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메일 - 지효섭 개인展 - 20070323
 

 
 

 

 

지효섭 개인展

 

- 인물과 풍경전 -

 

이야기꾼 - 1부: 왕의 포획 Storyteller -part 1: The Capture of a King 194x130 mixed media on frame 2006-2007

 

 

노암갤러리

 

2007. 3. 23(금)▶ 2007. 4. 1(일)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133 노암갤러리 | 02-720-2235

 

https://noamgallery.com/

 

 

이야기꾼 - 2부: 홍수 Storyteller - part 2: Flood  324x162 acrylic on canvas 2006-2007

 

 

비재현적 회화가 표현하는 것들

 

박순영 | 노암갤러리 큐레이터

지효섭은“단지 내가 보고 싶은 광경을 그릴 뿐입니다”라고 자신의 그림에 대해서 간결하게 말한다. 이 말에는 사실 그의 작품 안에 포함되어 있는 어떤 대립이 함축되어 있다. 재현과 비재현의 문제인데, 그는 사실적인 재현이 아니라, 사실 자체를 그리는 것에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적인 재현이라면 그것은 작가에게는 아주 쉬운 문제일 수 있다. 단지 어떤 역사나 실제인물을 등장시키면서 자신의 상상을 구체적으로 나타내면 된다. 이는 모든 구상미술의 기획으로서, 이러한 기획은 예시적이고 서사적인 것으로 나타나면서 하나의 스토리를 갖는다. 하지만 이는 오로지 작가의 의도만큼 만이며, 게다가 스토리를 부연 설명하는 정도에 그친다. 말하자면 삽화로서, 시작부터 회화가 그 자체에 의해 작동할 가능성을 제거하고 고유한 회화적 사실을 놓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기획과는 반대로 회화에 사실성을 부여한다. 말하자면 회화자체가 하나의 사실이 되는 것이다.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질료들은 작가가 찾고자 했던 광경을 구성하는 요소들 또는 형상들을 생산해 낸다. 이는 막연한 추상적인 서술이 아니라 실제로 그림을 보고 있으면 감각하게 되는 현상이다.

 

 

퀸 Queen 145x145 acrylic on canvas 2006

 

 

물감들은 중력만큼 작용하면서 흘러내리다가 다른 붓질, 즉 어떤 흔적들로 인해 윤곽을 만들고, 윤곽들은 작가로 하여금 또 다른 붓질을 요구하면서 결국 작가의 의도와 모호한 연관성을 지닌 채 어떤 형상으로 드러난다. 이는 물감들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사진사가 있는 <편지>에서 확연하게 목격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긴장상태에서 나타나는 형상들은 거대한 광경을 구성하게 된다. 이는 오로지 작가와 질료가 맺은 가족관계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낯설기도 하고 또는 그렇지 않기도 한, 딱 그 정도의 친밀감을 갖게 한다. 형상의 현존, 이것이 회화적 사실을 포착했다고 볼 수 있는 첫 번째 이유이다. 두 번째 이유는 화면을 가득채운 텍스처이다. 이는 우리의 감각들을 직접적으로 치고 들어오면서 우리의 감각작용만을 요구한다. 눈으로 만지기, 이는 뇌에 직접 전달되는 추상적인 형식이라기보다 우리의 신경계에 직접 전달되는 형상적인 질감에 의해서 가능해진다. 따라서 결코 우리의 인식에 완전히 포섭되는 일은 없게 된다. 말하자면 정확하게 해석되지 않는다. 세 번째 이유는 『이야기 꾼』시리즈에서 보이는 특징인데, 등장인물들을 서술적으로 연결시키는 것이 아니라 증인을 통해서 연결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왕의 포획> 우측하단에 등장하는 화가와 <홍수>의 우측상단에 등장하는 사진 찍는 탐사꾼이 바로, 화면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의 증인기능을 하고 있다. “연극 무대에서처럼, 세 명의 배우가 등장했을 때, 첫 번째 배우는 움직이고, 두 번째 배우는 첫 번째 배우의 행위를 수동적으로 겪으며, 세 번째의 움직이지 않는 배우는 이러한 사실에 참여한다.” <아기예수를 바라보는 20개의 시선>의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이 음악에 대해서 말할 때 제시한 이 세 가지 리듬, 즉 적극적인 능동적 리듬과 수축되는 수동적 리듬, 그리고 증인이 있는데, 이와 마찬가지로 『이야기 꾼』시리즈에 세 가지 리듬이 존재하고 있다. 딸들이 천사와 함께 아버지인 제왕을 포획하고, 수동적인 리듬으로서 왕은 포획당하며, 증인들은 이러한 사실에 참여한다. 이러한 증인의 기능을 통해 세 층위의 리듬이 공명하며, 비로소 회화적 사실이 되는 것이다.

