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순자 개인展

 

꿈꾸는 탈_33×24cm_Oil on canvas_ 2007

 

 

인사아트센터

 

2007. 5. 2(수) ▶ 2007. 5. 8(화)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88 | 02-736-1020

 

 

꿈꾸는 탈_24×33cm_Oil on canvas_ 2007

 

 

온화한 원색 속에 펼쳐지는 ‘탈’의 환상

 

신항섭 | 미술평론가

그림은 색채로 말한다. 다시 말해 그림은 색채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그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색채다. 그래서 독특한 색채배열 방식만으로도 개별적인 세계가 가능하다. 실제로 어떤 특정의 색채배열 방식을 가진 그림은 그 내용을 자세히 보지 않고도 누가 그린 지 단박에 알 수 있다. 따라서 현대회화에서는 남과 다른 색채배열 방식만으로도 독자적인 세계가 가능할 정도이다.

백순자의 경우가 그렇다. 화려한 원색적인 색채배열 방식을 따르고 있는 그의 그림은 첫눈에 색다르다는 인상이다. 그의 그림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단지 색채를 보는 것만으로도 금세 그의 그림임을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 따스한 느낌을 주는 난색계열의 색채가 주도하는 까닭에 그와 같은 색채이미지만으로도 다른 사람들의 작품과 구분되는 것이다. 밝고 명랑하며 따뜻한 느낌을 주는 노란색과 붉은색을 중심으로 하는, 그 주변 색상이 전체적인 색채이미지를 이끌어가고 있다. 이는 필시 그 자신의 성정을 반영하는 것이리라. 따스한 색채이미지는 온화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개인적인 소회일 수 있는 것이다.

 

 

꿈꾸는 탈_24×33cm_Oil on canvas_ 2007

 

 

원색적인 색채를 구사하는 그림의 경우 대체적으로 강렬하면서도 자극적이기 마련인데 반해 그의 그림은 시각적인 화려함은 있으나 결코 산란하지 않다. 이는 자극적인 색채대비를 지양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작품에 따라서는 청적황 삼원색을 중심으로 하는 강렬한 색채대비로 인해 시각적인 이미지가 강한 경우도 없지는 않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세계 전체를 지배하는 색채이미지는 온화하면서도 정적이다. 원색적인 색채의 성향이 외부 지향적인데도 그의 그림에서는 그런 기미가 약한 것이다. 이는 색채를 구사하는 방식, 즉 분을 바르듯 부드럽게 처리하는 표현기법과 무관하지 않다. 따스함과 부드러움은 유사한 시각적인 정서를 유발하는 까닭이다.

그의 작품은 하나하나마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주도색이 있다. 그 주도색은 대체로 노란색이거나 붉은색일 경우가 많다. 이처럼 노란색이나 붉은색이 색채이미지를 지배함으로써 온화한 기운이 감도는 것이다. 설령 붉은색이 전체적인 분위기를 이끌어 가는 작품일지라도 공격적이라는 느낌이 아니다. 그것은 역시 부드러운 붓질의 효과 때문일 것이다. 부드러운 붓질은 미묘한 색조의 변화, 즉 색채의 농담이나 중간색을 표현하는데 적합하다. 실제로 그의 작품에서 삼원색이 순색 그대로 제시되는 경우일지라도 시각적으로 불편할 정도는 아니다.

 

 

내 마음이 머무는 곳_53×65cm_Oil on canvas_ 2007

 

 

이와 같은 원색적인 색채이미지를 기반으로 하여 그 위에 물상의 형태가 자리를 잡는다. 그 형태들은 대체로 선묘형식으로 자리하는데, 부분적으로 지워지거나 숨겨지거나 또는 생략된다. 그러기에 형태들은 어떤 작품에서나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그의 작품은 형태묘사 위주의 그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오히려 형태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그러고 보면 색채이미지가 적극적인데 비해 형태미는 소극적인 셈이다. 다시 말해 색채이미지가 중심이 되고 형태미는 부수적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특정의 소재가 반복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은 형태미가 부수적이 아닐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최근의 작품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전통적인 탈의 이미지가 그러하다. 이는 탈이라는 특정의 소재가 가지고 있는 형태적인 특징 또는 상징성을 의식하고 있음을 뜻한다. 그의 경우 상징성보다는 형태적인 특징을 우선하는 경향이지만, 탈이 가지고 있는 그 형태적인 이미지가 너무나 강렬한 나머지 아무리 부분적으로 생략하거나 숨겨진다고 할지라도 그로부터 무심할 수 없다. 인간의 얼굴을 변형 왜곡함으로써 기괴하고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게 만들었는데, 그 모양만으로도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풍자적이고 해학적이며 은유적인 그 표정은, 사회풍자적인 내용을 떠나서라도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기에 충분하다. 탈의 이미지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와 같은 심리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내 마음이 머무는 곳_53×65cm_Oil on canvas_ 2007

