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준민 展

 

White Out

 

 

 

PIPE GALLERY

 

2024. 3. 5(화) ▶ 2024. 4. 5(금)

서울특별시 용산구 대사관로 21, 2-3F | T.02-797-3996

 

https://pipegallery.com

 

 

 

 

풍경의 오묘한 변주

 

강정하 (금호미술관 선임 큐레이터)

 

시선이 머무는 곳

시각은 보는 이의 가치관이나 신념, 지식 등에 영향을 받는다. 본다는 것은 기계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닌 우리가 주시(注視)하는 것만을 보는 선택적 행위로 세계를 이해하고 관계 맺는 또 하나의 방식이다. 19세기 후반 등장한 카메라는 세상의 이미지를 재현하는 화가의 손보다 더욱 정확하게 세상을 포착했고 위기의 화가들은 사진이 담아낼 수 없는 추상의 개념들을 회화에 녹여 내기 시작한다. 오늘날 급변하는 세상 속 다채로운 현대미술의 영역 안에서 작가들은 내면의 감정 표출과 물성의 본질에 관심을 둔 확장된 회화 작업을 쏟아낸다. 이러한 시대 작가 신준민은 자기 삶에서 마주한 일상과 현실에 대한 깊은 사유와 경험을 바탕으로 풍경을 그린다. 새롭게 인식한 세상을 향한 시선은 내면의 감정을 일깨우고 이것이 어떻게 회화로 표현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이를 통해 회화적 표현의 조형적 아름다움을 넘어 내면이 투영된 이상적 풍경을 찾아 나간다. 이는 세상의 풍경에 대한 주관적 인상에 몰두한 작가만의 특별한 시각적 태도이다. 이제 작가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따라가며 그의 풍경을 들여다보려 한다.

가시적인 것 너머

신준민은 일상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마주치는 풍경을 현대적 회화로 풀어내는 작가이다. 그동안 그는 자신의 기억 속 파편들로 이루어진 상상의 풍경 혹은 일상에서 발견한 특정 장소의 이미지, 익숙한 길에서 마주한 낯선 순간, 전시된 자연으로 바라본 동물원 등을 주요 소재로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회화를 선보였다. 삶 속에서 그의 시선이 머문 곳과 표현의 방법은 변화해 왔지만, 그 흐름의 중심에는 항상 자연이 있었고 동물, 인간, 집 등의 이미지가 어우러지는 풍경을 그렸다. 최근의 작업에서 그는 세상에 대한 현실적 풍경과 잠재적 풍경이 함께 공존하는 회화의 경향을 보인다. 물질과 비물질, 자연과 인공, 빛과 어둠 등 양가적인 것들이 하나의 화면 안에 존재하며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Flood Lighting>(2024), <White Fairy>(2024), <Spotlight>(2024)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작가는 ‘빛’을 품고 있는 풍경에 주목한다. 특히, 야구장 조명탑은 근 몇 년간 작가의 회화에 주요하게 등장하는 대상으로 캔버스 화면 전체를 압도하는 밝은 빛이 화산처럼 뿜어져 나와 어두운 밤하늘을 수놓고 있다. 르네 위그(Rene Huyghe)는 『예술과 영혼』(1960)을 통해 미술의 역사에서 빛의 변화된 위상에 관해 이야기한다. 단역으로 망각되었던 빛은 개선장군으로 승격하는 날이 왔다는 것이다. 신준민의 회화에서도 이제 빛은 주인공으로 자리한다.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밝혀주는 수단으로써의 빛이 아닌 빛 그 자체를 근원적 대상으로 바라보며 부피와 색채 등에 주목하게 된다. 르네 위그의 또 다른 저서『보이는 것과의 대화』(1955)에서 그는 회화에 있어 눈에 보이는 현실을 재현하는 사실성과 대상들의 균형과 조화를 고려하는 조형성 외에 ‘표현성’에 주목하며 미술에서 무엇보다 내면에 불러일으키는 울림과 감동의 중요성을 언급한다. 작가는 빛을 표현하기 위해 어두운 밤의 시간을 배경으로 하며 빛의 흐름과 움직임을 느낄 수 있는 수많은 선을 공간 여기저기에 자유로이 그려 넣어 생동감을 부여한다. 캔버스 전면에는 푸른색을 사용하여 자신의 쓸쓸한 감정과 적막함을 표현하고, 그 위로 회색과 흰색 등의 중첩을 통해 푸르스름한 어둠을 지워 나가며 빛을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준다. 이 외에도 <가시나무>(2023), <바람나무>(2024) 등은 작가의 산책길에서 마주한 고요한 밤의 풍경들이다. 곳곳에 자리한 새하얀 불빛이 공간을 밝히고 있지만 차가운 공기와 바람에 흩날리는 나무, 잔잔히 흘러가는 강물의 모습에서 스산한 기운이 감돈다. 작가는 수많은 선의 움직임과 색들의 겹침에 자신의 지쳐있던 마음을 투영한다. 또한 어둠속에 잠겨있던 자연과 사물의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만들어진 인공의 빛들이 어쩌면 우리를 조명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문하며 빛의 형상을 담은 풍경을 통해 자신의 회화적 고민을 표출한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숨이 멎을 것만 같은 적막한 색채의 공간, 폭발하듯 뿜어져 나오는 자유로운 붓질, 눈으로 찾을 수 없는 빛의 흐름을 표현하여 보는 이의 감각과 정서를 자극하고 가시적인 것 너머를 상상하게 만드는 것이 신준민 회화만의 특별함이다. 이러한 풍경의 오묘한 변주 속에 우리는 멈추어 서게 된다.

