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훈 개인展

 

죽무(竹舞)_86x61x18cm_아크릴, 철, 기계장치_2008

 

 

노암갤러리

 

2008. 8. 20(수) ▶ 2008. 8. 26(화)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133 노암갤러리 | 02-720-2235

 

www.noamgallery.com

 

 

세종대왕_61x47x8cm_아크릴, 철, 감속모터_2008

 

 

김기훈 - 굽은 4차원의 조각

 

조 주 현 _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미술사적 맥락에서 키네틱아트의 미학적 요소인 “기계장치의 운동”을 형식적으로 차용하고 있는 김기훈의 조각은 현대사회의 도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매우 아날로그적 감수성으로 공학적 지식과 상상력을 결합시킨 것이다. 구불구불 비포장도로로 들어서 도착한 그의 컨테이너 작업실 한 켠에는 고물상에서 수거한 듯한 폐기된 자동차 부품들과 공구, 작업을 위해 작가가 직접 고안한 신기한 기계들이 즐비하게 놓여, 내심 이번 작업실 방문으로 그의 작업 속 수수께끼를 풀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들었다. 하지만 쉽게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그의 작업 앞에서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바! 사실, 어찌 보면 단순하게 움직이는 듯한 그의 조각들은 한참을 들여다볼수록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신비함이 있다. 그것은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볼거리가 넘쳐나는 오늘날 스펙터클한 장관을 연출하는 시각적 장치들에 이미 익숙한 우리의 인스턴트 시각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약간은 어설픈 외양을 하고 천천히 움직이며 쉽게 그 답을 던져주지 않는다. 참을성이 없는 자는 깨달음도 없는 법. 한참을 두고 바라보고 생각하라. 묵묵히 움직이는 그의 조각들이 끊임없이 반사시키는 주문이다.       

 

 

Background_150x105x35cm_철, 아크릴, 철자, 감속모터_2007

 

 

움직이는 형상(figure) 속에 숨겨진 시각의 헤게모니

 

느린 속도로 빙글빙글 돌며 형상을 짐작할 수 없는 둔탁한 형태의 두 덩어리 석고 조각은 제목도  <Sunev>다. 몇 바퀴가 지나고 나서 순간 눈앞에 365°로 돌아가는 비너스(Venus) 조각이 선명하게 드러나는데, 이건 마술이 아니다. 맞대고 돌아가던 두 덩어리의 석고 조각 사이 허공이 만들어낸 이미지로, 애초부터 석고조각과 함께 그 자리를 돌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우리의 인식이 그 곳에 닿지 않았던 것. 비례나 형태의 미를 분석하는 미술교육이 무색할 뿐이다. 이러한 김기훈의 작업은 한편, 경험주의와 게슈탈트 심리학 등 고전적인 시지각 이론을 맑은 고딕으로 시각적 착시와 인식의 전환을 일으키는 옵아트의 형식도 근저에 두고 있다. 또한, ‘시각’과 ‘현대성’이라는 상당히 사회적, 역사적, 정치적인 관계들을 적극적으로 개입시킨다.  

