌면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보리를 그렸을 것 같은 박영대의 집념과 노작에서의 실험의지는 이제 수묵의 간결함과 맷방석과 어우러진 새로운 국면을 전개한다. 그가 말하는 보리는 이제 향수와 고향의 의미라기 보다는 생명과 자신의 개체를 투영하고 있다. 80년대 후반 인사동으로부터 25년이 넘게 가끔씩 그를 조우하면서 느꼈던 변신의 연속과 전업작가로서 치열한 삶 또한 만나기 힘든 체온이었다. 그는 변함없이 청년정신을 실현하려는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박영대 生命  65 x 93cm 2008

 

 

박영대 生命  150 x 150cm  2008

 

 

박영대 生命  185 x 190cm  2007

 

 

박영대 生命  185 x 100cm 2008

 
 

 

박영대 朴永大PARK YOUNG DAE

주요개인전 25회 | 2008 박영대 초대전 (공화랑, 서울) | 2006  박영대 개인전 (인사아트센타, 서울) | 2005  대청호 미술관 박영대 초대전 (대청호 미술관) / 경기도 박물관 초대전 (용인, 경기도) | 2001   박영대 작품전 (갤러리 삼성프라자, 성남) | 1999  日辰畵廊 개인전 (동경, 일본) | 1997   야에스갤러리 개인전 (동경, 일본) | 1996   박영대 개인전 (덕원갤러리, 서울) / 로고스갤러리 초대 개인전 (런던, 영국) | 1993   미주 한국일보사 초대전 (L.A, 캘리포니아) | 1990   프레스센타 서울 갤러리 개인전 (서울) | 1987   박영대 - 보리展 (진화랑, 서울) | 1981   한국화랑 초대전 (뉴욕, 미국)  / 문예진흥원 미술회관 개인전 (서울)

단체전·국제전 | 2008   그랑팔레·앙데방당전 초대 (파리, 프랑스) | 2005   Salon Du Blanc 초대 (오모리 빌 포토아트리움, 동경) / 경기도 박물관 초대전 | 1998   아트 에드케이숀 초대전 (베네치아, 이태리) | 1997   싸롱 G. J. A 초대전 (파리, 프랑스) | 1993   문인화 정신의 표출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 서남미술관 개관 기념전 (서남미술관, 서울) | 1992   동경전 수상작가 초대전 (동경도미술관, 동경) | 1991   국제 미술의 제전 제17회 동경전 (동경도미술관, 동경) | 1978   동아미술제 /  동아일보사 주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 중앙미술대상전 1회~5회 /  중앙일보사 주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수 상 | 2007   Salon Du Blanc 국제예술문화 대상 (동경도미술관, 일본) | 2006   로만파展 동경도지사상 수상 (동경도미술관, 일본) | 1991   국제미술의 제전 동경전 대상수상 (동경도미술관, 일본) | 1978   백양회 공모전 「麥波」 최고상 수상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vol. 20090428-박영대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