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소영 개인展

 

-황금빛 새장-

 

황금빛 새장#01_digital print_160x120cm_2006

 

 

gallery NoW

 

2008. 7. 9(수) ▶ 2008. 7. 22(화)

오프닝 : 2008. 7. 9(수) PM 6:00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92-13 성지빌딩 3층 | 02-725-2930

 

www.gallery-now.com

 

 

황금빛 새장#06_digital print_160x120cm_2006

 

 

갤러리 나우  N●W Young Artist 정소영의 " 황금빛 새장 展 개최

 

주목할 만한 젊은 작가들을 소개하고 발굴하는 N●W Young Artist 기획 프로그램에 선정된 정소영 작가의 " 황금빛 새장 展 " 이 7월 9일부터 7월22일까지 갤러리 나우에서 열린다. 지속적으로 시행될 갤러리 나우의 젊은 작가 발굴 기획전은 다양하고 새로운 사진 방법론을 연구하는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고 국내외를 이끌어갈 작가로 성장하도록 창작 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기획 전시 프로그램이다. 첫 번째 New & Now 기획 프로그램 이후 두 번째  N●W Young Artist Exhibition은 역량 있는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고 소개하며 새로운 예술 창작활동을  모색하는 기획전이 될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정소영 작가는 마네킹에 철사를 입혀 인체형태의 프레임을 만들고 다시 그 위에 옷 (여성의 속옷)을 입혀 모서리 공간에 설치하는 과정을 거친 후 사진으로 표현한다. 또한 모서리 공간의 배경은 디지털 작업을 통해 반전된 색채로 표현하고 선과 면의 분할 구성을 통해 강한 긴장감이 있는 공간으로 변화시킴으로써 사물(설치된 작품)에 시선을 고정하도록 유도한다. 즉, 정소영은 뼈대(프레임)가 드러나는 내부구조와 여성의 옷을 조화롭게 연출하고 막힌 모서리 공간에 설치를 통하여 마치 새장 속에 갇힌 사물을 가둬진 여성의 자아로 상징화하여 표현한다. 이번 황금빛 새장 展은 “ 여성의 자아”에 관한 관점을 “체득된 자아”를 통해 재현적 상상력으로 풀어내고 만들어진 사물을 설치 한 후 사진으로 표현함으로써 새로운 작가적 인식과 표현을 엿 볼 수 있는 전시가 될 것이다.

 

 

황금빛 새장#08_digital print_160x110cm_2008

 

 

체득(體得)된 자아를 증거하는 몇 가지 방법

 

황석권(월간미술 기자)

 

정소영의 4번째 개인전이 열린다. 사진전문 갤러리를 지향하는 공간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그녀의 또 한 번 다져진 삶의 층위를 보여주게 된다. 어느 장르를 불문하고 작품이 한 작가의 인생을 투영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작품의 주요한 주제와 그것을 밑받침하고 있는 소재에서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같은 주제라도 어떤 소재를 쓰느냐, 그 작가의 개인적인 주변의 환경이 어떠냐에 따라 관람객에게 다가가는 바는 매우 다양하다. 이러한 사실을 맑은 고딕으로 생각하건대 정소영의 이번 개인전은 작가로서 활동의 본격적인 시작점에 놓여있다는 점에 무게가 실린다. 왜냐하면 정소영의 이번 개인전은 이전 전시와는 구별되는 명료성 내지 명확성이 감지되기 때문이다. 이 말은 몇 번의 개인전을 거쳐 나름의 정체성을 확립해 냈다는 어떤 확신내지는 작가적 자신감이 엿보인다는 말이다. 따라서 관람객에게 어떤 공통의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조심스럽게 점칠 수 있는 전시가 될 것 같다.

