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임 개인展

 

- 통로, 문, 그리고 인상 -

 

 

 

갤러리 아트사이드

 

2006. 4. 5(수) ▶ 2006. 4. 22(토)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70 | 02-725-1553

 

 

 

 

■ 소통과 흔적, 그리고 인상이 펼쳐내는 삼막극

 

우리는 삶을 살아간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삶을 더 나은 곳으로 이끌기 위해 영위하며 분주히 뛰고 또 뛴다. 이 삶의 과정은 그러나 순탄치 않다. 무슨 이유에서지 너와 내가 만나고 말을 건내며 호흡하며 생각하고 무언가를 마음에 아로새기며 판단한다. 이를 어떤 이는 삶의 목적이라고 하고 또 어떤 이는 삶의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연원이 무엇인지 모르고 막연히 살아갈 때, 누군가 우리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찾아주길 아련하게나마 바란다. 일상을 살아갈 때 누군가는 일상의 저편의 세계를 부유하며 자기 역할의 분을 다한다. 우리는 그러한 사람들을 예술가라고 부른다. 말하자면 예술가란 모름지기 우리의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답변을 찾아 부단히 여행하는 항해사와도 같다.

하태임은 이러한 우리의 삶의 의미에 대해 세 가지로 대답해준다. 그것은 다름 아닌 소통과 흔적, 그리고 인상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더라도 아니면 자연의 신비와 조우하더라도 아니면 과학기술의 경이와 접하더라도, 그것은 모두다 소통의 일환이다. 이 소통의 과정 속에서 우리 감정의 희로애락이 생긴다. 그러나 이 감정의 정화되지 않은 양태는 그저 흔적일 뿐이다. 그저 스쳐지나 가는 어떤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 대한 성찰과 가치판단이 부여될 때 의미심장 하게 변모된다. 마음과 정서에 남은 흔적들. 이에 대한 깊은 성찰은 비로소 강렬한 인상으로 화한다.

이러한 삶의 과정의 삼막극을 하태임은 강렬하면서도 수려한 색채미로 체현시킨다. 소통의 과정에서 생겨난 기억들의 흔적과 이 흔적에 부여한 의미가 바로 인상이다. 즉 하태임은 흘러 지날 수밖에 없는 우리 삶의 한계에 인상을 남기며 극복해낸다. 하태임의 예술세계는 이렇듯 수려하고 감각적이되 단순한 감각에 머물지 않는, 일상에서 의미로 가는 변모의 감각연극이다.

 

 

 

 

■ 유혹의 색, 그래피티(Color of Temptation)

 

이번 헤라의 봄 기획 상품 ‘유혹의 색, 그래피티’의 주된 상품출시 개념은 “대담하고 자유로운 자기 표현”이다. 도시의 분주한 일상에서 나를 밝혀줄 수 있는 대담한 자기표현이야말로 지친 일상에서 나의 삶을 가꾸게 해주는 중요한 위안처이다.

강렬하면서도(vividly) 생동감 넘치는(lively) 도시의 삶은 ‘헤라’가 추구하는 이념과 하태임의 ‘소통과 흔적, 그리고 인상’의 타이틀과 그 근원에서부터 정확히 부합한다. 더군다나 하태임은 비단 그의 예술뿐만 아니라 그의 캐랙터에서도 대담하고 자유롭게 자기의 젊고 신선한 감각을 수려하게 표방하는 예술가로 자기 위치를 잡고있다.

대담하고 자유로운 자기표현으로 모두를 매료시키는 방법은 헤라와 하태임이 공통적으로 수행해야 할 이번 기획의 근본 목표이다.

 

 

 

 

■ 인사동의 윈도우 갤러리

한국의 유동인구 3위를 자랑하는 인사동은 관광과 놀이의 메카이다. 그 중심에 자리잡은 아트사이드 윈도우 갤러리는 가장 눈에 띄는 위치와 공간개념을 자랑한다. 이 갤러리는 24시간 대중에 전시를 선사한다. 이 갤러리는 예술은 물론이고 의미 있는 시각문화라면 그 어떤 대상이라도 포용하는 원칙을 갖고 있다. 이번에 기획하고 있는 ‘헤라의 이벤트’는, 첫째 예술이 보다 넓은 시각문화로 확장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의미가 있고, 둘째 메이크업이 예술이 갖고 있는 고결함과 의미성과 같은 아우라를 흡수한다는 의미가 있다.

