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애근-정송규 展

 

2006년 광주시립미술관 <올해의 작가>

 

 

 

광주시립미술관

 

2006. 6. 13(화) ▶ 2006. 7. 16(일)

오프닝: 2006. 6. 13(화) 오후 16:00

광주광역시 북구 운암동 산34-1 광주시립미술관 | 062-525-0968

 

 

 

 

浮遊하는 秩序와 기쁨

 

張錫源 | 미술평론가

캔버스 위에 섬세하게 旋律처럼 자리잡은 작은 네모들의 群集…. 그것들은 섬세하게 그려지고 사포로 문지르고 다시 다른 색채로 뒤덮히고 다시 그려지고 또 문지르고 하면서 독특한 音色, 감도의 層을 만들어 낸다.

작은 네모들의 배열과 선율, 집합으로 빚어지는 회화, 鄭松圭는 보다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형태의 감성적 실험에 몰두하고 있다. 그것들은 무언가를 그리거나 그리지 않는 사이의 예술적 행위이며 마치 무엇을 보거나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관계처럼 想像과 對象과 思惟의 복합적인 상호 관계처럼 미묘하고 두터운 감성의 층을 형성한다.

그 네모들의 편린들은 전통 보자기로부터 나왔다. 여러 가지 색면들로 구성된 보자기는 한 땀 한 땀 천 조각들을 엮어 만들던 여인들의 정성이 배어 있다. 과거의 엄격한 家父長的 권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방색조의 밝고 환한 색채의 다양한 편린들이 형식의 구속 없이 마음 가는대로 집합되어 독특한 성격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 작가는 한 때 보자기 형태의 화면 위에 하늘의 구름이나 어머니의 초상 같은 이미지를 연결시키고 있었다. 작은 천 조각들을 바느질로 엮는 대신에 여러 색조의 색면들을 그려서 평면적 질서를 만들면서 여성적 이미지와 상상력을 연결시키고 있었다.

 

 

 

 

 

 

최근 그의 작업은 화면 전체를 하나로 보는 미니멀(Minimal) 성향의 덤덤한 단순성을 맑은 고딕에 깔면서 點의 형태로 귀결되는 작은 네모들의 배열과 구성에 미묘한 표정을 불어넣고 있다. 무수히 많은 점들로 점유된 행복한 화면 안에는 장독 같은 형태가 넌지시 감춰져 있는가 하면, 은하수처럼 흩어진 점들의 균열 속에서 해와 달 그리고 별같은 프라이머리한 형태가 정서적으로 가슴에 와 닿는다. 추상은 다시 친화적 구상 형태와 연결되어 미묘한 울림을 만들어내고 있다. 때로는 점들의 행렬이 캔버스와 캔버스를 넘어 운률처럼 흐르면서 춤을 추듯, 감성적 흐름에 맡기는 듯한 자유로움을 준다.

 

 

 

 

鄭松圭는 새로운 것에 대한 탐구와 예술에 대한 무조건적인 傾度를 통해 작업을 추구해왔다. 보자기에서 비롯된 여성성과 정체성에 대한 관심은 인체를 탐닉하던 작가를 추상적으로 전향시켰다. 오늘의 미술이라는 열려진 장르에서 예술로서의 궁극적 질문과 작업을 일치시키려는 노력이 그의 작업을 견지케 한 것이다. 삶과 예술의 일치는 예술가로서 좀처럼 부정할 수 없는 중요한 질문이랄 수 있다. 이 문제를 피해가지 않으면서 예술의 코어(Core)를 이로부터 형성해 가려는 노력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여전히 규방 문화에 관심을 가지는 여성작가이면서 동시에 현대미술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들에 대하여 호기심 어린 관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그의 매력은 지극히 단순해 뵈고 무의미하게 생긴 작은 四角으로부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서정적 리듬과 회화성을 끌어낸다는 데에 있다. 그것들은 때때로 浮遊하는 존재들처럼 화면 가득히 부풀어 오르기도 하고, 식물의 유기적 조직처럼 치밀하게 질서 안에 자리잡기도 한다. 흩어져서 山水 風情이 되기도 하고, 월드컵 4강의 환희를 표현하기도 한다. 살아가면서 맞게 되는 감흥과 관심과 사유가 밋밋한 평면 속에 용해 되면서 회화적인 감성의 층이 두텁게 느껴진다. 예술에 대하여 그는 깨어있는 태도를 갖고 있다. 예술에 대한 오랜 습성을 스스로 바꾸어 현대적 변화를 시도했다. 무의미해 뵈는 사각의 배열 안에서 그는 마음 안에서 바라는 바의 예술적 해답을 얻어내었다. 그것들은 우리들 존재가 그런 것처럼 때로는 무의미하고 무기력해 뵈기도 하지만, 그것들을 갈고 닦아 서로의 관계와 배열 속에서 특별한 빛깔을 가진 존재로서 탈바꿈해 내고 있다. 예술은 그 사이의 묘약이다. 우리는 때때로 작고 약한 것에서 큰 감동을 받곤 한다. 예술적 감동은 작아 보이지만 미묘한 정서적 울림에서 크게 오는 것이 많다. 그의 회화가 벌이는 존재의 운율 같은 미묘한 감각의 울림 안에서 삶의 기쁨을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vol.20060613-윤애근-정송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