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학 展

 

찰나 - 물의 표정

A Moment - Impression of Water

 

찰나-물의 표정 2_180x55x60cm_Aluminum

 

 

 

 

2022. 12. 14(수) ▶2022. 12. 28(수)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창36길 20 | T.02-396-8744

후원 | 강원문화재단

 

 

찰나-물의 표정 8_76x54x37cm_Aluminum

 

 

물의 서사에서 생명의 서사로

 

"저의 물/우주/지구/씨앗/세포를 병렬로 늘어놓는 작업은 이것들의 관계에 대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오늘의 인류가 지구 밖의 행성들에 대해 탐구를 경쟁적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지구에 대해 아직도 모르는 게 너무 많은데도 말이다. 땅속에서 나는 석유를 우리가 날마다 소비하고 있으면서도, 유기질인지 혹은 무기질인지, 그리고 얼마나 매장돼 있는지 그 정체와 출처, 근원을 모른다. 세계의 근원에 대한 탐구는 과학적이든, 혹은 철학적이든 부질없는 것이 아니다. 끝없는 뫼비우스의 띠 같지만, 그로 인해 우리는 계속 진화해 온 것이다. 조각가 김수학도 조형적으로 세계의 근원을 캐묻고 있다. 돌고 돌다 원점으로 맴돌곤 하지만 캐묻지 않을 수 없다. 우주-지구-씨앗-세포 등으로 이어지는 주제가 물로 이어지고 있는 데서 보듯, 그의 작업은 옴니버스 형식으로서, 시기별로 몇 개의 주제들이 존재 혹은 생명의 시원을 사유하는 하나의 일관된 철학을 이루고 있다.

 

 

찰나-물의 표정 12_52x35x25cm_Aluminum

 

 

찰나-물의 표정 15_121x83x51cm_Aluminum

 

 

작가가 근작에서 물에 대한 표현이 많은 것도 그것이 존재나 생명의 근원 혹은 소급 가능한 물질로 보기 때문이다. 작가의 물에 대한 미의식에는 비교적 자연철학적 사유의 프레임에 개인적으로 폭포를 접하고 느끼게 된 인상과 정서가 결합돼 있다. 굉음을 내며 지축을 흔드는 폭포수로 물보라가 자욱한 구곡폭포의 위용, 그에 압도된 그 강렬한 인상이 가슴에 깊이 새겨져 있음을 sns에 피력한 바 있었다. 그 거대한 폭포의 가공할 에너지와 용솟음 속에 담긴 생명력의 하모니를 표현하고자 하는 충동은 그가 조형에 몸담으면서 줄곧 지배해 왔던 터이다. 자주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고자 힘차게 약동하는 물고기의 모습들도 보았을 것이며, 물과 생명의 밀접한 관계를 생생히 체험한 터이다. 이렇게 작가에게 물은 곧 생명이며, 또한 생명의 물은 역동적인 운동을 통해 산소를 최고조로 머금어 생명의 원동력임을 역설하고 있다.

물이 가장 생생하게 살아 있을 때는 중력에 몸을 맡기면서 커다란 낙차로 생기는 낙하 운동을 하는 때이다. 물론 작가의 작품들이 모두 위에서 떨어지는 장면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각기 다양한 기울기를 가진 모습이 오히려 더 많다. 상상력을 발휘해서 본다면 위로 솟구치는 물줄기라는 것도 가능하다. 마치 광속의 샤터 속도로 찍은 물의 움직임을 다시 슬로우 모드로 보는 영상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작가는 이러한 물줄기마다 표정들이 있다고 느낀다. 비정형의 물을 묘사하는 데는 상상력과 추상 역량이 총동원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조각이 보통 정형적이거나 기하적인 볼륨, 혹은 익숙한 소재의 형태가 일반적임을 감안할 때 작가의 작업은 차라리 회화에 더 가까워 보인다.

 

 

찰나-물의 표정 18_102x67x53cm_Aluminum

 

 

찰나-물의 표정 22_152x60x34cm_Aluminum

 

 

