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선 사진展

 

- Disappearing Occupations in Modern Life -

 

고병선_01-미니주유소

 

 

갤러리 나우

 

2008. 10. 22(월) ▶ 2008. 10. 28(일)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92-13 성지빌딩 3층 | T.02-725-2930

 

www.gallery-now.com

 

 

고병선_02-삼천리연탄

 

 

어제의 기록에서 내일에의 기억으로

 

 김진영 (예술비평. 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

 

고병선의 사진들은 보는 사람을 애잔하게 만든다. 그건 그의 사진 안에 과거의 얼굴들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 얼굴들은 그러나 사람의 얼굴이 아니다. 그건 직업이라는 이름의 얼굴들이다. 이 얼굴들은 모두가 늙은 얼굴들, 즉 옛 직업의 얼굴들이다. 하지만 고병선의 사진들이 불러일으키는 애잔함의 분위기는 그 직업의 얼굴들이 속절없이 세월의 주름을 안고 있어서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 애잔함은 그 과거의 얼굴들이 낯설지만 더 없이 친숙하기 때문이다. 고병선의 사진들이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정서는 그러니까 이 옛 직업의 얼굴들과 그 얼굴의 낯설음과 친숙함이 만들어내는 마음의 화학작용 때문이다. 하지만 고 병선의 프레임 안에 담겨 있는 옛 직업의 얼굴들이 다만 추억의 이미지들만은 아니다.  그 안에는 고 병선이 정직한 카메라의 시선으로 포착하는 옛 직업들의 풍경을 통해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들이 담겨 있다. 이 메시지들은 무엇일까?

 

 

고병선_03-직행버스정류장

 

 

내가 보기에 고 병선의 사진들 안에서 읽을 수 있는 메시지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정보적 층위의 메시지’가 있다. 고 병선이 보여주는 직업의 풍경들은 아마도 이 나라의 자본주의 시장화가 아직은 초기 단계에 있었던 60-70년대의 풍경, 그러니까 반세기 전의 직업 풍경들이다. 반세기 전의 시대는 계량적 시간으로도 가깝지 않지만 초고속의 경제 성장을 좆아 사회 구석구석이 빠르게 재편성되고 변화되어 온 이 나라의 시간 감각 때문에 더 더욱 멀어지고 잊혀져서 이제는 망각된 시대이기도 하다. 고 병선은 직업을 오브제로 삼아 이 망각된 시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고 병선이 직업 풍경의 기록을 통해서 보여주는 정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문자적 정보, 즉 개개의 간판들에서 구체적으로 읽을 수 있는 직업의 이름들이다. 이 직업의 이름들을 통해서 우리는 당대의 일상적 삶을 구성했던 직업의 종류들과 그 변화 과정을 알아볼 수 있다. 또 하나의 정보는 이미지를 통한 정보, 즉 개개의 직업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다양한 방식들이다. 예컨대 직업의 이름을 이미지화 하는 타이포그래피, 물건을 전시하는 방식, 개개 직업에 따라 차이를 지니는 점포의 형태들은 그 시대의 다양한 직업들이 저마다 자기를 표현해 내는 특정한 시각적 문화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고병선_04-종묘시장

 

 

두 번째로 읽을 수 있는 건 ‘역사적 층위의 메시지’다. 고 병선이 보여주는 직업의 풍경들은 지난 시대의 풍경들이다. 그러나 그 과거의 풍경들이 오늘과 무관한 어제의 얼굴들만을 지시하는 건 아니다. 이미지의 시간적 특수성이 비록 한 이미지가 특정한 시간대에 국한되는 것이라고 해도 보는 이의 연상 작용 속에서 오늘과 내일의 시간으로 이어지는 연속성에 있다면 고 병선의 과거 이미지들 또한 다르지 않다. 그의 사진 프레임 안에 들어 있는 직업의 풍경들은 분명히 과거의 시간대에 제한된 것이지만 그 과거의 이미지들은 어제만이 아니라  오늘과 내일의 시간대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러한 시간의 연속성 안에서 우리가 성찰하게 되는 건 직업들과 그 직업들을 통해서 영위되는 시대적 삶의 관계들이다. 예컨대 고 병선의 사진들이 보여주는 직업의 풍경들을 통해서 우리는 어제의 삶과 오늘의 삶을 비교하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비교 안에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이 다만 어제의 가난과 오늘의 풍요라는 경제적인 삶의 양적 차이만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아프게 확인하게 되는 건 가난 한 어제와 풍요한 오늘 사이에서 스스로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삶의 질적 차이이다. 고 병선이 옛 직업의 얼굴들을 통해서 보여주는 과거의 삶은 비록 가난하지만 그 안에 간직된 단순함과 소박함으로 오늘 우리의 삶이 풍요라는 이름을 앞세워 잃어버리고 망각해 버린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새삼 아프게 깨닫게 만든다. 하지만 그러한 아픈 깨달음은 어제와 오늘의 비교와 인식에서 끝나지 않는다. 어제의 이미지로부터 촉발되는 오늘에의 성찰은 더 나아가 내일의 삶에 대한 성찰, 다시 말해 물질적 풍요만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도록 강요되는 오늘의 삶이 그 맹목성과 가속도를 멈추지 않는 한 내일의 삶 또한 풍요라는 이름의 가난 속으로 더 깊이 빠져들고 말 것이라는 미래에의 기억으로 이어진다. 고 병선의 옛 직업 이미지들이 보는 이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역사의 메시지가 있다면 그건 다름 아닌 이 미래에의 기억일 것이다.

 

 

고병선_05-동산약방

 

 

고 병선은 과거의 직업들을 사진 프레임 안에 기록한다. 그 기록은 시간 속에서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의 표현일 수도 있고 역사적 자료의 가치를 위한 수집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건 그 기록들이 오늘과 내일의 삶을 돌아보고 예감케 하는 역사적 성찰과 기억의 거울이라는 사실이다. 고 병선이 정직한 다큐멘터리의 시선으로 꼼꼼하게 옛 직업들의 얼굴을 기록하는 이유도 다름 아닌 그 거울을 닦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의 꾸밈없는 사진들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는 이유 또한 그 기록의 거울 앞에서 우리들 자신의 초상을 마주하기 때문일 것이다.

 

 

고병선_06-인일철공소

 

 

고병선_07-양복점

 
 

 

 
 

vol. 20081022-고병선 사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