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모먼트(AHA, MOMENT) 展

 

라군선 · 박수채

 

 

 

인사아트센터 제주갤러리

 

2024. 1. 12(금) ▶ 2024. 1. 29(월)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길 41-1, 인사아트센터 B1

 

 

라군선 作_247 OPEN_116.8×91cm_캔버스에 아크릴_2022

 

 

아하 모먼트(Aha, Moment)

제주갤러리는 2024년 첫 전시로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청년작가 라군선·박수채를 소개한다. 두 작가는 인간의 행동과 경험에서 일어나는 감정과 그 감정이 변하는 시간을 주제로 그들만의 독특한 시각과 메시지를 전달한다. 전시의 제목인 ‘아하, 모먼트(Aha, Moment)’는 특정 상황 또는 개념에 대한 깊은 이해와 새로운 관점을 ‘아하’하고 갑작스럽게 인식하는 감정 반응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의 변화를 느낀다. 때로는 나조차도 변하는 감정의 이유를 모를 때가 많다. ‘이성적으로 이해는 가는데, 감정적으로는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설명이 안 된다’라는 말은 이성과 감성이 맞부딪혀 의사 결정이 어려운 상황일 때 많이 사용한다. 인간은 자신과 사회, 자신과 환경 사이에 상호 관계를 맺는다. 때로는 스스로가 가진 특성과 자기 스스로와의 관계를 맺어야 할 때도 있다. 각각의 상황이나 경험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는 감정의 유동성은 감정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반영한다. 감정은 단순한 감성이 아니다. 주어진 상황에 대한 이해에 근거하여 작동하는 모든 감각을 통합한 것이다.

현재 다양한 분야에서 사람의 표정을 감지하여 공감과 감성지능을 갖춘 AI 감정 지능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감정 분석을 통해 사용자의 상태를 이해하고, 감정에 따라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하는 것이다. 인간의 심리와 본성에 주목한 행동경제학이 감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2023년 영국 콜린스 사전(Collins Dictionary)은 올해의 단어로 ‘AI(인공지능)’를 선정하며,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한 인간의 정신 기능 모델링’이라 정의하였다. AI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는 상황을 목도하면서 역설적으로 우리는 AI가 흉내 낼 수 없는 인간의 특이한 능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AI는 사람의 감정을 완벽하게 대체하기는 어렵다. 기술이 진화하더라도 인간의 물리적 지능 및 감정을 변화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 감정을 바라보는 시선은 저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감정은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번 전시는 두 작가의 작품을 통해 빠르게 변해가고 있는 현대 사회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 우리의 의식 속에서 어떻게 충돌하고 어울리며 존재하는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