운동중인 변화무쌍한 물의 표현을 위한 작가만의 독특한 방법들이 동원된다. 무엇보다 즉흥적 주조성(鑄造性)이 좋은 재료와 기법을 선택해야 한다. 일체의 정형적 요소들이 없어야 하고, 물이 속도와 저항에 직면해서 만들어내는 개체, 즉 돌기나 알갱이들 역시 일률적인 것이 없다. 묘사도 묘사지만 물의 속성을 이해하고 상상력이 곁들여져야 미세한 디테일의 즉흥적 주조와 결합들이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재료로 알루미늄을 쓰는 것도 이러한 주조성과 디테일에서 안정적이고 또한 색감에서도 물의 느낌을 효과적으로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물의 표현은 그 움직임에 따른 형태를 재현적으로 표현한 것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다이나믹한 운동성과 비정형성을 표현하는 추상표현적이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작업의 모든 프로세스들이 종료되면 작가에겐 마지막 최종 코스만이 남는다. 작가 오랜 실험 끝에 발견한 크롬 코팅이다. 은백색을 띤 크롬 용액이 코팅되었을 때 알루미늄의 물성을 살리면서도 아울러 투명성의 물이라는 효과를 아주 생생하고 자연스럽게 연출하기 위한 최종과정이다. 마치 도자기 성형이 성공적으로 잘 수행되었다 해도 가마 소성이라는 관문을 잘 통과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사실 이것이 보통 조각에서 흔히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보니 혼자서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확립한 자기만의 기법으로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집중해서 수행해야 하는 단계이다.  

 

 

찰나-물의 표정 23_103x64x27cm_Aluminum

 

 

찰나-물의 표정 24_114x72x24cm_Aluminum

 

 

조각계에서 김수학의 작업은 가히 독보적이다. 볼륨과 구조를 토대로 형태가 이루어지며, 비교적 정형적인 구조와 부분적인 혹은 표면적인 텍스추어가 부수적으로 수행되는 것이 조각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이에 비해 작가의 작업은 구조나 볼륨을 생략한 채 형태가 강하게 어필되는 특징을 띠고 있다. 들뢰즈의 '기관없는 신체'를 패러디하자면 작가의 표현양식은 '신체 없는 기관'의 작업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말을 하기 위해 한 인격체가 정중하게 얼굴부터 내밀며 다가서서 말하기보다는, 바로 손이 혹 들어와 컨택을 하는 식으로 말이다.

작가는 그동안의 '물' 연작들이 생명과의 관계성을 논증이라도 하듯, 새로운 볼륨의 입체작업을 통해 시도하고 있다. 변화무쌍한 물기둥들이 집합을 이루면서 마치 씨앗 모양의 입체(혹은 후육조의 부조)를 이루고 있는 작업을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게 된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작가가 씨앗 혹은 세포를 상징하는 조각작업은 작가 작업의 출발점과도 같다. 다시금 등장시키고 있는 씨앗은 개념적으로는 과거의 것을 소환하고 있는 것이지만, 물 자체를 생명의 근원으로 파악하고 있는 자신의 논리를 보다 구체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작가에게 물의 서사는 곧 생명의 서사다.

 

이재언 (미술평론가)

 

 

찰나-물의 표정 26_115x80x40cm_Aluminum

 

 

찰나-물의 표정 29_100x53x52cm_Aluminum

 

 

찰나-물의 표정 31_72x74x40cm_Aluminum

 

 

 

 

 
 

김수학 | Kim Soo Hac

 

1988 서울대학교 조각전공 학사 | 2004 일본국립 큐슈대학교 예술공과 대학원 예술 공학 전공 석사

 

2007-2008년 박수근 미술관 입주 작가 | 2008년 이천 국제 조각 심포지움 초대작가 | 2013년 평창 비엔날레 초대작가 | 2019-2022년 한국 디자인 진흥원 이사

 

개인전 | 1999년 삼정 아트스페이스, 서울 | 2001년 한전 플라자 갤러리, 기획전, 서울 | 2003년 후쿠오카 아시아 미술관, 일본 후쿠오카 | 2004년 춘천 미술관, 춘천 | 2006년 강원 아트페어, 치악 미술관, 원주 | 2007년 "꿈꾸는 식물", 관훈 갤러리, 서울 | 2008년 "세상의 모든씨앗" 박수근 미술관 초대전, 양구 | 2010년 "번지다-spread" 인사아트센터, 서울 | 2012년 "찰나-a moment" 토포하우스, 서울 | 2015년 국제 조각 페스타, 예술의 전당, 서울 | 2019년 "찰나-움직임에 대한 고찰" 4F갤러리 춘천 | 2020년 "찰나-격류" 갤러리 M, 초대전, 서울 | 2021년 "찰나-거대한 물줄기" 춘천미술관, 춘천 | 2022년 "찰나-물의 표정" 금보성아트센터, 서울

 

현재 | 한국 미술협회, 서울 조각회, 낙우 조각회 회원 | 춘천 조각 심포지엄 운영위원장

 

E-mail | soohacc3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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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21214-김수학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