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광조

 

 

 

선 갤러리

 

2008. 12. 11(목) ▶ 2009. 1. 3(토)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184 | T.02-734-0458

 

www.sungallery.co.kr

 

 

 

 

   山中日記, 일상을 ‘통한’ 일상의 초월

06‘ 최광진 (미술평론가)  

최근 몇 년 동안 도예가 윤광조는 한국을 탈피하여 국제적인 작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그는 2003년 세계적인 도예전문 갤러리인 영국의 베쏭갤러리의 초대로 런던에서 전시회를 열었고, 같은 해 미국의 메이저 미술관 중 하나인 필라델피아미술관에 동양작가로서 최초로 초대되는 영예를 누렸다. 그리고 이 전시회는 이듬해 시애틀로 이어져 시애틀아시아미술관에서 큰 호평을 받으며 2005년까지 계속됐다. 한국에서도 국립현대미술관이 2004년 올해의 작가로 윤광조를 선정하고 전시회를 엶으로써 그는 국내외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전시회에 그치지 않고 필라델피아미술관과 시애틀미술관, 그리고 한국의 국립현대미술관이 윤광조의 작품을 구입했다.

1991년 호주의 맥쿼리갤러리에서 개인전으로 세계도예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지만,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미국과 유럽의 유명갤러리와 미술관에서의 그의 전시회는 그를 국제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기에 충분했다. 그에 대한 평가는 국내보다 외국에서 더 좋았고, 한국작가에 대한 이러한 관심과 호평은 다른 장르에서도 매우 드문 일이었다. 사실 우리는 너무 가까이 있는 가치들에 대해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새로움을 향한 끝없는 질주로 정처 없이 흘러가는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 그들이 아시아의 작은 나라의 도예가에게 주목한 것은 무엇일까? 또 한국인만이 지니고 있는 독특하고 미묘한 정서가 그들에게 해석되고 이해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들은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시킨다.

서구인들에게 전통 회귀적으로 비췰 것 같았던 윤광조의 작품이 우려와는 달리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것 같다. 에드워드 J. 소잔스키는 Philadelphia Inquirer지에서 “현대 도예는 과도한 장식과 복잡함이 만연하다. 그래서인지 한국의 도예가 윤광조의 기품 있고 차분한, 자연 그대로의 그릇은 관람객의 감각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고 적고 있다. 추상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은 서구의 현대도예는 기능성을 버리고 격정적 내면을 과장된 몸짓으로 표현하여 기존 양식에 충격을 주고자 했다. 이러한 충격에 익숙해 있던 그들에게 기능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단아한 기품과 우아한 격조를 지닌 윤광조 작품은 안목 있는 서구인들에게 오히려 신선한 충격으로 보였던 것 같다.

사실 서구인으로서 이러한 안목과 코드를 지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전통적인 한국의 예술품들은 서구미술에서처럼 인간의 위용을 뽐내는 화려하고 세련된 기교나 개인주의적이고 천재주의적인 발상과는 거리가 있다. 그것은 그렇게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예술을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가 달랐기 때문이다. 한국의 전통 예술은 본래 생활과의 밀접한 관련 속에서 출발하며, 걸작에 대한 의식조차 없는 무심한 상태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즉 생활에서 필요한 기능적 관심에서 출발하지만, 곧 그것에 대해 ‘무관심’하고, 초월적인 세계에 도달하고자하는 수단이었다. 그럼으로써 생활상의 필요를 만족시킴과 동시에 사회화되기 이전의 인간 본연의 꿈과 이데아를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그것은 자연으로서의 물성과 인간으로서의 작가자신의 대화와 합일을 통해 가능한 것이고, 이 두 힘의 게임 같은 작용을 그대로 반영함으로써 드러난다. 그럼으로써 작가는 너와 내가 없는 무아지경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으며, 작품은 아름다움과 추함, 혹은 좋음과 나쁨 같은 이성의 이분법적 구분조차 생기기 이전의 필연적 결과물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작품의 가치는 막연한 아름다움이나 아방가르드적 충격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능적 요구와 물성의 소리, 그리고 작가의 자유의지가 만나 이루어지는 삼각관계를 얼마나 리얼하고 긴박하게 드러내느냐에 있는 것이다. 기능적 요구와 물성의 소리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제어하고, 인간의 자유의지는 기능의 경직성과 물성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한다. 이러한 복잡한 힘의 역학 관계에서 나온 작품은 세련될 수 없고 어정쩡하게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미는 기술적 개념이 들어가는 미술(美術)이라기보다 민예(民藝)적인 것이다. 여기서 민(民)의 개념은 단순한 서민이나 민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이고 제도화된 인위적인 이성, 즉 도구적 이성의 상태에서 벗어나 보다 본능적이고 근원적인 자유에 도달한 사람을 말한다. 그것은 사람을 놀라게 하는 기술이 아니라 자연에 귀의하는 인간 수행의 하나의 방법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미술은 ‘예도(藝道)’가 되며, 윤광조의 도예는 바로 그러한 한국의 전통적인 민예 정신과 분청사기의 미학을 계승한 것이다.

