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순 展

 

- 조선의 얼 The Spirit of Chosun -

 

조선의 얼 The Spirit of Chosun, 한지+필서체, 6110×1700mm, Mixed media with Antique book, 2008

 

 

인사아트센터

 

2008. 11. 19(수) ▶ 2008. 11. 25(화)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훈동 188 | 02-736-1020

오프닝 : 2008.11.19(수) 오후 5:00

 

 

조선의 얼 The Spirit of Chosun, 한지×필서×색체, 4550×1700mm, Mixed media with Antique book, 2008

 

 

-겹쳐진 시간의 얼굴-

이건수 |  미술비평,  월간미술 편집장

얼굴이란 말은"얼의 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 사람의 정신은 얼굴이라는 형태학(morphology)으로 드러난다. 어떤 정신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서 인간의 대표적인 표현수단인 얼굴의 표정은 달라질 것이고, 때문에 다양한 정신이 있는 그만큼 다양한 얼굴의 모양이 생겨나게 된다. 이제 우리의 육체는 정신의 그릇이며, 인생의 지도가 된다. 그런 생각을 서양적인 맥락에서 본다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예술의 본질이 형상과 질료의 통일, 즉 내용과 형식의 통일에 있다고 한 것이나, 헤겔이 예술과 역사라는 것이 절대정신의 드러남이라고 한 것이나, 다 빈치가 인간 얼굴의 형태적 비례에 따라서 선과 악, 미와 추의 전형을 찾으려 했던 것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다른 패러다임을 가진 동양에서도 《마의상서(麻衣相書)》와 같은 각종 관상서를 통해 일종의 통계학적인 운명론을 펼친 것도 사실은 형태를 통한 정신 해독, 형태를 통한 가치 평가를 지향한 것을 의미한다. "꼴값한다"느니" 생긴대로 논다" 느니 하는 말들은 이런 얼(정신)과 꼴(형태)의 통일을 현실 속에서 체험한 우리들의 경험적인 판단에서 나온 것이다.    김태순은 이번 전시의 테마를 "조선의 얼"이라 칭했다. 기존의 전시 제목들이 얼이었던 것에 비해 조선이라는 또 하나의 개념을 붙인 것은 왜일까. 최근의 작업에 조선이라는 시대적인 정체성을 부가시킨 차별성이 존재하는 것일까. 만약 있다면 조선이 다른 역사적인 배경들과 구분되며 독자적인 색채를 구가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란 말인가.   알다시피 김태순의 기존 작품은 기본적인 재료로 한지를 사용하고 있으며, 옛 서책들과 옛 필서(筆書)들을 가감 없이 그대로 인용하여 콜라주로 구성해 놓은 화면이 주를 이룬다. 그것은 옛 글씨에 각인된 글쓴이의 당시 개인적인 기분과 정서, 그 시대의 역사적인 아우라를 화면에 직접적으로 주입시키려는 그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글몸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서체(書體)라는 것도 글쓴이의 얼이 각종 필법에 의해서 드러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데, 거기엔 그 사람의 붓놀림의 운동 과정과 습관 까지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에서 양반의 조건으로서 신언서판(身言書判)을 든 것도 이런 체계화된 몸의 흐름만이 높은 미적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그 당시 사람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 글이 쓰여진 시대, 개성, 운동 등 총체적 예술 행위에 대한 퍼포먼스의 흔적을 그는 이용하여, 존 듀이(John Dewey)가 말하듯 “하나의 체험으로서의 예술(art as an experience)”임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몸을 총체화시키고 개성화시키는 예술적 체험을 그는 소중히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의 얼 The Spirit of Chosun, 한지+갓+필서, 1150×1650mm, Mixed media with Antique book, 2005

 

 

