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향화 개인展

 

prayer_45.5ⅹ52.5cm_Mixed Media_2008

 

 

가나아트스페이스

 

2008. 5. 28(수) ▶ 2008. 6. 3 (화)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119 1F | 02-734-1333

 

 

prayer_45.5ⅹ52.5cm_Mixed Media_2008

 

 

갤러리 비움

 

2008. 6. 4(수) ▶ 2008. 6. 20(금)

용산구 한남동 273-2 era/b

 

 

prayer_162.0ⅹ130.3cm_Mixed Media_2008

 

 

-키치와 클리셰, 욕망의 무분별한 언어-

 

고충환(Kho, Chung-Hwan 미술평론)

 

작가들 중에는 유사한 형식에 천착해 이를 심화시키고 변주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여러 이질적인 다양한 형식의 지점들을 두루 아우르는 경우도 있다. 전자가 차이나는 모든 것을 동일한 형식에로 귀속시키는 환원주의 논리에 의해 견인된다면, 후자는 차이를 강조하고 극대화하는 비동일성의 논리에 의해 추동된다. 이는 물론 외적 환경이 어느 정도 작용하겠지만, 이보다는 아무래도 내적 요인인 체질상의 차이가 더 결정적으로 작용하지 않는가 싶다.

서향화의 작업을 일별해보면, 앵포르멜을 연상시키는 비정형의 화면으로써 내적 파토스의 직접적인 표출을 꾀한다. 일종의 주정주의에 의해 견인되는 이 양식에 연이어 등장한 인간군상을 소재로 한 그림들에서는 주제의식의 지평을 사회학에로까지 확장시킨다. 그리고 오랜 풍화를 견뎌낸 토담을 연상시키는 일련의 그림들을 통해서 질박하고 서정적인 정감을 자아낸다. 이렇게 추상표현주의를 연상시키는 격렬한 화면과, 인간과 사회와의 관계에 대한 관심, 그리고 소박하고 정감어린 표면질감 등 적어도 외관상으론 이들 이질적인 형식의 지점들을 이어주는 어떠한 개연성도 없어 보인다.

 

prayer_45.5ⅹ52.5cm_Mixed Media_2008

 

 

작가는 이처럼 매번 전시 때마다 다른 형식을 제안하고 달라진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렇게 자기 변신을 꾀하는 것도 힘들거니와 제안된 형식들이 하나같이 일정 수준의 완성도를 견지하고 있는 것도 쉽지 않을 듯싶다. 이는 작가가 자신(자신의 정체성)을 어떤 결정적인 형식에 결부시키기보다는 가능한 형식(잠재적인 형식)과 비결정적인 형식 속에다 풀어놓음으로써 가능해진다. 정주의 논리와 비교되는 유목의 논리에 의해 지지되는 이 다양한 형식의 지점들이 때로는 작가 자신마저도 의식하지 못했을 무의식(자기정체성)의 실체와 대면하게 해준다. 더불어 형식을 사유의 표상으로 본다면, 이 차이나는 형식들을 통해서 작가는 일종의 형식의 유목을, 더 나아가 사유의 유목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prayer_45.5ⅹ52.5cm_Mixed Media_2008

 

 

서향화의 근작은 전작에 비해 그 변신이 현저하게 파격적이고 두드러져 보인다. 그림들은 한눈에도 키치적이고 팝적이고 민화적이다. 엄밀하게는 전통적인 민화를 차용해서, 이를 키치풍으로 각색하고 재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키치는 팝아트와 친족관계에 놓여 있다.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와의 이분법적인 구분과 경계를 허물어 대중친화적인 아트를 실현한 것이 팝아트이며, 그 키워드가 키치다. 키치는 비록 사태의 피상적이고 표면적인 감각현상에 반응하는 미감이지만, 이를 통해 대중 일반의 미학적 규준과 그 표상형식을 드러낸다. 세속적인 양식을 통해 세속적인 욕망을 드러내는데, 그 욕망의 노골적인 드러냄이 한 시대의 리얼리티를 반영하고 있는 풍속도에도 연루된다.

한국미술사에서 그 사례로는 김홍도와 신윤복의 일련의 그림들을 들 수 있지만, 민중(대중)의 시각이 아닌 사대부 계급의 시각에서 본 현실인식이란 점에서 어느 정도의 한계를 지니고 있다. 반면에 조선시대에 집중적으로 그려진 민화야말로 그 창작주체가 다름 아닌 민중이란 점에서 당대의 리얼리티를 가감 없이 반영하고 드러낸다. 당대의 지배계급에 의해 정통성을 부여받은 아카데미(미술을 교육하고 훈육하고 전수하는 기관)에 구애받지 않아도 되는 만큼 정해진 형식이 따로 있을 수가 없다. 이로써 무분별하리만치 자유분방한 형식실험이 가능한 환경이 조성되고, 온갖 파격적인 형식의 그림들이 나온다. 돌이켜보면 그 파격적인 형식의 그림들이 건강한 민중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기존의 결정적인 형식들의 변신마저도 유도해낸 사실상의 계기로서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일종의 아르카이즘과 나이브아트로 범주화되는 이 일련의 그림들이 드러내 보이는 천진난만함에는 숨김이 없고 절제와 균형 감각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무분별하고 공공연한, 거침이 없고 즉각적인 욕망의 드러냄이 있을 따름이다.

