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중기 展

 

호방하면서도 섬세하고 감미로운 ‘활(活)’의 세계

 

감나무 집_60.6x80.3cm_Acrylic on canvas_2025

 

 

 

2026. 5. 13(수) ▶ 2026. 5. 18(월)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34-1 인사아트프라자 1층 | T.02-736-6347

 

www.insaartplazagallery.com

 

 

괴산 오가리 느티나무_180x230cm_Acrylic on canvas_2026

 

 

호방하면서도 섬세하고 감미로운 ‘활(活)’의 세계

 

2008년 여름 영월 봉래산 정상을 둘러보고 난 하산길에 영월에서 태어난 이래 살고 있던 백중기 작가 작업실에 잠깐 들렀다. 막차 시간에 쫓겨 긴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당시 대화 중에 당부처럼 건넨 이야기가 있다. 감동의 서사를 지닌 이 백두대간의 위용과 기상을 화폭에 더 많이 담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한 것이다. 물론 작가는 서정과 서사가 풍부한 풍경 그림을 다양하게 그리는 가운데, 특히 산을 많이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잘 아는 바와 같이 좋다는 이유만 가지고 대작에만 치중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혹시라도 그러한 리스크 때문에 작가의 열정이나 역량이 위축될까 염려되었던 것이다.   

다행스럽고도 고맙게 그는 지금까지 대형 산 그림을 꾸준히 선보여왔다. 필자가 2018년부터 현재까지 집필하고 있는 모 일간지 칼럼에 세 번째 작가로 실은 바 있었는데, 편집국 기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고 전해 들은 바 있다. 면 자체가 그리 크지 않아서 대작의 위용이 전달될 수 있을까 우려했지만, 손바닥보다 작은 이미지에서도 아우라가 뿜어져 나온 모양이다. 자잘한 군더더기들은 제거하고 강골의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는 것이 마치 고산자의 지도에 혼을 불어넣은 것 같다는 것이었다. 우리 산하의 호방하고 원시적인 기운과 기상을 거친 마티엘과 필치로 표현한 데 다들 깊은 인상을 받았을 법하다.

 

 

거돈사지 느티나무_180x230cm_Acrylic on canvas_2026

 

 

백중기 작가의 그림은 현실 혹은 ‘생(生)’과 ‘활(活)’의 서사를 편안하고 꾸밈없이 소박하게 펼친다. 거창한 현학적 담론이나 개념들에 현혹되지 않고 자신의 삶이 가지는 반경 안에서 자연을 담담하게 담아내는 데 주력한다. 자연과 사람의 조화로운 관계를 소박하게 그린다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 아닌 모양이다. 자연이든 삶이든 주제에 몰입하다 보면 과도한 개념의 옷을 입히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작가는 이 대목에서 다분히 현실주의의 색채를 띠고 있는 듯 보인다. 의식하고 사유하는 바는 많지만, 스스로 어떤 담론이나 트렌드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에게 가장 편한 옷을 입고 싶을 뿐이었던 것 같다.

아울러 현실에 시선을 둠에 있어서도 경직되지 않고, 유연하고 활기찬 태도를 견지하는 주관과 소신이 엿보인다. 현실의 모순보다는 밝은 면을 보고자 노력하고, 주어진 여건 속에서 아름답고도 선한 긍정성에 뿌리를 둔 칼로카가티아의 미의식을 견지하고 있다. 심미성에는 모름지기 무관심성이 깔려 있다지만, 작가가 오랜 세월 그림을 그리는 태도에서는 ‘관심’ 혹은 ‘목적’이 여과 없이 드러난다. 자신이 자연과 함께 하는 소박한 삶 속에서 경험하고 있는 내용들을 그림에 담아 많은 사람들이 함께 더불어 향유하고 화답이 오가는 장을 지향하고 있다. 종종 아름답고도 진귀한 장면을 목격한 사람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는 행위, 그것은 기록만을 위해 행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와 희열과 감동을 공유하고자 하는 충동 바로 그로부터 그리기가 시작된다.

작가의 그림에서는 하늘과 달, 구름, 대지, 특히 산, 강, 숲, 마을, 나무, 꽃 등의 소재들이 자주 등장한다. 대부분이 삶의 주변에서 마주하는 장면들이다. 사시사철 그리고 밤낮으로 그것들이 내뿜는 기운생동의 현장들에서 함께 교감한 내용들을 일기 쓰듯 펼치고 있는 것이다. 재현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동화 같은 순수한 서사, 절제된 형태, 역동적 필치와 마티엘 등에서 개성이 강하게 느껴진다. 모든 화면들이 어떤 꾸밈이나 과장이 없이 훈훈하고 물 흐르는 듯한 자연스러움을 띠고 있는 한 편의 전원시와도 같다.

