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나라 展

 

제스처들

 

 

 

아트스페이스 보안 2

 

2025. 7. 4(금) ▶ 2025. 7. 27(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효자로 33 (통의동 2-1) | T.02-720-8409

 

http://www.boan1942.com

 

 

 

 

박나라는 신체와 사물, 인간과 비인간,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를 조각이라는 매체를 통해 탐구해 왔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이번 개인전 《제스처들》은 그간의 조각적 실험을 한층 확장하며, 신체와 사물의 관계를 새롭게 바라본다. 이전 작업들이 주로 신체가 지닌 사물적 성격을 다뤘다면, 이번 전시는 사물이 지닌 신체성과 생명력으로 주제를 확장한다.

그간 박나라는 신체가 사물처럼 다루어지는 순간에 주목해 신체와 사물의 경계를 질문해 왔다. 출산, 응급 처치, 사후 처치 같은 상황에서 평소에 드러나지 않았던 신체의 물리적 성격이 두드러지는 것에 주목하여, 신체가 지닌 사물성을 조각적으로 표현해 왔다. 시체를 소독하는 사후 처치 과정에 빗대어 안면 마스크를 구강청결제로 소독하는 <운명소독>(2024), 임신한 몸의 변화를 부풀어오르는 빵으로 표현한 (2023), 3D 출력한 돌과 신체 모양을 뒤섞어 동일한 층위로 모아둔 (2023) 등의 작품으로 신체의 사물적 면모를 밝혀냈다.

이번 전시에서는 움직이지 않는 사물이 지닌 생명력에 주목한다. 전시장에는 기능을 잃은 사물들에 인간적 행동을 암시하는 제스처가 덧붙여져 놓여 있다. 작가는 이 제스처를 통해 사물에 생명력을 부여하고, 그것들이 마치 신체처럼 감각하고 반응하는 존재로 다가오게 한다. 단순한 의인화나 상징적 장치에 머무르지 않고, 사물 그 자체의 생명력을 끌어내기를 시도한다.

전시장에는 의자, 침대, 식탁 같은 기성품 사물이 용도에서 벗어나 변형된 채 배치되어 있다. ‘자리’라는 말은 물리적으로 사람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을 뜻하는 동시에, 어떤 모임이나 기회를 뜻하기도 하고, 흔적이나 자국을 뜻하기도 한다. 의자라는 사물도 물리적으로 앉는 곳이면서, 누군가가 모일 자리를 의미하기도 하고, 혹은 누군가 떠난 흔적이 되기도 한다. 박나라는 의자의 시트를 벗겨내고 앙상한 뼈대를 드러냄으로써 의자의 양면적 모습을 강조한다. 기능을 잃고 척추와 갈비뼈를 닮은 뼈대만 남은 의자는 사물 그 자체로도 인간을 닮았으면서, 텅 빈 존재감을 드러냄으로써 이전에 그 ‘자리’에 있었을 신체의 흔적을 떠오르게 한다.

침대 또한 껍데기가 벗겨진 채 내부를 드러내고 덩그러니 놓여 있다. 마치 꽁꽁 감싸 두었던 내부를 드러낸 듯 취약한 모습으로 누워 있는 조각은 사물로서 침대가 지니고 있던 인간적 면모를 보여준다. 누울 수도 앉을 수도 없도록 뾰족뾰족하게 날을 세운 모습이 침대가 본래 지녔을 성격이나 감정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작가는 벗겨지고 절단되어 더 이상 기능하지 않는 매트리스를 진동하게 하여 움직임을 준다. 기계 모터에 의해 일어나는 반복적인 움직임은 진짜 생명력이 있는 움직임처럼 보이기보다는 움직일 수 없는 대상을 어떻게든 움직이게 하려는 애처로운 몸짓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편 우리가 신체와 사물을 대하는 방식을 살펴봄으로써 신체와 사물의 유사성을 살피기도 한다. 신체와 비슷한 높이의 장식장에 피부와 같은 막을 씌우고 그 안에는 여러 도구를 진열한다. 모양이 비슷한 도구들에는 인체용 미용 도구, 수술 도구와 사물용 공구가 섞여 있다. 그 형태도 용도도 비슷한 도구들이 각각 신체를 위해, 사물을 위해 사용된다. 또 다른 선반에는 파란색의 바디케어 용품, 스포츠 음료, 청소 용품 등이 진열되어 있다. 신체의 위생을 위한 제품과 사물을 위한 청소 용품이 공통적으로 파란색을 띤다는 점에 주목하여, 인체와 사물을 대하는 방식의 유사성을 이야기한다. 여러 제품의 명칭에서 따온 제목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향과 색을 자연적인 것처럼 보이고자 하는 아이러니한 욕망을 드러낸다.
전시장에는 이러한 비인간 존재로서 작품이 곳곳에 놓여 있다. 이들 조각은 신체를 모델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 자체에서 신체적 특징을 끌어냈다는 점에서 기존의 전통적인 신체 조각과는 다른 생명력을 발산한다. 인간을 모방하기를 멈추고 그 자체로 사물로서 존재성을 드러낸다. 때로 이들은 서로 대화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 반목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관객은 어떤 좌대도 없이 동일한 바닥에 놓인 작품들 사이를 거닐며, 자신과 비슷한 스케일의 작품들에 눈을 맞춘다. 관객과 작품 사이의 위계는 사라지고, 관객은 비인간 존재로서 작품과 새로운 관계를 만든다.

 

글. 권정현(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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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50704-박나라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