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슬 개인展

 

고추피클, 162X130cm, acrylic on canvas, 2006

 

 

두아트 갤러리

 

2006. 7. 5(수) ▶ 2006. 7. 23(일)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05 | 02-738-2522

 

 

꿀호두, 162X130cm, Acrylic on Canvas, 2006

 

 

사물 예찬

金 福 基 | art in culture 발행인

회화(painting)는 '미술의 왕(王)'이다. 왕이라는 말이 너무 거창하다면 미술의 가장(家長)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르네상스 때 타블로가 탄생했으니 왕이 군림해 온 역사는 5백년이 넘는다. 그동안 미술의 왕은 적지 않은 도전에 직면했다. 이른바 '왕의 위기'다. 회화는 새로운 사진, 영화, 비디오 등 시각 미디어로부터 그 지위를 위협받았다.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회화는 언제나 '나는 회화다'라고 부르짖어야 했다. 모더니즘 회화가 회화 고유의 요소(평면성)를 추구하면서 다른 장르와의 독립을 찾아 나선 것도 이러한 위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모더니즘 회화가 마침내 다다른 종착역은 '텅 빈 캔버스'였다. 모더니즘 회화는 결국 아무 것도 그리지 않는, '회화의 죽음' 이라는 막다른 벽과 마주한다.  '(모더니즘)회화의 죽음'이 거론된 것도 오래 전이다. 그럼에도 회화는 여전히 살아 있다. '회화의 죽음' 이후의 회화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누군가 말했다. "진정 회화가 살기 위해서는 회화가 죽어야 한다." 확실히 오늘날의 회화는 '회화를 넘어선 회화'로 치닫고 있다. 모더니즘 회화가 그토록 열망했던 평면성은 물론이거니와 구상이나 추상, 평면이나 입체 같은 단순 논리와 고정 관념을 뛰어넘는다. 나아가 유일성, 수공성, 실제성 같은 회화의 장르적 본질마저 깨뜨리고 있다.

 

 

레스토랑전시전경

 

 

회화란  "어떤 질서 아래 모인, 색채로 뒤덮인 평면이다."(모리스 드니) 한슬의 회화도 평면의 질서와 원리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는다. 그녀의 그림은 색면(color field)으로 그린 것이다. 그런 점에서 1960년대에 클레멘트 그린버그가 그토록 비평의 '목숨을 걸고' 지지했던 색면 추상(color field painting)이나 후기회화적 추상(post-painterly abstraction : 일반적으로 post를 '후기'로 번역하지만, 실제 뜻은 '탈(脫)' 혹은 '반(反)'이다)과 방법적 유사성이 있다. 그러니까 한슬의 회화는 모더니즘의 전통을 잇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그녀의 그림은 한눈에 사물의 실체를 알아볼 수 있는 일루전을 그려내고 있다. 그린버그가 '2류'로 매장했던 구상 그림이다. 그러니까 한슬의 회화는 모더니즘의 반대편에 서 있기도 하다. 결국 한슬의 회화는 모더니즘의 연속과 단절, 지속과 변혁의 속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셈이다.

 

 

오이피클, 162X130cm, acrylic on canvas, 2006

 

 

한슬 회화의 비밀은 색면 표현의 방법론에 있다. 그녀는 마스킹 테이프(masking tape)를 작품 제작에 적극 활용한다. 표현하고자 하는 부분을 테이프로 막아 외곽을 물감으로 칠하거나, 반대로 외곽을 막고 표현하고자 하는 부분을 물감으로 칠하는 방법을 구사한다. 그것은 과거 미대 입시 때의 평면 구성과 같은 방법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실크스크린이나 공(空)판화 기법과도 흡사하다. 테이프를 찢어 붙이고 물감을 칠하고 다시 테이프를 때내는 반복 행위, 이 손 작업이 붓 작업보다 중시된다. 그녀에게 붓은 그리는 도구가 아니라 칠하는 도구일 뿐이다. 그래서 아예 넓적한 붓을 사용한다. 사물의 윤곽선 같은 한 오라기의 가느린 선들마저도 붓으로 그린 것(drawing)이 하나도 없다. 그녀의 회화는 어느 한 곳에서도 구름처럼 넘실대거나 하늘거리는 부드러운 붓 터치(painterly)가 없는 평평한 색면으로 짜여 있다. 크고 작은 다양한 표정의 색면, 화면 군데군데 포진된 등가(等價)의 색면, 색면들의 조합이 일구어내는 사물의 이미지. 한슬의 작업 방법을 '색면 구상' 혹은 '후기회화적 구상'이라는 새로운 용어로 부르면 어떨까? 여기서 한슬 회화의 매력, 새로운 회화의 탈출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인삼꽃술, 200X60cm, acrylic on canvas, 2006

 

 

한슬은 〈사물의 집합〉〈외출 준비〉 같은 일련의 작품에서 일상의 사물을 크게 확대한 대형 화면을 보여주었다. 전자는 건전지. 압정, 망치, 드라이브, 본드, 열쇄, 볼트, 너트, 클립, 줄자, 펜치, 붓 등 서랍이나 공구함 혹은 작업실 한 구석에서 끄집어낸 것들이라면, 후자는 매니큐어, 파우더, 헤어 드라이, 향수병, 분통, 마스카라, 아이라이너, 스킨 등 화장대 위나 핸드백 속의 여성 일상품이다. 그녀는 지극히 비근한 사물(私物)을 새로운 시각적 인식의 대상물로 내세운다. 거대한 캔버스에는 대량 생산된 인공물들이 하찮은 소비재로서의 기능에서 벗어나 하나하나가 그림의 주역으로 우뚝 서 있다. 대형의 사물 군상이요. 대형의 일상 정물이다. '사물 예찬' 혹은 '사물의 우상화'라 해도 좋을 것이다.

한슬의 이번 전시 작품은 병 속의 이미지 표현에 집중되어 있다. 보양재나 식료품 병 속에 들어 있는 뱀, 영지버섯, 꽃버섯, 인삼, 대추, 매실, 호두, 살구, 올리브, 피클 등을 그려냈다. 더욱 섬세한 공정의 마스킹 테이프 기법, 밋밋한 단색 배경에 표현 대상을 화면 가득 꽉 채운 구성, 실제 크기와는 무관하게 2미터까지 확대시켜 놓은 사물의 낯설음(혹은 기념비성) 등은 이전 양식의 연장선에 있다. 그러나 그동안의 인공물 소재가 이번에는 자연물로 대체된 데다 병 속의 물이나 사물의 다양한 변화까지 투시한다는 점에서 한슬에게는 또 하나의 조형적 도전임에 틀림없다. 색면 구상을 어느 지점까지 밀어 부쳐나갈지, 아니면 또 다른 방법을 모색할지 이 젊은 여성화가의 내일을 지켜 볼 일이 마냥 즐겁다.

 

 

인삼술, 162X130cm, acrylic on canvas, 2006

 

 

 

 
 

한슬

2002 서울산업대학교 조형예술과 졸업 | 2004 서울산업대학교 대학원 졸업

개인전

2006 두아트 갤러리, 서울 | 2005 갤러리 빌, 가나아트센터, 서울 / 윈도우 갤러리, 갤러리 현대, 서울 | 2003 ‘사물(私物)’, 관훈갤러리, 서울

단체전

2005 중앙미술대전,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서울 | ‘서울청년미술제 포트폴리오 2005’,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04 ‘Invisible Line’, 모란갤러리, 서울 / ‘정물예찬’, 일민미술관, 서울

 
 

vol.20060705-한슬 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