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 포토에세이 展

 

- 2008  아트비트갤러리 기획전 -

 

기다림  1982. 7. 7 장영자공판중 재판 끝나기를 기다리는 사진기자_Gelatine Silver Print

 

 

인사동 아트비트갤러리

 

2008. 8. 20(수) ▶2008. 9. 2(화)

오프닝 : 2008. 8. 20(수) 오후 6시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156 성보빌딩 #301 | 02_722_8749

 

www.artbit.kr

 

 

방성자 기자회견 1972.1.27  성산동_Gelatine Silver Print

 

 

“도시의 날짐승, ‘기자’에 대한 고찰”

 

김충식 | 전 동아일보논설위원. 가천대학 초빙교수

지금까지의 전민조의 사진은 경건(敬虔)했다.

십자가도 없고, 불상도 없건만, 그의 사진에는 옷깃을 여미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 ‘서울’사진집(2006)의 경우, 빈 리어카에 드러누운 고단한 노동자의 실루엣, 책상위의 전화기를 비집고 잠자리에 든 신문사 야근기자의 초상, 만원버스의 차창에 매달려 가는 여차장의 표정 등등. 뜨겁고 절박한 삶의 절정, 혹은 휴식과 정적의 순간을 통해 우리 인생과 세상을 반추하고 꿰뚫어 보게 만드는 것이다.

그는 부질없고 덧없는 세속 일상의 파노라마 속에서, 보통사람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각(死角)에서, 번득이는 무엇을 건져 올린다. 전민조는 마치 프미미어리그의 축구 공격수처럼 기막힌 사각에서, 작은 카메라를 들이대고 통렬한 골을 작열시키는 것이다. 그는 그래서 진정한 사진 미학의 프로가 아닐 수 없다.

도시의 인간들은 치열하게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지 않으면 안 되는, 발버둥 치며 나아가지 않으면 안되는 존재이다. 그 도시인 개개의 장엄한 드라마와 구구절절한 사연을 온축한 전민조의 흑백사진들. 그것을 보면서 나는 ‘경건’함이라고 밖에 달리 말 할 길이 없는 무엇을 느끼는 것이다.

전민조의 사진에 관한 글을 쓰고자 메모해 둔, 나의 잡기장 첫머리에 ‘호시노 미치오(’라는 이름이 휘갈겨져 있다. 그는 ‘도시’를 등지고, 알래스카 대자연만을 찍고 살다 간 일본의 사진작가다. 호시노는 1952년 도쿄에서 가까운 치바현 태생으로 명문대학 게이오를 졸업했다. 대학을 나와서는 알래스카의 자연을 사진으로 담고 싶은 욕망에 모든 것을 집어치웠다. 그러고서는 알래스카를 향해 편지를 띄운다. “먹고 자게만 해준다면, 어디서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라는 편지가 인연이 되어 현지로 가게 된다.

 

 

백지광고1973.12.4 한국일보 편집국_Gelatine Silver Print

 

 

거기서 사진을 찍고, 그것을 책으로 엮어내며 살다가 43살 나이에 죽고 만다. 그가 그토록 미치고 반해 찍고 쫓아 다녔던 대자연, 그 일부인 곰이 호시노의 텐트를 덮쳐 물어 죽였던 것이다. 웅장한 대자연 속을 홀로 헤매면서, 카리부(caribou, 순록)와 곰, 고래, 바다표범, 독수리 그리고 툰드라의 식물과 꽃을 찍어대던 그는 “모든 생명체는 생명의 끝없는 여로를 윤회한다.”고 노트에 적고 있다.

도시가 싫어서 알래스카로 떠나간 호시노와는 대조적으로 전민조는 정 반대의 파인더를 갖고 있었다. 호시노가 인간과 생명체의 본질을 아웃도어에서 찾으려 했다면, 전민조는 도시라는 인도어(indoor)에서 추구하며 헤맨다고 할 수 있다.