 

 

이렇듯이 그는 탈이라는 독특한 이미지를 도입하여 환상적인 공간을 창출한다. 그 환상은 일상과 유리시키는 힘을 발휘한다. 그러면서 정신 및 감정의 정화를 체험케 한다. 일상적인 시각을 뛰어넘는 미적 쾌감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탈과 원색이 조화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조형공간속에서 마음 깊숙이 자리한 일상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이다. 그것은 정신적인 긴장의 이완을 의미한다. 원색의 화려함과 풍자적이며 해학적인 탈의 표정을 통해 정신 및 감정의 해방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그는 전통적인 이미지에 대한 관심의 표명이란 차원에서 탈의 이미지를 도입하고 있으나 그런 소박한 의도에 무작정 따르기가 쉽지 않다. 다양한 탈의 형태 하나하나의 이미지가 자기발언을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숨기거나 생략하는 방법을 취하여 상징성이 드러나지 않기를 기대하는 것도 이에 비롯한다. 아무튼 원색적인 색채이미지에다 탈의 형상을 도입함으로써 원색이 뿜어내는 강렬한 이미지를 상쇄시키는 시각적인 효과를 얻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역설적으로 탈의 이미지가 그만큼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더구나 탈의 이미지는 하나가 아니라 복수로 등장함으로써 탈춤이 가지고 있는 상황전개를 암시한다. 서로 다른 형태의 탈이 조합하여 이야기를 이끌어 가듯이 여러 개의 탈이 모여 이야기를 만들어 가듯이 화면을 구성하고 있다. 다양한 조합 및 구성을 통해 조형적인 아름다움 및 긴장을 모색하는 것이다.

 

 

꿈꾸는 탈_91.5×117cm_Oil on canvas_ 2007

 

 

탈과 더불어 민화의 이미지가 등장하는 작품도 보인다. 탈과 민화는 역시 전통에 대한 관심의 환기로 이해할 수 있는데, 원색과 탈 또는 민화는 어울리지 않을 듯싶으나 의외로 조화로운 관계를 보여준다. 탈춤의 꼭두각시는 화려한 원색이고 민화 역시 원색적인 성향이 강하다. 그러고 보면 탈이나 민화의 이미지는 원색과는 궁합이 잘 맞는다. 그의 작품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이질적인 느낌이 없다.

한편 이전의 작업 그 연장선상에 있는 정물화도 병행하고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개념의 정물화와는 사뭇 다르다. 단지 소재로서만 정물이 등장할 뿐, 표현기법 및 방법은 현대적인 미학개념을 따른다. 그러기에 과일과 꽃 따위의 전통적인 정물의 소재가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형태의 재해석과 입체적인 공간개념을 떠난 다양한 조형어법을 구사, 정물화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정물의 소재 역시 구체적으로 드러내지 않은 채 숨기거나 부분적인 생략기법을 구사하여 개략적인 이미지만을 드러낼 따름이다. 특히 정물에서는 마치 종이 속의 그림이 겹쳐지는 듯한 다층구조의 미묘한 조형공간을 연출, 독특한 시각적인 체험을 유도한다. 이와 같은 기법은 탈을 소재로 하는 작품에도 응용되고 있는데, 그런 조형적인 해석이야말로 개별적인 세계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이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백순자

홍익대학교 대학원 현대미술 수료 | 에꼴 드 가나 졸업

개인전 6회 | 단체전 50여회 | 이메일 : artmrs@hanmail.net | 011-9721-3465

현재 : 한국미협회원, 강남미협회원, 홍미작가회원

 
 

vol. 20070502-백순자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