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나 개인展

 

꽃인가 꽃이 아닌가...FLOWER, NO FLOWER_2007_한지, 먹, 채색_135×165cm

 

 

선 갤러리

 

2007. 1. 9(수) ▶ 2008. 1. 15(화)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184 | 02-734-0458

 

 

 

 

 

존재론적 성찰에 의한 사의(寫意)정신

 

-그 경계를 넘는 조형적 실현

 

이재언 | 미술평론가

 

 안영나 작가의 작업실은 온통 꽃 그림으로 가득하다. 작품을 놓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꽃을 그리는 이유, 그리고 끝없이 다른 이미지들로 배양시켜 가는지에 대해 묻고 싶었다. 하지만 억눌렀다. 내 의식의 흐름대로 독해하고 싶은 자유를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다. (물론 오독(誤讀)의 가능성이 많은 주관성에 호도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큼직한 꽃 이미지들로 덮인 그의 화폭들을 보면서 문득 떠오른 시구(詩句)가 있다. 이것으로 절제의 이유가 다 설명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 (김춘수, ‘꽃을 위한 서시’ 중에서) 

존재론적 성찰의 기호와 의미로 가득한 김춘수의 ‘꽃’이 연애 모드의 ‘님’이 아니듯, 안영나의 ‘꽃’ 역시 상투적인 일상의 ‘꽃’이 아니다. 세계, 우주, 사물 등을 사유하고 성찰한 결과로서, 작가 내면에서 퍼 올린 의미와 상징의 기호라 보는 것이 타당하다. 작가는 표류하는 동시대 미의식을 목도하면서, 또한 불가피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순응하면서도, 사의(寫意)정신의 근간을 누구보다 확고하게 지키고자 하는 작가이다. 따라서 꽃이라는 대상을 통해 어떤 본질적인 것, 근원적인 것을 사유하고 있음이 역력히 드러나고 있다고 보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닐 것이다.

 

 

  

 

작가의 화면은 변화무쌍한 추상표현적 에너지와 생동감으로 충만하다. 한국화 특유의 발묵과 종래의 회화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효과들이 거대한 화면을 수놓고 있다. 상식이 되어 온 사색적이고 관념적인 여백과는 정 반대로 어떤 에너지와 그 효과들로 가득하다. 없음이 없음일 수 없다는데, 그 관념적 여백의 개념을 새롭게 탈바꿈시켜 무엇이 저토록 격랑과 소용돌이로 충일하게 했을까. 작가는 이 우주를 광대무변의 불가시적 에너지와 파장으로 가득한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 가운데에 조금은 우연처럼 언뜻언뜻 드러나고 있는 거대한 꽃 이미지는 하나의 우주 혹은 사물의 본질을 몸짓으로 상징하고 있는 것으로 읽혀진다. 전통 문인화의 필선에서 구현되고 있었으나, 작가의 사의성은 존재의 불확실성이라는 명제의 은유적 표명으로 대체되고 있는 것이다. ‘존재의 흔들림’이라는 명제에서와 같은 의식이 작가의 화면에서 엿보인다. 작가 역시 존재의 흔들림을 의식하고 있으며, 표현의 요체로 삼고 있음은 확실해 보인다.

작가는 철망으로 꽃을 묘사한 작업을 함께 하고 있다. 모든 면들의 골조가 철망으로 되어 있는 가운데, 표면에 종이죽이 입혀져 평면 그림과 공간 연출을 입체적으로 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철망에 종이죽을 붙여주는 데 있어서도 의도적으로 엉성하게 해나간다. 예의 불확실 혹은 미완의 양상을 재연하고 있는 것이며, 이와 같은 입체 작업은 종래의 한국화작업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도라 할 수 있다.

  물론 사의성이란 한국화에 있어서 가장 대표적인 미학적 근간으로, 사실적 재현에 근거한 형사성(形寫性)과는 대별되는 표현원리이기는 하지만, 이 같은 표현의 기조에는 노장의 영향이 컸다. 안영나의 사의 정신은 이러한 시점에서 주목해 보아야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창작의 요체이다. 안영나가 시도한 ‘의도하지 않은 의도된’ 표현은 노자의 무위자연과 장자의 해의반박과 궤를 같이하는 표현이며, 단순한 우연의 표현조차 필연으로 이어가려는 진지한 시도가 엿보인다. 우리는 그의 작가적 고뇌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작가의 내면을 조금만 진지하게 살펴볼 때, 그의 작업이 가지는 의미와 의의는 분명하고 쉽게 전달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닐 표면의 장력이 만들어주는 변화무쌍한 패턴들을 그대로 흡수해낸 모노타입과도 같은 효과로 발묵에 의해 만들어진 독특한 패턴과 점묘, 구성적 효과, 리드믹한 질서 등이 형성되고 있음은 안영나의 모든 그림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전통 문인화가 사의성을 강조하면서도 회화적 밀도를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수묵의 풍부한 뉘앙스에 기인한다. 바로 그러한 특징이 작가의 화면에서 잘 살아 있다. 꽃 자체의 현상적 심미성에 앞서, 꽃이라는 대상을 통해 세계의 본질에 다가가고 더욱 감성적이고도 역동적으로 성찰하고 사유하게 하는 것이 작가 작업의 주된 목표이다.    

작가의 작업은 선이 굵다.  꽃이라는 소재를 선택한 작가의 선 굵은 표현이 다소 역설적으로 보이지만, 작가의 꽃이 경험에 익히 익숙한 꽃 이상의 것이어야 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작가는 자잘한 요소들을 돌보기보다는 화면 전체의 짜임새에 더 역점을 둔다. 따라서 작가의 그림이 크면 클수록 경험의 내용은 더욱 깊고 다양해진다. 그토록 큰 화면의 그림들도 마치 거대한 전체를 염두에 두기나 한 것처럼 일관된 색조를 지니고 있다. 물론 그렇게 큰 틀 안에서 다양성과 자유로움을 발산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함 속에 숨어 있는 아름다움과, 미세 패턴들 속에 숨어 있는 큰 의미의 상생이 압권이다.

 

 

 

 

 

우리는 작가가 만들어 놓은 꽃의 정원에 초대 받았다. 강하면서도 연약하고 우연인 듯하면서도 필연인 듯, 비어있는 듯하면서 꽉 채워져 있고, 꽉 찬 듯함이 오히려 청량감을 주는 것이 그의 작업이다. 우리는 단순 ‘꽃’만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 꽃을 매개로 하여 ‘삶’을 돌아보고, 진지한 존재론적 성찰을 하고자 한다. 그의 작업이 삶의 본질을 녹여낸 우리의 생생한 이야기이기에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이미지로서의 꽃 이상의 꽃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펼쳐질 눈부신 푸르름으로 가득한 청색의 향연, 생기와 활력이 넘치는 꽃의 향연이 기대된다. 거대한 꽃들이 파도를 타고 다가오는 환상을 품어도 되지 않을까? 이것이 환상으로만 끝나겠는가. 아니다. 우리 현실에서 무언가 활기찬 생의 에너지와 희망을 선물로 받을 수 있을 것을 확신한다. 작가의 푸른 향연은 아름다움과 희망, 그리고 상상과 꿈으로 가득한 우리의 미래이다. 눈을 맞추어 보고난 다음, 그 다음엔 그림들에 귀를 기울이자. 어떤 생명의 박동들과 선율들이 들려지는지 말이다.

                                                            

 
 

 

 
 

vol.20080109-안영나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