전민조는 젊은 시절, 금융계통의 직장에서 사진을 찍다가 시야가 좁은 사진만 찍는 직장이 싫어서 넓은 사진을 찍기위해 택한 직장이 한국일보 사진기자였다. 월급은 반이하로 줄었다. 그는 누구나 찍을 수 있는 사진보다 사회의 정신을 통찰하기위해 뛰어 든 것이다. 인천에서  살던 그는 서울까지의 출퇴근에 몇 시간을 날려야 했다. 그래서 바쁠때는 숙직실에서만 자고 먹고 하니, 집에서는 걱정했지만 그래도 전민조는 행복했다. 나날의 삶이 새로운 것, 카메라에 담을 것이  넘치는 일상에 반해 푹 빠져 들었다. 찍어도, 찍어도 갈증이 났다.

 

 

사지기자의 휴식1972.7.30 노고단산장옆_Gelatine Silver Print

 

 

전민조가 이번에 기자들을 소재로 한 사진만을 묶었다.

거기에는 사라져 간 신문사 안팎의 아릿한 풍경들이 담겨 있다. 한 밤중, 전화 수화기를 비집고 잠을 청하는 조광식 기자(당시 동아일보 체육부)의 처량한 모습을 보면서, 나의 초라하고도 화려했던 청춘을 반추하게 된다.

낡은 동아일보 구사옥 3층 편집국의 천정위로는 밤마다 광화문의 쥐떼들이 몰려들어, 마라톤 마스터코스를 경주하곤 했다. 자장면을 먹고 잠자다가 쥐에게 입술을 물린 대사건의 현장이기도 하다. 쥐의 키스공세로 혜화동 우석병원에 입원한 김충근 기자의 공상(c-전설은, 묵은 시대 기자 동네의 엽기적인 풍경을 연년세세 전해주리라.

기자의 생활은 도시 현실의 축도(蹴圖)이다.

연탄가스 매춘부 구두닦이 강도절도 살인에서부터, 정치 경제 문화에 이르기까지, 도시를 지키는 촉수(觸手)가 바로 기자라는 직업이다. 기자는 폭력. 범죄,사건, 수갑, 호스티스, 달동네, 시위현장, 정치현장 등 도시의 갖가지 얼굴들과 마주한다. 사람이 모이고, 거기서 벌어지는 온갖 희비극이 바로 기자의 일상이다. 더욱이 기자들은 경쟁하며 일을 한다. 시간과 동료와 원고지 매수와 싸우며, 더러는 속되고 저열하며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것 까지도 경쟁적으로 상품화하려 몸부림친다.

 기자는 도시의 사나운 ‘날짐승’같은 존재다.

 흥건한 피가 흐르는 시체에서 주민등록증을 꺼내 사망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그의 얼굴 사진을 챙겨 마감시간을 대기위해 표표히 사라진다. 리얼한 현장을 보다 가감없이 있는 그대 전하기 위해, 자폐증 환자처럼 대상을 물끄러미 무심코 바라보도록 설계된 직업이 바로 기자다. 바로 그 기자라는 직업이, 도시를 “찍어도‘ 찍어도 갈증을 달랠 길 없는” 전민조의 파인더에 여지없이 포착되었다.

 기자의 화장하지 않은, 가려지지 않은 맨 살은 세속적이고 향락적이고 찰나지향적인 도시의 살아 있는 숨결을 느끼게 한다. 나아가 본질적으로 성스럽지 못하고 타락하기 쉬운 인간존재의 참 얼굴을 밝혀준다. 전민조의 사진들은 흐르는 시간의 모든 삶을 카메라에 포착하려는 집념에서 나온 기록이요, 전인미답(前人未踏)개척이요, 처염상정(處染常靜)의 미학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통화중 1973.10.30 한국일보 편집국_Gelatine Silver Print

 
 

 

 
 

vol. 20080820-기자 - 포토에세이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