 

 

프린세스 Princess 80x130 acrylic on canvas 2006

 

 

눈을 가리고 있는 소녀라든지, 화면을 횡단하는 추상적인 선들이나 지운 흔적들, 주름들 등 뒷받침할 수 있는 더 많은 요소들을 찾을 수 있겠으나, 앞서 나열한 세 가지 특징만으로도 작가가 보고 싶은 광경이 재현적인 것이 아니라, 굳이 말하자면 비재현적인 것으로서, 즉 모든 것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하나의‘사실-회화’란 것이 입증된다. 아니, 입증 될 것이다. 우리가 마치 음악을 들을 때처럼 아무 생각 없이 몸을 내맡기기만 한다면 말이다.

 

 

마스크 Mask 24x28.5 mixed media on frame 2007

 

 

“단지 내가 보고 싶은 광경을 그릴 뿐인데...” 그림에 대해서 물어보니, 난감해하다가 무심히 내뱉은 말이다. 화가들은 보이는 것을 잘 그리기위해 노력하던 때가 있었고,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기 위해 노력하던 때가 있었고, 보이는 것의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려고 노력한 때가 있었다. 그렇다면 단지 보고 싶은 것을 그린다는 것은 어떻게 봐야 될지 의문이다. 또 하나 작가가 자주 얘기하던 말인데, 그림을 그리다 보면 그림들이 요구하는 데로 그리게 되는 것을 자주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때는 하루 종일 그림을 쳐다보고만 있을 때도 있다고 한다. 그러다가 그림이 원하면 손이나 붓을 빌려주듯이 그린다는 것이다. 그렇게 오랜 동안 작업을 해왔고, 보여줄 때가 되었기에 드디어 첫 번째 전시를 갖는다.

 

 

관찰일기 Observation Diary  27x45 acrylic on canvas 2006-2007

 

 

전시는 크게 두 시리즈로 되어있다. 하나는 『가정의 평화』시리즈, 하나는 『국립공원』시리즈다. 『가정의 평화』는 <이야기꾼 1부-왕의 포획> <2부-홍수> <3부-음악수업> <4부-부활> 과 등장인물인 <가정의 제왕> <퀸> <프린세스 1, 2>, 그리고 증인역할로서 사진사들인 <편지1, 2>로, 『국립공원』은 <식물원> <귀떼기 청봉> <동해>로 이루어져있다. <이야기 꾼>을 간략히 정리하면 고양이로 표현된 왕을 천사들의 도움을 받아 포획하고, 딸들이 갇혀있던 왕비를 구출한다. 그 때 홍수가 나서 왕은 물에 떠내려가고 물에 휩쓸렸지만 다시 구출된 왕비는 가정에서 딸들에게 음악수업을 가르치고, 떠내려갔던 왕이 저녁 식사 시간에 다시 가정으로 돌아온다는 얘기다. ‘가정의 평화’를 위한 작가의 이야기는 이유나 원인이 불분명해서 ‘왜’ ‘그래서 뭐’에 대한 질문에 명쾌한 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단지 목격자로서 기능하고 있는 우측 상단의 사진사나 하단에서 묵묵히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만이 ‘어떤 사건의 사실성’이라는 정도의 어렴풋한 실마리를 제공하는 듯하다. ‘국립공원’들은 스토리가 있는 것은 아니고, 산과 바다, 동식물들이 만나는 장소로서 작가가 보고 싶고 이름붙이고 싶은 광경들 중의 하나이다. 전시장의 두 시리즈는 여하튼 작가가 보고 싶은 광경들로서, 이유만 묻지 않는다면 피아노소나타의 감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귀때기청봉 Kwitaekichung Peak 91x6! 5 acrylic on canvas 2006

 

 

늑대 Wolf 162x97 acrylic on canvas 2007

 

 

 

 
 

 

 
 

vol.20070323-지효섭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