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ROUTE

구기정 展

 

루트 0

 

 

 

서호미술관

 

2024. 4. 17(수) ▶ 2024. 6. 9(일)

Opening 2024. 4. 30(화) 오후 3시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북한강로 1344 | T.031-592-1865

 

www.seohoart.com

 

 

시퀸스 Sequince_디지털 C타입 프린트, 알루미늄 액자_

100x70cm, 100x70cm, 50x70cm, 150x70cm, 50x70cm, 50x70cm, 100x70cm_2024

 

 

인공적인 풍경/자연스런 알아차림

 

이야기를 2021년 구기정의 작품 <초과된 풍경>에서 시작하자. <초과된 풍경>은 우리가 잘 보지 못하던 자연 풍경을 눈 앞에 매우 생생하게 제시했다. 작가가 다루는 풍경은 숲이나 길가를 걷다 쉬이 만나는 흙 바닥이지만 이 흙 바닥은 나뭇잎이 떨어져 쌓이고 무수한 벌레들의 시체가 쌓여 같이 썩어가는 치열한 삶과 죽음의 격전지다. 이들의 죽음은 곧 누군가의 양분이 될 테니 말이다. 우리가 평소에 눈길을 잘 주지 않던 이 토양에 카메라 렌즈를 가까이 들이대어 생생하게 기록하는 순간, 제인 베넷이 말하는 비인간적 물질의 생기와 정동이 꿈틀거리는 존재가 드러난다. 작가는 이 정동의 꿈틀거림을 발견하여 확대하고, 3D 가상공간에서 합성하여 여러 지층으로 분해하기도 하고 그 속을 뚫고 통과하기도 하면서 우리의 시선을 교란한다. 이렇게 우리의 인식 위로 끄집어 올려진 평범한 자연은 이미지에 그치지 않는다. 작가도 이러한 정동이 이미지에서 그치지 않도록 실제 흙이나 나뭇가지들과 같이 배치하기도 하고, 이미지들을 설치와 뒤섞어 놓기도 한다. 그러나 설치의 방식에서 항상 우선하는 것은 실제가 아닌 이미지다. 이미지들은 사각의 강력한 프레임과 함께 우뚝 서서 등장하고 매우 강력한 환영을 만들어낸다. 여기서 우리는 실제의 대상이었던 이끼와 흙과 나뭇가지보다 이미지가 더 생생하게, 더 흥미진진하게 우리의 시선을 강탈하고 마는 것을 알게 된다. 이미지가 대상의 현전을 압도해버리고 오히려 대상과의 관계를 역전시켜 버리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같은 해 《횡단하는 물질의 세계》에서 전시했던 <유명한 풍경>은 세 가지의 레이어 안에서 작동하는 이미지들 간의 관계와 그 관계들의 재설정 과정을 보여주었다. 같이 협업했던 엘트라바이가 생산한 자연의 풍경은 실제 자연물을 그대로 가져와 연출한 것이다. 토대처럼 보이는 바닥에서 올라온 흙과 돌, 그리고 죽어버린 나뭇가지들은 블랙의 톤을 맞춰 이미 죽어버린, 생명을 빼앗긴 메마른 풍경을 연출한다. 그 위로 마치 병풍처럼 둘러친 자연의 이미지들은 거대한 사진들이다. 작가는 자연의 암석들, 흔히 생명이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자연의 움직이지 않는 풍경을 사진으로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사진과 같은 평면을 차지하는 듯 아닌 듯, 무심하게 사진 이미지 위에 떠 있는 것은 무빙 이미지들을 보여주는 스크린들이다. 이 모니터는 뒷면의 병풍에서 조각나고 파편화된 이미지들을 조금씩 움직이며 사진의 평면을 보완한다. 그러나 움직이는 이미지들 즉 비디오는 돌의 평면을 확대하거나 움직이며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고 나뭇가지처럼 휘어지고 뒤틀린 파편으로 왜곡시켜 공간을 만들어낸다. 결국에 자연은 환영과 상상을 더하며 죽어있는 자연물-암석과 부러진 나뭇가지와 토양에서 비디오로 옮겨가며 정동의 생기를 얻어낸다.

 

 

화면의 표면 surface of the screen_디지털 프린트_200x300cm_2024

 

 

구기정은 그 이듬해 〈Coagulation〉을 선보였다. “응고”라는 뜻을 가진 이 작품은 관람객과의 관계를 더 적극적으로 연출하며 관객들의 심리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이르렀다. 이 작품은 둥그런 잔디밭을 전시장 안에 깔고 그 위에 반원의 조형물을 설치하여 관람객들이 자연스럽게 걸터앉기도 하고 기대기도 하면서 스크린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실존하는 자연의 이미지인지 아니면 디지털로 창작한 것인지 구분이 모호한 이미지를 만들었다. 고해상도 카메라, 매크로 렌즈, 여기에 3D로 렌더링하며 왜곡한 비디오는 가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혼란과 머뭇거림을 만들어내며 관객들의 세밀한 관찰을 요구했다. 우리는 이 스크린이 뒤에서 빛을 투사하는 방식의 리어 스크린임을 알고 있다. 모니터의 육중한 물질성이 아니라 빛의 가벼움과 덧없음으로 전해지는 이미지들은 환각에 가까운 어지러움을 만들어낸다. 이 어지러움은 이미지들의 미세하고 세밀한 움직임에서 오는 것이라기 보다는 관객들이 지금 디디고 있는 진짜 자연, 잔디와 우리의 신체 그리고 신체가 끊임없이 이미지를 지각하며 수용하게 만드는 미디어의 관계를 재설정해야 하는 데서 오는 것일 수 있다.

