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훈 갤러리 개관 30주년 기념展

 

- 지각과 충동 -

 

 

 

관훈갤러리

 

2008. 8. 13(수) ▶ 2008. 8. 26(화)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95 | 02-733-6469

 

www.kwanhoonprojects.com

 

 

 

 

새로운 도약을 위한 실험 무대-<지각과 충동전>의 의미

 

- 관훈갤러리 ‘개관 30주년 기념전’을 맞이하여 -

 

윤진섭 | 미술평론

관훈갤러리가 어느덧 개관 30주년을 맞이하였다. 1979년 8월 6일부터 15일까지 열린 <개관기념 신예작가12인전>이 첫 번째 전시회였다. 개관 당시는 관훈미술관이었는데,  90년대 초반에 개정된 ‘미술관 및 박물관 등록법’의 규정에 따라 관훈갤러리로 개칭하게 된 것이다.

개관기념전은 그 이름에서 나타나듯이, 젊은 작가들의 창작 분위기를 진작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당시 이 전시는 관훈갤러리의 성격이 잘 드러난 진취적이고 실험적인 성격의 전시회였다.

당시의 인사동은 고미술과 골동품을 취급하는 화랑과 표구점들이 즐비한 고미술의 거리였으며, 현대미술을 취급하는 화랑은 명동화랑을 비롯하여 십 여 곳에 지나지 않았다. 인사동 거리는 오늘날 보는 것처럼 복잡하지도 않았고 현대식 빌딩이 많지도 않았다. 그림을 감상하거나 전시 때문에 들른 미술관계자들이 분주히 오가는 것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았으나, 고색이 창연한 거리의 식당에서 술과 음식을 앞에 두고 정담을 나누는 사람들로 붐비는 모습은 지금과는 사뭇 다른 광경이었다.   

 

 

 

 

관훈갤러리가 한국 현대미술에 끼친 공적은 실험미술의 산실이었다는 사실에 집약돼 나타난다. 1979년 개관이후 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는 동안 <에꼴 드 서울>을 비롯하여 <레알리떼 서울>, <로고스와 파토스> 등 한국 현대미술에 견인차 역할을 한 그룹들이 이곳에서 전시를 하였으며, <삶의 미술> 등 한국 현대미술의 전환기에 새로운 현상을 보여준 역사적인 전시들이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다시 말하자면 70년대의 소위 다원화적 양상을 보이는 단색화, 하이퍼리얼리즘, 입체, 설치, 비디오 등 다양한 경향의 작가들이 개인이나 혹은 집단의 이름으로 이곳에서 전시를 했고, 이러한 양상은 80년대의 소위 민중미술과 90년대의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이어지며 관훈갤러리는 ‘집단적 미술운동’의 산실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한 여건이 가능했던 것은 그 당시만 하더라도 관훈갤러리 만큼 큰 공간을 가진 화랑이 인사동 지역에 드물었을 뿐 아니라, 이 갤러리가 상업화랑을 표방하지 않고 일종의 대안공간과 같이 의미가 있는 전시회에는 선뜻 후원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술평론가 김복영의 한 글에는 이러한 사실이 뚜렷이 명기돼 있다.

 

 

 

 

 “ 이러한 실험과 정열의 진원지가 명실상부하게 최초로 그리고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곳이 바로 관훈미술관이었다. 권대옥 관장은 가난한 현대작가들, 특히 젊은 작가들이 그들의 작업을 실험하고 정열을 뿜어낼 수 있는 절호의 공간을 마련해 준 셈이다. 그들의 경제 사정을 고려하여 대관료를 절감해 주거나 어려운 처지의 젊은 작가들의 호소에 무상으로 응답하는, 독지적 온정을 베푸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김복영, 현대미술, 저 인사동 시대의 성시-관훈미술관 개관 10주년의 의미-

 

그러나 문화예술의 후원자로서 설립자가 보인 이러한 열정도 미술계에 다가온 판도의 변화 앞에서는 세월의 무상함을 생각하게 한다. 강남지역 개발에 따른 신흥 화랑가의 형성과 집단운동의 퇴색, 상업주의 대두, 국제화 시대의 도래가 맞물린 90년대 미술계의 판도 변화는 대관을 위주로 했던 당시의 갤러리들에게 일침을 가하며 시대의 변화를 요구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특히 이천 년대에 들어서면서 더욱 심화되었다. 무한 경쟁 체제에 돌입하며  화랑계는 국제적인 경영 감각을 필요로 하였으며, 현대화된 갤러리 시설과 해외 진출 등을 통해 젊고 신선한 작가들의 비중이 커지며 빠르게 미술계의 신풍속도를 만들어 갔다. 이와 함께 인사동 지역뿐만 아니라 많은 화랑들이 사간동과 팔판동 등으로 지역적인 확장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관훈갤러리의 개관 이후 30년에 걸친 기간은 인사동 화랑가를 넘어서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도 격동의 역사 그 자체였음을 알 수 있다. 그 변천과 함께한 관훈갤러리는 지금도 그 자리에 변함없이 묵묵히 서 있다. 일제 시대에 병원으로 사용되었으며 사료적 으로도 높은 가치가 있는 이 건물이 설치와 영상이 주를 이루는 오늘의 전시 양태와 과연 어떠한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는 주목되는 부분이다.

 

 

 

 

관훈갤러리가 이번에 개관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한 <지각과 충동전>에는 청년세대 작가들의 최근 경향이 잘 나타나 있다. 20대 후반에서 30대 후반에 이르는 작가 27명을 초대한 이번 기획전은 회화, 설치, 사진, 영상 등을 망라하고 있다.

개관 30주년을 맞이하여 그 기념전으로 기획의 초점을 신세대에 맞추었다고 하는 사실은 초창기 개관기념전의 성격을 다시 표방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확인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어느덧 2세 경영체제로 넘어가고 있는 화랑가의 현 추세와도 맞물려 있다. 관훈갤러리 역시 1세대 권대옥 관장 체제에서 2세대 권도형 대표 체제로 넘어가면서 새로운 경영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는 매우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관훈갤러리는 새로운 도약의 시기를 맞이하여 몇 가지 중요한 구상을 하고 있다. 그 내용이 무엇인가는 시간이 지나면서 밝혀지겠거니와 이번 기획전은 그 변화를 화단에 알리는 첫 신호탄이 될 것이다.

 

 

 

 

관훈갤러리는 변화의 시기를 맞이하여 그 동안 조용히 몇몇의 중요한 전시를 기획한 바 있다. 해외의 유망 작가들을 초대하여 몇 차례 기획전시를 선보인 바 있고, 젊고 능력 있는 국내의 청년작가들을 소개하는 기획전을 연 적도 여러 차례 있다. 이 전시회들이 화단에 과대 포장돼 알려지지 않은 것은 그 진로에 관한 신중하며 진지한 태도를 맑은 고딕에 깔고 있기 때문이다.

<지각과 충동전>은 사물에 대한 인식과 이를 내면에서 녹여내 예술의 창조적 충동으로 전환시키는 창작의 메카니즘에 대한 은유로 붙인 것이다. 따라서 예술이 작가 개인의 창조적 소산이라면 이번 기획전에 참가하는 작가들이 발산하는 작업의 스펙트럼은 모두 27개의 서로 다른 색채로 이루어진다.

그것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또 향후 관훈갤러리의 기획에 반영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우리가 관훈갤러리에 기대하는 한 축을 이룬다. 말하자면 관훈갤러리의 제2의 도약을 위한 실험대 위에 이 전시가 놓여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vol. 20080813-관훈 갤러리 개관 30주년 기념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