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채희

 

a shelf_164.8x65.0cm_color on jangji_2009

 

 

동덕아트갤러리

 

2009. 4. 8(수) ▶ 2009. 4. 14(화)

서울 종로구 관훈동 151-8  B1 동덕아트갤러리 | T.02-732-6458

 

www.gallerydongduk.com

 

 

on the table_122.0x122.0cm_color on jangji_2009

 

 

기억을 통한 나의 인지와 너와의 소통

                                                                                 

카페 - 나와 너의 인지의 시작 : 나의 일상을 되짚어 보면, 나는 매번 다른 장소에 가고, 다양한 물건들을 사용하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한다. 먼저 내가 자주 가는 곳들, 좋아하는 장소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각각의 장소, 사물들은 단지 사전적인 의미가 아니라 내 마음속에서 매번 다르게 생각되고 느껴진다. 매번 다름을 보고 문득 나는 누구이고, 너는 누구인가?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가하는 의문이 든다. 그래서 나는 어떤 사물의 형태나 그것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탈피하여 어떤 기억 속의 공간을 표현하려고 한다.

 B. 크로체(1866~1952)가 말하듯이, 그 때, 그곳에서의 대상에 대한 인상이 나의 붓 끝에서 표현된다. 그 때 그 대상에 대한 직관과 각인된 내용을, 그때그때의 의미를 표현하고 싶다. 나는 화실에서의 작업외에는 사람들을 만나 차를 마시며 대화하는 것을 좋아한다. 레스토랑이나 카페를 가면, 탁자 위의 잔들이나, 인테리어, 예쁜 소품에 무심코 시선이 머물게 된다. 그 때마다 나에게 그것들은 새롭게 다가왔다. 한번은 친구들과 와인을 마시러 갔는데, 술을 잘 마시지 못하므로, 나는 마시기보다는 와인병을 관찰하게 되었다. ‘와인도 참 종류가 많구나. 이런 모양의 병도 있네... 산지도, 병도 각각이네’ 이런저런 생각들이 들면서 병들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 때 이후 와인병을 그리는 나의 작업이 시작되었다. 그 뒤로도 와인 병에서 시작하여, 공간마다 매번 달라지는 사물들을 보면서 나를, 또는 그때의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기억(記憶)이란 지나간 경험이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저장된 것이다. 나는 기억 속의 시간이나 공간의 사물들에서 다른 의미들을 찾아보고 싶다. 나는 일상의 대상 내지 느낌의 기억을 재현하여 그것에서 나만의 의미를 알고 싶다. 그럼으로써 그 때, 그 대상을 통해 내가 느껴지지 않을까 해서이다.

 

 

mine_260.6x162.2cm_color on jangji_2009

 

 

기억을 통한 나와 너의 소통 : 나의 그림은 내가 느낀 일상, 그리고 내 마음 속에서 일어난 어떤 감정에서의 현상을 표현 대상으로 삼았다. 나는 현실의 사실적인 겉모습에도 유동적인 해석을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마도 내 그림을 보면서 감상자들도 그 때의 자신을 기억할 것이다.

 예술의 역사는 대상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 얼마나 덧없는가를 보여준다.  T.W 아도르노(T. W. Adorno, 1903~1969)는 ‘예술에 대한 감정은 예술 자체를 지향하는 감정’이라고 말한다. 감정이 예술자체를 지향하므로 어느 한편의 일반적인 반응이 아니라 불러일으켜지는 감정, 예를 들어, 스스로를 주인공으로, 혹은 스스로를 타인으로 만드는 감정이다. 그러므로 예술을 통해 나는 기억 속에서 시공으로부터 분리되어 주인공이 되면서, 객관화되고 보편화 된다. 나의 인지가 시작되는 것이다.

 매순간 여러 생각들이 우리 머리 속을 스쳐지나가는 것처럼 나의 화면 안에도 나만의 그때 그 때에 스친 생각과 감정들이 담겨있다. 그러한 사물의 형상들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는 순간적으로나마 일상의 제약과 긴장을 넘어 나만의 생각 속에 머무는 순간, 인상이 각인된(impressed) 순간이 있다. 깊은 사유에 대한 강박관념과 스쳐 지나치는, 일회적인 가벼운 생각, 이들의 각각 머무른 기억들이 내가 되고, 그 대상이 된다. 그때는 그것들이 원래의 사물의 이미지들과 어우러져도 상관이 없다.