 

 

 

 

시애틀 타임지에 전시평을 쓴 패트릭 쿨리컨은 “윤광조는 그저 자신의 예술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창조 과정 바로 그 안에서 예술을 몸소 살려내고 있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그의 작업은 종교적 발견의 과정인 동시에 일찍이 사라졌던 옛 도예조각 기법을 되살리는 데 일조했다는 점에서 한국 예술의 재발견의 과정이기도 하다.”고 평하고 있다. 이 말은 작가의 위치를 서구처럼 주체가 되어 창조자로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자로 제한된다는 점, 또 미술의 본질이 인위적 기술이 아니라 일종의 종교적 귀의라는 점, 또 그것이 한국전통예술의 본질이라는 점을 정확히 읽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서구미학과 전혀 다른 한국적 미의식이 서구인들의 눈에 의해 읽혀지고 있는 점은 윤광조의 양식 언어가 국제적인 소통 가능성을 열어주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세련된 미감을 가진 사람들에게 윤광조의 작품은 조형적으로 어설프고 만들다 만 것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자연과의 긴장된 교류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오는 것으로 그러한 불완전함에 생생한 ‘기(氣)’가 살아 숨 쉬는 것이다. 일찍이 고유섭 선생이 ‘무기교의 기교’, ‘무계획의 계획’이라고 불렀던 이 고도의 전략을 서구인들이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은 여간 기특한 일이 아니다.

버트 워서맨은 아트뷰스지에서 “윤광조는 매끈한 도자기 특유의 세련미를 비껴가는 대신 심미안을 가진 관객에게 풍부하고 견고한 흙의 느낌과 심오한 정신적 반향으로 살아 숨 쉬게 한다.”고 적고 있다. 또 “어떤 작품들은 각 부분이 이뤄내는 놀라우리만치 완벽한 조화가 전체로서의 작품의 혼으로 거듭나는 모습을 몇 번이고 관객의 눈앞에 보여준다.”고 적고 있다. 그가 말하는 ‘심오한 정신’이나 ‘혼으로 거듭난다.’는 표현은 윤광조의 작품이 기능성이나 물성에 매몰되지 않고, 그들과 대화하고 타협하며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내려는 작가의 의지와 정신을 읽어내고 있는 것이다. 또 그는 그러한 세련되지 못해 보이는 작품들이 주는 효과가 “관객에게 자칫하면 흐릿하고 막연한 채로 사라져버릴 수 있었던 감정에 집중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윤광조 작품이 이성으로 포착하거나 언어화 될 수 힘든 미세하고 미묘한 감정을 해방시킬 수 있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서구적 개념으로 인식하기 어려운 ‘기(氣)’를 말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버트 워서맨은 전생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한국인의 정서를 이해할 수 있는 코드를 지고고 있는 듯하다. 특히 다음의 낭만적 구절은 윤광조와 한국인의 미의식에 대한 그의 놀랄만한 통찰을 드러내 주고 있다. “인간의 기질 안에는 하늘에 걸린 별에 이르고자 하는 무언가가 있다. 혹자는 이를 두고 오만한 소망이라 할는지도 모른다. 아무렴 어떤가! 윤광조가 내놓는 결과물에 강렬하게 반응할 준비가 된 이들에게, 윤광조의 예술은 하늘의 별에도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을 선사하는 것을. 그 소망의 충족이 완전히 현실적인 가능성으로 다가오는 것을.”