작가가 〈Coagulation〉에서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한 신체는 같은 해 발표한 <Contrology>에서 새로운 수련을 시작한다. 콘트롤로지 즉 조절학이라고 불리는 이론은 무언가를 조절하고 제어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필라테스에서는 몸을 통해서 오히려 마음을 조절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조절학을 설명하고 있다. 바닥에서 위를 향하는 모양의 스텐레스 구조물은 앞쪽에 모니터 두 대를 연결한 것을 앞에 설치하여 마치 트래드밀을 연상하게 한다. 그러나 이 구조물은 트레드밀의 육중한 기계의 무게가 아니라 유연한 곡선을 그리고 있다. 동명의 퍼포먼스 비디오 <Contrology>에서 요가의 수련을 오래한 듯한 퍼포머가 등장하는데 그는 잠시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듯 하더니 이내 곡선에 몸을 맞추어 자신의 수련을 시작한다. 그는 다리를 일자로 뻗어 뒷다리를 꺾어 올리기도 하고 바닥에 가슴을 대고 몸통을 머리 위로 구부려 기구의 일부가 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관객은 <Contrology>라는 제목을 가진 작품이자 기구 위에서 스크린을 통해 이 비디오를 관람하게 된다. 필라테스가 현대인의 제한적인 몸의 움직임과 몸의 사용에서 오는 여러 신체적 불편함, 장애, 불균형 등을 극복하기 위한 치료법에서 유래한 것이듯이, 이 비디오와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현대인의 미디어 환경에 대한 재고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것은 2022년 구기정의 개인전을 기획했던 큐레이터 이지언의 말처럼 “기술-미디어와 몸의 불균형과 연쇄적인 현상들을 ‘설명’하는 방식이 아닌 ‘경험'하는 방식의 유의미한 제스쳐Gesture”를 취하는 것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Contrology_2채널 비디오 17분36초_스테인레스 조형, 커브드 모니터_가변크기_2022

 

 

2024년 서호미술관에서 새로운 작업으로 선보이는 것은 <시퀸스>라는 12점의 사진 연작이다. <초과된 풍경>이나 <유명한 풍경>이 산책하며 자연의 장면을 마주치는 것에서 시작했다면, <시퀀스>는 도심에서 산책을 하다가 마주치는 공사장이나 건축물의 장면을 다루었다. 건축중인 건물에 파란색의 비닐을 치고 안에서 공사가 이루어지는데 작가는 우연히 그 속을 들여다 보게 되고 그 안에서 유기적인 무언가를 발견하게 되는 순간을 경험했다. 누구나 다 알 것 같은 비닐 속 건축물의 평범한 풍경에서 작가는 비슷한 듯 다른 이미지들의 연속을 제시한다. 갈라진 비닐 틈에서 같은 구조물이 다른 각도에서 여러 장면으로 보인다. 관객들은 그 차이를 인식하며 한 발 한 발 내딛고 또 다른 이미지들을 만나고 그 차이를 알아차리고 또 생각하게 된다.

여기에 새로운 작업으로 설치된 6채널의 사운드 작업인 <스펙트럼 필드>는 매우 직관적으로 미디어를 통한 명상을 이끌어낸다. 작가는 기계음과 싱잉볼 사운드를 섞고 여기에 산책하다 수집한 소리들을 덧입혀 실제로 산책하며 경험하는 소리 풍경을 연출하고자 했다.

구기정이 이번 서호미술관의 <프로젝트 루트>에서 실험하고자 하는 것은 미세한 다름이 만들어내는 프레임의 차이를 알아차리기 위해 발현해야 하는 감각이나 생각에 관한 것이다. 같은 풍경이 약간 다른 각도에서 다시 제시될 때, 사운드가 조금 다른 위치에서 비슷한 노이즈를 낼 때, 두 개 모니터에서 서로 다른 영상이 살짝 틀어져서 다른 방식으로 재생될 때, 그리고 우리가 마침내 그것을 “알아차릴 때”, 우리는 묘한 현기증과 함께 인식의 새로운 즐거움을 맛 볼 수 있다. 작가가 말하는 “알아차림”은 요가에서 말하는 인식 즉 자신과 주변을 의식하는 상태 혹은 자각하는 상태를 말한다. 우리가 주변과 자신을 자각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우리의 주변을 둘러싸고 실시간으로 수많은 정보들을 내뿜는 미디어환경에서 즉각적으로 상황에 반응하기보다 분석하고 자각하는 균형 잡힌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 구기정의 작품은 우리가 자연 속을 산책하는 동안 일어나는 명상의 작용이 가장 인공적이고 기술적인 미디어를 통해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Contrology_4k 비디오 6분 42초_55인치 모니터, 모니터 스탠드_2022

 

 

 

 

 
 

구기정 | Goo GiJ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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