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신화의 시대 展

 

전호태 · 문활람

 

 

 

무우수갤러리

 

2023. 12. 13(수) ▶ 2023. 12. 28(목)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길 19-2 와담빌딩 3,4층 | T.02-732-3690

 

https://moowoosoogallery.com

 

 

문활람 作_강서중묘 좌주작 복원도_70x53cm_닥지에 화강말 천연석채_2021

 

 

보석 같은 당신의 세계

 

작은 방 한 켠 상상에도 버거운 광대한 우주를 품에 안고,

활짝 편 날개 수려한 율동의 깃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려내는 한 필

 

깃의 털은 굴곡에 닿아 세미한 각을 뽐내므로 수 없이 지우고 다시 그었어도

도무지 정답을 알 수 없고 도달할 수 없는 진리의 어느 한 자락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소심한 화가의 인내, 떨리는 손끝

붓에 소진된 혼신과 굽은 허리의 통증처럼

저 붉은 주작 또한 가슴부터 타오르는 뜨거운 목을 참아낼 때,

화염은 또 날갯짓은 인고의 결과로서 과히 경이로운 형체와 감격의 순간이 된다

 

 

문활람 作_강서중묘 우주작 복원도_70x53cm_닥지에 화강말 천연석채_2021

 

 

거저 낼 수 없는 광채, 깊은 고통 없이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영혼

 

우르를 떠난 아브라함이 그랬듯 북방의 큰 별은 제2의 고향에서 새로운 광채를 낸다

아아 그 누가 저 당당한 날갯짓을 채어갈 수 있을까

왕의 자리를 탐낸 자의 섣부른 욕심으로 화를 자초하고야 마는 것일까

누군가를 위해 넋을 수호한다지만 영원한 세계로의 안내자라 하지만

그 자체로 아름다운 그대요 빛나는 별이라

 

초조할 것 없는 기나긴 역사의 길에 묻힌 증거들은

알 수 없는 이끌림의 종자가 핏속에 남아 붓끝으로 올라오는 절로 된 주장

내겐 논리적인 입술이 주어지지 않았음에 탄식이 난다마는

회청 인 아침에 넘쳐나는 영감들이 뒤엉키면 나는 아무것도 정리할 수 없어 혼란해 하다가

이내 붓을 잡고 홀연히 이끌리듯 한 획 한 획 소생시킬 뿐이라

 

자정이 지난 깊은 하늘 큰 빛 금성과 날 세운 달이 얼굴을 마주할 때

그 먼 시절 화가의 거침없는 붓질로 색색들이 알갱이들 돌 위에 머물렀다

황홀한 영화일까, 장편의 소설일까

영으로 만들어진 영원한 세계는 무형체의 보물이라 깊고도 오묘하여

어린 자들로 길어지는 문명이 창작의 열매들을 계속도 낳는다

 

<고구려, 신화의 시대 : 돌에 그린 벽화> 문활람 작가노트

 

 

문활람 作_강서대묘 북측현무 복원도_117x80cm_닥지에 화강말_천연석채_2021

 

 

문활람 作_흐름대로_33x53cm_닥지에 천연석채_2021

 

 

전호태 作_고구려 오회분4호묘 벽화 달신_12x12cm_녹석전각_2023

 

 

신화는 사람들이 소망하던 세상, 꿈꾸며 이루기를 바라던 세계, 머릿속으로 그려내던 풍경이다. 풍경 안에서 울고 웃던 사람들, 이들이 만나던 생명 있는 것들이 펼쳐낸 드라마다. 신화에선 이 사람들이 생명 있는 것들과 교감하며 말과 마음 주고받던 신이고 정령이다.

신화에는 원형이 없다. 이야기와 그림이 섞이며 내용이 더해지거나 빠지기도 하고, 곁가지 타고 흐르기도 하는 까닭이다.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듣고 다음 세대에 전하거나, 이웃과 나누는 과정에 나고 드는 게 있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야기하고, 머릿속으로 그려내는 능력이 사람마다 다르니, 말 그대로 판박이로 전하는 신화는 어디에도 있기 어렵다.

고구려 신화로 전하는 건 유화와 주몽 이야기다. 고구려 신화가 가지 쳐 나온 동명신화가 있지만, 이도 부여 이전 색리국 등으로 불리던 북방 왕국 건국담의 다른 버전에 불과하다. 그러니 어디서 원형을 찾겠는가. 오히려 더하고 빠진 것들을 잘 찾아, 유적 발굴 현장에서 수습한 깨진 질그릇 다시 붙이듯 빈틈 메워 넣으며 신화에 생명 바람 더 불어넣는 게 나을 것이다.

한 해 동안 해신과 달신, 선인과 신비로운 새, 짐승들을 돌에 새기면서 이것도 신화 되살리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십 년 동안 보아 온 작품들을 하나, 하나 뜯어보며 원형에 가까우면서도 변형된 이미지를 만들어 내다보면- 가능한 원형에 가깝게 새기려 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눈, 코, 입을 더하고, 빈 공간에 적절한 장식문을 더하는 식으로 재현과 변형이 이루어진다- 신화도 이런 식으로 입에서 입으로, 기록에서 기록으로 전해 내려온 거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든다.

 

 

전호태 作_고구려 오회분4호묘 벽화 해신_12x12cm_녹석전각_2023

 

 

갤러리 초대로 여는 개인전에 앞서 2023년 3월, 고구려 신화 전반을 소개하는 단행본을 별도로 출간했다. 그런 뒤 작품 마무리 한 뒤, 생각해 보니 작품 해설도 별도로 필요할 것 같아, 편하게 펼쳐 볼 수 있는 작고 얇은 도록 형태의 책도 따로 준비해 보았다. 작품 사진과 시, 간략한 설명 형식의 에세이를 덧붙인, 말 그대로 작품 안내서다.

신화라는 말이 들어간 데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집은 고구려 사람들이 믿고 기도하던 신앙 대상에 대한 것이다. 현재의 시각에서는 상상의 세계지만, 왕과 귀족, 백성들이 어우러져 살던 땅, 고구려라는 나라가 있던 바로 그 때, 신화 속 존재들은 생명을 지닌 실체로 고구려 사람들의 일상 속에 숨 쉬고 있었다.

고구려를 이은 발해까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지 1100년이 흐른 지금, 벽화로 숨 쉬던 고구려 사람들의 신앙 대상을 돌에 옮겨 생명의 숨결을 불어 넣어 본다. 벽화로는 남아 있지 않던 눈과 코와 입, 손과 발, 날개와 꼬리를 더해 생명을 지닌 실체로 되살려본다. 여전히 고구려와 발해를 기억하고, 만주와 한반도, 일본 열도를 아우르던 한 시대의 주인공들과 다시 만나기를 기다려온 사람들을 해모수와 유화, 주몽이 열었던 세계로 초대해본다.

 

2023년 11월, 전호태

 

 

전호태 作_고구려 오회분5호묘 벽화신농_12x12cm_녹석전각_2023

 

 

전호태 作_고구려 오회분4호묘 벽화 불의 신_12x12cm_녹석전각_2023

 

 

 

 

 
 

문활람 | anoval45@naver.com

전호태 | jjeona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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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31213-고구려, 신화의 시대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