 

 

 

 

그렇다. 이것이 술을 좋아하고 어린이 같이 천진난만한 인간 윤광조의 일상의 모습이다. 그는 매우 현실적인 인간이면서 현실을 초월하고자 한다. 그에게 초월은 현실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제약과 도구적 이성으로부터 벗어난 인간 본연의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그는 이를 위해 술을 즐기고 작품제작을 즐긴다. 현실을 ‘통한’ 현실의 초월, 일상을 ‘통한’ 일상의 초월이야말로 윤광조 예술의 궁극적 지향점이자 한국미술의 터전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려는 사실주의나 현실을 인위적으로 초월하려는 초현실주의나 추상미술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현실적 삶에 충실하면서 이성의 이분법적 대립과 갈등 이전의 본향에 대한 동경은 한국인 특유의 낭만이다. 한국인들이 술을 좋아하는 것도 그러한 낭만적 세계에 대한 이데아가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한국 전통예술에서 그러한 낭만적 정서는 분청사기나 조선 민화, 그리고 박수근, 김환기, 이중섭, 장욱진의 회화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한국적인 민예 미학의 정수이며, 차갑고 비인간적인 혹은 그린버그의 용어대로 자기지시적인 서구 미니멀 아트와 전적으로 다른 점이다. 서구 미니멀리스트들은 재현 대상과 인간내면을 재거하고 차가운 물질만을 현전시킬 때 현상학적 몰입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상학적 몰입은 그렇게 일방적인 물성의 승리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물성이 서로의 힘이 비등하여 긴장된 게임과 같이 될 때 가능한 것이다. 서구 미니멀리즘은 비인간적이면서 초월적이지만, 윤광조의 작품은 인간적이면서 초월적이다.

필립 루이스가 International Examiner지에서 윤광조 작품은 “마치 ‘분청 한 잔을 마시자’ 며 천진난만하게 권하는 윤광조의 웃음소리가 그 산중으로부터 들려오는 듯하다.”고 표현한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일 것이다. 윤광조는 속세에 묻혀 살려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속세를 완전히 떠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그가 거주하는 경주의 산곡은 번잡한 속세도 아니고, 인간이 범접하기 불가능한 곳도 아니다. 가기는 어려우나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그런 곳이다. 그곳에서 쓰는 그의 산중일기는 인간적이면서 초월적이다. 이번 해외 전시회는 자신의 일기가 곧 한국의 일기이고, 세계의 일기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전통의 현대화에 골몰하는 한국화단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 윤광조(尹光照, 1946-  )

1946 함경남도 함흥 출생 | 1973  홍익대학교 미대 공예학부 졸업,  제7회 동아공예대전 대상 수상 | 1974 한국문화공보부 추천 일본 당진 유학 | 1979 제4회 공간도예대전 우수상 수상 | 2004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선정 | 2008 경암학술상-예술 부분 수상

주요 전시회

1978 윤광조.장욱진 합작전(현대화랑, 서울) | 1986 크래프트센타갤러리(교토, 일본) | 1991 선화랑(서울), 맥쿼리갤러리(시드니, 호주) | 1992 누사갤러리(트원틴, 호주) | 1994 한국미, 그 현대적 변용전(호암갤러리, 서울) | 1999 가나아트센타(서울) | 2002 가나보부르(파리, 프랑스), 신생당 화랑(도쿄, 일본) | 2003 베쏭갤러리(런던, 영국), 필라델피아미술관(미국) | 2004 버밍험미술관(영국), 과천현대미술관(과천, 한국) | 2005 시애틀뮤지엄(미국)

개인전

1976 신세계미술관, 서울(11/30-12/5) | 1978 현대화랑, 서울(12/1-12/7) | 1979 윤광조 생활용기전, 통인화랑, 서울(5/22-5/28) | 1980 윤광조 소품전, 통인화랑, 서울(11/17-11/22) | 1981 남경화랑, 광주(10/23-10/29) | 1984 예화랑, 서울(11/3-11/9),  맥향화랑, 대구(6/4-6/15) | 1986 한국미술관, 서울(10/15-10-21),  크래프트 센타 갤러리, 교토, 일본(12/18-12/23) | 1987 현대화랑(강남), 서울(10/10-10/17) | 1989 식기전, 리빙아츠, 서울(4/28-5/7) | 1991 선화랑, 서울(4/9-4/20),  지니스화랑, 부산(5/23-6/2),  맥쿼리 갤러리, 시드니, 호주(8/3-9/7) | 1992 누사 미술관, 티완틴, 호주(1/12-2/9),  생활용기 전, 지니스화랑, 부산(9월) | 1996 생활용기 전, 리빙아츠, 서울(3/4-4/3) | 1997 윤광조 그릇전, 다도화랑, 서울(5/8-5/16) | 1998 분당 삼성플라자 갤러리, 경기도 분당(5/3-5/9),  미사화랑, 서울(10/9-10/31) | 1999 조형성과 실용성의 만남-윤광조 전, 가나아트센터, 서울(12/2-12/19) | 2000 수가화랑, 부산(3/21-4/5), 다도화랑,서울(12/15-12/31) | 2002 신생당화랑, 도쿄, 일본(4/8-4/20),  가나보부르화랑, 파리, 프랑스(9/17-10/5),  통인갤러리뉴욕, 뉴욕, 미국(10/1-10/31) | 2003 베쏭갤러리, 런던, 영국(5/21-6/19),  산중일기-윤광조의 현대도예전, 필라델피아미술관, 필라델피아, 미국(9/2-12/31) | 2004 버밍험미술관, 알라바마, 미국,  올해의 작가 2004-김익영.윤광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11/16-12/26) | 2005 윤광조의 현대토예전, 시애틀미술관, 시애틀, 미국(2004.11/13-2005.6/19) | 2006 수가화랑, 부산(10/25-11/24) | 2008 윤광조 “경암학술상” 예술분야 수상 기념전