그렇기 때문에 김태순의 작업은 단순히 결과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생각과 육체가 결합된 퍼포먼스, 과정으로서의 그림(picture as a process)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우리가 화가의 붓질을 통해 그의 운동과 사고의 진퇴를 추적해볼 수 있는 것처럼, 김태순의 화면을 보면서 우리는 그의 상상력의 근저에까지 도달하려 애쓴다. 한 장 한 장 겹쳐지는 서체들은 서로 의미의 충돌 속에서 이질적인 내용이지만 결국은 같은 분위기의 동의어가 되어 있는 화면 속의 심층적 합일을 발견하게 된다.   얼마 전부터 김태순은 이런 일종의 무대미술적인 미장센 뒤에 거의 실물 사이즈의 종이옷을 앗상블라주한다. 브라크나 피카소가 했던 파피에 콜레(papier colle)라는 것이 더 적절하겠다. 주로 전통 한복의 겹침을 통해 화면에 또 다른 변화와 율동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의 색채라고 할 수 있는 담담한 초록과 강렬한 빨강의 보색 조화라든지, 깊은 먹빛과 따뜻한 흰색의 믹스 앤 매치를 통해 화면에 추상적인 형태 구성을 모색하고 있다. 울밑에선 봉선화, 장독대 옆 맨드라미가 주는 애절하면서도 투명한 빛깔의 조화가 그의 화면 속에는 숨겨져 있다. 검은 반닫이 장위에 무심히 놓여진 달 항아리의 울림이 화면 속에 녹아 있다.  전통 한복의 특징은 그것의 평면성에 있다. 서구의 옷은 입체감과 볼륨감을 중시하여 제작되기 때문에 그 시작부터 입체적인 옷 틀에서 만들어지고 완성된 옷은 입체적인 옷걸이에 걸리게 된다. 그러나 우리의 전통 옷들은 마치 종이접기처럼 개켜지고 차곡차곡 포개져 장롱의 서랍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김태순은 우리 옷의 이런 평면적인 특성을 활용하여 그것을 화면 속에 배열함으로써, 2차원과 3차원의 경계, 평면과 입체의 한계를 넘나드는 우리식의 큐비즘을 만들어 놓았다. 결국 조선의 얼은 서구적인 기준과는 다른 조선적인 색채와 형태의 컴포지션을 통해 드러나고 그것은 지극한 자연주의를 지향한다.  그것은 전통의 몸을 빌은 현대이며, 레디메이드의 재맥락화를 통한 새로운 변증법이다. 다만 조선의 얼이 종이라는 매체에 단순히 덮혀지는 것이 아니라 흡수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시대의 이념이 김태순의 책 속으로 녹아 스며드는 결정체로 남게 되길 기대한다. 그럴 때 그의 화면은 촉촉한 광채를 지니게 될 것이다.         

 

 

조선의 얼 The Spirit of Chosun, 한지+필서채, 1150×1650mm, Mixed media with Antique book, 2006

 

 

고충환 |  미술평론 中에서

김태순은 이러한 회화적 요소들을 그대로 지속시키기 위해 가필을 최소화함으로써 서책 본래의 미적 감수성이 제대로 발현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이따금씩 여기에 문고리와 같은 오브제를 부가하거나, 전통 의복 중의 하나인 두루마기를 종이로 재현한 것을 화면에 더하는 방식으로 전통적인 이미지를 견인해낸다. 두루마기 자체는 실물을 그대로 재현한 크기도 그렇지만 실제로 입을 수 있는 것이어서, 단순한 회화적 오브제를 넘어선다. 말하자면 회화적 오브제와 레디메이드를 하나로 넘나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두루마기의 상당 부분이 서책과 함께 화면에 밀착돼 있는 반면, 동정과 두루마기 자락의 일부는 화면 위로 들떠서 돌출돼 있다. 이는 회화적 평면과 함께 일말의 부조적이고 입체적인 가능성을 겨냥한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과정에 견주어 볼 때, 작가의 작업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그리는 방식과는 거리를 갖는다. 오히려 회화적 화면을 만들고 구축하는 식의 구조화의 방식에 가깝다. 엄밀하게는 종이를 찢어 붙이는 식의 콜라주와 파피에콜레에 가깝고, 서책이라는 전통적인 기물에서 상당한 조형적 가능성을 발견한다는 점에서는 일종의 발견된 오브제와도 무관하지 않다. 발견된 오브제 자체는 자연의 미적 감수성과 작가의 미적 감수성이 하나로 만난 산물이다. 여기서 자연이 미적 감수성의 주체가 될 수 없으므로 그것은 결국 우연성으로 봐야 하며, 어떤 기물에 대한 자연의 우연한 변형과 변질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 변형은 자연이 만든 것이므로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으며, 이는 그대로 인간의 심성에도, 그 조형적 감수성에도 거리낌이 없다. 이렇듯 작가의 작업은 전통적인 미적 감수성에 그 맥이 닿아 있다. 여기서 전통은 현재의 작가가 유래한 근본에로 자신을 끊임없이 되돌려 놓는(정체성을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와 함께 현재의 시점에 속한 것이기도 하다. 즉, 과거와 현재의 시점을 하나로 관통하는 어떤 통로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 통로를 열어주는 계기로서의 ‘얼’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비감각적인 것이지만, 그것은 마치 생명과도 같은 것이어서 그것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존재한다고 할 수가 없다. 이는 그대로 이념의 감각적 현현(顯現) 곧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라는 예술의 정의와도 통한다. 여기서 보이지 않는 것이 곧 ‘얼’인 것이며, 이러한 보이지 않는 얼에 상징적인 옷을 입혀 보이게 하는 사람이 무당이다. 동굴벽화를 그린 최초의 예술가가 무당이었고, 감각적인 세계 저편을 꿈꾼 연금술사와 점성가들이 무당이었다. 그리고 예술가의 행위는 상당할 정도로 무당의 행위와 구별되지 않는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렇듯 모든 예술가의 마음속에는 무당의 피가 흐르고 있다. 김태순이 헤아릴 수조차 없는 시간의 먼지를 눌러 쓴 서책 속에 배어든 문향과 묵향 속에서 찾아낸 전통은 마치 무당이 그런 것처럼 옛사람과 만나는 계기를 열어 놓는다.  

