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de - 박은봉, 박재오 2인展

 

박은봉_볼-1_250x150x150mm_대리석,실

 

 

영광도서갤러리

 

2008. 9. 2(화) ▶ 2008. 9. 7(일)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전1동 397-55 | 051-816-9500

 

 

박은봉_볼-2_100x100x50mm_대리석, 실

 

 

<인식의 통일성과 이질성>

 

 나는 작업이 만들어내는 형상에 이야기를 담고 싶은 마음은 없다.  신랄한 사회적 비판이나 패러다임을 담고 싶은 마음은 더더욱 없다.  또한, 치밀한 마감이나 완벽한 기하학적 추상, 혹은, 의도된 구상에 대해서도 관심은 없다.

나의 작업은 오로지 관람자의 시점에서 인식하게 되는 통일성과 이질성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는다. 동일한 형태 혹은, 그렇지 않은 형태가 결합되어 하나의 덩어리를 이룬다면, 그것은 통일된 하나의 작품으로 보아야 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두 개의 이질적 작품으로 보아야 하는가? 혹은, 두 개의 이질적 형태와 그것이 모여 만들어진 한 덩어리, 즉, 3가지의 형태를 각기 분할시켜 인식하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이것은 관람자에게 인식의 확장과 함께 고정관념에서 탈피 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며, 재료의 통일성과 이질성이 아니라 인식의 통일성과 이질성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가장 기초적인 형태가 가지는 단조로움은 일련의 분할 . 결합의 과정 속에서 시각적  긴장감과 익숙하지 않은 형태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시키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흔히 말하는 퍼즐과는 다르다.  퍼즐의 piece 는 그것 자체로써 의미를 가지지는 않는다. 그것은 완전한 형태를 위해 존재하는 부속품에 지나지 않으며 완전한 형태가 만들어 지지 않는 한 아무런 의미가 없는 piece 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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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봉_볼-3_200x200x150mm_오석, 실

 

 

 이렇듯 개별 조각이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하는 퍼즐은 완성된 최종 형태에 관심이 갈 뿐, 그 기초에 대해서는 완성된 형태라는 인식을 가지지 못한다.  하지만, 나의 작업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물론, 개별 조각이 모여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는 것에 있어서는 퍼즐과 유사하나, 그것은 각기 자신만의 독립된 시각적 기준을 제공해 주며, 동시에 물리적 결합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큰 통일된 형태 속의 부속물로써 또 다른 시각적 기준을 제공하는 것이다.  어느 부분에 시각적 기준을 둘 것 이냐 하는 문제는 관람자의 몫이다. 마치, 분석주의가 부분을 기준으로 전체를 인식하듯, 하나의 piece 를 보고 전체를 상상하느냐? 아니면 결합된 형태에 기준을 두느냐? 혹은, 두 piece 를 물리적으로 결합하고 있는 연결체를 볼 것이냐 하는 문제이며, 이 문제의 해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철저하게 관람자라는 것이다.   어디에 기준을 두든, 그것은 작업의 소산물을 대하는 개인의 차이일 뿐이다. 하지만, 작업의 결과물을 공개하는 나의 입장에서 당부해 두고 싶은 것은 단 한가지다. 그것은 인식의 통일성과 이질성에 대해 조금 더 음미 해 달라는 것이다.    

 

 

박재오_power up!_40x26x58cm

 

 

<즐거운 농담 - 마시마로의 블랙 코미디>

 

 ‘마시마로’ 를 아는가?

 

 찢어진 눈에 통통한 볼살과 뱃살을 뽐내며 사각형의 모니터 속에서 허무한 블랙 코미디를 연기하던 이 캐릭터는 자본주의라는 괴물을 만나면서 저급한 싸구려 제품의 포장부터 아이들의 신발에 이르기 까지, 광대한 영역을 확장시켜 나갔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지나간 유행의 산물일 뿐이며 더 이상 ‘마시마로’ 의 코미디에 열광하는 ‘오타쿠’ 는 찾아보기 힘들다.  마치, 한국을 넘어 전 세계를 휩쓸듯이 열광하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캐릭터의 생명력도 기대와는 다르게 너무 빨리 소진되어 버렸다.  이것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지나치게 가볍고 변화 속도가 빠르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자본의 두려움도 동시에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이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창조물은 냉정하게 버림받고, 그 자리를 또 다른 대중의 취향에 맞춘 창조물이 자리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이클이 너무나 빨리 진행되기 때문에 우리는 한 세기의 기준이 될 만한 정신적 기둥을 찾기가 어렵다. 혹자는 21세기의 ‘아방가르드’ 라고 하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주류가 되고 싶어 하는 비주류의 공격일 뿐이다. 거기에는 기존의 것을 타파하고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내고자 하는 전위적 행위는 없고, 단지 기존의 것을 재생산하고 재조합하는 편법만이 존재하고 이러한 편법의 반복은 가벼운 것들에 대한 맹목적 복종만을 가져온다.

 

 

박재오_The body_20x15x31cm

 

 

 일반 대중에게 위대한 작품, 유명한 캐릭터로 인식되어져, 여전히 그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것들은 이러한 가벼움과는 배치되는 위치에 있기도 하고 조화되는 위치에 있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영웅이었던, 우리의 명 배우였던 마시마로는 어느 위치에 놓이게 되는 것일까?  자본의 희생물일까? 아니면 철저하게 자본을 신봉한 상품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처음의 ‘마시마로’처럼 ‘블랙 코미디’를 통한 비판자였을까? 그것이 무엇이었든 간에 그것을 바라보고 대했던 사람들은 이제 그를 찾지 않는다. 또 다른 대중의 희생물을 찾아 헤매고 있다. 이러한 가벼움이 역기능만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순기능이 있다한들 그것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마시마로’ 의 머리에 ‘다비드’ 의 육체는 이렇게 기형적인 현재의 대중문화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다.   그것은 강인한 생명력을 가지고 오랫동안 살아가고 싶었던 ‘마시마로’ 의 눈물겨운 저항이다. 자신을 탄생시키고 이용하고 죽여 버린 대중들을 향해 절대 지고 싶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약자(弱者)들의 대변인이다.

 

 

박재오_The earth_30x25x35cm_화강석

 

 

 
 

 

 
 

vol. 20080902-side - 박은봉, 박재오 2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