 

 

prayer_32.5ⅹ32.5cm_Mixed Media_2008

 

서향화는 조선시대 민화에서의 이러한 형식요소나 의미론적 성질을 근작 속에서 각색하고 재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을 거쳐 일종의 현대판 민화나 키치화된 민화 그리고 현대판 풍속도나 현대판 부적(복을 불러들이는 상서로운 표상이란 점에서)으로 불릴만한 일련의 그림들을 형상화한다. 하지만 여러 면에서 민화와는 사뭇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이를테면 민화에는 사물들이 서로 공존할 수 있게끔 하는 나름의 의미론적 개연성이 있기 마련이다. 당대의 지배계급을 풍자할 요량으로 그려진 까치와 호랑이, 만수무강을 비는 십장생도, 부부애를 기원하는 한 쌍의 원앙, 과거급제를 기원하는 잉어 같은. 그러나 작가의 그림에는 이러한 의미론적 개연성이 최소한으로만 암시되거나 아예 무시된다. 모티브와 모티브들이 어떠한 최소한의 내적 필연성이나 개연성도 없이 마구 어울리고 중첩되고 병치돼 있는 것이다.

민화 속 모티브와 더불어 민화의 판박이인 화투의 도안그림이 차용되거나 심지어는 문자마저 차용 변용되는 지점에 와서는 무분별함이 그림을 지지하는 유일한 미학적 규준으로 보일 정도이다. 외관상, 그림에 등장하는 각종 문자들 이를테면 복, 돈, 화(花), 꿈, 행복,  오복, 부자, 대박, 희망, 만수무강, 운수대통, 백년회로, 부귀영화 등은 전통적인 민화의 한 형식인 문자도를 차용하고 변용한 것 같다. 주지하다시피 문자도에서의 문자와 거기에 그려진 이미지는 의미론적으로 서로 보충, 보완하는 관계에 놓여 있다. 그러나 작가의 그림에서 문자와 이미지와의 관계는 다만 병렬되고 병치됨으로써 그 의미를 강조할 뿐이다. 이를테면 돼지그림에 복이나 돈이라는 문자가 병렬되거나, 나아가 기성품 돼지 모형(플라스틱으로 만든 미니어처)이 병치되기도 한다. 이와 함께 꽃 그림에 꽃을 뜻하는 한자어 花가 중첩되는 것은 그나마 의미론적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는 편에 해당하며, 이러한 맥락으로부터 벗어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한마디로 전통적인 민화와 화투 그리고 부적에 나타난 온갖 상서로운 상징들과, 거의 클리셰를 연상시킬 만치 그 의미가 뻔한 통속적인 문자들을 하나의 화면 속에 무분별하게 쏟아부어놓은 것 같다.

 

 

prayer_32.5ⅹ32.5cm_Mixed Media_2008

 

 

한정된 프레임이 좁게 느껴질 만큼 화면을 가득 채운 이 문자와 모티브들이 건강한 생명력과 함께 욕망의 무분별한 분출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특히 독일의 미학자 빌헬름 보링어가 정론화한 공간공포 개념에 대한 공감을 자아낸다. 욕망에 관한한, 더욱이 그 욕망이 무분별한 분출을 지향하는 한, 이는 분명 여백과는  거리가 먼 개념이거나 현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백은 의미론적으로 침묵만큼이나 암시적인 문법에 속하며, 욕망은 키치나 클리셰처럼 그 의미가 공공연하게 드러나는 표면의 자장에서 작용하는 어법인 것이다. 여기에다 작가는 총천연색 화보를 연상시킬 만큼 현란한 원색대비와, 만화를 떠올리게 하는 모티브의 자유자재한 변형, 그리고 비즈(자잘한 유리 알갱이 소재), 스팽글, 시퀸(자잘한 생선비늘처럼 생긴 소재) 같은 각종 반짝이 소재 등의 기성품을 차용해서 욕망의 무분별한 분출을 강조하고 극대화한다.

 

 

prayer_32.5ⅹ32.5cm_Mixed Media_2008

 

 

화려하고 장식적인 화면(그 자체 福의 질료적이고 형식적인 표상과도 같은) 속에 민화와 화투 그리고 부적에서 차용한 복을 상징하는 온갖 그림들과 문자들이 어우러진 그림들에서 마치 당신이 꿈꾸는 복이란 복은 다 줄 테니 받으시오, 라고 권고하는 것 같다. 이로써 작가는 누구 할 것 없이 복을 꿈꾸는 현대인의 욕망을 매개로 해서 그 무분별한 분출을 실현해 보인다. 이를 통해 자신의 회화적 정체성을 그 의미가 공공연하게 드러나 보이는 키치와 클리쉐에다 결부시키고 있는 것이다.

화려한 꿈은 정작 비루한 삶을 증명한다고 했던가. 서향화의 그림은 비루한 삶에서 화려한 꿈속으로 도피를 감행하는 현대인의 실존의식을, 그 보편의식을 떠올리게 한다. 그 밑바닥에 현실에 대한 부정의식이 깔려있는 일종의 반어법으로 읽혀진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꿈꾸기를 그만둘 수는 없는 일이다. 여하튼 꿈꿀 때에야 말로 인간이 가장 존엄해지고 고고해지는 순간이 아닌가.

 

 

 

 
 

■  서향화

성신여자 대학교 미술학과 졸업

개인전

제7회 개인전(비움 갤러리)_제6회 개인전(가나아트 스페이스)_제5회 개인전(선화랑)_제4회 개인전(서호 갤러리)_제3회 개인전(공 화랑)_제2회개인전(갤러리 도울)_제1회 개인전(서경 갤러리)

단체전

2008-한국현대조형작가 초대전(과야시민 미술관,에콰도르)외 다수

그림소장

대우건설,양우건설,경동대학교, 해남지청,주한 터키 대사관, 주한 튀니지 대사관

현재

한국미술협회회원,구상전,한국조형작가 회원

서양화_tomato0422@paran.com 

 
 

vol. 20080528-서향화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