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라 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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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SHAPE

 

2026. 5. 20(수) ▶ 2026. 5. 31(일)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양평로100, 3층

 

www.instagram.com/keyshape.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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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라

 

누에고치는 결국 실마리만을 남겨주고 떠나갔다.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내려면 4~5개의 실을 구멍에 함께 넣고 1개의 실로 만들어 뽑아낸다고 한다. 하나의 실로 나온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이 세상에서, 사실 모든 사람들은 여러 개의 실들로 복잡하게 이루어져 있다. 이렇게 굵게 만들어진 하나의 실은 과연 다시 본래의 가느다란 실들로 풀어질 수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이 세상에는 과연 단 하나의 정의로만 남을 수 있는 것들이 정말로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시간이 부피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채우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이 질문을 던질 때마다, 우리가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사람이라는 사실, 누군가의 삶이 끝나고 또 다른 누군가의 삶이 시작되는 그 역사를 너무 쉽게 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를 묻게 된다. 나의 그림에서 원래의 역사가 지닌 보편적인 정의와 설명은 종종 배경처럼 밀려난다. 나는 나의 감상으로 역사를 다시 써내린다. 감상의 차원으로 말하는것이 옳은가 이는 과거로 부터 현재에 안착되는 순간의 반응이다. 역사라는 것이 정말로 주관적인 견해로 해석될 수 있다면, 그때 비로소 나는 그림으로써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작업에서 역사를 더 주관적인 의미로 바꾸어 ‘트라우마’라고 정의해 보고 싶다. 이것은 내 다문화적 좌표 한국과 일본, 그리고 그 사이에서 형성된 감각 위에서만 가능하게 감지되는 나의 역사 감각이다. <언제나 나의 출생에 대한 정의는 익산 (이리)지만, 나의 국적에 대한 정의는 너무나 혼란스러운것이다.>

나는 혼란스럽다 어디를 바라 봐야할지 모르겟는 당혹감, 애도와 길티를 동시애 느끼는점들 . 센다이에서 8월의 추도문은 트라우마다. 하지만 그 트라우마는 윤리와 맞닿아 있으면서도, 동시에 맞닿아 있지 않다. 결코 설교적이거나 교훈을 주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다면 트라우마란 무엇인가? 내게 트라우마는 신경질적으로 종종 찾아오는 것, 통증처럼 예고 없이 재발하는 것이다. 그것은 신경증적인 방식으로 발현된다. 언제 어디서든, 이미지나 뉴스 한 줄, 목소리에 의해 과거가 갑자기 ‘지금’으로 회귀해 돌아온다. 죄책감 또한 동반된다.

왜냐면 어느방향에서 보느냐에 따라 너무나도 다른 관점이 되므로 , 이렇게 과거가 현재로 휙 돌아오는 순간을 체감하는 일. 마치 트라우마가 불시에 찾아오는 것처럼.그 감각이야말로 시간이 부피를 가진다는 증거가 아닐까. 시간이 부피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채우는 것은 무수한 감상이자 잔상이다. 그러니 시간을 좀 더 느리게 보자. 너무 빠르게 끝난 일로 분류되지 않도록, 속도에 저항하자 그래서 전시는 말한다. Back to basic. 백투베이식, 기초로 돌아가서 뿌리를 찾아보자고. 긍정해 보자고. 전시장에 놓인 많은 것들 들어가면 보이는 그림과 글들은 그 말한다. 기초로 돌아가자고. 누에고치의 한실을 다시 풀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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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60520-김유라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