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erican Funnies 展

 

(Roy Lichtenstein, John Wesley, Robert Crumb)

 

 

 

갤러리 현대

 

2006. 5.10(수) ▶ 2006. 5. 31(수)

110-190 서울시 종로구 사간동 80 | 02-734-6111

 

 

 

 

■ 전시 소개

갤러리현대는 2006년 5월, 미국의 팝아트를 대표하는 세 작가인 로이 리히텐슈타인, 존 웨슬리, 로버트 크럼의 작품을 선보인다. 우리의 의식은 일상적인 상업문화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일상적이라는 것과 상업적이라는 것은 흔히 하위영역 안에서 평가된다. 그러나 일상적인 상업문화는 미술이라는 영역 안에서, 특히 오늘날의 미술사에서 다양한 층위로 존재한다. 오히려 고급예술의 자리에 안정적으로 위치하였고 다양한 의미를 만들어내고 있다.

"American Funnies”에 소개되는 세 명의 작가, 로이 리히텐슈타인, 존 웨슬리, 로버트 크럼은 세계 각국에서의 수많은 전시와 출판물을 통해 이미 자신의 입지를 굳힌 작가들이다.그러나 이들은 그간 하위예술로 취급되었던 만화라는 장르가 종합예술로서 재평가되고 있는 미술계의 흐름 속에서 더욱더 주목 받고 있고, 그들의 작품은 이전에 받아온 평가와는 다른 맥락 속에서 읽혀지고 있다. 매스미디어의 대중적인 이미지를 만화의 형식과 기법을 빌어 객관적으로 묘사한 리히텐슈타인, 극히 사적인 주제를 만화적 표현기법을 차용하여 익살맞게 표현한 웨슬리, 히피의 저항문화 기류를 만화를 통해 표출함으로써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했던 크럼, 이들 세 작가는 만화라는 표현기법과 형식을 통해 서로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 세상을 표현하였다.

이번에 갤러리현대가 소개하는 세 명의 작가들은 냉소적이고 관념적인 표현 방식으로 사회를 향한 자신들의 견해를 작품에 담았던 유럽 미술에 비해 좀 더 감각적인 시각언어를 사용하며 특유의 ‘미국다운’ 표현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미국다운’ 표현방식 은 영국에서 시작된 팝아트가 미국에서 더욱더 활성화되었다는 미술사적 사실과 이것이 가지는 의미를 상기시켜준다. 미술사적 개념인 ‘팝아트’와 ‘미국적 문화’, 그리고 장르적 개념의 ‘만화’, 이 셋이 어우러져서 만들어내는 의미는 이제 저급과 고급의 기준이라는 평가의 틀 안에서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들의 작업은 순수하게 만화적 재미로 받아들여지기도 하면서 동시에 우리에게 미술사의 흐름을 환기해주는 지적인 가치판단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번 갤러리현대의 “American Funnies” 전시는 기존의 갤러리라는 공간 속에서 경험할 수 없었던 새로운 유형의 전시로 다양한 차원의 재미를 선사해줄 것이다.           

 

 

    

 

■ 작가 소개

1.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로이 리히텐슈타인은 비평가이자 사진 작가인 존 코플랜즈(John Coplans)와의 인터뷰에서 만화로부터 그가 느끼는 매력은 다층적인 감정을 담고 있는 내용과 만화 특유의 ‘쿨’한 표현방법 사이의 긴장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리히텐슈타인은 만화가가 아니다. 그러나 그에게 명성을 안겨 주고 미술사적 논의의 중심에 서도록 만들어준 계기는 저급예술로 치부되는 만화와 고급예술 사이에서 그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했다는 점이다.  

