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원기 展

 

그릇

A Bowl

 

 

 

이유진갤러리

 

2022. 11. 24(목) ▶ 2022. 12. 23(금)

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로77길 17 | T.02-542-4964

 

 

2022-19_mixed media on mylar_28x21.5cm_2022

 

 

설원기의 작품론-시론

 

양정무, 미술사학자

 

바우하우스에 칸딘스키가 있었다면, 미술원에는 설원기가 있었다. 칸딘스키가 1922년 바우하우스에 교수로 초대되어 1933년까지 11년간 재직하며 혁신적 교육을 이끌었다면, 설원기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설립 직후인 1998년부터 미술원에 부임하면서2017년까지 19년간 파운데이션에서 스튜디오로 이어지는 미술원 교육의 핵심과정을 설계하고 안착시켰다.

미술사적으로 칸딘스키의 작품세계는 교육자로서의 그의 정체성과 병렬적으로 비교한다. 마찬가지로 나는 설원기의 작가적 태도도 그의 교육자적 철학과 등가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칸딘스키는 바우하우스의 벽화담당 공방 교수로 시작하여 점차 형태교육을 책임지게 되며 무엇보다도, 예비과정에 있어서 이론수업을 주도하였다. 이론교육에 있어서 칸딘스키는 예술에서 이론보다 실제가 우선된다고 강조하였지만, 조형의 원리를 불변하는 법칙으로 엄격하게 제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과적으로 칸딘스키의 수업은 “학생들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표현을 구속함으로써 원칙이 수단에서 벗어나 목적이 되는 모순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설원기는 미술원 부임 이듬해인 1999년 파운데이션 교육을 동료 교수인 윤동구와 함께 주도하였다. 바우하우스의 형태교육과 이론교육에 비견될 수 있는 미술원의 파운데이션은 기본적으로 미국 대학미술 교육의 연장선에 있다. 매우 강도 높은 기초조형 교육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것의 적용에 있어 매우 유연한 사고를 요구했다. 그는 파운데이션 교육과정을 엮은 자신의 저서에서 강의 내용과 창작 기법이 교수 성향에 따라 한정 짓는 교육에 명확히 반대하고 있다. 여기서 그는 “학생 개인이 자신에게 맞는 어떤 기법을 스스로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을 지향한다”고 주장하였다.²
이러한 교수 중심의 교육에서 학생 중심의 교육으로 교육 주체의 변화는 다분히 포스트모던 미술교육의 전환과 맞닿아 있지만 크게 보면 그의 작품세계와 정확히 연계된다는 점에서 그 시사점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칸딘스키와 설원기는 미술교육자로의 역할 뿐만 아니라 회화적으로도 흥미롭게 대구를 이룬다. 칸딘스키는 그림을 감정에 대한 사실적 이미지로 봤는데, 설원기도 이와 동일한 태도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다음 두 작품은 칸딘스키와 설원기의 회화적 세계에 있어 공통점과 차이점을 명시적으로 보여준다.

 

 

2022-28_mixed media on mylar_28x21.5cm_2022

 

 

칸딘스키에 있어서 기초적 조형언어는 그의 저서 『점, 선, 면』(1926)에서 언명한 것처럼 명확하고 논리적인 이성적 세계이다. 칸딘스키의 화면에서 보이는 동심원과 사각형, 직선의 그물망은 설원기의 작품에서도 확인되나 그 형태는 모호하다. 칸딘스키의 조형원리가 확신에 기초한다면, 설원기의 조형원리는 유연함에 기초한다. 마치 칸딘스키가 이성과 논리에 기초한 불변의 법칙을 이론적으로 강조하면서 ‘발화자로서의 작가’에 확신했다면, 설원기는 자율에 기초한 수평적 시각모델을 교육뿐만 아니라 창작에서도 강조하면서 ‘토론자로서의 작가’를 모색했다고 할 수 있다.

칸딘스키는 자신의 회화를 음악으로 설명했는데, 그의 해석에 따르면 그의 회화는 고전주의적, 낭만주의적 음악의 현현이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조형원리를 베토벤의 교향곡에 비유해 소개하였다. 이 관점에서 보면 그의 「컴포지션 VIII」의 동심원은 강한 타격에 의한 거대한 파동이며 나머지는 그것에 의한 다채로운 변주로 다가온다.

설원기의 「2022-60」도 음악적이지만 모호한 경계와 비선형적 움직임으로 비결정적이다. 칸딘스키가 음악의 고전적 어법을 현대 미술에서 추상으로 구현했다면, 설원기의 태도는 이와 명확히 구분되는 비고전, 탈고전적 음악이다. 사실 나에게 그의 추상적 화면은 물리학, 특히 유체역학(fluid mechanics)의 세계처럼 신비롭게 다가온다. 회오리바람이나 역류하는 물길처럼 불규칙적이며 측정 불가능한 세계에 대한 유려한 회화적 응답이다.

설원기는 막스 베크만(Max Beckmann)의 말 “미술 그 자체는 가르칠 수 없다. 그러나 미술의 길을 가르칠 수는 있다(You cannot teach art, but you can teach the way of art)”는 주장을 언급하곤 했다. 베크만처럼 설원기 자신은 미술과 대화하는 보다 유연하고 가변적인 새로운 조형언어를 모색하려 했고 그것을 창작과 교육, 두 영역 모두에서 구현하려 했다. 따라서 설원기의 작품세계에 대한 어떠한 분석도 그가 새로운 조형모델을 창작과 교육의 영역에서 도달하려 했다는 점을 빼놓고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아쉽게도 이 지점이 그간 설원기의 작가론에서 결여되어 있기에 그의 작품에 대한 논의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2022-60_mixed media on mylar_46x61cm_2022

 

 

2022-88_oil on linen_100x73cm_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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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21124-설원기 展