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성식 개인展

 

바베큐, 2006 Oil on Canvas 65 x 91cm

 

 

두아트 갤러리

 

2006. 6. 7(수) ▶ 2006. 6. 25(일)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05번지 | 02-738-2522

 

 

계단, 2006 Oil on Canvas 194 x 112cm(each)

 

 

대전을 근거지로 오랫동안 활동해 온 작가 민성식은 2005년과 2006년 대전시립미술관과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잇따라 주목할만한 신인작가로 선정되었고, 2006 중앙미술대전의 참여작가로 나서게 되면서 미술계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두아트 갤러리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민성식의 서울에서의 첫 데뷔전입니다.

민성식의 화면에는 실내와 실외를 나누는 건물이 있습니다. 건축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가진 작가는 넓은 색면을 이리 붙이고 저리 이어 공간을 만들고 문, 창문, 마루 등을 덧붙여 구체적인 건물의 모양을 만들어 갑니다. 하지만 민성식의 건물은 우리가 흔히 보아오던 건물의 외양을 벗어납니다. 통유리와 시멘트 벽을 갖춘 건물은 견고하고 육중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앙상한 골조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 덜 지어진 듯 보입니다. 게다가 건물은 하늘, 바다, 들판 등 그 어느 곳에도 안착해 있지 않습니다. 하늘 아래, 땅 위에 모호하게 위치한 건물의 존재감은 주변환경과 강한 대비를 이룹니다.

 

 

항구 2, 2006 Oil on Canvas 112 x 162cm

 

 

작품의 주된 이미지인 건물은 물론 민성식이 만들어낸 화면이 전체적으로 생경한 느낌을 주는 것은 독특한 구도와 색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아래에서 올려다본 또는 위에서 내려다본 시점의 구도를 통해 화면에 깊고 강력한 공간감과 원근감을 부여합니다. 작가는 오래 전부터 극단적인 원근을 적용하여 모서리를 드러내는 건물의 모습에 매력을 느꼈다고 합니다. 여기에 작가는 우리 눈에 익숙한 수평선과 수직선 대신 상하좌우의 비스듬한 선들로 화면을 과감히 분할합니다. 시원하게 화면을 가르는 비스듬한 직선들은 어느 한 곳에만 시선이 머무르게 하지 않고 화면 구석구석으로 시선을 유도합니다. 또 민성식의 화면은 무채색과 그것에 대비되는 파랑, 주황, 녹색의 큰 색면들로 채워집니다. 균일하게 처리된 색면은 건물이 가지는 실제 공간감과 질감을 차단하여 공간을 더욱 낯설게 만듭니다.

 

 

휴가-호숫가, 2006 Oil on Canvas 162 x 130cm

 

 

민성식이 만들어낸 공간에서 사람의 흔적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작가는 건물 안, 또는 건물 밖 어느 예기치 못한 곳에 슬며시 리모컨과 책, 주머니칼과 자동차 모형, 술병 등 일상 생활의 흔적을 집어넣어 어떤 정황을 만들고 그 상황이 무엇일지 추론하게 합니다. 작품 속 일상에 자주 뒤섞여 나오는 자동차, 보트, 텐트, 낚싯대는 작가가 실제로 좋아하고, 갖고 싶어하고, 또 꿈꾸는 것들로 현실의 모습과 함께 이상을 대변하는 모티브라 할 수 있습니다. 민성식 작품 속의 인물은 일상의 휴지기를 꿈꾸면서도 선뜻 떠나지 못하고 멈칫거리는 현대인의 모습을 반영합니다. 밖에서는 푸른 하늘을 향해 날아오른 비행기가 손짓해도 지금 당장 우리의 안식처는 넓은 소파와 큰 텔레비전입니다. 다만 집안에 들여놓은 배로, 옥상에 설치한 텐트로, 창틀에 올려놓은 낚시대로 만족합니다. 이들을 들고 당당히 집 밖으로 뛰쳐나갈 수 있는 날은 과연 언제일까요.