주지하고 있듯, 일상의 시각은 순수하게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문화적 매개 작용에 의해 깊은 영향을 받는다. 여기서 우리가 보는 것은 선택이며, 이 선택 행위에 따라 왜곡되거나 상반된 시선을 갖게 된다. 각각 상이한 의미를 지닌 기호가 새겨진 두 판이 자동차 엔진과 감속모터에 의해 서로 교차하며 서로의 간섭에 의해 왜곡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작업 <OX>는 일상적인 시지각이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포착이 아니라 경험과 기억에 의해 형성되는 복합적인 과정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이와 같이, 김기훈의 작업에서 기계 운동에 의해 만들어지는 우연적 이미지들은 시각적 경험이 직접적이고 보편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그 어떤 지식이나 통념에 의해 매개되며, 타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회적, 역사적인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의 초기작 <background>는 또 다른 측면에서 ‘시각’과 ‘현대성’의 관계를 명확히 드러내고 있는데, 이 작업 역시 옵아트의 형식적 측면을 차용하여 얼핏 보아 익숙한 형상과 배경의 구조로 쉽게 읽혀진다. 반복적 타원형 줄무늬가 새겨진 아크릴 판이 좌우로 움직이며 철 프레임 중앙에 곧게 세워진 철자가 시각적으로 휘어 보이는 현상은 지각 생리학에 의한 눈의 착시이다. 작가는 즉각적으로 시각적 유희에 빠져있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움직이는 줄무늬 판이 ‘사회적 배경’을 은유하고 있는 다중적 의미를 읽을 수 있도록 만 원권 지폐로 줄무늬를 오려붙여 힌트를 제공한다. 이로써 시각적 유희는 곧 현대성의 시각문화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고, 이는 우리 자신에 대한 성찰이 된다. 허공에 만들어진 비너스의 실체를 보지 못한 우리의 시각이나 배경에 의해 인격체를 왜곡하여 바라보는 현대인의 시선은 문화에 의해 학습된 것으로, 곧 개인들이 대상을 보는 방법을 배운 것에 따름이다. 이처럼, 한 사회에서 당연시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제시되는 보는 방식은 곧 권력관계, 지배관계와 결부된 것으로, 김기훈은 그의 작업을 통해 이러한 시각의 헤게모니를 날카롭게 꼬집고 있다.

 

 

OX_190x80x70cm_자동차 엔진, 철, 백크라이트, 감속모터, 조명, 액자_2000

 

 

계량화된 행복, 허공의 둘레

 

그의 키네틱 조각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 중 하나가 “눈금 자”이다. 현대인의 시각이 어떤 기준으로 왜곡되어 있는지 자로 잰 듯 선명하게 제시하기 위함일까. 최근 있었던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를 보고 네티즌들 사이에 미모논란이 거세게 일자, 심사당국에서는 ‘개성미인’이라는 단어로 시비를 일축하려 했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형국은 ‘개성'을 인정하기에는 너무나 계량화되어있는 시각이 존재하고 있다. 비너스의 형상처럼 줄자로 둘러싸인 두개의 구조물 사이 허공에 365°로 돌아가는 익명의 두상을 만들어내는 <허공의 둘레>는 우리의 뇌 속에 깊숙이 자리 잡은 선입견과 잣대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듯하다.

오늘날 평등주의 사회에서 행복이란 무엇인지 4지 선다형으로 묻는다면, 대부분의 현대인은 ‘물질적 안락’을 택할 것이다. 그것은 사물과 기호로 측정될 수 있는 복리(福利)여야 하고, ‘계량가능 한 것’으로서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장 보드리야르는 그의 저서 『소비의 사회』를 통해 현대사회에서 행복의 신화에 대해 위와 같이 언급하며, 이어 “내면적인 즐거움으로서의 행복-다른 사람들의 눈에 또 우리들의 눈에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기호와는 상관없는 행복, 증거를 필요로 하지 않는 행복-은 따라서 소비의 이상으로부터 단번에 제외된다. 소비가 이상으로 삼는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우선 평등의 요구이며, 이를 위해서는 항상 눈에 보이는(visible) 기준들에 ‘비춰보아서’ 의미를 지녀야 한다.”고 말한다.

세로로 조각난 만 원권 지폐에 등장하는 세종대왕의 얼굴이 감속모터의 움직임에 의해 저절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는 김기훈의 ‘움직이는 초상화’는 자본주의 사회 행복의 절대적 기준인 ‘돈’에 울고 웃는 현대인의 초상이기도 하다. 과거 우리 선조들이 추구해왔던 굳건한 기개와 절개, 곧은 성품 등 대인군자의 상징인 대나무 그림 또한 손잡이를 돌리는 관객의 행위에 의해 대가 휘고 잎이 흔들린다. 이처럼 잣대가 휘고 굽어진 채 변화하며 4차원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김기훈의 키네틱 조각들은 자본과 육체가 정신과 영혼을 대신하고, 물신숭배 사상이 팽배한 오늘의 우리에게 과연 끊임없이 허공의 둘레를 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문하고 있는 것이다.

 

 

Sunev_110x61x31cm_철, 스티로폼, 석고, 감속모터_2008

 

 

 
 

 

 
 

vol. 20080820-김기훈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