이러한 경향은 이전에 작가의 행보를 반추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유추할 수 있다. 초기(2000년을 전후한) 그녀의 작업은 장난감 사진기(홀가)를 이용한 것이었다. 120 롤필름을 사용하는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이 카메라는 이른바 ‘토이’ 혹은 ‘장난감’ 카메라로 알려져 있다. 플라스틱 렌즈가 달린 이 카메라를 통해 그녀는 당시 여타의 다른 작가가 주목했던 주제에 포커스를 맞췄다. <시간의 문展>(2000년)과 <흔들리는 도시展>(2001)으로 명명된 정소영의 초기 개인전은 누구에게나 흔히 발견되는 장소를 배회하고 있다. 놀이공원과 자본주의를 대변하는 공간들(압구정, 종로, 대학로 등)의 소비행위를 유혹하는 몸짓을 담은 작품 등이 그 배회의 흔적이다. 그래서 작가가 장난감 카메라를 이용한 목적을 벌어지는 현상에 대한 일종의 ‘의도된 조롱’ 내지 ‘비웃음’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여겨졌다.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 대해 그녀는 의외로 극히 ‘무심하거나’, ‘특정한 의도를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더 정확하게 작가의 말을 옮기자면  ‘관람객이 그렇게 봤다 하더라도 자신은 그러한 목적이 있었다고 말하지 않겠다’이다. 이 말에는 작가가 대상물에 대해 과도한 집착을 버리고 대상과 완전히 분리되어 스스로를 규정화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엿보인다. 오히려 그것을 넘어 ‘심드렁한’ 태도로서 보인다. 혹은 당시에 흔한 주제 선택에 따르는 과도한 의미부여가 이제는 낡을 대로 낡아 너덜너덜한 것임을 간파한 작가의 전략적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자신의 피붙이와도 같은 작품에 대해 작가는 냉정하리만큼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소영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소영이라는 작가와 작품을 규정하는 장치는 작가의 의도와 다르게 흘러가지 않는가라는 의심을 가지게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정소영이 취하는 냉담함은 작가가 ‘비평적 언어에 구속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행보를 급하게 옮기지 않았음을 의미할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의문부호가 생긴다.

 

 

황금빛 새장#11_digital print_160x110cm_2008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다시 이번 전시로 돌아오자. 2000년 대 초반 정소영은 철사 옷걸이에 낡은 브래지어나 여성 속옷을 걸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는 한지에 감광제를 입혀 인화되어 제시되었으며, 전통적 규율에 벗어나지 못하는 강제된 여성의 사회적 위치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제작방식은 이후 원통형 조형물 위에 인화된 이미지로 투영되기도 했다. 이후 이런 작업과정은 작품의 마네킹에 철사를 입혀 인체형태의 프레임을 만들고 다시 그 위에 헌옷 수집소 등지에서 구한 옷(여성의 속옷)을 입혀 마치 ‘토르소’를 연상하게 하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배경은 디지털 작업을 거쳐 반전된 색채를 띄게 되었다.

이번 전시는 바로 앞에서 제시된 표현방식과 별반 차이를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기에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은 정소영을 정의하는 이전의 평가인 ‘페미니스트’라는 높은 울타리를 벗어나는 데 힘들 수도 있다. 전체 형태를 감싸는 방식이 아닌 뼈대(프레임)가 드러나는 내부의 구조를 여성의 옷이 어느 정도 드러내주어 마치 새장을 연상시키기에 ‘가둬진 여성의 자아’를 상징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 정소영의 프레임이 입고 있는 옷은 차려입은 듯 한 인상을 풍긴다. 이전 프레임이 입은 옷은 여성으로서 개인적인 체취가 남아있는 것이어서 이면적 의미에 대한 별도의 설명이 필요했다면 근작에서는 새것인 듯 한 드레스나 민소매 등의 옷 등 보다 직접적인 소재가 등장한다.

 

 

황금빛 새장#07_digital print_160x110cm_2008

 

 

바로 여기서 중요한 차이가 하나 도출되는데, 비로소 작가의 대상이 외적인 지향점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의미는 더욱 적극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발언의 방식은 마치 결혼 드레스를 연상시키는 옷이 프레임을 더 가린다는 점에서 ‘의도된 것’이 아닐까하는 추론을 하게끔 만든다. 이러한 의도는 딸로서, 아내 혹은 주부로서, 어머니로서와 같은 자격격 조사가 따라다니는 작가의 자아가 생애를 통해 ‘체득된 반어법’의 양식에 충실하면서 강화된다. 그런데 왜 작가는 ‘결혼’을 연상시키는 옷을 프레임에 입혔을까? 그것은 애정의 계약적 관계이자 자본적 속성이 ‘여성성’과 결합하여 의미가 극대화되는 지금의 ‘결혼’이라는 제도의 표피적 행태를 늘 목도하는 자리에 작가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의 증인으로 지금을 진술하는 것인데 이는 사진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를 통해 정소영은 하나의 단절의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단절’은 이전과의 결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작가적 인식’에 좀 더 무게를 두고 개인적 혁명을 위해 작업함을 의미한다. 물론 동의하지 않는 이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정소영이라는 작가는 그 ‘비동의’에 ‘개의치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정소영의 작품에 더욱 기대를 갖게 되는 것일까?

 
 

 

 
 

vol. 20080709-정소영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