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쿤스트독 공모 展

 

- 우문현답 -

 

 

 

쿤스트독 갤러리

 

2007. 4. 27(금) ▶ 2007. 5. 10(목)

서울시 종로구 창성동 122-9 | 02_722_8897

 

참여작가 : 7명 / 이상희, 임정은, 손혜진, 방효진, 이재헌, 연기백, 정석희 /

 

 

이상희_지구방위대_120×264_디지털 프린트_2007

 

 

우문현답에 대한 : 따뜻함과 차가움 그리고 경계

 

1. 

한국은 지금 IT문화에 열광하고 있다. 젊은이에게 휴대전화는 단순한 전화기가 아니다. 온라인 게임을 하고, 대중교통 노선 정보를 얻으며, 실시간 DMB방송을 즐기고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이다. 특히 인터넷의 커뮤니티 공간인 사이월드(cyworld.com)에 대한 관심은 가히 폭발적이었으며, 이를 두고 광범위한 벤치마킹(Benchmarking)과 연구가 동시에 이루어 지고 있다. 미술작품에서 이와 같은 흐름은 무관하지 않아 영상과 인터넷 매체를 통한 작업이 점점 빈번해지고 있다. 이러한 매체들은 직접적인 체험을 야기하기 때문에 누구나가 쉽게 재미와 편리함을 느낄 수 있는 반면, 너무나 편리하고 간편하게 접할 수 있어 인내력을 갖고 관조하게 하는 자세를 휘발시키는데 일조하기도 한다.

 

 

정석희_A Sofa_ 4min 50sec_단채널 비디오_2003

 

 

현대의 한국에 팽배해 있는 문화는 지나치게 감각적이다. 우리는 눈과 소리와 촉각을 통한 자극에 끌리며 그러한 부산물들 속에 깊이 빠져있다. 이것은 사회 발전 속도와 비례하여 급증했고, 천박한 자본주의의 폐해이기도 하다. 서로서로가 경쟁하면서 더 많은 정보와 관심을 얻어야만 하고, 좀 더 앞서서 보다 더 높은 고지에 있어야 한다는 강박은 문명의 진보에 큰 촉매가 되기도 하였다. 문화가 감각적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며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접적이며 감각적인 문화에 갈증을 느끼고 그로 인해 감성이 무디어 지는 것은 신중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이재헌_Portrait of Trabuc_116.8×91cm_Oil on Canvas_2006

 

 

문화 산업의 발전은 동시에 심리치료의 발전을 촉진시켰다.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은 즉각적인 것들, 온라인상의 아바타와 같은 가상과 가상 공간 등으로 인간 본연의 시간성을 놓쳐 버렸다. 한편으로는 새로운 매체로 새로운 체험을 하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 정신의 고갈을 체험하게 된 셈이다. 이에 예술의 한 갈래는 미술치료, 음악치료와 같은 방식으로 현대인들에게 다가서고 있다. 분명 예술의 속성으로, 미적활동이 인간의 불안정한 마음을 바르게 하는 치료의 역할을 하기도 하겠으나 그것이 예술의 본질일 수 없다.

예술은 모든 것의 경계에 위치한다. 그 경계는 인간과 인간이 만드는 것일 수 있으며 인간과 환경 혹은 인간과 비현실이기도 하다. 여기서 인간이 배제된 모든 경계는 인간의 의식을 파괴시키고 인간 정서를 메마르게 하므로 예술의 본성에 위배된다. 따라서 예술은 인간에게 헌신하며 인간을 이끄는 경계를 만드려 한다.

 

 

연기백-140×100×30cm_철_2006

 

 

2. 

이번 쿤스트독 갤러리의 전시는 '따뜻함과 차가움 그리고 경계'에 대한 이야기다. 전통적인 평면 드로잉부터 영상 그리고 개념작업까지 아우른다. 작가의 작업 활동은 개별적이고 다르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서로 어울릴 수 있고, 마찰되는 공간에서 서로의 감정이 자극되어 한번 더 재현할 수 있게 된다. 그때의 모든 활동과 경험은 감각되는 것과 감각되어지는 것으로 구성된다. 즉, 작품과 공간 속에 두 가지의 방향성이 공존하고 있어 일방적이지 않으며 강요하지 않는다. 이런 관점에서 예술은 일방적으로 문화산업에 의해 수용되는 현대인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한다. 이제 그들이 따뜻하거나 혹은 차갑게 관객에게 다가간다. 따뜻함 그리고 차가움은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차이며 얘기를 나누고자 하는 방식에 불과하다.

 

 

 

손혜진_미친질주_130×50×70cm_아크릴, 자석, 바늘, 줄_2002

 

 

임정은_사각형의 변주0509-0701_각 20×20×0.5(cm)_2005

 

 

예술의 차이는 경계 속에서 경계를 허문다. 이것이 동시대가 요청하는 예술의 필요성이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같은 입장에서 따뜻하게 혹은 매우 낯설고 차갑게 자신의 작업에 다가간다. 그것은 작업의 과정 속에서 작업의 결과를 보는 것이고 작업의 결과물에 작업의 과정이 녹아 있는 것이다. 때문에 관객은 감정의 거리재기를 하면서 감상을 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보고 느끼며 스스로의 유리벽을 허물게 된다. 예술작품이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다만 예술작품은 작업의 결과물을 제시하고 제안하므로 '지금 여기'를 보게 하고 스스로의 자생활동을 발생시키게 한다.

예술에서 경계는 미적장소다. 작가, 작품 그리고 관객이 참여하지 않으면 미적장소는 발현되지 않으며 거기에는 어떠한 경계도 없다. 미적장소 일반적으로 일컬어지는 갤러리는 순수한 목적에서 감상을 위한 공간이다. 따라서 이 공간은 미묘한 감정의 덩어리며 모든 것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극적인 장소성을 갖게 만드는 곳이다. 작품 안에서도 그러하며 작품과 작품이 설치된 공간에서도 극적인 장소성은 여실하다.

 

김용민 | 쿤스트독 큐레이터

 

 

방효진_無릉도원_가변크기_혼합재료_2006

 

 

 
 

 

 
 

vol. 20070427-2007년 쿤스트독 공모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