 마음의 상태가 너무 작가의 개인 취향에 치우쳐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는 그만큼의 의미와 관심을 갖게 하기 어렵고, 자칫 지루해 보일 수도 있다. 내 그림을 얼핏 보면, 자유로운 선,무질서한 사물의 나열인 듯한데, 이는 그릴 때의 나의 흥겨운 느낌이 표현된 것이다. 그것은 순간순간의 나의 감정들로 채워져, 그것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여러 가지 생각을 불러일으키리라 생각한다. 각자의 생각이 다르듯이, 어떤 사물에 관한 떠오르는 기억들을 어떤 하나의 답으로 결론지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림을 그릴 때도 기억은 간헐적이고, 일정하지 않다. 속도를 내어 그린 내 그림은 매번 볼 때마다 그 어떤 감정이 묻어나 다른 반응을 하게 할 것이다. 내가 형태를 제대로 알아볼 수 없게 그리는 이유이다. 나는 나의 그림이 정서환기의 매개체, 혹은 자극제가 되어 감상자에게 여러 가지 기억과 상상력들이 발생하기를 바란다.

 

 

a refrigerator_260.6x162.2cm_color on jangji_2009

 

 

무의식적인 작업 속에서의 기억의 담지 : 예술은 주관적이지만 보편타당해야한다. 결국 예술은, 이마미찌 도모노부가 말하듯이, 집중하는 시간에 작가가 관심을 갖는 것만 남고관나머지는 無化되면서 아마도 생각과 감정이 객관화되는 것일 것이다. 어느 순간, 어떤 장소의 서로 관계가 없는 듯한, 어떤 사물들이 기억속에서 혼재(混在)하면서, 그것에 나 자신의 감정을 이입시켜 일종의 유추작용(類推作用)을 하거나, 간접적으로, 때로는 직접적으로 드러내본다. 작가의 마음 상태가 그림의 주제가 된, 대표적인 작가로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감정을 격렬한 색채와 왜곡된 선으로 표현한 반 고흐, 고갱이 있다. 반 고흐는 단지 빛을 표현한 것만이 아니라 그의 감성적, 상징적 특성 색채를 자신의 내면 심리를 묘사하는 적극적인 매체로 활용하였다. 나 역시 사물자체의 자세한 묘사대신, 자유로운 먹과 분채를 이용한 드로잉 방식으로 그리고, 단순하게 몇몇 색을 쓸 뿐이다.

작업할 때의 나는 기억 속에서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별하지 않고, 형식에서 조금은 벗어난 듯한 자유로운 선과 색채 안에서 운동감이나 선의 농담, 굵고 가늘기만을 구별하여 나타낼 뿐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반대되는 이미지를 넣기도 하고, 그 물체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색을 넣기도 한다.

 

 

Open kitchen_162.2x130.3cm_color on jangji_2009

 

 

드로잉적 선(線) 작업에 의한 느낌의 전달: 칸딘스키는 미술가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내적 필연성’을 표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것이 순수 조형적 요소로 표현가능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는 각각의 색, 직선 및 곡선을 사용하여 일종의 작곡(composition)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예를 들어, 빨강색은 뜨거운 정열을, 녹색은 평화를, 굵은 직선은 강인함을, 곡선은 부드러움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물론 동서양의 색에 대한 느낌은 지역이나 종족, 기후, 또는 신분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만, 화가는 이 요소들을  적절히 사용하여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칸딘스키는 작품의 의미를 그림 자체로 충분히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제목도 따로 붙이지 않았다. 예를 들어, <Composition>,<즉흥>,<전투>등 같은 제목의 작품이 많다.

 나는 일차적으로는 먹물을 발라 만든 먹지위에 사물을 드로잉하여 표현한 다음 나의 감정 의 색을 대상에 가미한다. 그러므로 나의 그림은 검은 먹으로 윤곽을 두른 형태들을 양식적 특징으로 한다. 이때의 색은 그때 나의 마음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사물의 구체적인 색들이 아니라, 기분이 좋을 때는 화사한 색을 많이 쓰게 되는 것처럼 내가 느낀 색을 그대로 칠한다. 이미지의 표현은 형상에 근거하지만, 기억속의 인상에 의해 과장이나 왜곡 . 축소 등을 통해 변형하기도 한다. 그 경우, 균형과 질서, 즉 美를 추구하는 전통적인 개념이 무시되면서, 기억속의 다각적인 생각과 느낌이 속도 있는 선으로 형태가 겹치거나 변형되면서 나의 기억심상의 복잡함과 강렬함이 전달하려 하였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보면, 드로잉적 선작업이고, 순간의 느낌을 전하는 것이고 물성(物性) 표현이 목적이 아니므로 명암이 배제되고나만의 시각에 의한 대상의 분해 . 단순화가 주도하는 재구성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2009년 4월 봄날에  박 채희

 

 

List_165.0x35.0cm_color on jangji_2009

 

 

List_165.0x35.0cm_color on jangji_2009

 

WINE_65.1x53.0cm_color on jangji_2009

 

 
 

 

 
 

vol.20090408-박채희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