지역적 거리로 인해 이제서야 만나게 된 민성식의 작업은 지난 3-4년간 일관된 힘을 잃지 않고 꾸준히 축적해온 결과물입니다. 유채색과 무채색이 대비를 이루는 넓은 색면, 부감법과 다시점이 혼재된 구도로 독특한 작품 세계를 만들어 나가는 감각 있는 신진작가 민성식의 작품을 두아트 갤러리에서 직접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공사중 3, 2006 Oil on Canvas 162 x 130cm

 

 

■ 낯선 공간으로의 초대 ■

 

민성식의 구상회화에서 먼저 눈에 띠는 것은 독특한 색면들과 그러한 색채들이 만들어내는 대비 효과이다. 또한 사선을 비롯한 직선적인 요소가 그림에 가득하며 건축물과 공간을 조망하는 색다른 시점과 구도로 인해 다소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가장 특징적인 것은 화면에 사람들이 등장하지 않고 다만 일상의 여러 물건들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모든 그림들이 그렇지는 않다. 비록 <이것도 충분치 않아!>(2005), <돌아온 우주인>(2005)과 같은 작품에서 인물을 찾을 수 있지만 인물 자체 보다는 잠수복, 우주복 등 복장에 더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인물은 부수적인 역할 밖에 수행하지 못한다. 또 <술취한>(2005)에서 바(bar) 뒤에 가려진 남녀, <낚시가기-집에서>(2005)에서 팔·다리만 보이는 사람 등 사람들은 사물에 가려져 있어 정확하게 그들을 응시할 수 없다.

 

 

카누하다 2, 2006 Oil on Canvas 130 x 194cm

 

 

대신 화면에는 텐트, 물고기, 칼, 낚싯대, 램프, 보트, 비행기 등 주로 캠핑 혹은 여행과 관련된 도구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러한 소품들은 작품과 감상자를 이어주는 매개물로 작용한다. 즉 작가는 직접적으로 인물을 제시하는 것을 지양하고 간접적인 정황 증거를 제시함으로써 감상자로 하여금 그 속에서 어떤 사건이 벌어졌었는지에 대해 유추하게 한다.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스토리가 생겨나게 되며 오히려 의미가 더 유연해지고 풍부해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겉보기에 나른한 오후의 한 장면처럼 정적인 인상을 주지만 사실상 내적으로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동적인 화면이다. 다시 말해 민성식의 회화에는 특정한 주인공이 없다. 그러나 모두가 그 속에 들어가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역설적인 상황과 열린 해석을 염두하고 있다. 그에 따른 심리상태를 효과적으로 증폭시키기 위해 작가는 색채의 미묘한 뉘앙스, 그리고 불안정한 구도를 적절히 이용하여 감정의 강약을 최대한 부각시킨다.

 

 

카누하다 3, 2006 Oil on Canvas 130 x 194cm

 

 

그렇다면 민성식이 일차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또는 휴식이다. 그는 우리 사회가 과거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되었지만 동시에 바쁘고 분주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 대가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있는데 그것은 삶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것, 혹은 삶을 느슨하고 여유 있게 사는 것이다. <도시 의 삶 -아파트>(2004), <낚시가기-도시에서>(2004) 등의 작품은 도시 생활을 하는 작가의 입장을 대변하듯이 현대 도시인들의 답답함과 그들이 갈망하는 탈주의 욕망을 은유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바다, 카약, 낚시 도구, 텐트, 소파 등은 작가의 의도를 암시하는 상징물들이다.

