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생공사(共生共思) 展

Alone Be Together

 

한원석 작가 · 이예찬 작곡가 · 희토 (김희수x최영토) 작가

 

 

 

복합문화공간 더릿

 

2024. 4. 5(금) ▶ 2024. 5. 5(일)

Opening 2024. 4. 5(금) pm5

경기도 하남시 미사동로40번길 75-19 | T.1661-0288

 

instargram | @artncompany

 

 

한원석 作_현영(玄影)_227x375cm_혼합매체(스피커, 음원재생기, 스피커, 전선)_2022

 

 

공생공사(共生共思) - 실험적 컬래버레이션과 예술생태학

 

김성호(Sung-Ho Kim, 미술평론가)

 

《공생공사(共生共思)》는 전시명부터 의미심장하다. “삶 과 죽음을 함께 한다”는 의미의 공생공사(空生空死)로부터 빌려온 것이 분명한 이 한자어는 글자대로 “삶과 사유를 함께 한다”는 의미를 제시한다. 우리에게 통용되는 한자어 공생공사가 원래 “함께 살고 함께 죽을 만큼 힘든 일을 함께 이겨낸 막역한 사이”를 지칭할 때 주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이번 기획전에 사용된 변용된 한자어는 ‘함께 살고 함께 사유하는 주최 공간과 참여 작가의 결연한 의지’를 엿보게 하는 하나의 메타포로 작동한다.

 

‘창의적인 실험 예술의 공생적 연대’

기획전 《공생공사(共生共思)》가 지향하는 협업의 또 다른 범주는 ‘창의적인 실험 예술의 공생 적 연대’에 관한 것이다. 공생적 연대라니? 공생이 “서로 다른 종의 개체들이 밀접한 관련을 맺고 살아가는 것”을 의미할 때, 공생적 연대란 ‘서로 다른 예술의 실험적 양상이 만나 공존, 상생해 나갈 수 있는 공유의 연대’라고 할 수 있겠다.

 

 

한원석 作_현영(玄影)_227x375cm_혼합매체(스피커, 음원재생기, 스피커, 전선)_2022

 

 

‘한원석 × 예찬’의 출품작들을 살펴보자. 이 팀은 두 곳의 전시장에 각각 한 점씩의 거대한 작품을 선보인다. 하나는 거대한 종 형상의 조각 〈현영(玄影)〉이고, 또 하나는 커다란 심장을 형상화한 조각 〈불이화(不二火)〉이다. 전자는 인간 문명의 기술적 소산으로부터 후자는 인간의 생명력을 함유한 자연적 소산으로부터 각각 공생을 향한 의지를 표방한다.

작품 〈현영〉은 일명 에밀레종으로 불리기도 하는 국보 제29호인 성덕대왕신종을 3,088개의 버려진 스피커로 모아 실물 크기로 재현한 것이다. 통일신라의 경덕왕이 부친 성덕왕의 공덕 을 기리고 백성의 복락을 기원하는 의미로 만든 국내 최대 크기의 범종을 작가 한원석이 ‘지 금, 여기’에 불러온 까닭은 현대인에게 예술 소통과 더불어 ‘모두 함께’라는 공생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함이다. 버려진 스피커를 통해 재생한 통일신라의 화려했던 문명, 사회적 인간의 존 재를 은유하는 범종의 생태학적 세계관, 숭고한 보시(布施)를 위해 어린 자식을 시주하였다는 에밀레종의 설화에 담긴 공생의 정신과 실험 예술의 정신성, 시각 예술에 소환한 실험 음악의 탈장르적 만남과 소통 등이 그러한 것들이다.