미키 마우스, 뽀빠이, 수퍼맨 등과 같은 만화 속 캐릭터가 대중을 사로잡았던 20세기 중반, 많은 미국의 화가들이 만화의 영향을 받았다. 리히텐슈타인이 그의 작품세계에 만화를 도입하게 된 계기는 특이하게도 사적인 경험에서 비롯된다. 그는 디즈니 만화에 열광하던 아들로부터 “아빠는 이 만화처럼 잘 그릴 수 없을 거야!(Daddy could not paint as well as the images in the comic books!)”라는 말을 듣는다. 이 충격적인 발언은 리히텐슈타인과 미술, 리히텐슈타인과 만화, 만화와 미술 사이의 관계에서 그 자신의 정체성과 화가로서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이 이후 말풍선, 망점, 강렬한 원색 등과 같이 만화에서 볼 수 있는 표현적 요소와 일상의 요소가 그의 작품의 특징이 되었다. 리히텐슈타인은 뉴욕 52번 가와 할렘의 재즈클럽에 다니면서 마음을 사로잡는 주제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비주류 공간으로 인식되는 곳에서 영감을 받았고, 이를 가시화하는 과정에서 만화적 표현과 느낌이 그에게 미술을 하게끔 만들어준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이 느낌과 동기를 작품으로 이어 나간다. 그가 작품에 가져온 소재들은 다양한 출발점을 갖는다. 그가 선택한 소재는 일상의 사물, 동물, 신화 속 인물에서 모네의 그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리고 그의 소재는 미국적 삶, 미국의 역사, 미국의 대중문화로부터 선택된다. 그러나 그의 동기들이 투명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이처럼 소재가 갖는 다양함과 의도되지 않은 듯한 선택은 엘리트 미술로 여겨지던 모더니즘과 결별한 팝아트가 일상적인 것과 강요되지 않은 친밀한 관계를 맺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또한 그의 작품에 차용된 만화적 요소는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매력적인 혹은 세련된 외양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팝아트가 일상의 옷을 입었지만 단순하게 해석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님을 동시에 말해준다.

 

 

 

 

2. 존 웨슬리(John Wesley)  

존 웨슬리는 1928년 미국 L.A.에서 태어나 Los Angeles City College와 U.C.L.A에서 수학했으며, 196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뉴욕에서 거주하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웨슬리는 만화의 선형적이고 모듈화되지 않은 색채를 차용하여 발전시킨 자신만의 독창적인 표현기법에 재치있는 유머와 개성을 덧붙여 미국인의 정서와 심리상태를 표현한다. 그는 포괄적인 문화적 경향을 그리거나 반영하기 보다는 개인의 내면 세계에 천착하는데, 이는 종종 초현실적인 효과를 발하여 작품 맥락의 변화를 가져온다. 이에 대해 웨슬리를 초창기부터 적극적으로 지지해온 미니멀리스트 도날드 저드(Donald Judd)는 “심리적인 기이함”을 표출한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웨슬리는 미국 만화의 부흥기였던 1930년대에 탄생한 ‘뽀빠이’, ‘도널드 덕’, ‘블론디’와 같은 만화와 함께 성장했다. 다섯 살 때 아버지를 여읜 후 평탄치 않은 성장기를 거쳤던 그에게 만화는 늘 그의 주변에서 함께 했으며 그의 외로움을 달래주던 안식처가 되었다. 이렇듯 가장 쉽게 접할 수 있었던 만화가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전업작가로 활동을 시작하던 1960년대 초반 웨슬리는 단순히 작품 제작의 경제성을 위해 만화의 윤곽선, 평면적 표현, 색상 사용의 제한, 트레이싱이라는 기법을 채택하였는데 이것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 줄곧 그만의 양식으로 정착되었다. 웨슬리는 회화의 표현형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 작품에서 다양한 표현기법을 실험한다. 작업 초기, 아르누보의 영향을 받은 화려한 장식 프레임을 그림으로써 현실과 상상의 세계가 오버랩 되는 공간을 창조해 냈으며, 독창적인 패턴과 장식적 모티프를 화면 전체에 반복하여 기묘한 느낌을 창출해 낸다. 또한 이성적이고 표준화된 생산이라는 측면에서 현대인의 삶의 한 특성으로 정의되는 반복성을 작품의 기법으로 채택하여 현대인의 강박증을 표현하되, 반복 속에 차이를 두어 이를 붕괴시키기도 한다.  