민성식의 작품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외적인 상황에 적응해야 하는 현실과 그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비현실적인 욕구 사이의 충돌은 그림에서 현실적인 공간과 비현실적인 공간의 혼재로 드러난다. 예를 들어 <계단>(2006)에서 오른쪽 가운데에 캔버스를 살펴보자. 캔버스를 지지할 수 있는 벽이 있어야 하는데 그 벽이 없다. 더욱이 가정집에서 회를 썰어 먹고 있는 황당한 사건이 전개되고 있다. <술취한>에는 지붕을 위로 들어낸 듯한 모습과 유리로 된 투명한 벽이 보인다. 이것은 현실의 물리적인 공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상상의 공간이다.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친숙한 공간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너무도 생소하고 낯선 공간이다. 이 특이한 공간은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동경의 공간이며 모든 것이 뒤섞일 수 있는 경계의 공간이다. 그러므로 실내일 수도 있고 실외일 수도 있으며, 형상과 배경의 구분마저 모호한 곳이다. 더불어 모든 상식적인 논리가 뒤집어 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항구 2> (2006)를 보면 작은 부두에 배가 정박해 있다. 당연히 고기잡이 배가 있어야 하는데 뜻밖에 거대한 유조선이 들어와 있다. 마찬가지로 <항구 1> (2006)에는 컨테이너가 있는 것으로 보아 화물선이 머물러야 하는데, 잠수함이 있을 뿐이다. 나아가 민성식의 그림은 단독으로 존재할 수도 있고, 아니면 몇몇 그림들이 서로 결합하여 또 다른 공간을 창출할 수도 있다. <당신은 큰 TV를 갖고 있군요!>(2006), <피자 그리고 냉장고>(2006), <너무 멀어!>(2006) 등은 세 점이 하나로 묶여 전시된 적 이 있으며, 두개의 캔버스로 이루어진 <계단>은 서로 연결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계단>의 왼쪽 캔버스 에 그려진 창 밖에는 녹색의 잔디가 깔려있지만, <계단>의 오른쪽 캔버스 에 그려진 창 밖에는 푸른색 물이 흐른다. 또한 작품 속 카페트의 색깔도 다르다.

 

 

보트의 꿈, 2006 Oil on Canvas 145.5 x 227cm

 

 

민성식은 2005년 말 부산시립미술관의 '젊은 시각 새로운 시선 2005'전과 2006년 초 대전시립미술관의 'Channel 5 Five 2006'전에 선정되면서 최근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는 작가이다. 불과 3년 전 작품인 <스시바>(2003)만 보더라도 민성식은 개인적 경험을 맑은 고딕으로 비교적 붓질의 느낌이 살아 있는 사실적 형태의 그림을 그렸다. 2005년 봄 첫 개인전에서 선보인 <낚시가기-밤에>(2005)와 <집에서-오렌지색 벽돌 벽>(2004) 등은 현재의 작업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양상을 내포한다. 위 작품들의 소재는 최근 작업과 비슷하지만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아직까지 회화적 평면 과 곡선의 사용이 발견된다. 그런데 부산시립미술관과 대전시립미술관 전시를 위해 2005년 후반과 2006년 초반에 제작한 작품들은 공간을 나누고 자르거나 생략하는 방식이 상당히 과감해졌으며, 유리벽 개념을 도입하여 허구적 공간연출을 시도하였다. 특히 벽돌의 표현에서도 나타나듯이 이전의 사실적인 묘사들이 좀더 디자인적인 묘사로 옮겨가면서 색면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이는 회화에 있어 공간을 인식하는 작가의 태도가 달라졌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다만 부산 전시가 원경을 주로 다루었다면 대전 전시는 사적인 공간을 다루고 있다. 두아트 갤러리에서 열리는 이번 개인전에서는 색채의 대비가 좀 더 강해져 극적인 부분이 강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색면이 화면을 뒤덮는 비중이 늘어나 마치 추상화와 구상화가 교묘하게 중첩된 듯하다. 그와 함께 원경에서 바라 본 광경과 근경에서 바라 본 사물을 동시에 배치함으로써 더욱더 이중적이고 아이러니한 공간이 탄생되었다.

 

 

휴가는 없어!, 2006 Oil on Canvas 65 x 91cm

 

 

민성식은 그림을 구성할 때 구도를 가장 먼저 생각한다고 한다. 마주한 공간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고 재해석하며 친근하면서도 어색한 요소들을 하나둘씩 첨가한다. 그가 새롭게 만드는 공간은 비록 회화라는 2차원의 평면이지만 그 제한된 조건들을 횡단하는 탈영토화된 공간이며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정서적으로 갈망하는 공간이다. 더 의미를 확장한다면 미술작품과 일반인이 교차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일 것이다. 민성식은 바로 그 낯선 공간으로 우리를 초대하며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류한승 |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vol.20060607-민성식 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