단체전

1973 구주현대공예미술전, 가라쯔, 일본 | 1974 제1회 전국공예가초대전, 미술회관, 서울 | 1974-79 공예동우회전, 신문회관, 서울 | 1975 광복 30주년기념 한국현대공예대전, 국립현대미술관(덕수궁), 서울,  제2회 전국 공예가초대전, 미술회관, 서울 | 1977 77년 신춘초대전, 현대화랑, 서울,  도작가전, 미도파미술관, 서울,  1978 장욱진.윤광조 합작전, 현대화랑, 서울,  한국현대도예전, 국립현대미술관(덕수궁), 서울 | 1982 한국미술대상 촏작가전, 국립현대미술관(덕수궁), 서울 한.미 수교 100주년 기념 한국현대도예전, LA문화원, 로스앤젤레스/뉴욕 문화원, 뉴욕, 미국 | 1983 한.독, 한.영 수교 100주년 기념 한국현대도예전, 쾰른, 독일/런던, 영국,  인도정부초청 한국현대도예전, 뉴델리/폼베이/마두라스, 인도 | 1984 한국미술대상 초대작가전, 국립현대미술관(덕수궁), 서울,  홍익현대미술전, 홍대박물관, 서울,  제13회 주니치 국제도예전, 나고야 오리엔탈화랑, 나고야, 일본 | 1986 3인의 작업전, 신세계미술관, 서울,  한국현대미술의 어제와 오늘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 1987 한국작가 15일전, 도쿄, 일본 | 1988 NCECA 88, 포틀랜드, 미국,  오늘의 분청작가 3인전, 토갤러리, 서울 | 1989 현대미술초대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 1990 동방과 북구 만남전, 포시오, 핀란드 | 1992 현대분청 2인전, 다도화랑, 서울,  ‘93 서울공예대전, 시립미술관, 서울,  제2회 청담 아트페어, 서울 | 1994 한국 현대 대세예 30년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 1996 제1회 아시아 공예전, 후쿠오카, 일본 | 1997 독일관 한국-제 7회 트리엔날레 형태와 내용전, 프랑크프르트 공예박물관, 독일 | 1998 제 6회 호주현대미술 아트페어, 멜본, 호주,  한국 도공의 정신전, 성곡미술관, 서울,  우리들의 도예 즐김, 토아트 스페이스, 서울 | 1999 우리다운 도예, 토아트, 서울 | 2000 인터내셔널 인퓨전, 시바리스 갤러리, 미시건, 미국 | 2001 책의 향과 기전, 아트사이드, 서울,  NICAF, 도쿄, 일본,  분청사기 명품전Ⅱ:한국미의 원형을 찾아, 호암갤러리, 서울 | 2002 4인전-조각.회화.도예, 삼성플라자갤러리, 경기도 분당 | 2003 한국공예-전통과 변주, 샌디에고대학 LRC홀, 샌디에고. 미국 | 2004 이비뎀갤러리 개관기획전-조각.회화.도예, 이비뎀갤러리, 경기도 파주 | 2006 SOFA 시카고 전, 시카고, 미국 | 2007 SOFA 뉴욕 전, 뉴욕, 미국,  FISKARS VILLAGE 전, 휘스카, 핀란드,  "한국미술-여백의 발견" 삼성리움미술관, 서울 

주요 작품 소장처

국립현대미술관(서울), 삼성미술관(서울), 워커힐미술관(서울), 영은미술관(경기도 광주), 대영박물관(영국), 빅토리아 국립미술관(호주), 퀸스랜드미술관(호주), NSW미술관(시드니, 호주), 마리몽 로얄미술관(브뤼셀, 벨기에), LA한국문화원(LA, 미국), 스미소니언 자연사박물관(워싱턴, 미국), 필라델피아미술관(필라델피아, 미국), 시애틀미술관(시애틀, 미국), 샌프란시스코 미술관(샌프란시스코 미국)

 
 

vol.20081211-윤광조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