 

 

한원석 作_불이화(不.二.火)_350x350x400cm_혼합매체(재생지관, 수성페인트, 스피커)_2023

 

 

작가 한원석이 전하는 예술 소통과 공생의 메시지는, 작품 외형뿐만 아니라 스피커를 통해 전 해지는 작곡가 예찬이 만든 음악이라는 점에서, ‘비언어적 소통’에 기반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언어적 소통’을 도모하는 글쓰기나 말하기보다 더 직관적이고 강렬하다. 스피커로부터 심장 박동처럼 반복적으로 울리는 타악기 리듬과 함께 빠른 속도로 경쾌하게 울려 퍼지는 신비로운 테크노 음악곡 〈88〉은 하나의 역설이다. 그것이 관객에게 성덕대왕신종의 숭고하고도 장중한 종소리에 확연하게 대비되는 산뜻한 무엇처럼 인식되는 까닭이다.

작품 〈현영〉의 내부 구조에 장착된 80개의 앰프가 재생하는 음원과 그것을 전달받은 3천 개 가 넘는 스피커는 작품 자체를 하나의 거대한 울림통으로 만든다. 또한 소리에 반응하면서 무 수한 스피커들의 사이 공간을 비집어 뿜어나오는 초록색 불빛은 어떠한가? 그것은 어둠 속에 깊이 묻혀 있던 검은색의 둔중한 조각 작품을 마치 살아 꿈틀거리는 생명체의 모습으로 전환 한다.

 

 

한원석 作_불이화(不.二.火)_350x350x400cm_혼합매체(재생지관, 수성페인트, 스피커)_2023

 

 

또 다른 작품 〈불이화〉는 심장 형상의 조각을 통해서 인간의 예술 소통과 공생의 메시지를 전 한다. 한원석은 검은색의 굵은 종이 관을 얼키설키 연결해서 4미터 크기의 거대한 심장 형상을 만들고 그 안에 붉은 조명을 점멸하게 하거나 엄숙하고도 장중한 사운드가 스멀스멀 흘러 나오게 함으로써 어둠 속에서 뜀박질하는 ‘붉은 불꽃 심장’을 효과적으로 구현했다. 여기서 사 운드는 작품 〈현영〉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작곡가 예찬이 작곡한 것으로, 현악기와 관악기의 음색을 전하는 신시사이저 연주가 볼륨의 고저를 반복하는 리듬 속에서 청아한 고음 연주가 지속되는 명상적 음악을 지속해 나간다. 음악은 마치 종교 음악처럼 엄숙하고도 비장한 느낌 이다. 두터운 종이관 안에 장착된 스피커를 통해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스피커, 종이관은 물론 이고 커다란 전시 공간 자체를 하나의 울림통으로 사용함으로써, 전시장을 가득 채운다.

이 음악은 〈1 + 1〉이라는 곡명처럼 하나와 또 하나가 만나는 소통과 공생의 메시지를 전하기 에 족해 보인다. 너와 내가 만나 ‘함께 하는 하나’가 된다는 의미를 담은 예찬의 곡명은 한원 석이 작명한 작품명 〈불이화〉를 만나 공생의 메시지를 강화한다. 생각해 보라. 여러 개의 불 꽃이 모여 커다란 불꽃을 만들어도 그것은 하나의 불이 아니던가? 그가 전하는 ‘불이화’의 세 계는 다시 하나가 되기를 소망하는 리원(re-one)의 세계이기도 하다.

거무튀튀한 채로 죽어가는 심장을 불꽃 심장으로 살린 것은 뜀박질하는 붉은 조명과 장중한 사운드이다. 현대 자본주의의 병폐 속에서 살고 있는 주체는 아마도 저 검은 심장을 품은 자 들이었으리라. 한원석은 고사의 위기 속에 있는 이들에게 인공호흡을 실행하면서 생명을 전한 다: “지금 우린 돈에 미쳐 극단적인 이기심으로 서로를 죽이고 있다. 그 속에서 소중한 이들 과 우리의 대지 또한 병들어 가고 있다.”

 

 

HITO 作_관객이 밟아도 되는 것들_40x15x15cm_혼합매체(빨대, 모터, HEXA LED)_2024

 

 

‘HITO’의 출품작 〈관객이 밟아도 되는 것들〉을 살펴보자.