라군선의 회화 세계는 자신의 감정에 대한 근원적 사유와 이를 통한 자기 성찰이다. 작가는 하나의 감정에 대한 의미를 재해석한다. 그 해석적 틀을 상징하듯 화면을 구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번 전시는 사막 위를 맴도는 독수리의 시선으로 표현한 <멀리 보기>, <꿰뚫어 보기>, <Bird eye view> 시리즈로 구성된다. 독수리의 시선은 작품에서 시점과 관점을 결정하고 분위기를 좌우한다. 위, 아래, 정면 각기 다른 시점에서 본 사막 풍경은 관람객에게 상상력과 감정적인 참여를 유도한다. 전시장에서 처음 마주하는 작품은 <관망>이다. <관망>은 욕심과 욕망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장면 묘사를 위해 독수리가 사막으로 추락하는 장면을 화면에 담았다. 인간의 끝없는 욕심은 마치 무한한 모래로 가득 찬 사막처럼 사람을 만족할 수 없게 한다. 작가는 황량한 사막을 욕심에 빠진 개인의 내면적 상태로 표현하였다. 생존에 필요한 자원이 제한적인 사막은 탐험의 여지가 많지만, 많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조절해야 한다. 욕심도 마찬가지다. 욕심이 너무 강하면 새로운 영역을 탐험하려는 욕망이 강해질 수 있지만, 이는 동시에 높은 위험을 수반할 수 있다. 적절한 균형과 조절이 필요하며, 지나치게 큰 욕심은 결국 자신을 곤경에 빠뜨릴 수 있다. <멀리 보기>는 사막의 낮 풍경을 분할하고 이를 확대하였다. 독수리는 높은 고도에서 멀리까지 볼 수 있는 능력으로 먹이를 정확하게 감지하며 위험한 상황을 예측하고 피할 수 있다. 독수리의 뛰어난 시력은 지혜와 통찰력의 상징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높은 곳에서 자신의 위치를 통제하며 상황에 따라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는 독수리의 지혜와 명확한 판단력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려는 긍정적인 욕심과도 연결된다. <꿰뚫어 보기>는 독수리의 시선이 관람객을 향해있다. 작가는 과도한 욕심이 인간의 정서적·사회적·물질적 측면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독수리의 눈빛을 통해 경고한다. <Bird eye view>는 사막의 밤을 배경으로 적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위험을 피하는 토끼의 모습을 독수리의 시선으로 담았다. 우화 속에서 토끼가 독수리에게 쫓기는 모습은 무모하고 지나친 욕심을 부리다 절박한 상황에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한다. 작가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욕심이 지나치게 강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과 고민을 강조하며 균형을 유지하며 신중할 것을 말한다. 전시의 마지막에 설치된 <테이블과 포식의 장>은 작품 속 공간이 사막에서 벗어나 한 남자의 방으로 이동한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있는 남자의 방안 테이블 위에는 독수리와 토끼 오브제가 놓여있다. 정면을 마주하고 있는 고요한 독수리의 눈빛에 작가의 의도가 담겨있다. 독수리의 시선에 따라 문학의 플롯(Plot)처럼 구성한 이번 전시는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불타는 차가움, 차가움의 차가움(작가 노트)”으로 객관화하여 바라볼 것을 말한다.

 

 

라군선 作_어떤 청춘의 합리적 소멸 방법_162.2×130.3cm_캔버스에 아크릴_2021

 

 

박수채는 감정에 대한 관찰과 묵상으로 자신의 감정변화를 반추하여 심상의 작품을 선보인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직접적인 감정을 표현한 이전 작업과는 달리 감정을 해석하는 방법을 선택하였다. 그의 주된 작업은 수채화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한정 짓지 않기 위해 스케치작업을 하지 않는다. 그가 작업을 위해 처음 붓을 들었을 때의 감정은 붓을 내려놓을 시점이 되면 대다수 변해있기 때문이다. 감정에 한계를 두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표출하고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그림에 얽히고설킨 오브제들은 저마다 서사적 의미를 담고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의인화된 동식물들, 등 위에 피어나는 꽃, 떠다니는 해골 등은 사랑, 희망, 고통, 걱정, 욕망, 슬픔을 나타낸다. 그래서 박수채의 작품은 사물의 가시적 표면 아래 의미를 드러내고 무의식을 탐험하는 초현실주의와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전시는 내면의 세계를 마주하기 위해 설치된 <침묵의 우물>로 시작한다. 우물은 종종 깊은 심연이나 내면의 세계를 상징한다. 각자의 내면세계로 들어가는 통로를 지나면 작가의 감정 회고를 마주할 수 있다. <비워내기>는 일곱 개의 수채화(<자화상>, <독(毒)>. <울음>, <재주 리모델링>, <60>, <유적(遺跡)>, <포르마지(formaggi)-너는 분명 피어날 것이다>)가 상자 안에 삽입된 설치작품이다. 그가 생계를 위해 작업에만 몰두할 수 없었던 시기이자 제주로 이주한 2년의 기간 동안 자신의 감정을 토해낸 결과물이다. 작가가 작품을 두고 ‘나의 감정을 배설했다’라고 표현한 것은 자신의 체내에서 처리되어야 하는 독소 같은 감정을 배출한 것이라 해석된다. 일곱 개의 수채화는 각기 다른 내용을 담고 있다. 작가는 엽서 크기의 작은 작품을 상자 안에 넣어두었고 작품설명을 뽑기 기계에서 뽑아서 확인할 수 있도록 설치하였다. 작품의 내용이 궁금하다면 설치된 뽑기 기계를 통해 관람객이 스스로 설명서를 뽑아야 한다. 그는 감정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자발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정지된 시간>은 회화 작품 <꿈>을 영상 루프 기능(반복 재생)으로 제작하여 흘러간 시간을 되새기는 영상 작품이다. 작가는 과거 자신이 그렸던 청사진의 순간을 피어나고 지는 꽃에 담았다. 누구나 후회하는 순간이 있다. 과거의 ‘나’가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면, 미래의 ‘나’는 현재의 ‘나’로부터 형성된다. 현재의 선택과 행동이 미래를 만든다. 미래를 위해 오늘을 충실하게 살아가야 하는 ‘나’는 <당신의 내일은 이미 이곳에 있다>와 연결된다. 좌대 위에 하나의 수채화가 놓여있다. 작가의 의도는 네 개의 작품이 모여서 하나의 완성작으로 만들려고 하였으나 전시 시작일에는 한 점만 설치된다. <당신의 내일은 이미 이곳에 있다>는 <감정 그리기>와 연결된다. 작가는 전시 기간에 매일 하루 50분씩 6회의 ‘감정 그리기’ 퍼포먼스를 한다. 퍼포먼스가 끝나는 전시의 마지막 날, 몇 개의 수채화가 완성될지는 미지수다. 그의 수채화는 세필로 종이가 물감을 흡수하는 것 이상으로 물감을 종이 위에 겹겹이 쌓아 올리는 작업이다. 작가는 특정한 감정이나 감정 상태를 화폭에 옮겨 담는 행위를 ‘감정 이관’이라 칭하며 본인의 마음에 쌓여 있는 감정을 해소하는 과정을 보여주고자 작가 자신이 작품이 되었다. 감정을 해석하고 이를 중첩하여 자신만의 내면 추상화를 보여주는 작가의 작업은 그의 자화상에서 더욱 돋보인다. 아카이브 공간에서는 작가가 작업 초창기부터 그려온 작가의 자화상을 확인해 볼 수 있다.