 

조선의 얼 The Spirit of Chosun, 한지+염색, 1700×1220mm, Korean traditional paper, 2008

 

 

조선의 얼 The Spirit of Chosun, 한지+입체고서, 470×700mm, Mixed media with Antique book, 2008

 

 

조선의 얼 The Spirit of Chosun, 2020×520mm, Mixed media with Antique book, 2008

 

 

 

 

 
 

■ 김태순

 

1952 경남 창녕 출생 | 1973~1975 경남 창원 대산 중,고등학교 미술교사 역임 | 1977 동아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 전공 

개인전_2008 인사아트센터, 서울 | 2008 해공미술관, 하남 | 2007 마린갤러리, 부산 | 대우백화점 갤러리, 마산 | 2003 박여숙화랑, 서울 | 1999 힐튼호텔 / 예술의 전당, 서울 | 1998 종로갤러리 / 백송화랑, 서울 | 1996 종로갤러리 / 백송화랑, 서울 | 1994 종로갤러리, 서울 | 1993 경인미술관, 서울 | 1974 칠보다방, 창녕 

아트페어_2006 멜버른 아트페어, 박여숙화랑, 호주 | 월드컵 기념전, 갤러리 Vielfait / 갤러리 Forum, 독일 | 2005 시카고 아트페어, 두루 아트스페이스, 미국 | 쾰른 아트페어, 두루 아트스페이스, 독일 | 2003 시카고 아트페어, 박여숙화랑, 미국 | 멜버른 아트페어, 박여숙화랑, 호주 | 2002 샌프란시스코 아트페어, 박여숙화랑, 미국 | 시카고 아트페어, 박여숙화랑, 미국 | 아트 팜 비치, 박여숙화랑, 미국 | 2001 샌프란시스코 아트페어, 박여숙화랑, 미국 | 멜버른 아트페어, 박여숙화랑, 호주 | 1996 스페인전, 마드리드, 스페인  

단체전_2008-2005  씨올회전 | 2005 종이를 만나다展, 인사아트센터, 서울 | 2004 운사회展, 인사아트센터, 서울 | 2003 청담동 미술제, 박여숙화랑, 서울 | 100인 작가展, 빛갤러리, 서울 | 2002 동고동락展 박여숙화랑, 서울 | 포스트 아트페어, 박여숙화랑, 서울 | 2001 19주년 기념전, 박여숙화랑, 서울 | 2000 창녕 미협전, 창녕 / 강남미협전, 서울 | 1999 전주 한지박람회, 전주 | 1998 강남 아트페어, 포스코센터, 서울 

소장_버나드 만델 크래머, 샌프란시스코 | 린제이 셀란 파인아트 컨설팅, 말리부 | H.W.리처즈, 애서튼 | 샌드라 노이스태들러 갤러리, 팜비치 | 르네 콜린스, 보카라톤 | 길버트 레빈, 애너폴리스 | 로라 퍼디, 팜비치 | 마리나 S. 방스하우프트, 스위스 | 로저 앨른, 멜버른 | 로빈 카일, 시카고 | 잉그리드 버나즈, 스위스

E-mail, tskim127@yahoo.co.kr

 
 

vol. 20081119-김태순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