제목부터 의미심장한 이 작품은 가로 12mm, 세로 13mm 크기의 작은 전동모터가 내장된 틀 위에 검은색 재사용 빨대를 촘촘히 붙이고 마디를 꺾어 마치 체절이 분화된 다리를 가진 거 미, 지네와 같은 절지동물을 연상하게 만든 형상으로 된 대략 가로 40cm, 세로 15cm 크기를 지닌 움직이는 조각(kinetic sculpture)이다. ‘같은 듯 다른’ 형상의 500개의 ‘멀티플 키네틱 스컬쳐’는 커다란 전시장 안에서 관절을 부러뜨리는 듯한 규칙적인 소음을 내면서 회전 운동 을 지속한다. 그뿐인가? 모터 속도를 조절하여 어떤 것들은 느릿하게 회전하고 또 어떤 것들 은 빠르게 회전하면서 서로 부딪혀 상대방에 의해 넘어지거나 상대방을 넘어뜨리기도 한다. 따라서 이 작은 기계들은 각기 다른 형상과 움직임 속도로 인해 마치 각기 다른 인격체를 지 닌 기계 생명체와 같은 위상을 부여받는다.

그러한 까닭일까? 육각형 패턴 무늬가 바닥에 투사되고 있는 전시장을 가득 채운 ‘멀티플 키 네틱 스컬쳐’가 기이한 생명체처럼 꿈틀거리고 있는 장면은 전시장 자체를 어떠한 ‘집단 서식 지’ 같은 모습으로 장대하고도 웅장하게 시각화한다. 참여 작가 최영토의 언급처럼 “로봇들이 살고 있는 하나의 생태계”라는 인상을 주기에 족해 보인다. 가히 ‘만들어진 기계 생명체들이 집단으로 펼치는 한 편의 사회적 생태 풍경이’라고 할 만하다.

 

 

HITO 作_관객이 밟아도 되는 것들_40x15x15cm_혼합매체(빨대, 모터, HEXA LED)_2024

 

 

한편, 이 작품은 ‘관객이 밟아도 되는 것들’이라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강렬한 시각적 체험 너머에서 관객의 반응에 골몰한다. 실수이든, 고의이든, 관객이 실제로 로봇을 밟아도 아 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관객을 안심시키기 때문이다. 제명이 제시하는 내용은 피상적으로 “밟아도 된다”는 용인이지만 근본적으로는 “밟아 달라”는 청유가 숨겨져 있음을 관객은 이내 간파할 것이다. 일정한 패턴의 움직임을 선보이던 로봇 생명체가 관객이 접근해 올 때 저항하 듯(혹은 반려동물처럼 반기듯) 격렬하게 반응하거나 두려운 듯 불안한 움직임을 선보일 때 관 객은 어떤 반응을 하게 될까? 로봇을 밟을까? 아니면 그것을 피해서 갈까?

참여 작가 김희수는 다음처럼 말한다: “이번 전시는 (중략) 관객들이 어떠한 반응을 보이는지 를 보고, 관객들을 한 차원 더 이해하기 위해 만든 작업이다. 작업은 ‘어떻게 공생할 것인가?’ 에 대해 고민한 결과이다.” 이런 진술에 근거할 때, 팀 ‘HITO’의 작업은 기계 생명체 혹은 의 인화된 로봇을 통해서 현대 사회가 당면한 인간-자연 혹은 인간-인간의 관계, 나아가 지배-피 지배, 주체-대상뿐만 아니라 예술-기술, 작가-작품-관객과 관련하여 공생의 의미를 되묻는 작 업이라고 할 만하다. 즉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생태학적 입장으로 제기하는 공생의 예술생태학에 관한 질문인 셈이다.

 

 

HITO 作_관객이 밟아도 되는 것들_40x15x15cm_혼합매체(빨대, 모터, HEXA LED)_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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