 

 

봄꽃 피어 좋은 날_60x110cm_Acrylic on canvas_2025

 

 

작가는 곧 더 많은 산을 담은 기념비적 대작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백중기 작가 작품 라인업의 플래그쉽이자 시그니처이다. 이 가운데 연당 스튜디오 한쪽 벽을 꽉 채운 <동강 - 새미마을 뼝대>는 특히 압권이다. 그 길이만도 5.5m에 이르니 통상 크기를 따질 때 쓰는 호수를 가늠할 수가 없다. 22년 제작된 <설악, 190x520cm>이나 그밖의 대작 풍경들이 많지만 훨씬 더 능가하는 스케일이다. 물론 그림의 크기가 질적인 것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자연의 경관을 화폭에 담는 데는 숭고적, 나아가 물활론적 경험과 무관할 수 없다. 보통의 관성적 경험을 초월하는 스케일이나 강도, 즉 호방한 심미성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산이 많고 험한 지역에서 태어나고 날마다 산을 시야에 두고 살아온 작가에게는 산을 향한 무언가 특별한 정서와 정신이 있다 할 수 있다. 산이 상식을 초월하는 그 무엇이라는 의식을 지니고 있는지는 다 알 수 없지만, 신화 혹은 원형과 같이 유구한 역사를 통해 통시적 ‘우리’ 정체성과 하나가 되어 왔던 사실 자체는 분명히 중시하고 있는 듯하다. 객쩍은 얘기일 수 있지만, 태어날 때부터 탯줄이 끊어진 순간 일월성신의 기운이 존재론적 인과성을 갖는다고 역설하는 설도 있다. 그렇다면 사실 그에 앞서 태어난 땅의 기운을 먼저 받는다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아무튼지 산, 특히 백두대간에 대한 관심은 남다르다.  

근작 <동강-새미마을>은 어라연에서 좀 더 상류에 있는 백운산 기슭의 덕천리 소재의 마을로 수직절벽을 이르는 ‘뼝대’라는 부제도 흥미롭다. 영월, 정선 일대의 토속어로 아마도 ‘병풍 같은 대’ 즉 상부가 뾰족하지 않은 절벽이라는 의미로 ‘대’라 일컫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작가는 이 작품의 습작을 위해 수백 미터 상공에 드론을 수차례 띄우기도 했다 한다. 최근 들어 위성이나 비행체에 의한 공중촬영 덕분에 우리는 자연이나 도시에 대한 색다른 시각 경험들을 많이 한다. 그 고장에서 태어나 평생 평지에서 제한된 시각으로만 대하던 산하를 높은 곳에서 구부려 내려본다는 ‘부감(俯瞰)’의 경험은 새로운 발견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마치 산과 강이 함께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지켜주고 있는 듯한 설정에서 다분히 물활론적 태도의 일단도 엿보인다.

 

 

3월- 통도사_97x147cm_Acrylic on canvas_2025

 

 

일견 작가의 그림이 두 가지 트랙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 말한 바 있는 장대한 화폭에 장엄한 뷰를 담아내는 기념비적인 원거리 풍경과는 대조적으로 근거리의 풍경들이 함께 한다. 상대적으로 작은 크기이다 보니 아기자기해 보이지만, 여기서는 시각적 크기가 아닌 시간적 유구함에 방점을 찍는다. 삶의 터로 바짝 다가서서 애환이 서린 장면과 마주하는 가운데 그려내는 정감 넘치는 정경들이다. 호방한 기운과 구수한 이야기가 조화를 이루는 배치와 구성도 중시하는 대목이다. 항상 전시 때마다 이 두 유형의 그림들이 함께 함으로써 상호 보완적인 시너지를 일으킨다.

과거 우리의 정서와 토속적 향수를 자극하는 텁텁한 필치의 구상 화풍이 유행했던 때가 있었다. 작가의 그림들이 어느 정도 절제된 화풍과 정서를 공유하고는 있지만, 보다 현실에 밀착한 토속적 방언이 섞인 서정적 향수가 짙게 녹아 있는 이야기를 시각화하려는 점에서 다르다. 특히 작가가 ‘활(活)의 노래’라 명명한 자연계 생명체에 서린 시간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는 모습들에서 관객들과 깊은 교감을 보이고자 한다. 이러한 유형의 그림들에 많이 등장하는 것이 나무들이다. 봄에는 꽃이 탐스럽게 피어 있는가 하면 겨울엔 앙상한 가지의 나목들로 다채롭다. 광대무변이면서도 끝도 없이 유전하는 섭리를 이성적으로 이해하면서, 아울러 감성적으로는 실재의 겉에 드러나는 현상적인 면모 또한 우리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진지하게 토로하고 있는 듯하다.

그는 틈날 때마다 방방곡곡 다니면서 오랜 세월의 풍상을 겪은 느티나무 고목들, 신목이라 해도 좋을 나목들을 만나 화폭에 담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꽃이나 잎들로 무성한 때보다 더 심미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뼈만 앙상한 나목이지만 마디마디에 서린 세월이 창조해낸 아우라 때문이 아닐까. 오래된 사물엔 특유의 파티나(patina)가 주어진다. 브론즈나 고가구가 그렇다. 나무에 서린 특유의 파티나는 그것의 수형부터 풍기는 포스에까지 범접하기 어려운 위엄을 지니고 있어 우리는 신목이라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 고목 아래 점처럼 그려진 점경인물이 대자연의 위대함에 대한 외경심을 담고 있을 터, 관객들도 세월의 무게에 숙연해진다.

 

이재언 (미술평론가)

 

 

동강 어라연_162.1x259.1cm_Acrylic on canvas_2025

 

 

영월 하송리 은행나무_180x260cm_Acrylic on canvas_2026

 

 

설악_190x520cm_Acrylic on canvas_2022

 

 

동강-새미마을 뼝대_240x555cm_Acrylic on canvas_2026

 

 

 

 

 
 

백중기 | BAEK JUNG GI

 

개인전 | 3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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