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과 감성 展

 

김수현_서울역_2008

 

 

gallery NoW

 

2008. 6. 18(수) ▶ 2008. 7. 1(화)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92-13 성지빌딩 3층 | 02-725-2930

 

www.gallery-now.com

 

 

김종엽_골목길_2008

 

 

‘작가의 아이디어와 예술적 전략을 통해 시대의 허상이나 모순을 드러내려 하는 사진들은 쉽게 볼 수 있다. 그에 비해 우리는 그저 낡은 수동 카메라 하나씩을 들고서 현실과 몸으로 부딪히며 사고하고, 수없이 갈등하며 사진을 체득했다. 그것이 사진의 본질에 다가서는 지름길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우리의 사진을 보는 관객들의 머리보다 마음이 먼저 알아차릴 것이라고 믿는다.

 특수학교 교사, 삽화가, 방송모니터, 학원 강사, 물류기사 등등 본업은 각기 다르지만 우리에게 사진은 취미를 넘어섰고 개인의 경험과 정서, 삶의 방식과 환경에 따라 작업 주제와 분위기는 다를 수밖에 없다. 사진을 시작하고 5년여가 흐르는 동안, 우리 중엔 개인전을 열어 작업을 심화시켜가는 친구도 있고, 사진대학원에 진학해 좀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며 배우는 친구들도 있으며, 사진 관련 에세이와 함께 본인의 강점을 살리는 친구도 있다.

 우리는 사진을 위해 각자의 본업에도 더 충실해졌다. 돈을 벌지 않으면 사진 작업을 해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렇게 생활인이라는 점은 우리의 사진작업이 현실과 동떨어진 예술만을 위한 사진이 아닐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며, 우리들의 삶과 작업에 자부심을 주기도 한다.’

(작가토론 중에서)

‘시선과 감성’전은 사)민족사진가협회 사진아카데미를 통해 사진을 배우고 지속적인 창작활동을 하는 6인의 단체사진전이다. 전시 참가자들은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평생 사진 작업을 하겠다는 결심으로 사진을 시작하여 강도 있는 훈련 과정과 현장 경험을 통해 감성 표출을 숙련시킨 30대 신진작가들이다. 금번 전시주제는‘도시에 사는 이들의 감성이 발견한 일상’이다.

 시대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사람들은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살아가기 마련이지만, 그런 변화 속에서도 사람에게는 지켜내고 싶은 소중한 가치와 삶의 방식들을 가지고 있다. 참여 작가들은 일상을 차분하고 예리한 시선으로 바라봄으로써 그러한 가치들을 드러내고자 한다.

 

 

 

문창화_공장_2008

 

 

작가노트

 

들판을 걷다.-이주율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를 바라보고 살았다. 진한 땅냄새를 맡는 것은 거의 할아버지의 산소에 성묘를 하러 갈 때뿐이었다. 그리고 학창시절에 농촌활동을 하러 가서 새벽부터 밤까지의 땅의 냄새를 조금 맡아보았다.

내가 들판이 좋아져 하릴없이 들판을 걷기 시작하기 전, 들판에 대한 기억은 이것이 전부다. 도시의 아스팔트의 색에 익숙한 내가 들판을 보고, 걷고, 느끼고, 때로는 땅이 만들어내는 풍경들에 아파하기도 한다. 땅이 만들어내는 여러 모습들에 시선이 닿고 마음이 쓰인다.

땅이 만들어 내는 것 중의 하나인 옥수수라는 것은 사람 입에 들어가도 옥수수, 동물 입에 들어가도 옥수수, 땅에 떨어져도 옥수수, 줄기에 붙어 있어도 옥수수, 씨앗으로 있어도 옥수수다. 배추라는 것도, 무라는 것도 그렇다. 사람도 그러하듯이.......

땅의 품 안에 있는 것들이 어떤 시간에, 어느 모양새로 있어도 내 시선을 잡아끈다. 그래서 계속해서 들판을 걷는다.

공장-문창화  

무수히 많은 굴뚝과 거대한 구조물, 그리고 그 안에는 가공할만한 기계들이 들어차 있다. 문득 살아 움직이는 신체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자연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닌 사람이 만들어낸 인공의 신체로 인간을 빈곤으로부터 구해냈을 뿐 아니라 소비의 욕망으로 끌어 들이는 멈추지 않는 생산력을 내포하고 있다.

