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아 展

 

SITUATION : placebo

 

situation_100x65cm_oil on canvas_2023

 

 

 

2024. 4. 18(목) ▶ 2024. 5. 28(화)

관람시간 : 화-토 11:00-18:30

Opening 2024. 4. 18(목) 17시

서울특별시 용산구 회나무로 66, 3F | T.02-6324 2139

 

www.instagram.com/g.contemporary_leeeun

 

 

situation_112x145.5cm_oil on canvas_2023

 

 

플라시보 K

 

“확실한 건 이런 상황에선 시간이 길다는 거다. 그리그 그 긴 시간 동안 우리는 온갖 짓거리를 다해 메울 수밖에 없는 거야. 뭐랄까 얼핏 보기에는 이치에 닿는 것 같지만 사실은 버릇이 되어버린 거동을 하면서 말이다. 넌 그게 이성이 잠드는 것을 막으려고 하는 짓이라고 할지 모르지. 그 말은 나도 알겠다. 하지만 난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이성은 이미 한없이 깊은 영원한 어둠 속을 방황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말야. 너 내 말 알아듣겠냐?”-<고도를 기다리며>

<고도를 기다리며>는 자코메티가 연상되는 앙상한 나무 아래서 두 남자가 의미도 없이 되돌아오는 헛된 질문들로 채워진 작품이다. 인간 삶의 조건에 대해 황량하고 정적이며 우울한 유머를 담은 이 작품이 유럽을 건너 미국에서 첫 무대에 올려지기 전 광고 홍보문구는 “두 대륙을 떠들썩하게 할 웃음의 무대”였다. 공연 첫날 경쾌한 코미디를 기대한 관객들은 1막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극장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갔다고 한다. 우리는 이렇듯 텍스트 자체 보다 텍스트의 곁가지, 본체보다 옆에 딸린 부분, 작품 자체보다 배경 지식 등을 통해 작품 정보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다.

 

 

situation_145.5x112cm_oil on canvas_2023-4

 

 

이정아의 작품은 연극무대의 한 장면 같다. 바닷가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는 가족, 화려한 옷차림과 액세서리를 한 아트페어 관람객들, 부유하는 듯 지나가는 지하철의 행인, 머릿결이나 의상만 강조된 불안한 소녀 등이 일시정지된 상태의 배우처럼 그려진다. 상황 하에 있는 배우의 몸짓이 감독의 콜로 정지되고 작가는 정지된 장면을 포착해 표현하는 것처럼 말이다. 무대 뒤 배경은 화면에서 모두 제거되고 남는 건 오롯이 상황 속 배우의 몸짓이나 찰나적 동세만 가득하다. 작품에서 염두할 것은 이러한 동작과 그 동작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든 지워버린 배경이다. 곁가지 정보에 의해 대상을 파악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지만 이정아의 작품은 그려진 대상을 통해 지워진 배경을 유추하게 만든다. 작품의 온전한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그려진 정보에 지워진 곁가지 정보를 완성해야한다. 그러니 화면 속 인물의 의상, 장신구, 머릿결, 신발, 인물의 머리카락이나 뒷모습 등 부분 혹은 표면에 집중하면서 그 인물들이 숨 쉬는 작품 속 서사로 뛰어들어야 한다. 서사라고 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어떤 상황이다. 내러티브와 사건이 있는 현장 혹은 이야기를 서사라고 한다면 일상 공간에서 삶을 살아가는 찰나의 모습이고 사건의 인과 관계가 없는 그림이기에 상황이라는 말이 적절할 것이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이야기 혹은 서사를 알맹이라 할 때 찰나와 상황은 껍질, 혹은 표면일 것이다. 이를 대비하여 말하면 작가는 알맹이를 그린 게 아니라 표면, 즉 껍데기를 그린 셈이다. 껍데기를 통해, 그리고 껍데기가 제시한 이미지 목록을 통해 작가는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situation_100x200cm_oil on canvas_2024

 

 

플라톤식으로 말한다면 표면의 표면을 그린 이정아의 작품은 공화국에서 추방될 뿐만 아니라 추방된 세계에서도 한단계 아래 혹은 우주로 추방될 지도 모르겠다. 잘 알다시피 플라톤식 회화는 이데아를 모방한 장르다. 그러니 회화는 결코 진리에 다다를 수 없다. 이데아를 흉내낸 것이기에 회화는 진리의 그림자에 불과한 허상일 뿐이다. 한데 이정아의 작품은 모방의 세계에서도 표면 혹은 껍데기에 집중했다. 허상의 그림자, 표면의 표면. 껍데기의 껍데기.

 

 

situation_100x65cm(좌)_oil on canvas_2023 | situation_100x65cm(우)_oil on canvas_2023

 

 

이정아와 같이 멀리 추방될 화가를 꼽자면 캔버스의 표면에 집중한 화가인 클로드 모네를 꼽을 수 있다. 푸코는 서양미술사에서 콰트로첸토 이래 처음으로 화폭 혹은 캔버스 내부 안에서 자신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공간의 물질적 속성을 이용할 수 있었던 사람으로 마네를 높게 평가했다. 마네는 전통 회화가 발견하지 못한 화면의 물질성, 즉 캔버스의 물질적 속성을 드러낸 최초의 화가라는 것이다. 이는 현대예술이 오늘날 여전히 그 내부에서 발전시키고 있는 회화 양식을 보여주는 선구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이 물질성으로서 캔버스 혹은 대상으로서 캔버스 개념은 전통적으로 내려온 재현회화를 형식적 족쇄에서 풀어 자유를 달게 해주었다. 이제 회화가 단순히 재현의 장이 아니라 놀이터 혹은 구성의 장이라는 인식으로 확장된 것이다. 이처럼 구성으로서 캔버스, 껍데기의 재현이라는 개념은 회화사를 관통해 이정아의 작품의 면모를 보여주는 개념이다. 물론 이정아의 표면 혹은 껍데기는 캔버스의 물질성보다 표현된 대상의 자세, 옷차림, 구도, 삭제된 배경 등으로 더 강조된다. 원경의 사물이나 인물을 모두 지우고 하얀 방처럼 배경을 선택한 것은 연극적 무대와 장치를 염두하고 소요인 혹은 산책자로서 현대인들의 부박한 삶의 일상을 상황극처럼 보여주기 위함이다. 오토바이는 옆모습이 아름답고 비행기는 윗모습에서 그 진실이 보인다면 현대인들의 표정, 옷차림, 동작은 중력 없는 별에 사는 현대인들의 플라시보 장신구들이다. 인물들은 고유한 아이덴티티를 드러내지 않고 하얀 조명이 켜진 사방이 거울인 무대 위에 서 있는 우리의 모습을 연기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정형탁(예술학/독립큐레이터)

 

 

situation_91x91cm_oil on canvas_2024

 

 

situation_194x130cm(좌)_oil on canvas_2024 | situation_194x130cm(우)_oil on canvas_2024

 

 

 

 

 
 

이정아 | Lee, Joung-A

Homepage | http://www.joungalee.com

Instagram | https://www.instagram.com/leejounga__art

 

 
 

* 전시메일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은 작가와 필자에게 저작권이 있습니다. *

vol.20240418-이정아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