 

 

 

 

■ 세상의 문과 예술의 열쇠

철학의 목적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은 “파리 병에 빠진 파리에게 나가는 법을 보여주는 것(to show the fly the way out of the fly-bottle)”이라고 말했다. 예술 역시 이 철학의 목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예술은 우리에게 외부세계의 출구를 보여주는 일종의 열쇠와도 같다. 우리는 외부세계를 살아가면서 경험하며 느끼고 지식을 축적하며 자기만의 세계를 형성한다. 따라서 각각의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러한 자기만의 세계는 천차만별로 다양할 수밖에 없다. 이를 어떤 이는 “세계관 (a world view)”이라고 하며 또 “정신(mind)”이라고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세계를 바라보는 방법(way of seeing the world)”이라고 한다. 이러한 각자의 세계는 너무나 확고해서 쉽게 바뀌지도 않으며 잘 열리지도 않는다. 다만 어떤 이의 세계가 또 다른 어떤 이의 세계로 연결될 수 있는 통로가 있다면 그것은 거의 예술이 유일하다. 왜냐하면 예술이란 어떠한 사람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법’의 물리적 체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작품을 보고 감동하며 어떤 작품을 보고는 아무런 감흥에도 빠지지 않는다. 어떤 작품을 보고 감흥에 빠졌다면 그것은 보는 사람이 작품을 만든 사람과 영혼이 비슷하다는 뜻이며 아닐 때에는 다르다는 뜻이다. 즉 인간의 영혼과 영혼을 연결해주는 통로의 몇 안 되는 것이 예술이라는 매체이다.

 

 

 

 

하태임은 이러한 예술의 의미와 가치를 자기만의 독특한 세계로 각색해서 캔버스에 담아낸다. 하태임이 생각하는 예술의 의미는, 예술이야말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통로’를 만들고, 따라서 서로간에 굳게 갇힌 ‘문’을 열며 서로간에 보이지 않는 영혼의 ‘인상’을 볼 수 있도록 해주는, 마술의 열쇠인 사실에 있다. 하태임의 회화세계는 말하자면 ‘통로’와 ‘문’을 넘어 영혼의 인상으로 가는 삼막극이자, 이 기나긴 필연적 고통을 긍정의 교감으로 화해시키는 감각의 연출이다.

‘통로’라는 표제가 붙은 연작 회화는 극렬한 레드가 섬세하면서도 육중한 붓질로 화면을 통과한다. 몇 차례 계속 진행되는 이 붓질을 끝으로 표면에는 그가 느껴왔던 사람과 사람 사이의 통로가 아로새겨진다. 쉽게 피어나지 않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통로라는 이름의 꽃은 뜨거운 감성이나 격정이 아니고서는 쉽게 피어나지 않는다는 듯이 레드의 붓질은 내면의 메시지를 향해 쉬지 않고 화면을 오간다. 또한 세상의 문은 굳건하며 쉽게 열리지 않는다는 듯이 ‘문’의 연작 회화들은 경계가 모호하며 불투명하다. 강하게 누르며 거칠게 호흡하며 반복된 붓질의 결과는 세계에서 벌어지는 불투명하며 거칠되 강한 저항을 참지 못한 마음은 진정한 아름다운 그것일 수 없다는 작가의 믿음을 드러내준다. 그리고 강하고 거칠게 눌린 레드, 레몬, 블루, 그린과 같은 단색의 ‘문’ 연작 회화의 저편으로 아득히 대비를 이루는 다른 색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열릴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간절함이다.

 

 

 

 

만약 이 강인하고 거센 문이 열리게 된다면 열리는 이 문의 이름은 ‘교감의 시작’이다. 교감이 허용되는 이 ‘문’에서 우리 삶의 필연적인 고통과 이 고통의 뒤꼍에서 자라나는 희열이 동시에 피어 오른다. 우리 삶의 번잡함, 이 번잡한 편린의 점점 속에 기쁨 또한 묻어 나온다는 것을 하태임은 색과 색의 타고난 감각적 배치로 이야기하곤 한다. 끝으로 하태임이 말하는 ‘인상’은 다름 아니라 영혼의 모습이다. 수많은 색으로 이루어진 ‘인상’ 연작 회화의 기저에는 어두운 기억과 화사했던 기쁨, 근거 없는 불안과 막연한 희망의 불씨, 그리고 아직 채 끝내지 못한 삶의 숙원이 동시에 서려있다.

삶에 대해 명증하게 아는 이는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다. 다만 하태임의 회화의 모습처럼 총체적 채색의 기대를 마음 저편에 남길 뿐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그리고 자연과 신의 통로를 형성시켜주고, 또 이 기나긴 통로를 지나 완강히 버티는 문을 열 수 있도록 해주며, 이 문의 저편에 자리하는 아련한 영혼의 모습과 세상의 기적을 만나게 해주는 열쇠야말로 하태임이 믿는 예술의 본연이다.

앞서 보았던 비트겐슈타인의 ‘파리 병’은 파리에게 좋은 냄새와 액체, 그리고 빛으로 가득하다. 여기에 빠진 파리는 두 번 다시 자유를 얻지 못한 채 좋은 냄새와 액체의 홍수 속에서 살다가 죽을 수밖에 없다. 어쩌면 우리의 세상 또한 파리 병과 같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세상의 풍요와 편의를 찾아 곤두박질할 때, 하태임은 이 세상의 굳게 닫힌 문을 열고 모든 대상과 소통하며 느낄 수 있는 진정한 자유로움에 대한 열망을 화폭에 남긴다. 또한 하태임의 작품이 갖고 있는 현란한 채색의 비밀은 바로 이러한 열망에 자리한다. 그리고 이 그림 속에 자리하는 색채의 이름을 가리켜 우리는‘자유에 대한 열망’이라고 부른다.     

 

 

 

 
 

 

 
 

vol.20060405-하태임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