숨쉬기 위해 혹은 음식물들을 소화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연동작용을 하는 내장들처럼 거대한 구조물들은 꿈틀거린다. 이 거대한 인조인간은 시간이 흐르면서 스스로 진화하며 자신의 공간을 확보해나가고 사람을 압도한다.

철강 혹은 시멘트와 벽돌의 재료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인공신체의 표면은 거칠고 냉혹하다. 날것 그대로의 냉혹함은 사람의 벗은 몸을 마주한 것 같은 느낌을 불러 일으킨다.

그리고 나에게 물음을 던지고 있는 듯하다

“당신이 나보다는 자연을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당신은 내가 자연에게 상처를 입히고 있다고 생각하겠지요? 하지만 당신은 발거 벗은 채 나를 바라볼 수 있나요?”

*5층 아파트-한현주  

 70년대부터 지어지기 시작한 5층 서민아파트의 수명이 얼마 안 가리리라는 것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5층 아파트는 경복궁이나 창경궁처럼 ‘영원함’ ‘고귀함’을 가지고 지어진 집이 아니다. 폭발하는 서울시의 인구와 주택사정을 해결하기 위해 단기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대규모 단지에 아파트는 몇 동 몇 호라는 숫자로만 자기존재를 드러낼 뿐, 아파트의 외관은 복제인간들처럼 모두 똑같았으며 미색의 건물은 아무런 감흥도 자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세월은 똑같은 외관에 변화를 주었다. 아파트이지만 어떤 주인이 들어와 사는가에 따라 조금씩  변해갔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 아이를 키우는 가족, 노인들만 사는 집.....그리고 아파트와 함께 나이가 들은 주변의 삼나무, 진달래, 벚꽃, 플라타너스가 계절의 변화를 말해준다. 아파트에 사람이 들어와 살면서 아파트도 살아있는 생명체가 되었다.  

하지만 이 아파트가 자연사하기도 전에 사람들은 떠났다. 그 무덤위에 묘지명처럼 더 높고 높은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다.

 

 

한영신_어린이대공원_2007

 

 

아이들- 최초의 기억이 만드는 미래 - 한 영 신

 

 나는 사람들을 대할 때마다 저 사람이 간직하고 있는 최초의 기억은 무엇일까 궁금해지곤 한다.

  그 기억은 누군가가 들려준 이야기에 의해서 사라지지 않고 재생되는 것일 수도 있고, 들은 이야기를 맑은 고딕으로 혹은 스스로 바람이든 원망이든 어떤 감정 작용에 의해 만들어낸 것일 수도 있다.

  남겨진 기록, 사진이나 일기나 편지 같은 것에 의해 간헐적으로 상기되며 고착된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일까... 기억 속에서는 언제나 내 모습이 보인다. 사실 나를 제외하고 내 눈이 보는 대상들의 모습만 보여야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사람들이 간직하고 있는 최초의 기억은 대개 몇 살 때부터 일까... 누군가는 3~4살, 누군가는 7~8살...

  나는 그 최초의 기억이 어떤 것이냐와 그 사람의 정서와 성격과 행동 등이 깊은 연관관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곤 한다. 심리 혹은 뇌 과학적으로 어떤 근거가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는 어린 아이들에게만큼은 어른들에게보다 더 좋은 기억을 만들어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그런데... 나는 아이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모습을 담으면서, 좋은 말 한 마디 따뜻한 손길 한 번을 건네지 못했다. 언제나 아이들보다 내가 더 쑥스러워했고 멋쩍어했다. 그런 내 모습이 아이들에게 냉정하고 무심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을까...

  아이들은 노느라 정신이 팔려서 나 따윈 안중에 없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힐끔힐끔 나의 존재를 조금쯤 느끼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포즈를 잡으며 찍어주기를 기다리기도 한다. 찍어달라고 말하는 아이도 왜 찍는지 물어보는 아이도 별로 없다.

  간혹 아이들의 부모가 있다면 사진을 보내달라고 부탁하기도 하고, 은근한 자랑스러움에 뿌듯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자신의 아이들을 찍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강하게 드러내거나 못 찍게 막는 부모들도 별로 없다.

  나는 놀이터와 생활공간에서 만나게 되는 아이들의 다양한 모습들을 사진에 더 많이 담아두고 싶다. 놀이기구를 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놀이기구 밖에서는 물론 놀이기구 안에서도 담으려고도 한다.  

