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갑연 개인展

 

덩굴 풍경_289x145cm_oil on canvas_2008

 

 

노암갤러리

 

2008. 9. 3(수) ▶ 2008. 9. 9(화)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133 | 02-720-2235

 

www.noamgallery.com

 

 

덩굴 풍경_162x112cm_oil on canvas_2008

 

 

 박은영 | 조형예술학

 

한여름 낮에 담을 따라 자유롭게 기어오르는 담쟁이덩굴은 작가 최갑연의 화폭 속에 무한한 번식력과 강한 생명력으로 가득 찬, 짙은 녹색의 담쟁이 풍경을 만들어 낸다.  

무언가의 출현을 기다리는 듯한 밤의 몽상중의 풍경을 연상시키는 어스름한 가로등 빛 아래 벤치에 드리워진 담쟁이, 모노톤의 심포니를 이루며 풍경을 가로지르는 어느 스산한 호숫가의 담쟁이들을 이러저러한 배치의 질서를 통해 그려내는 그녀의 감성은 화면을 감싸고 있는 신비스럽고 예지적인 분위기 속으로 관람자를 초대하며 무언가 뜻밖의 발견의 기쁨을 안겨줄 것 같다.

잔가지들 없이 뻗어나간 담쟁이 덩이, 줄기가 간신히 드러나 가까스로 연결되어있는 듯한 담쟁이 잎들, 길가다 산책길에 우연히 스쳐 지나간 담쟁이를 담담한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는 최 갑연의 “덩굴 풍경” 연작은 우리 사고의 가장 본질적인 몇 가지 속성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덩굴 풍경_162x112cm_oil on canvas_2008

 

 

침묵 속에 이어진 듯 끊어진 담쟁이덩굴들의 선, 생성의 덩어리들은 그녀의 붓질의 변덕스럽고 즉흥적인 순간의 연약함을 따라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중간적 상태에 존재한다. 끊임없이 분절적이며 항상 다시 시작되어 도주하는 실체를 그리고자 하는 욕망은 화가의 화면에 단지 움직임의 흔적들만 남길 뿐, 흩어진 담쟁이 덩이줄기의 연속과 불연속의 형상들은 생성의 에너지를 강렬하게 분기하며 세상을 덮어버린다. 최갑연의 담쟁이 그림은 욕망의 끊임없는 이동, 들뢰즈에 의하면 분절적으로 흐르는 욕망인 것이다.

욕망은 잡히지 않는 감정의 변화를 따라 우리를 기다림과 상상의 영역으로 이끈다.

작가 최의 담쟁이 그리기는 흡사 현대인의 인터넷 항해와 같이 불안정하며 불규칙적인 생성과 망각의 리듬을 만든다. 컴퓨터를 끄면 넷 그물망에 걸려들었던 수많은 hyper text들은 순간 모두 사라진다. 작가는 이러한 현상을 담쟁이덩굴의 그것과 결코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본다.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의 이동, 그리고 어느 두 점의 중간쯤에 머무는 선천적으로 노마드적인 삶을 부유하며 떠도는 화면 속의 비물질적 존재들은 최갑연의 화폭에 등장하는 담쟁이의 흔적과 매우 흡사하다.   

 

 

덩굴 풍경_90x116cm_oil on canvas_2008

 

 

어느 여름 그녀에게 슬며시 다가온 평범한 담쟁이덩굴, 그녀는 어느새 이 끝없는 욕망의 덩어리에 사로잡혀 무수한 가지를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한다. 일상 저 너머에 존재하는 또 다른 영역을 꿈꾸며 그녀의 담쟁이 세계는 자연이 순환하듯 끊임없이 생성, 소멸 그리고 다시 태어나기를 멈추지 않는다.  

천 개의 담쟁이 잎사귀들은 계산적이거나 인위적이지 않은 가장 자연스런 변형의 헤테르포니적 다양성을 들려준다. 담쟁이 잎 하나하나가 이루어내는 불연속의 복합적 화음들은 자유롭게 열린 질서 속으로 확장되어 형상 없는 형상의 무한한 변주곡으로 다가온다.

하나의 형상은 끝없이 치열하게 공허한 또 하나의 형상으로의 환원을 갈망한다.  

“가을이 오면 어느 날 갑자기 담쟁이는 사라져 버리고 없다. 과거 인류의 문명이 그러했듯이 우리시대 또한 담쟁이의 어느 계절을 살고 있지 않을까?” 라고 작가는 말한다.

순간을 살며 영원을 꿈꾸는 인간 본연의 갈증은, 우리 시대를 사는 어느 화가에 의해 우리 문명의 한 표상으로써 선택된 담쟁이를 통해, 그녀가 그린 천 개의 담쟁이가 주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 보게 한다. 화가의 낯설며 친근한 담쟁이 풍경 속을 거닐며 다음 계절의 담쟁이를 기다려 본다.

 

 

덩굴 풍경_90x116cm_oil on canvas_2008

 

 

 

 
 

 

 
 

vol. 20080903-최갑연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