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미 展

 

- Floating pieces -

 

부유 II-3_캔버스에 유채_각60.6×72.7cm_2008

 

 

덕원갤러리

 

2009. 1. 7(수) ▶ 2009. 1.20(화)

서울 종로구 인사동 15번지 | 02-723-7771

오프닝 : 2009. 1. 7(수) 오후6:00

 

www.dukwongallery.co.kr

 

 

부유 II-8_캔버스에 유채_각60.6×72.7cm_2008

 

 

부유하는 ‘나’를 바라보기

 

신승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생명이 시작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되면 죽음을 향해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관점의 차이기도 하지만 인간이 생명을 얻으면서 진행되는 자연적인 순리이며 숙명이다. 황정미는 이러한 인간의 양면적인 모습과 환경들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다. 삶과 죽음, 편함과 불편함, 안전함과 위험함, 우리 인간으로서의 삶 자체의 본질은 이 이중적인 양면의 변주곡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는 누구나 타인의 탄생, 죽음을 옆에서 지켜보며 생명을 가진 인간의 숙명을 경험을 통해 인지하게 된다.

이러한 주제는 많은 시간동안 다양한 예술의 주제가 되어왔던 것도 사실이다. 작가는 이러한 이야기를 물속에서 부유하는 인간을 소재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이를 소재적인 부분과 표현 방식으로 구분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부유 II-6_캔버스에 유채_각60×60cm_2008

 

 

작가가 선택한 소재인 물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 물은 우리에게 생명이 주어졌을 때부터 우리가 존재하던 곳이다. 엄마의 배속 양수에서 자랐던 그 시간의 기억은 우리들에게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본능적으로 양수-물-은 우리에게는 무의식적으로 편안하고 안전하고 따뜻한 것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엄마의 배속을 나와 성장하게 되면 우리에게 물은 더 이상 편안한 공간이 되지 못한다. 인간은 물속에서는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으며 수영을 배우지 않으면 물속에 떠 있기도 힘들다. 물은 이제 더 이상 안전한 공간이 아닌 생명을 위협하는 공간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수영장이나 바다에서 휴가를 보내며 여가 생활을 즐기는 휴식의 공간으로 물을 이용한다. 하지만 우리가 물놀이를 하는 순간에도 언제 우리에게 위험으로 다가올지 모르는 잠재된 위험한 공간인 것이다. 이는 인간으로서의 삶에서도 다르지 않다. 동전의 양면처럼 두 가지의 상황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순간순간마다 우리의 선택에 의해서 상황은 변해간다. 이렇게 인간으로서의 삶은 이중적이고 양면적이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작가가 어떻게 풀어 나가는가? 황정미의 작업은 평면적이다. 붓 터치를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편편한 면을 유지한다. 이러한 표면의 처리는 물의 표면이 화면 밖으로 나오지 않는 절재와 이를 통해 화면 전체에 나타나는 물속을 깊이 있게 만들어 그 공간을 화면 깊숙이 확장시키는 효과를 가진다. 그림을 바라보는 관객의 입장에서 우리가 있는 현실의 공간은 안전하고, 그림 속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물속은 위험가능성이 내포되어 있는 공간으로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그 위를 떠다니는 인물이 있다는 것이다. 이 인물은 얼굴의 표정은 살펴 볼 수가 없으며, 물에 자유롭게 몸을 맡긴 편안한 포즈를 하고 있다. 이 인물들은 작가 자신일 수도 작품을 보고 있는 우리들일 수도 있다. 이 인물은 저 깊은 곳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물 밖으로 완전히 나온 상태도 아니다. 이는 작가가 이야기 하듯이 이러한 물 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갇혀버린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며, 물을 폐쇄적인 공간으로 보게 만드는 효과를 가지게 한다. 우리가 수영을 처음 배웠을 때 물에 뜨기 위해 했던 연습들을 생각해보자.

 

부유 II-9_캔버스에 유채_각60×60cm_2008

 

 

부유하는 상태 즉 물에 뜬다는 것은 우리가 의도하려고 하면 할수록 힘들어지며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하고 몸의 긴장이 이완됐을 때 가능하다. 다시 말하면 물을 의식하지 않고 물에 모든 것을 맡겼을 때 이루어진다. 이러한 부유하는 상태는 물에서 우리에게 편안함과 안정감을 가지게 한다. 그러나 여기서 자칫 잘못하면 깊은 곳으로 빠져 들 수 있고 반대로 물을 빠져나와 일상의 생활로 돌아 올 수 있는 위험과 안전의 사이에 존재한다. 이렇게 부유하는 인간의 모습을 포착하여 그 순간을 마치 사진과 같이 고정된 구도로 만들며, 평온해 보이는 모습도 아니고 위험한 모습도 아닌 상황을 연출하여 긴장감을 극도로 만들어 낸다. 황정미는 위에서 살펴본 내용들을 계속해서 작업으로서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전의 작업에서와 구별되는 점들이 나타난다. 화면을 분할해 그리고 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전체의 이미지를 부분으로 분할하여 그리면서 각각 개별적인 그림으로 완성해나감으로써 단일 작품으로서 독자성을 유지하게 만든다. 하나의 개별적인 작업은 마치 추상회화를 보는 것 같이 색 면으로 나타난다. 이들이 순차적으로 제작되어 하나씩 쌓이게 되면서 전체의 그림으로 이어져 완성이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작품과 작품 사이에서의 시간 축적으로 인한 차이가 드러나며, 이들이 모여서 하나의 작품이 될 때 작품과 작품 사이의 공간을 줌으로써 그림 전체의 물 막 범위를 넓힘과 동시에 긴장감을 준다. 이렇게 추상적이면서도 구상적인 그림의 이중적인 면모를 가지게 되면서 작품을 보는 관객들의 상상력을 풍부하게 해주며 작가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주제에 더욱 집중 할 수 있게 해주는 효과를 갖게 된다.

 

 

부유 II-10_캔버스에 유채_각60×60cm_2008

 

 

이러한 방식으로 작가는, 이전에는 부유하는 상태와 화면에서 드러나는 인체가 가지고 있는 상징을 중요하게 여기고 이를 표현하는 것에 치중했다면, 이제는 인간이 갖게 되는 양면적인 상황들이 서로 부딪히는 접점을 찾고 그 접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로 그 의미를 확장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으로 관심이 옮겨졌다고 할 수 있겠다.

결국 황정미가 작업에서 나타나는 중요한 점은 작품을 통해 만나게 되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관객들과의 소통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자신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환경에서 작업을 시작하고 우리가 공통적으로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이는 작가가 우리와 같은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인간이 숙명적으로 가지고 있는 양면적인 환경과 상황에 대해서 자신만의 표현 언어로 작품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또한 관객과 원활한 소통을 위해 자신만의 감성적이고 즉흥적인, 무의식적인 작업방식이 아닌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만들어 낸다. 이렇게 작가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양면적인 현실에 대해서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같이 공감하고 생각하면서 같이 호흡하고자 하는 것이다.

 

 

부유 II-13_캔버스에 유채_각60×60cm_2008

 
 

 

 
 

vol. 20090107-황정미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