‘Emotion’(감정)은 라틴어 동사 ‘emoveo’에서 파생된 단어로 ‘움직이다, 자극하다’와 같은 의미가 있다. 감정을 통해 인간이 내적으로 움직이거나 반응하는 상태를 말한다. 감정은 상황이나 무의식의 자극에 따라 변한다. 우리는 빠르게 변하는 관계와 소통의 흐름 속에서 짧은 시간에 여러 감정을 경험하거나, 감정에 대한 무감각을 느끼기도 한다. 두 작가는 감정의 다원적인 사유를 ‘들여다보고’, ‘멀리 보고’, ‘꿰뚫어 보라’고 제시한다. 라군선은 부정적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욕심을 객관적인 의미로 해석하길 유도하였으며, 박수채는 감정의 변화를 회고 형식으로 구성하여 자신의 감정을 되새김질하듯 다시 한번 들여다볼 것을 말한다. 이들의 작업은 부정적인 감정이 결국 자신을 살아가게 하는 삶의 원동력으로 바뀌는 순간도 있음을 상기시킨다. 삶의 과정에서 자연스레 마주하게 되는 어둡고 슬픈 감정을 인정할 때 감정적으로 성숙해질 수 있다. 우리의 삶은 순간(Moment)으로 가득 차 있다. 작고 소중한 순간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순간의 감정은 그 안에서 서로 다른 감정의 색깔과 조화를 발견한다. ‘아하 모먼트(Aha Moment)’는 처음으로 무언가의 가치를 ‘아하’하고 깨닫는 순간을 말한다. 하지만, 아하 모먼트의 진정한 가치는 그 가치를 느끼는 ‘순간’이 아니라 그 가치를 찾는 ‘과정’에 있다. 우리는 감정의 공간 안에서 새로운 시선과 이해를 찾아야 한다. 당신의 아하, 모먼트는 언제인가.

 

 

박수채 作_유적(遺跡)_15.5×13.5cm_종이 위에 수채_2022

 

 

박수채 作_자화상_15.5×13cm_종이위에 수채_2022

 

 

 

 
 

 
 

* 전시메일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은 작가와 필자에게 저작권이 있습니다. *

vol.20240112-아하, 모먼트(AHA, MOMENT)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