  하지만 어린이 대상 각종 범죄들이 난무해 세상을 무섭고 불안하게 하며 서로를 의심하고 경계하게 만드는 요즘, 내 작업과 내 꿈은 물론 좋은 미래를 만들어줄 아이들의 처음 기억을 망치지는 않을까 두려워진다.

 

 

한현주_아파트_2007

 

 

골목길-김 종 엽

하나 둘 바뀌어 가는 주변을 무덤덤한 채 자연스레 받아들이는데 익숙해질 무렵, 문득 세상 참 많이 바뀌었구나 하는 생각이 스치곤 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일상의 번잡스러움에 묻혀버리게 됩니다.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골목길이라는 단어는 매우 자연스럽고 친숙한 느낌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그러나 막상 주위를 둘러보면 골목길을 찾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물론 좁은 길은 아직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우리가 예전에 알던, 단층집들이 오밀조밀 붙어서 구불구불 만들어진 이미지와는 매우 다른 모습이어서 골목이라는 단어를 붙이기에 주저하게 됩니다. 예전 건물들을 밀어내고 들어선 깔끔한 모습의 요즘 건물들은 그 크기가 크든 작든 공간의 효율성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면서 거의 다가 육면체의 형태로 지어져 있습니다. 거기에 직선으로 잘 포장된 길들은 그 반듯함으로 깔끔함을 더해주고 있지만 골목길 하면 떠오르는 모습과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저는 비교적 예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동네들을 찾아다니며 여러 가지 형태의 집과 골목들을 렌즈에 담아봤습니다. 전체적인 계획 없이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주어진 지형에 순응하면서 제각각 지어졌을 자그마한 건물들. 소박하게 옹기종기 붙어있으면서 이웃에게 좀 더 개방적인 구조라는 공통점을 가진 집들의 연결은 매우 다양한 모습의 골목들을 펼쳐 보입니다. 여기 저기 다니며 이러한 모습들을 보고 있노라면, 보는 자체로 흥미롭기도 하지만 자연스레 어린시절의 추억들이 떠올라 마음이 훈훈해지기도 합니다.

  이제는 이러한 동네들도 재개발로 곧 사라지고 다른 모습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그에 따라 주거환경이 개선되어가는 것이 거스를 수 없는 당연한 흐름이겠지만, 앞으로는 지금 이 모습들을 더욱 보기 힘들어진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로 아쉽기도 합니다. 지금은 보지도 않고 신경도 안썼던 TV의 ‘주말의 영화’가 폐지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비로소 부족했던 시절에 손꼽아 기다려서 봤던 한 편의 영화가 주었던 감동을 떠올리듯이, 변화의 흐름 속에서 돌아갈 수 없는 과거가 되어가는 현재의 한 부분을 기록해봅니다.  

도시일상-김수현

도시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도시의 사람들은 외로워 보이기도 하고, 가까이 다가가기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는 워낙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어 길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을 다시 만날 가능성 또한 희박하다.

당시에는 알지 못하다가, 얼마간 시간이 지나고 나서 그 때가 대단히 중요한 순간이었다고 깨닫게 되는 때가 종종 있다. 그런 경험들이 쌓여 삶의 의미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도시에서의 삶은 흔히 소외감. 익명성 같은 부정적인 단어들로 특징 지워지곤 한다.

교통, 환경, 범죄 문제 등 각종 문젯거리들을 안은 채 회색빛으로 묘사되곤 하는 도시.

하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획일화되지 않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도시는 30년간 살며 익숙해진 나에게 그다지 갑갑하거나 살기 어려운 곳만은 아니다.

도시는 무척 복잡하기도 하고, 매일 지나치는 수많은 사람들은 물론 친근하지 않으며, 불빛들과 사람들의 모습은 머물러 있지 않는다. 산업 사회 이후 도시인들은 자본주의 경제 논리와 보이지 않는 권력에 의해 조종당하며 기계 부속처럼 움직이게 되었다고들 한다. 하지만, 생활 환경이 삶의 의미마저 결정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차지하는 일상과 일상 속의 내면이 삶에서 진정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사진을 통해 사람들의 내면까지 모두 기록하고 싶은 욕심은 없다. 사람들의 일상을 차분히 바라보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한걸음이라도 다가서서 어떤 말을 건넨 것 같고, 우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했다는 느낌이 든다.

 
 

 

 
 

vol. 20080618-시선과 감성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