 

 

 

 

느림과 비움의 풍경

오늘날 우리는 ‘빠르게’, ‘열심히’, ‘많이’라는 구호 아래 주어진 삶을 살아내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작가는 삶의 가속도에 저항하듯 시간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고 세상의 풍경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산책자가 되어 이리저리 걷다 멈추고, 바라보고 사색하기를 반복한다. 피에르 쌍소(Poerre Sansot)는『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1998)에서 “느림이란 시간을 급하게 다루지 않고, 시간의 재촉에 떠밀려가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심에서 나오는 것이다. 또한 삶의 길을 가는 동안 나 자신을 잊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 능력과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키우겠다는 확고한 의지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신준민의 풍경에서는 이러한 느림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느림의 시간은 한 사람, 하나의 풍경, 하나의 사건이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 볼 수 있게 만든다. 또한 그는 화려함이나 특별함 보다 일상에서 스쳐 지나가 버리는 평범하고 사소한 것들을 캔버스 화면으로 옮겨온다. 어두운 밤을 배경으로 보이는 흐릿한 이미지들은 채움보다 비움의 공간으로 다가오지만 불분명한 형체와 빛의 잔상 등 비물질적인 대상들은 오히려 우리의 시선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우리의 시각은 정상적인 시계(視界)보다 시야가 제한될 때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을 그 장소에 머무르며 여기저기 시선을 옮기고 잠들어 있던 다른 감각들을 깨운다. 짙은 안개 속이나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세상에서 우리는 방향과 거리를 가늠할 수는 없지만 오히려 이러한 공간에서 눈에 보이는 것 너머 미지의 세계를 상상한다. 신준민의 풍경 속 흐릿한 야구장의 조명탑, 놀이동산의 네온사인 불빛은 그곳에서 경기를 뛰는 수많은 선수들과 응원단, 놀이기구를 타는 사람들의 모습과 함성까지 떠오르게 만든다. 또한 적막한 강가의 풍경과 나무의 전경들은 깊은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작은 불빛들은 다가올 새벽녘(희망)을 꿈꾸게 한다. 이렇듯 그는 느림과 비움으로 해석될 수 있는 풍경을 통해 보는 이로 하여금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뜻밖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리고 주어진 평범한 일상에서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는 시간을 내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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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40305-신준민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