1960년대 이래로 웨슬리의 작품은 팝 문화의 직설적인 시각언어를 이용하여 그 이미지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원형들을 묘사하고 동시에 정체성, 인종, 그리고 무엇보다도 에로티시즘 등의 이슈를 다루는데 사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만화라는 매체에서 에로틱한 장면이나 인간의 본질에 대한 고뇌 등을 표현할 수 있는 소재를 찾아냄으로써 웨슬리는 매스미디어의 다양한 이미지를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 간의 연결고리로 활용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누구나 금새 알아볼 수 있는 이미지를 작품에 활용하는 대다수의 팝아티스트와는 달리 웨슬리는 매우 개인적이고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들을 선호하며 만화캐릭터, 운동선수, 동물, 문화계 인사 등을 그림으로써 자신의 삶의 연결고리를 폭넓은 대중문화에까지 확대한다. 존 웨슬리는 2006년 뉴욕 아모리쇼(The Amory Show)의 이미지 작가로 선정되었다.

 

 

 

 

3. 로버트 크럼(Robert Crumb)

로버트 크럼의 작품은 ‘만화’이다. 따라서 그의 창작물은 코믹스(comics), 즉 ‘재미’라는 새로운 암호를 걸고 대중 앞에 서게 된다. 그러나 크럼의 만화는 만화라는 장르가 한정시키는 재미 혹은 가치를 넘어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의 작품과 그 자체는 30년대부터 70년대까지의 ‘미국’ ‘만화사’와 함께 논의된다. 이런 과정 속에서 그의 작업은 시각적으로 포획되지 않은 그 무언가가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만화의 최초 황금기’로 대변되는 1930년대는 만화가 문화적·사회적 의미에서 대중을 위한 예술로 서서히 인정받기 시작했던 시기였으며, 그와 맞물려 고급문화로서의 미술이나 음악이 침체상태에 빠졌던 시점이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과 기술혁명이 가져온 공황 속에서 사람들은 개혁과 변화를 외쳐댔고 그런 움직임에 만화가들은 근육질의 ‘수퍼맨’ 또는 탐정 ‘스피릿(The Spirit)’과 같은 인물로 대응한다. 사회질서와 도덕을 파괴하는 악당을 응징하는 이러한 수퍼히어로는 미국적 이데올로기를 전세계로 전파시키는 상징적 캐릭터로 자리 잡는다.  

1960년대 말에 이르러서는 ‘언더그라운드 만화’가 등장하게 된다. 야하다 못해 변태적이고 파격적인 언더그라운드 만화는 기존의 어린이용 유머나 모험을 위주로 한 상업적 만화와 크게 구별된다. 때문에 5살 때 벅스버니를 보면서 처음으로 ‘성적 흥분’을 경험했던 크럼이 당시 언더그라운드 만화의 대부로 불렸던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그 자신은 인정하지 않지만 그의 만화는 히피문화로 대변되는 60년대 미국의 언더 문화를 폭로한다. 마약, 반전사상과 녹색사상, 섹스와 동성애의 자유 등을 주장했던 히피들에게 크럼의 솔직한 주제와 적나라한 표현방법은 매력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자신과 주위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그려나갔던 크럼은 반문화운동이나 히피문화에 동참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머리로 생각하고 가슴으로 느끼는 지극히 일상적인 부분을 끊임없이 표현했을 뿐이다.

그의 만화는 만화의 재미가 단편적이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크럼은 냉소주의를 잃지 않는다. 그러나 정작 그는 자신의 만화가 정치적·사회적 신념을 담기보다는 누구든 공감 할 수 있는 실존하는 이야기들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그 이야기들을 울고 있는 어린아이 같이 솔직하게, 고개 숙인 어른들처럼 퇴폐적으로 풀어 나간다.

 

 

 
 

 

 
 

vol.20060510-American Funnies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